자유를 위해 떠나고 자유에 지쳐 돌아온다

이규현/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5/30 [10:16]
일상의 삶을 떠나 어디론가 떠날 때 가슴에 파문이 인다.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현대인은 일상의 반복된 삶에서 의외로 빨리 지쳐 허덕인다. 아무리 신나는 일을 시작했어도 세월이 흐르면 감탄사는 줄어들고 별 것 아닌 것에 신경질을 내고 만성피로증후군에 시달린다.

피할 수 없이 짜여진 일상은 인간의 굴레가 되고 벗어나고 싶은 충동은 의외로 빠르게 다가온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고 사람들의 평가와 요구는 끝이 없다.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사람들의 기대치는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사람들은 대부분 1인 다역이다. 한 가지의 역할만 감당하는 사람은 없다.

직장에서는 늘 위와 아래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한 가정의 남편으로, 아빠로서 역할, 그리고 한두 개의 사회적 역할이 붙게 된다. 당연히 역부족일 수 밖에 없다. 일 주일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일정상으로 보면 밥 먹을 시간은 제외되어 있다. 그렇게 열심히 산다해도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불안정한 삶이 대부분이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것 같아 보여도 현실의 삶은 퍽퍽하고 불안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 이유는 굴레를 벗어나 자유를 얻고 싶어서다. 휴양지로 유명한 클럽메드의 슬로건은 매우 근사하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 것도 안 할 수 있는 자유” 기가 막히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있다 해도 살 사람이 있을까?

여행을 위해 집을 떠나는 사람들은 자유를 꿈꾼다. 아무 것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고, 사람들의 눈길과 평가로부터 벗어난 자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억누르는, 실날같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연줄들을 잠시라도 끊어버린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먹고 싶으면 먹고, 싫으면 먹지 않고, 자신을 단장함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의 허름함 그 자체로 목적지 없이 걷고 싶은 것이다.

일탈이다. 사람들은 일탈이 주는 쾌감을 그리워한다. 바이올린의 현을 풀어 주듯이 나를 묶고 있는 긴장감들로부터 놓아주고 싶다. 공항을 가보면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나사가 하나쯤 빠진 듯, 헐렁한 옷차림과 얼굴에는 홍조가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린아이처럼 흥분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토록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진짜 이유는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돈을 많이 벌고 지위가 오를수록 자유가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돈과 힘을 가지면 원하는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정반대다. 더 많은 구속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순간 자유가 없었다는 전직 대통령의 술회를 지상에서 접한 적이 있다. 더 많은 자유가 아니라 더 많은 구속이 기다리고 있었다. 백악관은 창살 없는 하얀 감옥였던 셈이다.

삶의 아니러니다. 자유를 위해 떠난 사람들은 자유에 지쳐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여행을 위해 집을 떠난 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여행은 돌아 갈 집이 있어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돌아올 집이 없는 여행, 홈리스이거나 방랑이다. 집을 떠나 한 주일만 지나면 그때부터 향수병이 찾아들기 시작하고 여행은 피곤해진다.

호텔 방의 베개가 낯설고 음식은 질리고 후줄근한 집이 그리워진다. 마침내 구속이 없는 자유에 지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을 떠날 때의 생기발랄함과 흥분된 모습은 조금도 볼 수 없다. 성경의 탕자의 이야기에서도 확인된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아버지 안에 있는 것이 자유인 것을 대가를 치루고야 뒤늦게 깨닫는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자유롭게 집에 머물 수 있는 사람만이 여행에 나서도 안전합니다”라고 했다. 자유란 공간적 떠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관계이고 내적인 태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자유는 오히려 한 분에게 매이는 것이다. 진정한 삶의 일상에서 내가 하는 일 속에서 의미를 찾고 그 속에서 기쁨을 맛보는 삶, 내가 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고 삶의 가치를 깨닫은 그곳에 참된 자유가 있다. 자유란 긴 방황 끝에야 뒤늦게 알게 되는 값비싼 보석인지 모른다.〠

 

이규현
시드니새순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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