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영성

이규현/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6/27 [12:01]
제법 추워졌습니다. 겨울다움이 좋습니다. 겨울 맛은 역시 톡쏘는 추위입니다. 새벽기도를 위해 이른 새벽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파고드는 추위는 여름 아침의 후덥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선함이 있습니다. 벽난로가 있는 집들에서 흘러 나오는 나무 타는 냄새는 오감을 자극하고도 남습니다. 타는 냄새와 거기에 커피향을 더한다면 천국으로 가는 길목 어느 즘엔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합니다.

겨울은 침묵과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들뜨고 소란스러운 것과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 스스로 외로울 수 있는 은둔이 겨울에만 만끽할 수 있는 맛이기도 합니다. 긴 코트를 입고 얼굴을 반쯤 감춘 겨울 옷차림새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과 친밀함으로 다가가기에는 거리를 둔 무장된 모습으로 보입니다. 겨울은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나만의 공간에서 은밀하게 길거리의 지나가는 사람들을 멀리서 관망하기에 좋은 시간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훔쳐보는 관음증 환자가 아니라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탐색하는 자아발견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겨울은 불같은 사랑보다는 가까운 사람들과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며 더 새로운 관계를 위해 정겨운 만남을 약속한, 목적있는 이별이 필요한 때입니다. 겨울은 스스로 홀로를 선택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토마스 아켐피스는 “자유롭게 집에 머물 수 있는 사람만이 여행에 나서도 안전합니다”고 말합니다. 본 회퍼 목사는 “혼자 있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홀로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군중 속에 소란함보다는 홀로 있기를, 분주함보다는 시간의 여백을, 독서와 사색의 깊은 맛을 누리며 영혼의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겨울은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계절입니다.

겨울은 결코 낭만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겨울은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냉혹할 수 있습니다. 파고드는 외로움으로 심한 우울함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를 통해 인간의 실존적 외로움을 표현했습니다. 외로움은 삶을 흔드는 큰 유혹이고 동시에 시련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숙함을 위한 기회입니다. 겨울 나목은 자신의 옷을 벗어버리고, 모든 잎사귀를 떨구어 낸 가벼움으로 몹시도 추워 보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옷을 입기 위해 거쳐야 할 외길인 것을 압니다.

움추린 새, 더 높은 비상을 위해 날개 안의 상처들이 여물어지게 하는 겨울은 축복입니다. 분주한 도시의 삶 속에서 내가 가장 소홀히 취급했던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는 겨울이 없다면 봄이 와도 꽃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나도 모르게 만들어졌던 숱한 상처들은 겨울이 깊어가면서 다시 살게 하는 회복으로 이끌어 주어 감사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겨울 영성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규현|시드니새순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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