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첫 한인 시민권자, 드디어 베일을 벗다”

호주의 첫 한인 시민권자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07/07 [11:08]
“한국사람 찾았습니다.” 

킴이라는 명찰을 단 여직원이었다. 순간 필자의 눈이 휘둥그래지는 것을 느꼈고, 그 직원의 눈도 잠시 놀라는 모습이었다. 필자의 반응을 본 잠깐의 투영이었다.

“정말이요? 이 사람이 호주에서 처음으로 시민권을 받은 한국인입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어 기쁩니다.” 

직원이 보여 준 그 사람의 이름은 Myoim Garrett (묘임 가렛)으로 여성이었다.

2009년 6월 3일 멜본 국립고문서보관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  호주에서 첫번째 시민권을 받은 한국 사람은 묘임 가렛 씨(여)였다. 위 사본은 캔버라 국립고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크리스찬리뷰

  1957년, 3만 3천 655명 시민권 받아

호주정부가 매년 발행하는 연감에는 그 해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을 국적별로 숫자만 밝히고 있다. 코리안이 처음 등장을 하는 연감은 1958년으로 그 전 해인 1957년 시민권을 받았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무엇인지 혹은 어떤 경로로 호주까지 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작년 초에 발행된 ‘호주한인50년사’는 이 연감을 기준으로 호주이민50년으로 설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 첫 시민권자의 구체적인 내용을 찾지 못하여 아쉬워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뭐랄까? 호주정부의 공식기록이니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확신을 갖자니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사람인데 말이다.

사실 그 사람을 거의 찾을 뻔했던 때가 약 2년 전에 한 번 있었다. 당시에도 호주한인이민사 자료와 첫 시민권자를 찾기 위해 멜본의 국립고문서보관소를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도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있는 가제트라는 역시 호주정부의 기록을 보았다. 1957년에 시민권을 받은 사람은 3만 3천655명이나 되었고, 국적은 표기되지 않고 이름과 주소만 적혀있었다. 그곳 직원의 설명?이름을 알면 그 사람의 국적과 배경을 찾을 수 있지만, 코리안이라는 국적만 가지고는 그 사람을 찾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지 못하다는 설명이었다. 


▲  호주정부가 1958년 발행한 연감에 “1957년 코리안 1명이 시민권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크리스찬리뷰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1957년에 시민권을 받은 3만 3천여 명 이상의 이름중에 한국이름을 찾아내어 일일이 확인하는 방법이다. 시간에 쫓기며 동행한 일행들과 함께 보관소 한쪽 책상에서 한국이름을 찾고 있었다. 당시 시민권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럽인들이었기에 그렇게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고, 다만 간간이 나오는 중국인 이름들과 구별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드디어 ‘정 (Jung)’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을 찾았다. 그의 주소는 시드니 썸머힐로 되어 있었다. 이 사람이 한국인일 것을 확신하며 직원에게 확인을 요청하였다. 그동안의 고생이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인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직원의 대답은 우리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네델란드 사람으로 ‘정’ 이 아니라 ‘융’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허탈해하며 마감시간에 쫓겨 보관소를 그렇게 나왔었다. 

  호주연감이 아닌 ‘가제트’ 에

그 후 이 사람은 필자의 마음속에 큰 숙제로 남아 있었다. 베일에 감추어진 이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사정으로 백호주의 정책하에 호주에까지 와 시민이 되어 살았을까? 호주한인이민사에 이 사람의 위치와 의미는 무엇일까? 이 사람을 기준으로 필자가 호주한인이민사 50년을 제안했던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무명의 이 사람이 호주사회와 한인사회에 당당히 나서도록 돕고 싶었고, 후세들에게 이 이민 선배의 개척적인 여정을 보여주어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가르치고 싶었다.

작년 언젠가는 시드니 시내에 있는 미첼도서관에서 다시 호주연감을 열어 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리 보아도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찾을 수 없었다. 직원에게 물어 보아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작은 글씨로 되어있는 호주연감을 탓하며, 또 침침하여 피곤해지는 눈을 탓하며 포기하는 심정으로 도서관을 나와 하늘을 보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몰랐다. 호주연감 탓도 아니었고, 약해지는 시력의 탓도 아니었다. 기억력에 문제가 있었다.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은 호주연감이 아니라 가제트에 있었는데 호주연감에서만 찾고 있었다니, 어쩔수 없이 세월은 갔다. 

▲  묘임 가렛 씨의 호주 시민권 신청서 사본   ⓒ크리스찬리뷰


  첫 시민권자는 남성?

이번의 일정은 캔버라와 멜본의 국립고문서보관소를 다시 찾는 일이었다. 비행기 회사들의 경쟁으로 다행히 값이 낮아져 시드니-캔버라-멜본-시드니로 예약을 하였다. 사진촬영을 담당하기로 한 크리스찬리뷰 권순형 발행인은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공항에 나타났다.

“이번에 정말 그 사람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글쎄요. 우리가 찾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한인사회에 나오려고 해야 찾아질텐데요.” 

선문답 같은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러나 이번 방문의 목적은 이전에 이미 찾은 다른 자료들을 촬영하기 위함이었고, 혹시 첫 시민권자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보너스였다.

캔버라 국립도서실을 거쳐, 우리는 국립고문서보관소를 찾았다. 필자에게는 정겨운 건물이었지만 동행한 분들은 처음 와보는 곳이란다. 미리 신청한 자료들을 촬영하는 동안 그곳의 한 직원에게 1957년에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 말을 걸었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시민권을 받은 사람들의 시민권증서 복사본을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복사본이 수천 장이 되는데 어떻게 다 뒤져 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수천 장의 복사본은 5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는데 독신남성, 결혼남성, 독신여성, 결혼여성, 그리고 어린이였다. 이중에서 한두 개를 신청하면 다음날 볼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친절하게 직원이 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날 오후 멜본으로 떠나야 했고, 또 다시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었다. 독신남성과 결혼남성의 것을 신청하고 나오는데 권 발행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왜 첫 시민권자가 남성이라고 생각하세요?”  

  산더미같은 시민권 증서 열람  

그 다음날 아침, 고문서보관소에 도착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시민권증서 복사본이었다. 우리 일행은 한 구석에 조심스럽게 앉아, 그리고 비장한 심정으로 복사본 한장 한장을 넘기기 시작하였다.

정말 첫 시민권자가 왜 남성이라고 생각했을까? 1957년이면 호주봉寬?결혼해 입국한 여성일 수 있고, 또 입양된 어린아이일 수 있는데 말이다. 세시간 이상에 걸쳐 넘겨 본 시민권 복사본에는 결국 코리언이 없었다.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렇게 꼭꼭 숨어 있는 것일까?

멜본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고문서보관소로 달려 갔다. 그리고 나는 2년 전의 기억을 살려 보관소 한구석에 있는 책들을 둘러 보는데 갑자기 기억에 나는 시리즈로 된 책이 있었다. ‘가제트’ 였다. 바로 이것이었다. 시민권자의 명단이 수록된 이 책. 1958년 가제트를 찾아 열어 보니 1957년 시민권자들의 명단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필자는 동행한 일행과 나란히 앉아 한국이름을 다시 찾고 있었다. 이번에는 성만 한국성이 아니라 이름도 한국식 이름이면 다 찾기로 하고, 또 중국식 이름이라도 일단 적어 문의해 보기로 하였다. 수천 개의 이름들을 다시 짚어 보며 일단 ‘수상한’ 이름들을 A4용지 한장에 다 채웠다. 직원에게 그것을 먼저 확인해 보도록 부탁하고, 계속하여 필자는 다른 이름들을 넘겨 보고 있었다. 함께 찾던 일행은 다른 약속으로 먼저 자리를 떠난 상황이었다. 그 때 킴이라는 직원이 다가 온 것이다. 


  검은 머리, 갈색 눈동자의 ‘묘임 가렛’ 

묘임 가렛 (Myoim Garrett). 1933년 2월 7일 한국 경상북도 태생. 검은 머리와 갈색 눈동자. 1956년 11월 4일 일본에서 호주 도착. 1957년 11월 21일 시민권 받음. 주소: 39 Malaya Road, Puckapunyal, Victoria. 시민권 번호: EF10024248.

그녀는 호주에 입국할 당시 23살이었고 일년 후에 시민권을 받았다. 호주인 성을 가지고 빅토리아에서 살았으며, 현재 살아 있다면 76세이다. 충분히 생존해 있을 수 있는 연령이기에 이 글이 조심스럽다. 호주인 성을 가진 것으로 보면 호주인과 결혼하여 입국한 것으로 보여지며, 그 호주인이 호주군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시민권자의 명단이 수록된 1958년 가제트를 열람하며 수상한(?)한국이름을 찾아 확인한 결과 ‘묘임 가렛’ 이란 한국 인을 확인했다.   ⓒ크리스찬리뷰


그러나 그 이상의 추측은 하지 말자. 본인이 나서거나 혹은 그 분의 후손이 말하기 전까지는, 아니면 더 구체적인 자료를 찾기 전까지는 그 이상의 해석은 보류하는 것이 옳겠다.

올해가 ‘호주와 한국 교류 120년의 역사’의 해이다. 이제 그 120년 역사의 한 중간에 기념비적으로 묘임 가렛이라는 한 여인이 서 있다. 누가 그 여인을 만나기 원하는가? ☺



글/양명득(호주연합교회 NSW주총회 선교부)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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