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생각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08/28 [17:12]
이상하다. 9월인데 '봄'이니 말이다. 겨울나기를 준비해야할 나무들이 오히려 기지개를 켜고, 을씨년스러운 겨울을 호통치며 쫓아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봄이 오는 길목에 서서 아직도 나는 낙엽지는 가을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얼마나 이곳에 살아야, 시드니의 계절에 친숙해 질 수 있는 것일까? 

봄이 오는 9월에 나는 역사를 찾아 떠나려고 한다. 한국을 거쳐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이스탄불에 갈 예정이다. '동서문명'이 만나는 곳에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곳은 '헬레니즘과 로마 문명' 그리고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함께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곳이다.

오래 전 나는 로마의 길을 걸으며 도시 전체가 박물관 같다라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한술 더떠서 '이스탄불'을 일컬어 '인류 문명이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박물관'이라고 했다. 로마가 '서양문명'의 중심지였다면, 이스탄불은 '동서양문명'이 만나 '비잔틴'이란 '제3의 문명'을 만들어낸 곳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곳은 원래 '비잔티움'으로 불리다 330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의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고, 자신의 이름따라 '콘스탄티노플'로 개명하였다. 이후 1100년 이상 같은 이름을 유지하다,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점령되면서'무슬람의 도시'라는 뜻의 '이스탄불'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과 터키

터키는 지정학적으로 동방에 속해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서방과 많은 교류를 가지고 있다. 터키는 대한민국을 '형제국가'라고 믿고 있다. 중국을 수나라가 통일하자 '고구려와 돌궐'은 연합하여 수나라?대항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수나라의 침략을 받아 돌궐은 서쪽으로 쫓겨나게 된다. 그들이 서쪽으로 이주해 정착하여 오스만 투르크를 건설하였다.

아랍과 발칸반도를 지배하며 강성했던 오스만 투르크가 19세기 중반부터 쇠퇴하면서 주변의 영토를 잃고 지금의 터키만 남게 되었다. 돌궐(突厥)의 한자를 투르크라고 발음하고, 투르크의 영어식 발음이 터키이다.

6.25 당시 21개 국가가 UN의 깃발 아래대한민국을 도왔다. 이때 터키는 자국의 이익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형제국가'이기에 네번 째로 많은 전투병력을 파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한국에게 너무 먼나라였다. 역사시간에도 터키가 돌궐이었다는 사실도 배운 적이 없었다.

88올림픽 때에 터키인들은 많은 기대를 가지고 한국에 왔다. 하지만 한국은 터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2년 월드컵이 열리고 한국과 터키가 3.4위 전에서 만난다. 이때 한국은 지금까지 터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한번에 갚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날 자국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국과 호주

2000년 4월 23일 시드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3대대에서 열린, 가평전투 기념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부대 입구 도로명을 가평로(Kapyong Road)라 할 정도로 3대대의 상징은 곧 가평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부대의 중심부에는 가평에서 가지고 온 화강암으로 기념비를 만들고, 주위에는 호주기, 성조기, 캐나다기와 함께 태극기가 날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평전투'는 호주 전투사에 가장 빛나는 전투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인해전술로 파죽지세로 밀려 오는 중공군을 가평에서 저지하여, 후방에서 진지를 구축할 시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전투로 인하여 호주 3대대, 캐나다 2대대, 그리고 미군 72 대대의 탱크부대 중대가 당시 미국의 트르만 대통령으로부터 'The United States Presidential Distinguished Unit Citation'을 받게 되었다. 당시 전투에서 전사하였던 3대대 요원들을 추도하는 기념비가 축둔리의 여울 앞에 세워져 있다.

사열을 마치고 6.25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던 중 21개국이 참전하였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참전국가의 숫자와 너무나 다르기에 식사 시간에 질문하였다.

“한국에서는 참전국이 16개 국가라고 배웠는데 조금전에 21국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질문을 듣고 친절하게 이렇게 답변하여 주었다.

“5개 국가는 의료를 지원하였고, 나머지 16개 국가는 전투병력을 파병하였습니다."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1915년 4월 25일 '칼리폴리'에서 서로에게 총 뿌리를 겨루었던 호주와 터키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연합군으로 만나 대한민국이라는 낯선 나라를 위하여 함께 싸우게 될 줄이야!☺



김환기 
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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