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제26대 시드니한인회장 퇴임한 승원홍 장로

‘다툼, 분열' 제일 어려웠다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08/28 [17:29]
제26대 시드니한인회장 승원홍 장로(61)가 8월 1일을 기해 회장직에서 퇴임했다. 


한인회에 쏟은 승 장로의 열정적인 활동 탓이었을까. 그는 재임기간 특유의 논리력, 추진력 그리고 거침없는 행동 등으로 세간의 입방아에도 자주 언급되었으며 이런 그같은 성격은 코리안 가든 사건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일반인들 사이에서 '소신있다'는 반응과 함께 '부족하다'라는 부정적인 여론이 회자되기도 했다. 

 
▲ 26대 시드니한인회장을 지낸 승원홍 장로는 앞으로 책도 많이 읽고 자서전도 쓰고 싶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크리스찬리뷰

어쨌거나 그는 2년 동안 한인회를 끌어 온 장본인으로서 누구보다도 한인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전임 한인회장들이 그러했듯 좌절감을 맛보았고 고난과 파동을 헤쳐온 그이기에 오늘의 한인회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갖고 있을 법하다. 그러기에 승원홍 장로와의 대담은 27대 한인회 운영에 참고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며 비록 변명이 있다 할지라도 이 시점에서 그의 '증언'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기자는 그를 둘러싼 숱한 소문의 진위를 확인해 보았다. 그는 한인회장 불출마설, 코리아 가든 사건, 정관 개정 등 민감한 질문에 소상한 답변과 함께 자신의 심경 등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놨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매순간 결정할 때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다면서 상당한 확신과 열정도 나타냈다. 

승 장로는 서울대 중문과를 나와 대한항공 시드니 지사장을 역임하다 1983년 롯데여행사를 창립했으며 민주평통 대양주협의회 부회장, 호주 한글학교협의회 회장, 재호 상공인연합회 회장 등을 맡아 활동한 경력을 갖고 있다.

▲ 존 하워드 연방수상과 대담을 나누는 승원홍 회장 . 그는 임기중 호주 주류사회에 한인사회를 역동적으로 홍보했다.     ©승원홍

호주 주류사회에 홍보, 청년포럼 등 성과


8월 중순의 어느날 밤, 핌블 자택에서 만난 승원홍 장로는 자기도 한 모임에 참석했다가 방금 도착했다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 집에서 참 오래도 사십니다"라고 말문을 열자 그는 웃음을 띄며 "난 한 번 눌러앉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큰 웃음소리. 안경 너머로 빛나는 눈매가 언뜻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임을 느끼게 해준다. 

 - 마음이 착잡하시겠습니다.

“뭐, 시원섭섭하기도 하고 미련이랄까 아쉬움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미련이나 아쉬움이라는 건 우리가 생명이 유한한 것처럼 한 사람이 계획했던 일들을 100% 완성하기는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조금 남겨놓고 나가는 것도 미덕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아쉬움은 있지만 2년을 충실하게 일했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후련합니다"
  
그는 지금의 심정을 산 꼭대기에 다다른 등산에 비유했다.

“등산갈 때 그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시원한 바람맞는 그 기분입니다. 물론 그 무거운 짐들을 혼자 지고 정상에 오르는 동안 힘도 들었지만 이제 다 내려놓으니 홀가분합니다."

- 짐을 같이 지시지. 

“허허, 그래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이들과 짐을 조금 나눠지는 것인데"

이 대목에서그는 "2년간 26대 시드니한인회장으로 봉사한 것이 개인적으로 평생 잊지못할 특권이자 영광이었다"고 덧붙였다. 

- 8월 1일 퇴임 이후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습니까? 

“책을 보면서 지냈습니다. 특히 언젠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28편짜리 삼국지 테입을 사왔어요. 그 삼국지를 간간히 보면서 춘추전국시대 사람들과 한인사회를 비교하면서 인간사들의 모습을 회고했지요"
  
- 26대 한인회에서 벌인 사업도 많은데 성과라면 무엇을 들 수 있겠습니까? 

“사실 그동안 한인사회를 보면 우리끼리는 많이 성장을 했는데 호주 주류사회로 들어가는데는 매우 약했다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면에서 짧은 2년이었지만 호주 주류사회에 우리 동포사회를 알리고 홍보하지 않았나, 예를 들면 한인사회 최초로 현직 연방수상과 40여 분 동안 나란히 옆에 앉아서 정상회담 하듯 대담을 나눈 일이라든가, 한인사회와 밀접한 시장과의 만남, 카운슬러들과의 많은 교류를 하면서 한인사회를 역동적으로 홍보를 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아시다시피 우리 동포사회가 그동안 이민 1세대 중심으로 한인회가 운영이 되어 1.5세대 2세대들은 한인사회와는 전혀 관계없는 별도의 사람들이었지 않습니까? 이들에게 한인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인회관에 한 300명까지 모인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한 것은 큰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그것으로 인하여 청년포럼이 이루어졌고 이 청년포럼에는 각 대학교 학생회도 포함을 시켰습니다. 이렇게 해서 청년들 그룹끼리 서로 상부상조하는 네트워킹을 한 것은 상당히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당장은 효과가 없겠지요. 그러니 이로 인해서 앞으로 한인사회가 커다란 이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 계획은 했으나 이루지 못해 안타깝다 하는 것이 있습니까?

“이런 건 있지요. 한인사회가 호주 주류사회에 진입을 해야한다. 젊은 차세대가 한인사회 주역으로 나타나야 된다 그런데에 포커스를 맞췄습니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도 50이 안됐습니다. 그것에 비하면 우리 한인사회는 지금 70대란 말이지요. 그러니까 시대의 흐름에 무감각한 겁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새로운 각성이랄까, 깨달음 같은 것을 주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없는 다수보다는 일부의 소수 분들의 목소리가 크다고 그럴까, 이런 분들로 인해서 자꾸 영향력이 많이 좌지우지되는 것, 그런 부분이 좀 안타깝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 부분이 좋다 나쁘다 그런 의미가 아니고 시대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데 대한 안타까움이지요. 

그리고 한인사회가 너무 업종간에 과대경쟁을 하는 부분, 그러니까 주류사회로 못들어가고 교민사회 안에서 모든 공급과 수요를 충족하려다 보니까 공급은 많은데 수요는 정해져있고 그러다 보니까 같은 업종간에 다툼이 일어나고 불신하고 그런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지 않느냐는 거지요. 

그래서 어떻게하면 주류사회 시장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느냐 또 우리 시장에도 호주 주류사회가 많이 들어오게 하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영문 불러틴을 만든 겁니다. 한인사회를 폭넓게 알리자, 차세대를 불러 들인다는 것도 그렇고 하다못해 전화번호부도 영어를 넣었어요. 그래서 호주사람들도 이곳에 광고를 내게도 하고 호주 사람들이 한국식당을 가고 싶으면 주소록을 보고 식당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고 그런 부분을 시작만 해놓고 떠나게 되어 많이 아쉽습니다."

 
▲ 금년 3월 호주를 국빈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오른쪽)이 교민 간담회에서 승원홍 시드니 한인회장과 건배하고 있다.     ©승원홍

늘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다 

- 한인회 운영은 아무래도 재정이 관건인데 재정확보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첫 해에는 활동을 참 많이 했습니다. 리스트를 보니까 거의 40만 불 선입니다. 일일이 찾아다녔는데 한인회비를 4만 불 넘게 거두었습니다. 과거에는 몇천 불이었었는데 4만 불이 넘었던 거지요. 이것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뭐가 혁명적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4만 불을 거두었다는 것은 한인회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의미이거든요. 한인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되겠다고 하는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거든요. 

한인회비가 10불인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인건비가 문제가 되더라구요. 연 10만 불 정도가 되는데 고스란히 한인회장 몫이 되더라구요. 그런 부분이 앞으로도 어려운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 그렇다면 한인회가 수익성있는 사업을 해야 하는데  수익성있는 사업을 선택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우리 한인사회에 있는 업종과 대치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러다보니까 수입 재정원이 전화번호부밖에 없어요. 너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 정관 개정도 추진하셨는데 결국은 포기를 하셨지 않습니까? 여기에 대해 정리를 해주시지요.
  
“효율성이 없다든가 또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몇 가지 손을 좀 볼려고 했었죠. 큰 선에서 하나는 회원 문젭니다. 누가 회원인가 정관에 보면 한인 혈통을 가진 자로 한인회 활동에 참여하는 18세 성인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보십시요. 뉴질랜드에서 오신 분들도 많고 중국여권을 가진 분들고 더러있고, 이런 분들은 현 정관에 의하면 배제되어야 합니다. 이런 분들을 포함해야 되겠다. 또 입양아도 있습니다. 국제결혼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거냐 누구라도 한인 혈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원하면 다 한인회 정회원으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그렇게 될 때 그 많은 회원들을 어떻게 포괄적으로 커버를 하느냐 이 문제에 있어 일반회원과 등록회원으로 구분을 하자는 겁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한인회장 임기입니다. 저는 한인회장 임기는 3년 단임이 적당하다고 생각을 했고 이에 대한 반응이 좋았습니다. 또 하나는 이사제도입니다. 이사제도가 있었는데 없어졌어요. 한인회를 도와줄 수 있는 순기능적인 이사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정관개정을 추진했던 거지요."

 - 그런데 왜 표결을 하지 않았습니까? 

“일부 밖에 있는 인사들이 자기들이 참여를 안했다며 큰 소리치는 바람에 뭐 제가 여기에 생명걸 일도 없고 그래서 표결을 안했죠."


- 27대 한인회장 재선에 출마를 포기한 직접적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래요. 결국은 포기지요. 아시다시피 선관위를 구성했는데 선관위가 선관위 스스로 분쟁이 됐습니다. 선관위 자신들이 선출한 선거관리위원장과 선관위원들간의 불화로 점점 시끄러워지면서 이런 가운데 마치 선관위원장과 한인회장과의 대결구도같은 일인 것처럼 동포언론에서 보도를 한 거죠. 참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긴장관계가 6주 이상 계속되었는데 마침 부활절날이었어요. 부활절을 겪으면서 사도바울이 소아시아로 전도를 가려고 하는데 성령께서 막으시고 마케도냐 환상을 보여주는 그 말씀을 붙들게 했습니다. 

그때 아, 하나님께서 이 길을 막으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지요. 사실 저는 그 당시 새로운 선관위 구성을 할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전도서를 읽게 되었는데 거기에 보니까 혼자 옳다옳다 하지말라 악인도 장수하느니라는 말씀을 주시는 거에요. 융통성있게 살아라 그런 말씀이 아니겠어요. 

최근에 보니까 퀸스랜드는 두 개의 한인회가 되었지 않습니까? 사실 그때 그대로 강행했으면 시드니에서도 원하든 원치않든 두 개의 한인회가 됐을 겁니다. 왜냐하면 한쪽에서는 당선공고를 하고 새로 구성된 선관위에서 새로 등록을 받고, 저는 그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큰 다툼이 일어날 것이 뻔한 사실인데요. 더 나아가서는 세상 법정까지 가지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6장에 보면 크리스찬들이 교회안에서의 분쟁을 세상법정에 고소하는 것을 질타하는데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이런 분쟁을 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하면서 용단을 내렸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오른쪽)과의 교민 간담회에서 환영사를 하는 승원홍 회장     ©크리스찬리뷰

코리안 가든


-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코리안 가든 조성 사업이 추진되다가 갑자기 중단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러쿵 저러쿵 말들이 많은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언젠가는 사실대로 밝혀지리라 보지만 스트라스필드 카운슬(구청)에서 카운슬 영내에 있는 부지(Bress-ington Park  7.9ha중 3ha)를 코리안 가든으로 선정하고 조성계획안을 제출하라고 했어요. 그 과정에서 스트라스필드 상우회와 한인회의 의견이 조금 상반되는 게 있었습니다. 문제는 자금 확보였어요. 아무리 조성계획안이 좋다고 해도 자금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도 처음에는 해를 넘기기 전에 우리가 조성 계획안을 만들어 제출해서 땅부터 확보하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만약 계획안을 제출하고 자금확보가 안됐다 합시다. 그래서 변동이 돼서 새로 계획안을 만들어 다시 제출한다고 합시다. 그것은 스트라스필드 카운슬을 기만하는 거라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정법사를 통하여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한국정부에서 한국관광을 홍보하는 여러가지 사업 중에 탬플 스테이가 서구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리안 가든 안에 탬플스테이를 짓는다면 5-6백 만불 정도는 확보할 수 있는다는 거에요. 

문화관광부에서 조계종에 후원하는 자금중 일부를 시드니의 탬플 스테이 짓는데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거지요. 이는 조계종의 요청이지만 어짜피 대한민국 정부 예산이므로 이렇게 실행이 될 경우 추진위원회 대표가 정부측 대표인 공관장이 들어가야 하고 한인사회의 대표로 한인회장이, 그리고 불교측 대표로 편의상 이곳 정법사 주지가 맡는 것으로 했어요, 그런 부분에서 스트라스필드 상우회 관계자들이 배제가 되니까 아마 싫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구요. 

그리고 돈 문제와 관련해서 저는 빨리 가능성을 타진해 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동국대학교에서 설계한 건축모형도가 있었어요. 거기에 보면 코리아 가든 안에 탬플 스테이와 부속건물이 있어서 한국전시장으로 설계되어 있었는데 저는 탬플 스테이는 안된다 왜냐하면 코리안 가든이 조성되려면 동포사회의 동의를 얻어야하고 그 다음에 스트라스필드 주인들에게도 동의를 얻어야 되는데 불교 탬플 스테이를 짓는다 하면 우선 한인사회가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스트라스필드 주민들도 크리스찬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탬플 스테이를 코리안 가든 안에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3층짜리 종합건물을 짓자고 했어요. 1층은 정법사가 쓰고 2층은 한인회에서 3층은 스트라스필드 지역에 오픈해서 사용하도록 하자. 저는 우리 동포사회에서 그 정도는 이해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트라스필드 주민들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가 있지 않겠나 그것이 제가 생각한 마지막 복안이었지요. 그렇게 진행하려고 공청회를 생각했는데 그 때 정법사 주지께서 뉴질랜드 출장을 가고 저 역시 유럽에 갈 일이 생겨 시간이 서로 안맞으면서 중단이 돼버린 거에요. 그래서 스트라스필드 카운슬에다 잠시 홀딩하고 있으라 했는데 유럽에 가 있는 동안 스트라스필드 상우회측에서 승원홍 회장은 빠져도 좋소. 그렇게 자기네들끼리 결정을 한 거에요. 돌아와 보니까 그렇게 된겁니다. 제가 빠지면, 한인회가 빠지면 불교측에서는 자동으로 빠지는 거에요. 아까 제가 대표 세 사람을 얘기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이 또 언론사에다 나 때문에 코리안 가든이 안된 것처럼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관계된 사람들은 먼 훗날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워요. 그때 제가 강하게 밀어 부쳤어야 했는데 상당히 아쉽습니다."

  
▲ 26대 시드니한인회장을 지낸 승원홍 장로는 2년의 임기동안 어려움도 있었지만 부끄러움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회고했다.     ©크리스찬리뷰

- 그럼 코리안 가든은 완전히 끝난 것입니까?

“예, 완전히 끝났습니다."

- 참으로 안타깝네요.

“휴, 그래요."

 승 장로는 괴로운 듯 머리를 쳐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 27대 한인회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말씀하시지요.

“저는 그동안 27대 한인회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거에 보면 우리 한인회가 회장이 바뀔 때마다 불편한 관계도 많았고, 업무 인수 인계도 소홀히되고 하여튼 그런 경우가 많았었는데 저는 이번 업무 인수인계부터 아주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짧다면 짧지만 상당히 많은 일들을 했기 때문에 그 노하우가 그냥 사라지면 안되겠다는 거지요. 그런 노하우를 27대 한인회에 많이 넘겨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필요한 부분은 항상 뒤에 숨어서 조력을 다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시겠지요. 다만 우리가 추진했던 큰 틀 안에서 많이 계승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는 "2년간 호주 주류사회로부터 인정받을 정도로 한인회가 좋은 이미지를 쌓았으니 27대 회장단부터는 더욱 새롭게 도약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드니 한인사회는 희망이 있다"며 "김병일 회장을 구심점으로 27대는 주류사회로 좀 더 들어가고 후배들이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전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회고록 출판하고파

- 호주연합교회에 출석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린필드연합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저는 한인교회 지도자들에게 그런 권면을 하고 싶어요. 한인교회에서 양육을 받은 교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교회에 가서 자기가 사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일궈나갔으면 좋겠다. 우리를 알리고 또 그들에게서 배우고 그래서 호주라는 나라를 같이 만들어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저는 그렇게 실행을 했습니다. 물론 어려워요. 영어로 예배를 드려야되고 영어로 기도하고 영어성경을 봐야되고 그렇지만 노력을 하면 좋아질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특별히 젊은 분들에게는 그런 도전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장로님, 한인회를 이끌어 오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글쎄요.(한숨) 어렵지 않을 때가 하나도 없었지만 한인단체들간 이해가 달라 불란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노인회관 관계, 6.25참전 국가유공자 관계, 그러니까 한인단체와 단체간의 불화, 다툼, 여기에 나서서 조정을 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양보할려고 하는 마음은 없고 본인들만 다 옳다라는 그런 부분입니다. 이런 부분이 한인회장을 곤혹스럽게 했던 것 중의 하나입니다. 

더 하나 얘기한다면 지난 번 총영사를 교체해 달라고 연대서명하여 고국 정부에 건의서 형태로 보냈잖습니까? 이런 부분이 한인회장으로 하여금 입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일부는 그러더라구요. 총영사와 한인회장이 너무 가깝다. 현 회장이 총영사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 동포사회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총영사와 반목이 돼 있는 것이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절대적으로 한인회장은 현직 공관장과 가깝게 업무협의를 해야되고 가능하면 본국정부에서 혜택을 우리 동포사회에 많이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인회장의 업무중 하나다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저는 어려움은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정말 부끄러움이 없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시지요.

“책도 많이 보고 싶구요. 자서전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인사회가 양과 질에서 좀 더 약진하는 계기가 왔으면 바라구요. 제가 그런 일에 일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승원홍 장로는 그동안 한인회 안팎에서 자신에 대해 `소신이 없다'거나 `원칙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면서 "늘 미래지향적으로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해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비쳐진 것 뿐"이라고 설명하고 "2년간 정말 사심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한 기자로서는 그의 소신이나 철학을 굴절없이 그대로 전달하고 모든 평가는 독자에게 맡긴다는 심정으로 발언 요지를 그대로 지면에 옮겼다. 

승 장로는 장시간의 인터뷰가 끝나고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여윤있는 말을 남겼다.

“2년 동안 회장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부모님과 아내(승영옥), 자녀들에게 감사합니다."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