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화는 성도의 성스러운 성역이다

글|송기태,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2/27 [11:58]

성시화대회 : 3월 9일(금)~10일(토) 7:00pm

                MAIN ARENA, State Sports Centre

                다문화행진 : 3월 11일(주일) 3:00pm & 5:00pm

                Belmore Park & Martin Place 

 
성시화 참여는 책임이며 특권

“전 교회가 전 복음을 전 시민에게!”라는 성시화운동의 사명선언은 운율이 매끄럽지 못하긴 하지만, 이 속에 성시화운동의 철학이 들어있고, 방향이 들어있다. 이를 풀어쓴 “교회마다 전도를, 사람마다 복음을, 나도 한 사람”이란 구호가 이를 뒷받침한다.

마디그라와 도박과 마약으로 상처입고 신음하는 도시, 시드니에 성시화가 상륙하여 ‘거룩한 도성’을 향한 열정들이 절절 끓고 있다.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마디그라 행진으로 시드니 한복판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어당기며 대박난 ‘핑크머니’를 추수하고 있다. 일주일 후 시드니성시화운동본부는 그 ‘추수밭’의 이삭까지 쓸어내려는 힘겨운 청결작업으로 맞서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 누가 봐도 ‘골리앗 앞에 선 다윗’같은 모습이다.

▲ : 2012 시드니성시화대회 전도집회가 3월 9일부터 10일까지 시드니올림픽공원내에 있는 State Sports Centre 내에 있는 Main Arena에서 열린다.     ©크리스찬리뷰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선언한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깊은 생각과 뜻을 미처 알지 못한다.

그날 그 전장의 주변에 있던 사람 중에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이 이길 거라고 배팅할 사람이 0.0001%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처럼, 오늘 이 거대한 도전에 대한 응전의 결과도, 이 역사를 움직이시는 ‘보이지 않는 그 크신 손길’이 있기에 넉넉히 승리할 것을 그토록 자신하는 것이다. 

성시화가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분명하다면, 분명코 ‘성시화는 성도의 성스러운 성역’임을 자신있게 선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화(성시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하셨다. 사람과 자원이 경쟁하며 성장과 번영의 꽃을 피우는 도시는 복음화의 첫 목표가 되는 것이 지극히 타당한 것처럼, 호주의 중심 아니 남태평양 선교의 전초기지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시드니의 성시화는 시드니 성도들의 책임이며,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드니의 절박한 문제들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외면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다. 주님은 우리의 두 눈을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보고 그 원하시는 것들을 우리 손으로 해결하여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한다. 성도들의 아름다운 헌신을 통하여 온전히 거룩하게 된 하나님의 도성, 주님의 영광이 나타난 도시, 그것이 바로 성시화된 시드니의 모습일 것이다.

▲ 시드니성시화대회 마지막날은 다민족이 함께 시드니 거리를 행진하고 마틴플레이스 광장에서 찬양축제 및 기도합주회를 가진다. 사진은 지난 해 다문화행진 대열이 하이트 파크 앞을 지나고 있는 장면이다.     ©크리스찬리뷰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시드니의 구석구석까지 침투시키고, 구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이는 그분의 제자들인 예수 믿는 자들의 책임과 의무요 특권이기도 하다.

 
성시화운동의 모델은 성경이다

성시화운동의 가치와 궁극적 목적은 바로 예수님이 제안하시고 제자들이 실천한 신약교회에 그 모델을 분명히 찾을 수 있다. 현대 도시의 성장과 관련하여 초대 신약교회의 가치와 성도들의 행동 원리들은 사도행전이 원전이다. 성시화운동은 현재 잘 나가는 교회들의 성공 요인들보다 주님이 제시한 초대교회의 가치와 원리들에서 나왔다.

오늘날, 소위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대형교회들의 성공이 과연 성경적인가하는 원초적인 질문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성시화운동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 도시 차원에서 전교회가 전 시민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여 복음화를 달성하며. 새로운 부흥운동을 일으키려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성경 이외 다른 어느 곳에서 성시화운동의 모델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성시화운동의 원리도 초대교회의 가치와 행동원리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교회에서 폭발적 부흥, 안디옥 교회에서 모범적인 해외선교 모델, 두란노서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반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간 복음의 영향력을 확인한다.

이를 위해 헌신한 ‘창조적 소수’인 바울과 바나바를 비롯한 헌신된 일꾼들은 오늘날 성시화의 역군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시대, 시드니 성시화운동본부에 이런 헌신된 일꾼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어 성시화를 위한 거대한 영적 에너지를 일으키는 발전소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성시화는 성도의 성스러운 성역이기에!

 
휘튼대학의 부흥운동, 성시화의 모범

우리는 너무나 자주, 처음 시드니 성시화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역사적으로 성시화운동의 모범 사례로 칼뱅의 제네바 도시 복음화 또는 성경에 입각한 정치적 원리를 도시에 적용하려는 강력한 ‘성시화운동’을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아닌, 오늘 우리 시대에도 새로운 부흥운동, 성시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사례를 휘튼의 휘튼대학(Wheaton College) 부흥운동을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소개한다.

▲ 매년 3월 첫째 토요일 열리는 게이와 레즈비전들의 축제 마디그라 행진. 사진은 지난해 마디그라에 참가한 게이그룹이다.     ©크리스찬리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휘튼대학은 20세기 캠퍼스 부흥을 이끈 주역이었다. 1936년부터 여러 차례 부흥을 경험한 휘튼대학은 1995년 또다시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 이 부흥의 불길은 미 전역의 대학으로 확산되어 잠자고 있던 수많은 학생들을 깨웠다.

시카고에서 자동차로 서쪽을 향해 1시간 가량 달리면 아담하면서도 깨끗한 도시 휘튼을 만난다. 이곳은 세계적인 기독교 명문대학인 휘튼대학이 있어 도시명보다 대학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휘튼대학은 지난 반 세기 넘게 미국 캠퍼스 부흥운동의 진원지였다.

휘튼대학이 처음으로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것은 1936년이다. 회개를 동반한 강력한 성령의 불이 학생과 교수는 물론 온 캠퍼스를 휩쓸었다. 그 강권적인 역사 앞에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수년 후 1943년과 1948년 휘튼대학에 다시 놀라운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그 영적 각성은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캠퍼스에는 말씀과 기도와 회개와 간증이 2주간 계속됐다.

이 부흥으로 졸업생 3분의 1 이상이 자신의 인생을 주께 바치기로 다짐했다. 에콰도르 순교자로 널리 알려진 짐 엘리어트를 비롯한 수많은 졸업생들이 복음을 들고 전 세계로 흩어진 것은 이때였다. 휘튼대학은 1950년과 1970년에도 부흥을 경험했다. 1995년 봄 놀라운 부흥이 또다시 휘튼 캠퍼스에 임했다.

휘튼시에 도착하면, 그곳의 영적 분위기는 특별하다. 그 강도는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도 인식될 만큼 강력하다. 휘튼의 온 도시, 온 거리에 성령께서 압도하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는다. 거리를 지나면서 유난히 교회가 자주 눈에 띄고, 계속된 부흥의 영향으로 도시에서 술집을 찾아볼 수 없다.

휘튼 시가지를 지나 대학 캠퍼스로 들어설수록 영혼 향기는 점점 더 짙고 깊숙하게 배어 있다. 휘튼대학 캠퍼스 한가운데는 이 학교의 교훈인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하여”(for Christ and His Kingdom)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20대 젊은이들이 이 꿈을 먹으며 거룩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세계를 향해 달려갔던가!

지난 20세기 휘튼대학은 수많은 신학자 목회자 선교사 교계지도자, 그리고 사회 각층의 평신도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이 대학 출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휘튼대학은 현대 각성 운동의 보루이다.

▲ 매년 3월 둘째 주일에는 시드니성시화운동본부가 주관하는 성시화 다문화 행진이 시드니 시내에서 펼쳐진다.         ©크리스찬리뷰


부흥과 성시화는 강력한 회개로부터

빌리 그레이엄 센터와 휘튼대학 도서관에서 휘튼대학 공동체가 경험한 놀라운 부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빌리 그레이엄 센터에 걸려 있는 수많은 부흥 관련 사진들이 휘튼의 역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1995년 부흥집회 녹화 테이프를 보면 대학에 임한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강력한 회개, 성령의 비상한 임재, 부흥에 대한 목마름, 공개적인 죄고백에 이르기까지 휘튼대의 부흥은 100년 전 한국이 경험한 평양 대부흥과 너무도 유사하다.

1995년 3월 19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저녁집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는 5월 7일까지 6주 동안 휘튼대 캠퍼스를 휩쓸었다. 그 불을 가지고 온 사람은 텍사스주 브라운우드의 하워드 페인 대학교에서 온 브랜디 맥과이어와 제임스 한이었다. 이 두 학생의 간증은 수백 명의 휘튼 대학생들을 깊은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한 여학생이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자 마치 뇌관이 폭발하듯 죄의 고백과 회개를 동반한 무서운 영적 폭풍우가 휘튼대에 몰아쳤다. 그곳에는 일부러 감정을 자극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었다. 그런데도 수십 명의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간증 순서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 휘튼대학    


이튿날 아침 6시가 되어도 집회가 끝날 줄 몰랐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휘튼대에 임한 것이다. 이같은 성령의 역사는 집회 기간 내내 이어졌다. 그 현장에 참여했던 한 학생의 고백대로 그들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알지 못했으며, 이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한 신비한 영적 체험을 했다. 죄에 대한 철저한 고백과 회개, 그리스도 안에서의 용서, 하나님과의 화목, 삶의 변화가 휘튼대 공동체에 임했다. 휘튼대 공동체는 “의심할 바 없이 영적 각성의 한 시대 가운데 서있었다”고 역사는 증언한다.

성령께서 휘튼대에 임하면서 공동체에는 뚜렷한 변화가 찾아들었다. 이웃에 대한 사랑, 불신 영혼을 향한 간절한 중보기도, 인종 간의 화해가 캠퍼스를 지배했다. 또한 캠퍼스에 지속적인 기도 모임, 말씀 읽기와 연구에 대한 사모함, 해외 선교에 대한 관심, 기도 열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학생들은 캠퍼스 밖과 벤치,잔디, 복도와 수업 전후 빈 강의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기도회를 가졌다.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부흥을 경험한 휘튼대학생 가운데 200∼300명이 강단으로 나와 자신의 생애를 해외 선교에 바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부흥을 경험한 휘튼대학생들이 미국의 다른 대학 캠퍼스로 흩어지면서 부흥은 요원의 불길처럼 미국 전역으로 놀랍게 확산되었다. 1995년 3월19일에서 23일까지 타오른 휘튼대학 부흥의 불길은 얼마 후 애즈베리와 무디, 예일을 비롯한 수많은 대학으로 옮겨 붙었다.

부흥은 이들 미국 대학만의 전유물이나 특권일 수 없다. 부흥은 결코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지금 지구 한쪽에서 임재하고 있고 현재 이 땅의 교회가 경험하고 있으며 또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이다.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지만 아무 곳에나 임하지 않고 사모하는 곳에 임했다.

간절히 바라기는 이 시드니에서도 휘튼대학에서 일어난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공유하는 날이 올 것을 소망한다. 그 불을 지피는 곳이 성시화운동 마지막  날에 있을 기도합주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곳에서 진정한 죄 고백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때, 이 땅은 성시화, 즉 분명 거룩한 도성이 되는 축복을 안게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예수가 답이다!

가장 바람직한 성시화운동의 모형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 답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도시를 살리고 도시민을 살리는 교회의 모범적인 모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제안한 것이다.

“너의 빛을 다른 사람들 앞에 비취게 하여,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성시화 이론은 단순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안하고 창안한 교회의 원형을 재창조하는 일이다. 도시가 번성하고 있는데 교회는 성시화가 아닌, 세속화의 길에서 잠을 자고 있지 아니한가? 현재 사회가 요구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도시민의 물질적 영적 필요를 채워주는 등 도시공동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예수의 영은 살리는 영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생명 공동체다.

▲ 다문화 행진을 마친 후 마틴 플레이스 광장에서 찬양축제 및 기도합주회가 펼쳐진다.     ©크리스찬리뷰


예수가 제안한 교회는 사람들의 물질적 영적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 특히 빈민들, 약자들, 소외된 자들, 갇힌 자들에게 희망의 문을 열어주며 그들에게 생기를 넣어주는 역할, 즉 생명을 살리며 활기를 넣는 교회 공동체,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는 교회의 원형이다. 그런 교회가 도시 안에 있으면, 그들의 물질적 영적 필요들은 더 심대하고 다양하게 성취될 것이다.

신학적으로도 도시 현실에 밀착된 전도활동을 하여, 실제 도시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교회가 바로 오늘날 도시 전도(성시화운동)의 목적이다. 교회가 도시 전체의 각 영역(정치 경제-양극화 청년실업 중산층 붕괴- 사회-여성, 노인, 청소년, 성폭력, 가정불화와 폭력, 이혼 등- 문화 예술 언론 교육 과학 등)에 복음의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강렬한 복음 문화 창조의 주역으로 태어나야 한다.

영역별로 홀리클럽(Holy Club)을 조직하여 풀뿌리처럼 사회 전 영역에 퍼져나간다면, 시드니 성시화운동은 큰 진전을 볼 것이다. 이번 성시화대회를 통하여 보다 역동적인 교회연합운동, 복음화운동으로 동역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재현되었으면 한다.

모든 성도들이 “우리는 우리 도시, 시드니를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중보하는 도시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성시화운동의 결실로 영적으로 황폐해가는 시드니를 살리고, 이 땅에 새로운 부흥운동의 불꽃이 활활 피는 꿈을 그려본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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