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교회 주일학교 갱신 지상 세미나 (4)

주일학교 갱신을 위한 실제적인 방법들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08/28 [18:08]

주일학교 갱신을 위한 실제적인 방법들 

앞에서 주일학교 문제의 네 가지 핵심 문제를 살펴보았다. 1. 복음 중심의 회복  2. 교육주체들의 역할 재배치 3. 다문화주의 4. 장기전을 위한 교육행정과 체계의 필요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이민교회 현실에 비추어서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그동안의 실패와 성공, 다양한 혜안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를 제안한다. 

제안은 크게 △교사에게 투자하라 △담임교역자와 평신도 사역자가 주도하라 △네트워크로 일하라 △영어권 외부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복음의 능력에 의지하라로 정리된다.

(1) 교사에게 투자하라.

주일학교의 가장 큰 무기는 결국 교사다. 공간, 시설, 프로그램, 행사, 전담부 교역자조차도 결국 헌신된 교사만큼 할 수 없다. 최근 호주의 영적 지도자들을 인터뷰하면서 필자가 확인한 점은 이들이 주로 청소년때 멘토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 훈련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바꾼 것은 멋진 프로그램이나 집회, 분위기 좋은 주일학교가 아니라, 한 심령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복음을 바로 전하고 양육한 교사였다는 뜻이다. 

이런 고백은 한국교회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심령 심령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는 교육자의 존재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낙심하고 지쳐있는 교사들에겐 그저 견디라는 말뿐, 잘해야 부교역자, 시설, 프로그램으로 때울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주일학교의 부흥과 열매는 결국 교사 개인의 영성과 가르치는 내용에 달려있었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한국의 많은 신학생들이 현 신학교 커리큘럼을 마치고도 목회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소리를 왜 한다고 생각하는가? 실제로 교사 역시 이런 교육이 교사 자신의 성장이나 주일학교 실제 운영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고 호소한다. (물론 있는 것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물론 개인의 필요와 교회학교마다의 상황이 다들 다르기 때문에 이런 획일화된 교육은 한계가 있다. 

더구나 이 모든 과정을 다할 만큼 오랫 동안 있을 교사도 별로 없고,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바로 할 수 있는 교사도 많지 않다. 여기서 다시 집중의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호주신학교육의 강점이기도 한데, 가장 기본적인 복음과 성경다루는 법에 집중함으로써 실제로 목회에 더 도움이 되는 교육을 하는 것 말이다. 

교사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한마디로 복음을 바로 전달하고성경을 읽어가며 각자에게 맞는 영적 성장을 찾아갈 수 있도록가르치는 일이다. 여기에는 전제로 학생들의 영성상태를 잘 파악하고 반응하는 대화능력과 이들의 문화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이용하는 다문화이해능력과 문화분석능력이 필요하다. 

이점에서 주일학교 교사교육은 교사의 소명과 자세를 다루는 소양교육과 함께, 복음을 제대로 전달하는 능력(복음전달/변증법)성경을 영적 성장을 위해 복음이란 렌즈로 읽어나가는 법(성경신학적 성경이해법), 다문화에 적용되는 대화법, 문화를 기독교적으로 읽어내는 능력(기독교세계관) 등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여기에 부서에 따라 어린이 혹은 청소년 발달심리학이나 교육개론 등이 좀 더 첨가되는 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교사에 대한 투자에 커리큘럼상의 집중과 함께, 또 다른 중요한 포인트는 교사들에 대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소명과 자세에 대한 훈련이다. 이것은 흔히 이뤄지는 교사헌신예배나 집회를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대부분 경우, 교사 자신들이 뛰어다니며 다 준비하고 진을 또 빼야할 그런 행사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다. 이 시간은 실제로 교사들이 배우고, 충전되는 시간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최소한 일 년의 1-2회 정도 필요한 만큼 지루하지 않게 하려면, 그 내용도 매번마다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다. 여기서도 교회 차원의 계획과 배려가 간절히 필요하다. 

정말 헌신적인 교사만 세워질 수 있다면, 장소가 없으면 공원에서라도 가르칠 수 있고, 교재가 없으면 큐티책만을 들고도 이끌 수 있고, 자기 행사가 없으면 남의 행사에 데리고 다닐 수 있다. 작은 교회나 큰 교회 할 것 없이 주일학교의 위기는 실제로 교사의 위기에서 온다. 이점에서 교회학교 부흥의 키는 집중화된 교사교육에 달려있다. 

물론 이것은 지도내용적인 면이고, 여기에는 기도와 교제 같은 영성 관리도 따라야 할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런 부분은 교사들끼리의 나눔, 그리고 부모들의 정성어린 몇 번의 식사대접 만으로도 얼마든지 채워진다.) 행정적으로 교사들을 위한 중보기도팀을 운영하고, 교회차원의 계속적인 교사기도제목 나눔 및 광고, 그리고 교회의 행사에 교육기관이 홀대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2) 담임목사와 평신도사역자가 주도하라 

필자는 크고 작은 교회 모두에서 교육전담으로 일해 보았고, 교단사역연구원이란 명칭으로 외부전문가로 뛰어다닐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깨달은 사실은, 개교회 주일학교의 부흥은 외부 교육전문가나, 스타같은 부사역자나, 반짝반짝한 대학생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외부 전문강사들이 일으킨 불은 몇 달이 되지 않아 꺼지고, 스타 부사역자는 대중을 몰아가는 데는 좀 효과를 내도 결국 학생개인을 상대하는 일은 교사의 손에 그대로 남아있고, 한국에서 막 온 반짝반짝 유학생 혹 대학생교사들은 아이들과는 놀아줄 줄 알아도, 인생의 결단이 배여 있어야 할 복음을 다루기엔 너무 가벼울 때가 많다는 뜻이다. 

거기에 더해 이민교회는 주로 한국에서 찾는 강사를 동원하기에 돈도 너무 많이 들고, 제대로 전문사역만을 위한 부교역자를 오래 잡아 둘 형편도 아니고, 대학생교사는커녕 단기유학생 교사도 흔치 않다. 

그러나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교회는 주일학교의 미래를 위해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이것의 첫단추는 교회의 영성을 장기적으로 주도하고, 이끄는 담임 교역자가 교회학교에 대한 이해와 감독, 조율을 더 강화되는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감독이란 부교역자를 찾아주는 차원에서 더 나가, 적어도 주일학교에서 가르쳐지는 방향을 파악하고, 교회의 다른 주요행사와 사전에 조율되어 그 흐름이 잘 이어지도록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훌륭한 부교역자는 주일학교 부흥의 보석같은 존재다. 그러나 이들에게만 완전히 맡겨놓기에는 교육은 부서 혼자만의 북치고 장구쳐서 답을 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온 교인이 접하는 주일설교를 통해서도 교육문제에 대한 주지가 필요하고, 교회전체의 행사에서도 주일학교의 지속적인 흐름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도록 사전조율이 필요하고, 교회심방 중에 파악된 가정 문제도 결국 교육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실상 단기로 밖에는 기대할 수 없는 부서사역자들의 수명을 비춰보면, 아이들의 성장을 통한 열매는 결국 담임교역자의 보다 큰 관심과 조율 속에서만 가능하다. 

주일학교 갱신의 또 다른 축은 평신도 사역자에서 나온다. 현재 교회학교의 가장 중요한 교사수급원은 청년대학생들이다. 단기유학생들에게도 의지하는 바가 크다. 이것은 피치 못한 부분이면서도 교육상에 가장 큰 위험요소이기도 하다. 청년은 아이들과 비교적 문화간격이 적어 대화는 쉽지만,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 삶의 깊이 더 나가서 아이들에게 보여야 할 인내와 애정에 있어서는 함량 미달이 자주 발견되기 때문이다. 

주일학교는 결국 아이들과 놀아주는 자리가 아니라, 복음을 전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하고, 받아들인 그리스도를 실제로 영적으로 자랄 수 있게 돕는 곳이다. 복음을 통한 변화는 전인적인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부모 같은 인내가 포함된 사랑으로 전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열매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점에서 여전히 삶의 본격적인 씨름에 들어가지 않은 젊은 청년들만을 의지해서 주일학교를 돌리는 것은 효율만을 강조한 체, 내용을 상실할 위험이 큰 실험이다. 

이점에서 주일학교는 보다 성숙한 교사, 아이들과는 대화가 좀 힘들다 해도, 내용적인 균형을 잡아주고, 부모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붙들 교사를 더 확보해야 한다. 교회의 제자훈련이나 기타 리더쉽 훈련을 통해 장기적으로 교회의 중요일꾼이 될 인재를 찾으면, 적어도 이들 중 일부는 교회학교의 말뚝(?)으로 심을 고민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교회학교야 말로, 평신도의 제사장화가 시급히 이뤄져야 할 분야다. 다시 말해 장기적으로 부교역자의 출입에 상관없이 계속 주일학교를 이어갈 수 있는 평신도지도자 중심체제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부교역자의 전문성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주일학교의 기본 틀과 사역은 이들의 출입으로 흔들려서는 곤란하다. 도리어 부교역자들에게 평신도지도자들도 할 수 있는 일 년 계획과 매주 운영, 아이들 심방이나 개별 훈련 같은데 시간을 쏟게 하기보다는, 이들의 전문분야인 설교나 교사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도록 격려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만이 교회가 작을 때도 돌아가고, 더 커져도 문제가 없는 시스템이자, 이민교회의 현실에 맞는 시스템으로 보인다.☺



김석원  
SEED COMMUNITY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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