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생각

동방과 서방이 만나는 곳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10/07 [11:18]
 
동방과 서방이 만나는 곳                  

여기는 동방과 서방이 만나는 곳이다. 눈앞에 펼쳐진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면 동방이고, 이곳은 서방이다. 동방과 서방을 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은 '흑해'(Black Sea)와 '르다하해'를 잇고 있다. 두 대륙을 연결하는 '대교'는 1968년 영국에 의해 시작되었고, 1970년 독일에 의해 착공하여 3년 반후인 1973년 10월 29일 터키 공화국 50주년 기념으로 완공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스탄블'을 중심으로 한판 승부를 벌렸던 두 국가가 주도하여 다리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제1차 대전 중 영국 중심의 연합군은 흑해로 진입하기 위해 대규모의 상륙 작전을 펼친다. 연합군은 해협을 통과하기 위해 이스탄블을 먼저 점령해야만 했다. 연합군의 작전을 미리 간파한 독일 중심의 동맹군에 속한 터키군은 강력한 저항을 한다. 결국 연합군은 8개월 간의 긴 전투 끝에,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그해 12월 이스탄불을  뒤로하고 철수해야만 했다.

이스탄불 (Istanbul)

배낭을 메고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마중 나온 터키인에게 질문했다. "이곳의 유적지를 돌아 보려면 며칠이나 걸립니까?"나의 우문에 그는 이렇게 현답을 던졌다.

"이곳에 산 지가 14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보지 못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 이스탄불은 다양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이다. 이곳은 2010년에는 유럽 문화의 수도(Europe Capital of Culture)로 지정되기도 했다.

과거 이곳은 동로마의 수도이자 동방교회의 본산지였다. 로마를 중심으로 발전한 서방교회(Western Church)가 카톨릭(Cathoric)이고, 콘스탄니노플을 중심으로 발전한 교회는 동방교회(Astern Church)이다.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는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교리의 차이에 의해 결국 1054년에 공식적으로 분리한다. 동방교회를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라고 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정통(Orthodox)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말이다.

두 교단은 아직도 역사적 앙금은 겉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사건은 십자군 4차 원정 때 일어났다. 동방교회를 돕겠다고 출정한 십자군이 오히려 동방교회의 본산지인 콘스탄틴노플을 침략하여 그곳의 유물을 탈취했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 그리스도안에서 형제라고 믿었던 서방교회에 당한 것이기 때문에 무슬림에게 당했던 것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아직도 이 사건은 서방교회의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다.

그 때 훔쳐왔던 유물 중 4마리의 청동 마상이 베네치아 마가의 성당 정문 위에서 지금이라도 달려갈 것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다. 형제의 피를 흘리고 탈취한 청동 마상이 거룩한 교회의 상징으로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며 만상에 잠긴 적이 있었다.

하기아 소피아 (Hagia Sophia) 성당

이곳에 1500년의 역사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 있다. '스러운 지혜'라는 뜻의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성당이 그 주인공이다. 기독교가 이곳을 지배하던 시대에는 하기야 소피아 성당에서 미사를 드려졌고, 무슬림이 이곳의 주인이 되었을 때는 '야 소피아'Aya Sophya)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1차 대전에 패전한 오스칸제국은 서방의 강력한 항의에 의해, 이곳을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그 이름을 바꾼 후, 이곳에서는 더이상 종교적 행사를 치루지 않기로 했다. 이제 이곳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건물의 이층에는 "모자이크성화"들이  있는가 하면,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에는 "알라만이 신이다"라고 아랍어로 쓴 큰 둥근 간판들이 눈에 띄인다.

하기아 소피아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인 콘스탄티우스 2세에 의해서 처음으로 건립되었다. 그후 교회 내의 난동으로 인하여 소실되고, 데오도시로스에 의하여 415년에 두 번째 교회가 선다. 그러나 성당도 532년에 대화재로 인하여 소실된다. 두 번의 소실을 겪은 후,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소피아 정교회 성당의 재건을 결정하고, 그 설계를 안테미오스와 이시도로스에게 맡겼다.

엄청난 위상을 자랑하는 성당의 규모에 비하여 공사는 5년 11개월이라고 하는 단기간에 종료되었다. 537년 12월 27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맞이하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인 메나스가 헌당식을 거행했다. 이 때 유스티니아누스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왕 솔로몬의 신전을 능가하는 교회를 세웠다는 생각을 하여 ' 솔로몬이여, 나는 그대를 이겼도다!'고 외쳤다는 일화도 전해져 온다.


글/김환기 
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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