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몽골을 향해 떠나다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10/07 [11:46]
마침내, 몽골을 향해 떠나다

시드니에 세워진 몽골인 교회

지난 2월 몽골에서 한 선교사가 시드니를 방문하여 떠나기 전날 열댓 명의 몽골인들을 모아 교회를 세웠다. 지도자를 세우기는 했지만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든가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었다. 함께 모인 몽골인들 역시 교회라는 분위기와 너무 생소한 친구들이었다. 그 이후 나의 마음 가운데는 몽골교회가 과연 세워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많았다.

주님의 이름으로 세운 교회가 시드니 땅에 정착되어야 하는데, 이곳에 사는 몽골인들이 약 5백 명이나 된다는데 어떻게 해야 저들이 외롭고 쓸쓸한 이방땅에 정착을 하며 마음의 안식을 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우려가 깊어져 갔다.

이것은 단순한 염려나 관심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으로 발전해 나갔다. 세상 어느 곳이든 복음을 위해 가겠다고 손들고 결단한 목회자인데 눈 앞에 보이는 몽골인들의 목자가 없어 교회를 세우기는 했지만 얼마나 지속성 있게 모여 신앙 공동체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부담이 나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농부가 농사를 지으면서 가을에 추수할 것에 대한 염려와 기대가 있는 것처럼 영적인 추수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는 목사 역시 같은 심정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있다.

지난 2년 동안 몸부림치며 지금까지 걸어온 걸음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시드니 이민목회 10년이면 별을 달아준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준장이 되는 셈이다. 장교는 세월만 기다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합당한 실력과 혁혁한 공로가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미 시드니 사회 가운데 교회는 포화상태이고 몇 배나 더 되는 목회자들은 자신이 받은 소명의식조차 망각한 채 뗏목처럼 흘러가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늘 있었다. 이러한 선의의 경쟁구조 가운데 행복지수가 높은 목회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입장에 처한 목회자가 있기 마련이다. 누가 더 많은 일을 하고, 누가 더 큰 상급을 받을 것이냐 혹은 누가 더 성공적인 목회 인생을 사는 것이냐는 우리의 잣대로 헤아릴 수 없다. 다만 나에게 주어진 일을 통해 기쁨을 누리고 최선을 다하면 되지만 이것 역시 이론일 뿐이다.

사람이 가던 길을 돌아보며 이제까지 걸어온 발자국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본다. 산양 한 마리가 달리기 시작하면 다른 산양도 덩달아 달리고 그러한 모습을 본 산양들은 거대한 무리를 지으며 달리다가 절벽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한 번에 떼죽음을 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좁은 이민사회 가운데 앞만 보고 달리다가는 몸과 마음이 절벽 아래로 추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호주가 주는 편안함과 환경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성안일중후군(?)에 묶여 정체성을 잃기 쉽다.

껍질을 벗겨내는 과정

지난 시간은 한마디로 껍질을 벗겨내는 과정이었다. 열흘 남짓을 살기 위해 7년 정도를 땅 속에서 꿈을 키우다가 세상의 빛을 보는 매미, 5%의 빛을 보기 위해 95%의 빛을 잠재우며 꿈을 키우는 매미처럼 우리의 인생이 대체로 그렇고 특히 목회자의 생애가 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막장과 달리 터널은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다시 환한 빛을 볼 수 있는 출구가 있다. 성격이 느린 탓에 무엇을 결정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점에 이르게 되었다. 네 삶의 방향키를 돌려라!

지난해에 몽골을 방문했을 때 시드니의 환경과 달리 너무 열악한 그곳을 보고 한마디로 "NO"를 외쳤다. 한국의 70년 전후와 비슷한 문화적 환경에 그리고 반년 이상이 눈으로 덮이고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 그리고 육식 외에는 먹을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들이 내게 아무런 도전이 될 만한 조건이 못되었다. 이제까지 시드니에 살아온 이유가 무엇인데 이토록 정반대의 상황에서 어떻게 적응하며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사명을 부여 받은 사람이 취약점만 찾아내고, 좋은 환경만 고집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지난 20년 동안 시드니에서 살면서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렸는데 무엇을 더 기대한다는 것은 양심불량한 인간이나 다름이 없다는 가책이 들기도 했다.

흙으로 뒤덮여 아스팔트가 보이지 않는 도시의 거리, 온갖 휴지조각이 바람에 날리기 시작하면 운행하던 차량들이 한참이나 서 있다가 가는 거리, 신호등이나 차선이 없어 실타래 엉켜 있듯 정차되어 있는 환경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물이 없어 기름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50이 넘은 목사가 지난 11년의 목회를 접고 이보다 더 열악할 수 없는 땅으로 간다는 것은 결코 낭만적인 결단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는 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다른 문화권으로 가는 것을 선교라고 정의하는데 이 일을 위해 꽤나 오래 전부터 마음 깊은 곳에 빚진 자의 심정이 있었다. 하나님은 나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셨는데, 짧은 인생, 그것도 전부가 아닌 아주 부분적인 시간을 드려 필요한 곳에 복음을 위해 떠나는 것은 당연한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 속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에 귀한 설중매가 있고 길고 긴 삭풍 가운데 봄이 되면 살아 숨쉬는 인동초가 있다.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되든 나에게 부여된 소명을 더 이상 묻어두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해 남은 인생을 더욱 보람있는 삶으로 살겠다는 결심으로 떠나게 되었다.

주변 친구들이 염려스러운 말로 "너무 늦은 것 아냐?","갔다가 돌아오는 나이인데 이제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왜?'모두 고마운 말과 마음들이다. "늦다고 여겨질 때가 가장 최선의 시간"라는 말이 있듯이 시작에는 늦음이란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걸어온 무수한 시간 가운데 마음의 앙금처럼 남아 늘 충동질을 가해오던 이 길을 가야만 될 것 같아 결단을 하게 된 것이다.

연약하고 한없이 부족한 나를 통해 필요로 하는 곳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값진 삶은 없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모두의 사랑과 기도를 통해 이 일을 함께 이루어 나가는 일이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든 아니든지, 미워하든 사랑하든 누구를 막론하고 함께 가는 길이 되어야 한다.

함께 가는 선교 방법

선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발걸음마다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후원자들의 사랑어린 기도의 후원과 물질적 후원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어느 것이 먼저인가? 대체로 "선교는 돈이다."는 등식이 원칙처럼 되어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교를 위한 기도는 더욱 힘겨운 일이고 절대적으로 동반되어져야 할 일이다.

일반적으로 선교사에게는 3가지 후원이 필요하다. 첫 번째, 기도의 후원자 그룹이 있어야 한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무장을 하지 않으면 곧 죽음인 것처럼 영적 전쟁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후방에서 지원하는 기도의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다. 두 번째, 물질적 후원이 있어야 한다. 적진에 나가 있는 군인에게 식량 보급이나 전투 능력을 위한 무기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사도 바울의 주변인들을 통해 복음이 넉넉히 증거될 수 있었다는 감사의 글이 로마서 한 장에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감성의 후원이 필요하다. 선교사는 가족이 함께 일하든지 아니면 혼자 있든지 고독한 생활의 연속이다. 문화와 언어의 소통이 약하고 현지인들과의 관계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늘 외로울 수밖에 없다. 무인도에 홀로 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생활의 연속이다. 이러한 감성적 후원을 위해 정기적인 서적을 공급해 준다든가, 메일을 보낸다든가, 전화 한 통의 관심표명은 더할 나위 없이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작은 손길이 상상할 수 없는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때로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몽골 지역에 생수를...

앞으로 몽골에서의 여러 사역 가운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긴급한 일을 꼽는다면 우물을 파는 일이다. 지하 200m에 수도 파이프를 심어 물을 끌어올리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저들에게는 절박한 현실이다. 이 일을 위해 시드니에 있는 성도들이 커피 한 잔을 줄이고 모을 수 있다면 일 년에 하나는 팔 수 있다고 판단된다. 한 잔의 커피를 마실 때마다 몽골인들 지역에 생수가 해결되고 그 물을 마시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귀한 일이 없을 것이다.

이제까지 선교가 교회를 세우고 교단적 힘을 과시하는 추세로 왔다면 앞으로는 지역사회를 위하여, 저들의 긴급한 필요를 채워가며 대화를 이루어 나갈 때 효율적인 선교, 장기적인 안목의 선교가 자리를 잡아갈 것이다.

모두가 선교지를 향해 발길을 돌리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선교를 위해 후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에 대한 수행은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날까지 이루어야 할 과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것을 위해 단 한 가지의 일 그것은 세계에 흩어져 복음을 위해 몸부림치고, 환경과 씨름을 하고, 끝없이 일어나는 고뇌와 갈등을 꾹꾹 눌러가며 눈물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의 기도가 있어야 하리라.


글/김충석 

몽골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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