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켄지한센선교회 제1회 호주 선교대회”

예수님의 만지심

권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9/25 [15:02]
MLMA 기도 후원회 조직, 9월 25일 현재 68명 헌신
대회 기간 중 호주 국세청(ATO)으로부터 DGR 승인받아 
 
호주 맥켄지 한센 선교회(The Mackenzie Leprosy Mission Australia, 이하 MLMA) 제1회 호주 선교대회가 멜본과 시드니에서 지난 달 개최됐다.

한국 나환자(한센 환자)들의 친구로 29년간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던 제임스 노블 맥켄지(한국명 매견시, Rev. James Noble Mackenzie) 선교사의 희생적 사랑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4월 공식 출범한 MLMA는 대회에 앞서 8월 31일 오후 최승일 이사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맥켄지 선교사 묘지를 찾아 헌화하고 그가 한국땅에 남겼던 아름다운 업적을 생각하며 기도했다.

9월 1일, 멜본순복음교회에서 선교사 가족 초청 오찬으로 시작된 MLMA대회는 루시와 실라 여사 등 맥켄지 선교사의 두 따님을 비롯, 서두화 목사(Rev. Alan Stuart), 민보은 선교사(Dr. Barbara Martin), 호주 선교사 후손과 가족들, 그리고 멜본지역 한인교회 목회자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  맥켄지한센선교회 호주대회는 맥켄지 선교사 묘지에 헌화하고 기도함으로써 시작됐다. ⓒ크리스찬리뷰

멜본한인교역자협의회장 황규철 목사(벧엘장로교회)의 사회로 열린 대회 첫날 개회예배는 백준호 목사(소망교회)의 기도에 이어 서두화 목사는 ‘만지심| Touch’(막 1:40-45)이란 제목의 개회설교를 통해 “나병은 약 4천 년 동안 우리 주변에 있었고, 그보다 훨씬 전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20세기 초반까지는 치료법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이 질병에 걸리면 몸이 완전히 망가지고 끔찍한 불구자가 되니, 사람들이 이 병을 무서워하고 또한 이 병에 걸린 자들과 어떠한 접촉도 하기를 거부하게 된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서 목사는 “1960년 마산에서 부산으로 사역지를 옮겼는데, 그때부터 상애원과 성화원 등 두 곳의 나환자촌과 긴밀한 연관을 맺게 되었고, 후일에는 김해 지역의 고암과 신천 등에 있는 새로운 두 곳의 나환자촌과도 연관을 맺게 되었는데,  이분들과 함께 한 사역은 도전이 되고 감동을 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서 목사는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나병환자들을 정상적인 사람들로 대하려고 애썼고, 신체적인 접촉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끔 그들의 집을 방문하기도 하고, 그들을 우리 집에 데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전혀 위험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 중 90퍼센트는 나병은 없고 다만 외모가 일그러진 것과 불구의 상태만 남아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서 목사는 “온전하시고 정결하신 예수님이 더럽고 부정한 나병환자를 만져주시자, 나병환자의 부정함이 예수께 옮겨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온전하심과 정결하심이 나병환자에게 전염된 것이다”라고 말하고 “예수께서 만져주신 것이 치료 과정의 일부였으며, 악수를 해주는 것이든, 팔로 감싸 안아주는 것이든, 주물러 주고 마사지해 주는 것이든, 신체적인 접촉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정신과 육체를 치료하는 명약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   개회예배에서 설교하는 서두화 목사 ⓒ크리스찬리뷰

  
  선교사와 가족 및 목회자 초청 오찬 모임 (멜본순복음교회) ⓒ크리스찬리뷰

▲  멜본순복음교회에서 열린 맥켄지 사진전 ⓒ크리스찬리뷰

서 목사는 “나병과 관련된 사람들을 향한 사역에 임할 때에 우리는 다른 환자들을 대하는 것과 똑같이 그들을 대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환자들이 그저 환자로서가 아니라 값어치를 지닌 사람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더 큰 치료를 위한 확실한 길이다. 이런 일에 관여하고자 하는 분들은 모두 예수님의 모범과 연민을 깊이 생각하고, 우리가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과 애틋한 마음으로 나아가 그들을 만져주어야 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개회예배는 이사장 최승일 목사(서울ㆍ상도교회)의 환영인사, 홍성선 집사(멜본한인중앙교회)의 특송에 이어 박종환 목사(멜본순복음교회)의 축도로 마쳤으며, 이어 김동지 목사(멜본새순교회)의 사회로 2부 세미나를 가졌다.  

▲  간증하는 이명남 선교사 (멜본순복음교회) ⓒ크리스찬리뷰

첫 번째 강의는 제임스 노블 맥켄지 선교사(한국명 매견시)의 3녀와 4녀인 루시와 실라 여사가 ‘나의 아버지 매견시 목사’를 주제로 ‘한국에서 보냈던 어린시절의 추억, 평양에서의 학교 생활, 대학교육과 선교사역, 매견지 목사의 바누아트 사역과 한국에서 한센 병자를 돌본 사역, 아버지의 은퇴 후 한국을 떠나 호주에서의 생활, MLMA에 거는 기대감’ 등에 대해 영상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주최측은 맥켄지 선교사의 두 따님으로부터 아버지 얘기를 직접 듣고 싶었으나 94세와 90세의 고령의 몸으로 청중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기에는 건강상 어려움이 있어 영상 인터뷰로 제작했으며, 인터뷰 전체 내용은 모든 참석자들에게 DVD로 제작하여 배포했다.

두 번째 강의는 이사장 최승일 목사가 ‘호주맥켄지한센선교회 설립 취지와 비전’에 대해 강연했다. 최 목사는 MLMA의 설립 배경과 동기, 나환자들의 희망 상애원의 확장과 활동, MLMA와 한국 교회에 주신 사명, 중ㆍ장기 사역 방향 등을 소개하며 “사랑과 믿음, 헌신의 용기를 가진 한 사람이 필요한 때이다”라고 말했다.  

▲  영상 인터뷰 상영에 앞서 인사하는 루시 여사(3녀)과 통역을 맡은 박웅걸 목사(왼쪽) ⓒ크리스찬리뷰

 
▲  멜본한인교역자협의회가 제공한 만찬에 앞서 기도하는 민보은 선교사(가운데) © 크리스찬리뷰

  강연을 마친 후 최승일 이사장이 민보은 선교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크리스찬리뷰

▲   MLMA 이사장 최승일 목사  © 크리스찬리뷰

 
▲   민보은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  이명남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최 목사는 ‘MLMA의 국내외 홍보, 후원교회, 후원기관 및 개인 후원자의 꾸준한 모집, 한센복지센터 건립(중국 연변), 한센 전문인 선교사 발굴 및 파송, 한센인 단기 선교 프로그램 육성’ 등 MLMA의 사역 방향에 대해 설명하며, “이제는 선교의 빚을 갚을 때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멜본한인교역자협의회(회장 황규철 목사)는 선교대회 참석자들에게 만찬을 제공했으며, 저녁 세미나는 MLMA 제1호 선교사 후보생인 이명남 선교사가 ‘주님께 감사드린 한 사람’(눅 17:11~18)을 주제로 간증했다.

1947년 충남 금산의 작은 농촌에서 태어난 이명남 선교사는 여느 시골 아이들처럼 흙 냄새, 풀 냄새, 나무 냄새를 맡으며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기 바빴다. 그는 초등학교 4학년, 13살의 나이에 당시 천형이라 불리던 한센병에 걸린 뒤로는 더 이상 친구들이 있는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집에도 머물 수 없었다.

결국 가족들이 마련해 준 산골짜기 외딴 움막에서 홀로 생활할 수 밖에 없었다. 낮이면 지난날 함께 놀던 친구들이 움막에 돌을 던지며 놀려 댔고, 밤이면 산짐승 소리에 떨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눈이 오는 겨울이면 온기 하나 없는 그곳에서 추위와 맞서며 외롭고 어두운 원망의 세월을 보냈다.

1961년 어느 날, 한센병을 고칠 수 있다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소식을 전해 듣고 소록도에 들어갔으나, 그곳에서 만난 것은 지독한 허기와 쉬이 낫지 않는 병 앞에서의 패배감뿐이었다. 그러나 같은 방에 기거하던 시각장애인 장로의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 자신의 모든 삶을 위탁했다. 이후 학업에 대한 열정을 품고 성실중ㆍ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헌신적인 마리안느 수녀의 돌봄으로 한센병이 극적으로 완치돼 1968년 드디어 바깥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는 고향을 찾아갔으나 나병이 나을리 없다며 문전박대를 당했고 그래서 찾아간 곳이 부산 용호동에 있는 한센인 정착촌 상애원이었다. 그는 상애원에서 양계, 양돈으로 자립기반을 다졌고, 교회에서 만난 건강하고 아름다운 자매에게 첫눈에 반해 ‘한센인과는 결혼은 안된다’던 집안 반대를 무릎쓰고 결혼했다. 가난한 형편 속에서 자녀를 낳고 살아오면서 한센인에 대한 사회의 무시와 냉대로 자녀교육과 사회생활에 많은 차별을 겪었다. 그러나 생업에 대한 애착으로 제일제당 지역부장까지 지내며 자녀를 잘 키워 냈다.

그는 어느 날 예배 드릴 때 예수님이 고쳐 주신 열 명의 한센환자들 중 한 사람만 감사했다는 내용의 설교를 들으며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으며, 수기를 쓰기 시작했고 월급을 쪼개어 한센인들에게 옷과 의약품들을 가져다 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여 2000년부터는 중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권에 흩어져 있는 한센 환자들을 위한 한센인 전문 선교사로 헌신하고 있으며, 선교사로서의 체계적 배움에 갈급해 고신대학교 선교대학원과 장신대 평신도선교대학원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한센인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자 2007년도에  '소록도여 안녕'(홍성사 간)이라는 신앙 간증서를 출간했다.   

이명남 선교사는 "한센병이 완치됐음에도 신체에 남은 흔적으로 인해 사회에서 함께 살지 못하고 한센인들끼리 모여 사는 정착촌이 한국에는 88곳이나 있다"며 "이제는 이들도 정착촌을 벗어나 사회 속에서 더불어 사는 시대가 와야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날 세미나는 남기영 목사(큰샘교회 은퇴목사)의 사회로 진행되어 1964년부터 32년 동안 부산일신기독병원에서 의료선교사로 헌신한 민보은 선교사의 강연이 있었다.
 
‘맥켄지가(家)와 일신기독병원 60년’을 주제로 강연한 민보은 선교사는 자신은 “한국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으며 매혜란 선교사(Dr. Helen Mackenzie)의 안식년 일 년 동안 임시로 그 자리를 맡았는데 32년 동안 한국을 사랑하게 됐다”며 일신병원 설립 배경과 함께 맥켄지 선교사 가족들에 대해 소개했다.

제임스 노블 맥켄지가 바누아트에서 아내를 열병으로 잃고 1910년 선교지를 한국으로 옮겨 부산에 도착했는데 맥켄지보다 5년 앞서 1905년 내한하여 진주에서 사역하고 있던 메리 켈리 선교사는 백정해방운동에 앞장섰던 분으로서, 맥켄지는 2년 후 메리 켈리와 결혼하여 5명의 자녀(헨렌, 케시, 루시, 실라, 제임스)를 두었으나 1921년 출생한 아들 제임스는 디프테리아로 1922년 12월 사망했다.

맥켄지는 어려운 시기에 나환자 수용소에서 그들과 함께 살며, “일해야 한다(일해야 건강하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라고 격려하며 한센 환자들을 치료하고 섬기면서 복음을 전했다. 당시 한센 환자 사망율은 25%였는데 맥켄지 선교사의 대풍자유 치료로 2%로 낮췄다.      

매혜란(의사)과 매혜영(간호사) 자매는 호주에서 공부를 마친 후 한국으로 가려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자신들의 의지와는 달리 한국으로 들어가는 길이 막히게 되었고, 1945년부터 중국에서 사역하다 마침내 21년 만인 1952년 2월 부산항에 도착, 1931년 한국을 떠난지 21년 만에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맥켄지 자매는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 속에서 치료하고 환자를 돌보다 1952년 9월 17일 부산진교회 일신유치원에서 5명의 직원으로 병원을 시작했으며 병원 이름을 ‘날마다 새롭게’라는 뜻을 가진 ‘일신부인병원’으로 정했다.

일신병원은 1956년 UN의 도움으로 75병실 규모의 병원을 신축했으며, 1974년 독일의 도움으로 증축해 155 병실을 갖추었고, 1965년부터 조산 간호사 교육을 실시하여 2009년까지 2,599명이 수료했다. 또한 한국 의료법이 개정되어 매혜란과 민보은 선교사는 전문의 시험에 합격, 한국 의사 면허증도 받았다.

금년에 개원 60주년을 맞은 일신병원은 그동안 선교의 빚을 갚는 심정으로 아프리카, 베트남, 필리핀,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등에 간호사와 의사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단기선교팀도 정기적으로 보내고 있다.  

▲  시드니에서 열린 MLMA선교대회 전경 © 크리스찬리뷰

▲   축하 메시지를 전한 기독민주당 총재 프레드 나일 목사  © 크리스찬리뷰

▲  시드니에서 열린 MLMA 제1회 선교대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 크리스찬리뷰

▲  MLMA 제1호 선교사 후보생으로 내년도에 중국에 파송될 예정이다. © 크리스찬리뷰

민보은 선교사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병원이 되길 기도한다”며 강연을 마쳤다.
이날 이명남 선교사는 전날에 이어 간증과 함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한센 환자 현황에 대해 보고했다.

마지막 날 결단의 시간에 남기영 목사는 “같은 마음을 갖고 같이 기도하며 협력하자. 마음과 더불어 필요한 것은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맥켄지한센선교회 기도후원회 조직을 제안했다. 이날 멜본대회에서 33명이 헌신했다.

MLMA시드니 대회는 9월 5일 저녁, 열린문교회 비전홀에서 장경순 목사(시드니산돌잘로교회)의 사회로 열려 김제효 목사(은혜와 평강교회)의 기도, 루시와 실라 여사가 전하는 ‘나의 아버지 매견시 목사님’ 인터뷰 영상 상영, 최승일 목사의 ‘MLMA설립취지와 비전’에 대한 강연, 이명남 선교사 간증 순으로 이어졌고, 김금안 권사(시드니갈보리교회)의 특송, 하태식 목사가 인도한 결단의 시간에 이어 주정오 목사(열린문교회)의 축도로 마쳤다.

이날 대회에는 일신기독병원에서 사역했던 그레이스 워렌 선교사와 베리 콜빈 선교사가 참석하여 자신들의 과거 사역을 간단히 소개하고 인사했으며, 대회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축하했다. 이날 대회는 시드니갈보리교회, 두란노교회, 좋은씨앗교회, 은혜와 평강교회, 열린문교회 등 인근 지역교회들이 연합하여 개최했다.  

9월 6일 저녁 시티주안교회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개최된 KLMA 마지막 선교대회는 진기현 목사(시티주안교회)의 사회로 열려 기독민주당 총재 프레드 나일(NSW주 상원의원) 목사가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나일 목사는 “MLMA는 치료뿐만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더욱 귀한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를 바란다”며 “맥켄지 선교사가 오래 전에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고 한센인을 향한 사랑과 복음이 오랫동안 전달되기를 바란다”며 축하했다.

이날 대회는 ‘나의 아버지 매견시 목사님’ 영상 인터뷰 상영, 최승일 목사의 ‘MLMA 설립 취지와 비전’ 강연, 이명남 선교사의 간증 순으로 이어졌고 결단의 시간을 가진 후 최승일 목사의 축도로 모든 일정을 마쳤다.

맥켄지 선교사 묘지 헌화로 시작된 제1회 호주 선교대회’는 △호주 맥켄지 한센 선교회를 국내외에 홍보하고 △후원 교회ㆍ후원기관 및 개인 후원자들을 모집하여 △청년ㆍ대학생들을 선교에 동원하는 사역을 통해 △장기 및 단기 선교사를 발굴, 중국을 비롯한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한센 전문인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개최됐다.

한편 이번 선교대회에서 제안된 MLMA기도후원회는 멜본 33명, 시드니 35명 등 총 68명이 헌신했으며, 각 지역 기도후원회장은 멜본(남기영 목사), 시드니(김환기 사관), 캔버라(김광호 목사), 골드코스트(양병구 목사), 타스마니아(박승민 목사) 등 5개 지역이 확정됐으며 기타 3개(브리즈번, 아들레이드, 퍼스)은 추대 중에 있다.   

또한 대회 기간 중 멜본과 시드니에서 ‘맥켄지 사진전’이 열려 30점의 사진이 전시됐으며, 선교대회 참석자들에게는 맥켄지 선교사의 3녀 루시(94세)와 4년 실라(90세) 여사의 생생한 증언이 담긴 ‘나의 아버지 맥켄지 목사님’ 영상 DVD를 가스펠피아노(대표 고동식 장로) 후원으로 제작해 모든 참가자들에게 증정했다.

끝으로 MLMA는 대회기간 중 호주 국세청으로부터 DGR(deductible gift recipient) 승인을 받았으며, 앞으로 본 선교회에 $2 이상의 후원금을 기부하는 후원자들은 세금감면(소득세 공제)혜택을 받게 된다.      

▲  시티주안교회에서 열린 맥켄지 사진전을 관람하는 청년들  ⓒ크리스찬리뷰

글ㆍ사진/권순형ㅣ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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