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클래식의 그윽한 향취에 젖어

서활란ㆍ사이몬 김, 객석에 가득한 ‘감동의 무대 선사’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11/26 [09:55]
클래식의 우아하고 격조 있는 무대와 객석을 가득 메운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가시질 않고 있다. 노래를 부르는 성악가나 연주를 하는 기악가나 객석에 앉아 있던 청중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아카시아 클래식의 그윽한 향취에 젖어버렸다.

그 여진은 아카시아(AK   CA: Australia Korean Classical Association) 정기 연주회 현장으로부터 왔다.

아카시아 제2회 정기 연주회가 지난 11월 10일 오후 7시 30분에 시드니 콘서버토리움의 버브루겐 홀(Verbrugghen Hall)에서 열렸다. 작년에 열렸던 제 1회 정기연주회에서도 호평과 찬사를 받았던 아카시아 공연은 이번에도 품격과 감동에 있어서 그 명성을 이어가기에 충분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교민과 호주인들이 500여 객석을 대부분 채운 가운데 드디어 기다리던 1부 공연이 시작됐다. 

▲ 아름다운 선율로 청중들을 사로잡은 아카시아 현악 앙상블(지휘 고에츠 리히터 교수) ⓒ크리스찬리뷰

꿈나무 권우석의 놀라운 첼로 연주

아카시아의 창단 목적 가운데 하나가 2세 꿈나무들을 육성하고 좋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번 정기 공연에도 2세 꿈나무의 연주로 무대의 막이 올랐다. 그 주인공은 올해 11학년(Sydney Grammar High)인 권우석(Waynne Kwon) 군이다.

꿈나무 무대라고 해서 그 질과 수준을 얕보아서는 안 된다. 권우석 군은 12세에 AM EB(Australian Music Examinations Board)의 Amus A와 13세에 Lmus A를 최고의 성적으로 합격한 인재다. 또 10학년 때에는 Sydney Macdonald Eisteddfod 첼로부문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했으며 올해 Acoustic String Instrument Solo 부문에서도 1위의 성적을 올리며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그의 실력은 호주를 넘어 한국에까지 알려졌다. 숙명여대 음대가 권우석 군을 '호주 차세대 음악인' 으로 선발해 지난 9월 '예술의 전당'에서 숙대 오케스트라 멤버로 참여해 연주하기도 했다.

▲꿈나무 권우석의 첼로 연주 (반주 Szuyu Chen) ⓒ크리스찬리뷰
 
 
이번 아카시아 공연에서 연주한 음악은 데이빗 포퍼(David Popper)의 ‘Polonaise de Concert Op. 14’였다. 역동적인 무브먼트와 선율로 유명한 이 곡은 이름있는첼리스트라면 한 번쯤 연주하는 대곡이다. 하지만 11학년의 권우석 군에게 딱 맞는 곡이기도 했다.

큰 활을 켜고 손가락을 퉁기고 현을 누르며 현란한 음색을 뿜어내는 그의 연주는 꿈나무 무대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하면서도 웅장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거칠었다. 보고 듣는 내내 객석의 눈과 귀를 만족시켜 주기에 충분한 공연이었다. 힘찬 격려의 박수가 쏟아진 것은 당연했다.

아카시아 무대를 통해 유감없이 발휘된 권우석 군의 첼로 실력은 앞으로 크게 될 재목임을 보여주었다. 호주를 빛내는 한인 음악가로서 대성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첼리스트 권우석 ⓒ크리스찬리뷰
 
아름다운 선율 ‘아카시아 현악 앙상블’
고에츠 리히터의 정상급 연주로 관객 매혹시켜


▲16명으로 구성된 아카시아 현악 앙상블이 현악의 아름다움을 들려 주었다. ⓒ크리스찬리뷰

이어진 무대에 바이올린의 거장 고에츠 리히터(Goetz Richter)가 이끄는 ‘아카시아 현악 앙상블(AKCA String Ensemble)이 섰다. 콘트라 베이스, 첼로, 비올라, 바이올린 등 총 16명으로 구성된 아카시아 현악 앙상블의 연주는 한마디로 현악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특이한 것은 바이올린 주자 10명은 전원 한인 2세였다는 것이다. 이제 음악계에서도 한인들의 약진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아카시아 앙상블이 처음 연주했던 곡은 Alexander Glazunow의 ‘Theme and Variations for Strings다.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였던 Glazunow의 음악은 듣는 이로 하여금 클래식의 향취에 흠뻑 젖어들게 만든다. 아카시아 앙상블은 9분이 넘는 Glazunow의 대곡을 차분하면서도 수려하게 연주함으로써 청중들을 낭만주의 시대로 이끌어갔다.

두 번째 연주한 음악은 Johann Sebastian Bach의 ‘Concerto D minor for Two Violins and Strings’였다. 두 대의 바이올린은 리히터와 김연희 양이 연주를 했다. 김연희 양은 아카시아 1회 공연시 꿈나무 무대에 선 적이 있어 이미 검증된 실력을 가진 탁월한 연주자다. 이번에 그녀와 함께 듀엣을 하게 된 리히터는 그녀의 스승이기도 하다. 

바하의 음악답게 범상치 않은 곡이었지만 리히터와 김연희 양의 연주는 무대를 채우고도 남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악상이 바이올린을 타고 흘러나올 때는 탄성이 절로 났다.

1부 마지막 무대는 고에츠 리히터가 대미를 장식했다. 그의 솔로 연주. 많은 기대감 속에서 리히터가 택한 곡은 Johannes Brahms의 ‘Scherzo in C minor’. 드디어 거장의 연주가 시작됐다.

리히터는 불과 22살에 퀸슬랜드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발탁될 만큼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멜버른 심포니 수석 바이올린 연주자를 거쳐 12년 동안이나 시드니 음대 학장을 역임할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이올린의 대가였다. 이제 그의 연주가 시작된 것이다.

리히터의 독주를 위한 피아노 반주는 특별히 그의 아내인 Jeanell Carrigan이 맡았다. 피아노와 함께 시작된 남성 특유의 파워풀한 연주가 청중들을 소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갔다. 
 
▲바이올린의 대가 고에츠 리히터 교수(왼쪽)의 독주. 부인 지넬 케리건 여사가 반주를 맡았다. ⓒ크리스찬리뷰
 
 
자신감 넘치는 거침없는 속주와 세밀하고도 화려한 연주로 좌중을 압도했다. 객석의 모든 눈의 그의 손가락에 하나하나에 집중되어 있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거장의 연주는 확실히 달랐다. 그의 오른 손이 높이 올라갔을 때 연주는 끝났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역시 대가다웠다. 

시드니장로성가단 중창단

중간 휴식을 가진 후 2부 순서는 시드니장로성가단 중창단의 특별출연으로 시작됐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이제는 연륜이 느껴지는 장로들이 하나둘씩 무대로 올라왔다. 시드니장로성가단에게는 이번 공연이 데뷔 무대이기도 해서 떨릴 법도 한데 그들의 눈빛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지휘자 이창근 선생의 지휘봉이 움직였고 장로성가단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60-70대라고 전혀 느낄 수 없는 맑고 깨끗한 음색이 흘러나왔고 고음 처리도 능숙했다. ‘Deep River’를 처음 불렀는데 그 노래의 부제가 ‘Spiritual’이다. Spiritual하면 장로들 아니겠는가! 인생과 신앙의 깊이만큼이나 깊은 영성으로 은혜로운 합창을 했다.  

▲시드니장로성가단(중창단)이 특별출연하여 신앙의 깊이만큼이나 깊은 영성으로 은혜로운 찬양을 선사했다.(피아노 김미자, 플룻 허경숙)  ⓒ크리스찬리뷰

이어서 시드니장로성가단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과 ‘네 평생 주를 섬기리라’를 연속으로 불렀다. 노예 생활을 하며 비탄에 빠져 있던 히브린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그 고난과 어려움 중에도 일평생 주를 섬기겠다는 결단의 기도 소리도 들려오는 듯했다.

프로의 무대에 선 아마추어. 그것도 인생 느즈막히 60-70대의 장로들의 무대였지만 깊이와 무게감이 있어서는 결코 프로에 뒤지지 않는 귀한 무대였다. 그래서 객석에서는 박수를 아낌 없이 보냈던 것이다. 

화려하면서도 청아한 소프라노 서활란 
 
▲제2의 조수미로 불리는 소프라노 서활란의 열창과 더불어 무대의 주역들과 함께 호흡하며 감동을 나눈 반주자 변은정. ⓒ크리스찬리뷰

소프라노 서활란 교수의 무대는 2부의 메인이다. 아카시아 팀이 공을 들여 한국에서 초청한 서활란이다. 이태리와 스위스에서 수학한 서활란 교수(숙명여대, 성신여대, 명지대, 세종대 외래교수)는 제2의 조수미로 불리며 한국과 세계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고, 오페라 공연과 공연 사이의 짬을 내서 잠시 호주를 찾았다.

서활란 교수가 주역으로 출연한 오페라의 목록이 ‘피가로의 결혼’, ‘사랑의 묘약’, ‘마술피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후궁에서의 도주’ 등인 것으로 미루어 봐도 그녀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제2회 아카시아 정기 공연에서 제일 먼저 부른 노래는 김동진의 ‘수선화’. 이민 생활에 고단하고 지친 동포들을 위로하기 위한 그녀의 배려렸다. 그런데 배려치고는 너무 아름다운 노래였다. 화려하면서도 청아한 고음이 그녀의 입을 통해 무대 위로 울려퍼졌다.

어쩌면 그리도 고울까! 그리도 맑을까! 연신 감탄사가 속에서 터져나왔다. 이민 생활의 피로감이 물러간 것은 물론이다.

그녀의 아름답고 청아한 목소리는 이어서 부른 A. Webber의 ‘Pie Jesu’에서 더욱 돋보였다. 부드러우면서도 여린 선율을 표현하다가 하늘을 찌를 듯한 고음을 그토록 맑고 부드럽게 낼 수 있다니! 차원이 다른 무대였다.

이어진 음악은 W. A Mozart의 ‘Der Holle Rache kockt in meinem Herzen’이다. 화려하고 독특한 멜로디로 잘 알려진 이 곡은 오페라 마술 피리의 삽입곡으로서 소프라노들이라면 꼭 도전해 보고픈 음악이라고 한다. 서활란 교수는 본인만의 특색 있는 느낌과 표현으로 무대를 장식하며 청중들에게 꽉찬 감동을 선사했다.  

격조 있고 진한 감동 선사한 사이몬 김
 
서활란 교수가 한국을 대표했다면 호주 한인을 대표해서 테너 사이몬 김이 나섰다. 아카시아 사무총장이자 대표적인 연주자이기도 한 사이몬 김은 경희대를 거쳐 이태리 파가니니 국립음악원에서 수학하고 국제 콩쿨에서 여러 차례 수상 경력이 있는 역량있는 음악가다. 현재 Opera Australia Company 소속으로 2011년에 Opera 맥베드로 데뷔했고 멜번 Opera 가면 무도회를 준비 중에 있다. 

▲테너 특유의 고음과 풍성한 음량을 마음껏 내보인 김창환의 열창. ⓒ크리스찬리뷰

이번에 부른 노래는 S. Cardillo의 ‘Core’ngrato’와 A. Lara의 ‘Granada’ 그리고 G. Puccini의 ‘Nessun dorma’ 등이었다. 테너 특유의 고음과 풍성한 음량을 마음껏 내 보이며 힘 있는 음악을 선사한 사이몬 김의 무대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격조 있고 품격 있는 무대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태리 가곡의 정수를 선사한 그의 음악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의 노래가 한 곡 한 곡 끝이 날 때마다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큰 갈채가 끊이질 않았다.  

▲서활란과 김창환의 듀엣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에서 ‘축배의 노래’ ⓒ크리스찬리뷰

마지막에 서활란 교수와 듀엣으로 부른 G. Verdi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축배의 노래’는 연기가 곁들여진 환상적인 무대였다. 마치 오페라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사이몬 김은 참으로 귀한 음악가다. 무대 아래서는 더 없이 겸손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누구 보다 화려한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더 없이 큰 행복이다.

한편 이번 공연을 위한 성악 반주는 피아니스트 변은정이 도맡아 해 주었다. 연주나 노래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반주다. 이번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무대의 주역들을 더 없이 빛내준 그녀의 피아노 반주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함께 호흡을 맞추고 감동을 나누는 그녀의 실력은 가히 최고다! 

이제 2회 아카시아 정기 공연이 막을 내렸다. 클래식의 향취에 흠뻑 젖었던 시간이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헌신하고 애쓴 모든 분들에게 객석에 앉아 있던 한 사람으로 감사를 드린다. 벌써 내년 3회 공연이 기다려지는 것은 그만큼 감동이 컸다는 것. 부디 호주에서 한인들의 음악과 품격을 널리 알리는 아카시아가 되기를 소망한다. 

▲연주회를 마친 후 출연진과 임원들의 기념촬영. ⓒ크리스찬리뷰

AKCA는 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력있는 한인 음악가들에게 공연 무대를 만들어 주고, 호주와 동포사회에 음악의 다리를 놓으며, 1.5세, 2세 음악가들을 발굴하여 지원하기 위해 세워진 단체다.〠 


글/정지홍|AKCA이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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