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회선교단 단장 김용의 선교사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송기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10/30 [16:51]
▲ 12년 전인 1997년도에 6명이 헌신하여 ‘순회전도단’을 출범시키고 단장을 맡은 김용의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제로 포인트 이하의 인생 체험

그는 참으로 신비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우리는 흔히 한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배경에 궁금해 하면서 동질감을 가질만한 것을 찾으면서 친밀감을 가지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 우리가 만난 김용의 선교사는 특이한 경험의 소유자였다. 

고급 유흥업소 사장의 아들로 태어나 소위 '그 바닥'의 쓴맛 단맛을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그는 부친의 죽음으로 이 세상에서 의지하던 모든 끈이 끊어질 때, 제도권 교육마저 중학교 중퇴로 '가방끈'이 잘려나간 채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순도 100%'에 해당할만큼 복음적인 삶을 사는 오늘의 그가 되기까지 그의 삶은 드라마틱하고, 극대 극을 오가는 소설같은 삶을 살아왔다.

"저의 출생환경은 그렇게도 원하는 육적 행락을 즐기며, '인생이 어디로 가느냐?'하는 고상한 철학적 질문을 해볼 겨를도 없이 고급술집, 정치인, 경찰서장, 교수, 교장...등, 애국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딸같은 여성을 옆에 끼고 무슨 짓을 하는지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하도 욕을 사랑하는 집이라, 욕을 빼면 문장이 되지 않는 집안, 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가까운 정도가 욕의 농도가 얼마나 진하게 하는 것으로 가늠되는 그런 집안이었습니다. 저같은 사람에게 '인생의 의미'는 한 잔 술의 농담거리는 될지 몰라도 진지한 고민거리는 못됐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이 다가오기까지는 제 편에서의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가능성은 전혀 없었습니다."


▲ 유흥가 술집 아들로 태어나 밑바닥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았다는 김용의 선교사. 그는 자신의 집안은 욕을 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고 고백하며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크리스찬리뷰  

 
한마디로 그의 출생 운명은 같은 대한민국에 살아도 교회와는 전혀 담이 처진 문화권이었다. 그 누구도 전도할 수도 없었거니와 전도할 환경에 가까이 접근할 가능성도 없었다.

"아버지는 끔찍하도록 쾌락에 탐닉해 사셨으니 가족에게 정상적인 아버지나 남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술에 만취하면 가족들을 날마다 지옥 문간까지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술 먹고 주접을 떤다면 가장 창피한 자리에서 빠지지 않을 사람, 술이 깰 때까지 온 가족들을 피를 말리는 사람이 아버지였습니다. 

가족들의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었다면 '저 아버지 언제 숨통 끊어지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간절한 소원이 일찍 응답이 되어 중학교 때 아버지가 비명횡사했습니다. 그 많던 재산, 다 기생한테 나눠줬는지 어쨌는지 우리를 완벽하게 알거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버지를 잃으면 자유가 올 줄 알았는데, 그 무섭고 지긋지긋한 아버지를 안보면 이 지구상에 자유와 평화가 찾아올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 죽으면 아버지를 통해서 공급되던 모든 것이 중단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집 한칸 없이 뒷골목, 주민등록증 없이 사는 사람들이 사는 그 뒷골목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그곳은 술, 살인, 마약, 음란이 전혀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매일 일상이 되는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또하나 엄청난 경험을 한다. 사람들의 비정함이 뼛속까지 녹아들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가 돈 잘벌 때 일가친척 사돈의 팔촌까지 그 알랑대며 찾아들던 사람들이, 거꾸러지고 망해버리니 코끝 하나 보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환경에 외롭게 버려진, 누구 하나 보아주지 않던 저였습니다. 저 자신도 저를 포기했었습니다. 예수님 만날 당시에는 자학증에 시달리는 불쌍한 청년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자신 앞에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는지 어떤 그림도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직면할 용기도 없었다.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뒷골목 어깨들에게 두드려 맞았다거나, 가난, 굶주림, 비참함 등 비인륜적인 고통을 당한 건 그냥 지나가면 그냥 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때를 돌이켜 볼 때 지금도 제 마음에 멍멍하도록 한 기가막힌 고통이 있었다면, 그런 절망이 아니라 제가 그렇게 소망 없이 끔찍한 절망 가운데 있을 때, 그 너무도 두렵고 막막할 때, 내가 누구를 부를 대상이 없었다는 거예요. '여보세요, 누구 날 좀 도와주세요. 나 지금 어디로 가야 합니까? 어디 가면 내가 살 수 있지요? 누구를 찾아가야 돼요? 날 좀 도와줘요!' 좀 차라리 허상이라도 있었으며 좋았겠어요. 

그때 제가 만약 '예수'의 이름이라도 알았더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그냥 교리로라도 하나님이 계셨다고 했더라면, 그렇게 절망적으로 보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부를 대상이, 부를 이름이 없는 거예요. '누구를 부르지? 이 기가 막힌 막막한 두려움의 구덩이에 혼자 남겨졌는데 누굴 찾지? 내가 부르면 누가 대답해주지?' 예, 지금도 저는 가난하거나 병든 것 이런 것은 별로 동정 안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나름대로 다 자기 삶에 보람이 있고, 기쁨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값싼 동정이 아니라, 제가 정말 이 땅에서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부를 대상을 못가진 사람입니다. 영혼의 공허함, 그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이지요."


 미친 신의 사랑 이야기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은 그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과 기가 막힌 상황으로 코너로 몰아서 이제까지 그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던 예배당으로 밀어넣으셨다. 안갈래야 안갈 수도 없는 상황으로 코스를 그렇게 잡으셨다고 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될 줄도 몰랐다. 처음 찾은 교회에서 알지도 못하던 이야기를 '주워듣다가' 전율할 충격에 휩싸인다.

"엄청나게 찌그러지고 망한 피조물! 가장 부끄러운 피조물! 저 같은 죄인놈을 사랑하다가 '미친 신의 이야기'를 저는 소설책 스토리로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런 말씀을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말이 제 안에 들려지는데, 세상에 저같이 완전히 찌그러진 불량품 피조물을 사랑하다 미쳐서, '하나님이란 조물주가 날 사랑하다 미쳐서, 구원할 다른 방법이 없어서,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대신 잡으면서, 죽이면서까지 사랑했다'는 이 말! 이 스토리가 진짜인지는 차치하고라도 이 스토리만 가지고도 평생 감동하다 죽어도 좋을 만큼 충격이 대단했습니다."

이 말을 성령께서 들리게 하셨는데, 물론 대단한 신학적인 말은 아니었다. 그에게 이런 말로 들렸다고 했다. '내가 널 사랑한다!' 물론 이런 말을 난생 처음, 부모를 비롯한 어느 누구에게 문장으로도 직접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다.

"제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가 절 사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한마디 더 덧붙여서 깨닫게 해주셨는데, '너는 재수 없이 태어난 망한 술집 아들놈이 아니다. 너는 내가 널 대신해서 죽을 만큼 너는 가장 소중한 놈이다' 이 말이 받아들여졌습니다. 긴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때 홀랑 미쳤습니다. 벗어도 그냥 벗었다는 말과 홀랑 벗었다는 말이 다르듯이, 미쳐도 그냥 미쳤다는 말과 홀랑 미쳤다는 말이 같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도도 할 줄 모르던 그는, 서원일 줄도 모르고 하나님 앞에 혼자서 '의리의 약속'을 했다. '하나님 이제 내 무소유로 살겠습니다. 나 이제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그분이 적극적으로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저같은 인생은 태어나서 꾸역꾸역 밥먹다가, 경쟁하다가, 양육강식하다 강한 자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저 늙고 때가 되면 사지를 벌벌 떨다가 죽고 묻혀서 한줌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인생으로 끝났을 거예요. 영적으로는 아무 상관없이 주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기억해주셨는지 아무리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아찔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자살할 이유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 술집 아들이라는 이 부끄러운 혈통, 둘째 지긋지긋한 가난, 셋째 중학교 때 공식학력이 끝나면서 중퇴한 것, 한국 남자로 가방끈 짧은 것, 이것 참 비참한 거지요. 넷째 저의 약한 인격, 겁이 많은 인격, 구질구질한 삶의 배경들, 전부 자살할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만나고 이런 것들을 바꿔달라고 하지 않았다. 바꾸고 안바꾸고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냥 그대로 괜찮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이면 그의 인생에서 전부였으니, 행여라도 다른 것에 마음 빼앗길까봐 자신도 모른 사이에 거룩한 서원을 한 것이다. '앞으로 몇 년을 살 지 모르지만, 주님만 내 전부로 삼겠다. 무소유로 살겠다'라고 한지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무소유로 살아왔다. 

그가 속한 순회 선교단에서 그에게 제공한 거주지는 콘테이너 하우스였다. 소위 문화주택은 실내온도와 실외온도가 반비례한다. 그러나 그의 콘테이너 주택은 소위 '내츄럴 하우스'이다. 밖이 추우면 같이 춥고, 밖이 더우면 정확하게 같이 더운 정비례집이었다. .

그러나 그에게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교회서 가르쳐주는 대로, 문자 그대로 믿었으니까. 매주 나올 때마다 기대감을 갖고 예배를 드렸다. 평신도 안수집사 될 때까지 10년을 하루같이 눈물로 감동으로 예배를 드렸다. 이 '미친 신의 사랑 이야기'에 그도 덩달아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미쳐서 30년이 훌쩍 지났는데 날로 그 증세가 더 심해져가고 있어요, 사람들이 저보고 '너는 왜 점점 더 미쳐가냐'고 해요. 보통 사람들은 '나도 과거엔 뜨거웠었어요'라고 하거나, 또 '신학교 들어갈 땐 불덩어리였는데 나올 땐 숯덩어리였다'고 양심에 가책도 없이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뜨거운 신앙을 이상한 신앙처럼, 그런 신앙을 비판하는 것이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것처럼 주접을 떠는 사람이 있지요. 제가 아는 예수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어떻게 더 안미치고 살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덩달아 미친 사랑 이야기

"아이 하나만 낳자고 애국운동을 펼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다섯을 주셨습니다. 둘 낳으면 짐승이다, 야만인이다 하던 시절, 둘 이상을 낳으니, 이름이 없어 못붙일 정도였습니다. 다섯을 낳는 족족 내게는 예수님 만난 사건보다 더 큰 것은 없으니, 아이들과는 전혀 의논하지 않고 전부 선교사로 바쳐 버렸습니다. 물론 약간의 몸부림이 있긴 있었지만, 이미 바쳤는데 어떡할 겁니까? 이게 모태신앙의 운명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다섯 아이들 다 선교사 됐습니다. 저에게 예수님은 중염불일 수가 없고, 천국은 정신 통일일 수도 없습니다. 정신 위안소일 수는 더더구나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냥 덩달아 미친 사랑이야기입니다."

그가 받은 가장 큰 축복은 사업 잘되고, 일류학교 들어가고, 부귀영화누리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의 '경험적 축복론'을 들어보자,

"하나님께 순종을 하니, 자식들 선교지로 보내면서, 아이들 하나하나 제 마음에서 떼어 보내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처럼 사랑하사 그 외아들을 주셨다는 말씀이 그냥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이 가슴에 그냥 새겨지듯이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최고의 축복이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그 마음 속에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덩달아 미친 사랑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전히 진행형이다. 점점 강도가 세지고 뜨거워졌다. 원색적이 되어갔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어버리는 그는 땅 끝까지 전파 되어야할 복음, 모든 종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그 때 주님이 오실 것이라고 하신 말씀에 주목했다. '주님을 다시 오시게 하는 방법은 선교를 완성하는 길밖에 없다. 대대적인 연합이 이뤄지면 선교 완성될 수 있겠다'는 아주 순순한 마음으로 '재주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6명이 헌신하여 12년 전인 97년도에 '순회선교단'을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온 세상에 흩어져있는 하나님 백성을 도와서 선교완성을 이룬다는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우리도 먹을 게 없으면서 죽어라고 6대 대륙 50-60개 나라로 다니며 눈물겹게 선교사들을 섬겼습니다. 솔직히 우리처럼 섬기고 다니면 감동받고 연합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다음, 사역의 변화가 왔습니다. 원래 우리가 원했던 것은 지역적인 도움과 연합이 목적이었는데 연합이 잘 안됐습니다. 아예 연합을 안하더군요. 우리가 모범을 보이면 자연스레 연합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연합이 정말 어렵더군요. 이런저런 이유로 선교사들이 갈라져 있어요. 실질적인 연합으로 하려면 '누구 이름으로, 누구 좋으라고, 그 단체와 못하겠다' 등등 별의별 대답이 들려왔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보고 좌절을 겪었습니다."

연합만 하면, 그리스도의 몸이 전세계를 복음화하고도 남을만한 자원 기회를 다 주셨는데, 서로 자기 일에 우선하다보니 서로 적극적으로 연합해 한 몸을 이루고 완성해야 한다는 목표를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한쪽에서는 자원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고 한쪽은 일이 없고, 사람이 없고, 돈이 없고, 자원이 없는 등 없는 것 투성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안에 넉넉히 주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누리지 못하는 것은 연합하는 문제에 있음을 보았다. 

우리 몸의 각 지체가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하지만,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나누고, 섬기고 함께 붙들어 주면 건전한 몸을 이루는 것과 같은 역할이 선교단체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복음에 헌신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공산권까지, 모슬렘권까지 나간 한국 선교사들끼리 서로 자기 일에만 몰두하면서도 연합이 그토록 어려운 것을 보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우리가 아는 복음이 우리 삶에 실재가 안되는가? 맥빠진 복음인가? 무기력한 복음인가? 설교와 말하는 대로 살 능력이 없는가? 우리끼리도 섬기고 사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우리의 가치관 하나도 바꿀 수 없는 복음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복음이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다 헌신돼 있고, 복음을 안다고 하는 우리에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총체적인 복음 앞에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자고 한 때가 2002년도였습니다. 가장 원론으로 돌아가자! 우리부터 복음이 우리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을 경험하지 않으면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가 남에게 가르친 복음으로 우리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러자 복음이 새롭게 관찰되었다. 교회나 선교단체들이 가르치는 복음은 각자 필요한 대로 조각난 복음이었음이 드러났다. 구원의 확신용 복음, 전도용 복음, 능력용 복음, 가정용 복음, 치유용 복음 등으로 조각내어 가르치고 있었다. 그냥 '교육용 복음'이었지 사람들을 능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복음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이 많았다.

"많은 문제 앞에 서서 총체적으로 보면서, 우리 안에 숨겨진 복음화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이 드러났습니다. 그게 우리 안에 큰 변화가 일어나자 복음을 '알았다 치고, 믿었다 치고, 대강 해놓은 것 가지고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변화시킨 복음, `복음학교'라는 사역을 2002년도에 시작했습니다, 1기 복음학교가 우리 사역의 아주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복음이 결론으로 나니, 그 다음 완전한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나자 결론이 확실해졌습니다. 정말 주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결국 주님이 하시는 일을 주의 일이라고 하는구나, 그래서 기도에 올인했습니다. 우리 사역의 두 기둥을 복음과 기도라는 두 기둥을 성전에 하니님이 세우신 야긴과 보아스처럼 완전한 사역의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결과는 놀라왔다. 벌거벗은 채 원색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나를 변화 시킬 수 없는 복음은 그때부터 복음이 아니다"라는 준엄한 확신이 들었다. "나를 움직일 수 없는 믿음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라는 마음도 생겼다. 이후 이들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께만 의존하는 '복음의 삶' 그대로였다.

"우리가 여러 나라를 다니는 비행기값, 어떻게 허락받고 다니는지, 우리 가족이 사는 것을 알았다면 감동 그 자체입니다. 아이들 용돈 한 번 못주었습니다. 큰 회사 부장급 2-3명의 월급이면 우리 공동체 1백여 명의 식구가 먹고 삽니다. 수 십년 된, 폐교된 중학교가 우리 공동체입니다. 교회서 쓰다만 수련원이 훈련소입니다. 허락된 방은 좀전에 말씀드렸듯이 콘테이너입니다. 그래도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1천 만 원 들어가는 돈을 후원자에게 일정하게 후원 활동 못하게 합니다. 함부로 헌금 허락하지 않게 하지요, 우리의 소식지에는 은행구좌도 없습니다. 헌금도 특권입니다. 

참새도 죽으면 '짹' 하는데 우리는 주의 종들입니다. 어디 가서 주의 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일 못한다는 말로 하나님 혼돈되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주님은 언제든지 그 뜻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일에 부족함 없다는 것을 믿음을 증명하며 살려고 합니다. 단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준비가 돼있는 기본을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 열강하는 김용의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순종과 공급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공급'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주님은 우리의 식단을 일일이 짜주고 계십니다. 아침 점심 저녁 식단을 그 바쁘신 주님께서 스케쥴을 잡아주십니다. 금식, 미식, 분식, 소식으로 말입니다. 다이어트 신경 안써도 되게 말입니다. 그래도 굶어죽은 사람 전혀 없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시는 분! 우리가 쓰는 돈을 보면 깜짝 놀랍니다. 지난 올여름에도 30개국에 흩어져 있는 선교자들을 섬겼습니다. 한 팀당 1천 500만 원 이상입니다. '후원이 아닌 믿음으로' 기다렸는데, 몇 억의 돈이 한 번도 펑크 나지 않았습니다. 한푼도 들어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날마다 벼랑 끝에 삽니다. 아찔하고 짜릿짜릿한 주님과의 긴박감을 가진 삶! 한 발만 뒤를 물러서면 '으악!'하고 떨어질 긴박감 속에서 교제를 누리는 건 흥미진진합니다. 적어도 우리의 삶에 주님의 뜻이라고 하면, 계산되든 안되든 순종할 마음과 용의는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딴 재주는 전혀 없어요. '주님 말씀 하시면 멈춰서리라' -안 멈추다 죽을 뻔했지요.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제가 주님 끌려다 죽을 뻔했습니다. '뜻하신 그 곳에 나 있기 원합니다'-엉뚱한 데 있다가 얼마나 혼쭐이 났는데 말입니다."

참으로 스릴넘치는 삶임을 증거한다. 이런 고백 속에서 날마다 살아가는 그의 삶이다.

"순회전도단은 다른 재주는 없어도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분을 신뢰하고 나가면, 2천년 전만 아니라 오늘날도 믿음의 삶이 가능하다는 데에 작은 증인되고자 합니다. 우리에게는 대단한 영웅적인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이 영웅인데요. 너무 연약해서 한순간도 주님 없으면 못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셨다 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인이시고, 그분의 이름이 높아지면, 어떤 영역에서 어떤 일이 주어져도, 이를테면 주방에서 쓰레기를 치워도 그것 하나 전심으로 합니다. 그것 하나 하다 죽어도 주님께 영광이란 생각으로 열심히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주님을 위한 일이라면 그 일에 목숨을 겁니다. 눈물겹게 감사합니다. 진리가 교훈입니다. 명령이 떨어지면 언제든지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그걸 기뻐하십니다."

이런 일은 완전한 복음 체험이 없는 사람은 엄두도 못내는 일이다. 그러나 복음으로 변화된 사람은 너무나 쉽고 가벼운 멍에로 기꺼이 감당한다.

"복음은 완전하고 충분합니다. 우리의 일생과 가족이 맡길만한 완전한 복음인가? 치열히 고민한 사람, 목숨걸고 고민한 사람, 주님의 피묻은 십자가를 내 삶의 모든 것, 모든 근간이 되었던 세상적인 발판을 쑥 빼고, 내 삶을 주님 앞에 홀로서는 주님을 독대하면서 사는 우리 130명의 공동체 식구들은 만일 하나님이 공급하지 않으시면 다 굶어야 합니다. 동일한 믿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매일 매순간, 고민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엄마 품에서 고민하는 것 보셨습니까? 그러니 고민하지 않습니다. 어디든지, 어떤 모습으로 세우실 지라도 최고의 영광으로 알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죽어도 천국이 보장되었는데 겁날 이유가 없지요. 자발적으로 생명의 고백으로 순종합니다. 눈물겹도록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결론내고, 진리가 결론입니다. 아무 보장 없어도 이렇게 살아가니 하나님이 참 기뻐하시더군요,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이 언제든지 원하실 때 쓰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과서나 강의실이 아니라 선교의 현장, 삶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처절하게 부딪히면서 쓰리도록 아픈 현실이란 껍질을 깨고 나온 체험이었기에 그의 말에는 힘과 확신이 있었다.

"문제는 건전한 신학을 말한다는 사람도 교리가 실제 생활에 전혀 영향을 못미치는 결혼서약서와 같다는 것입니다. 결혼서약할 때는 거창하고 어마어마한 약속 `예' 해놓았지만 막상 부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부부 싸움이 일어났을 때는 결혼서약서가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것처럼, 기독교 교리가 실제에 전혀 도움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 복음에 우리의 삶 전체를 통째로 맡기면서 '야, 이게 결론이구나! 엄청나구나! 이거 진짜네! 내 인생을 밀어 넣을만하네!'하며, 믿음이란 용어로서가 아닌, 믿어지는 것이어서 우리 일생 전체를 복음에 올인해도 될 만큼 복음대로 살아야 합니다."
 

▲ 비관주의의 사슬을 완전히 끊고 예수로 인해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다는 김용의 선교사는 돈과 명예 등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고 무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복음사관학교

그의 비유는 쉽고 재미있었다. 그만큼 이제껏 그의 삶이 복음에 온몸을 던졌기 때문이리라.

"복음은 '정말 완전한가? 내 일생을 맡길만한가? 내 인생을 다 걸 수 있는 고민인가?'할 때 희한한 것은 이 고민 하지 않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망의 벽앞에 부딪혀 서서, 도대체 이 복음이 우리를 어디까지 보장해주는가? 물음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무플을 쳤습니다. 이 복음 안에는 삶과 죽음, 작은 것부터 큰 것이 다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결단했습니다. 전전긍긍 안했습니다.. 더 이상 통장 잔고에 믿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통장을 털고 주님 앞에 오직 믿음으로 살기를 작정하고 오늘도 믿음의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신바람나지요. 언제나 주님이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순회전도단에서는 이 절대 믿을만한 십자가의 복음 앞으로 초대하기 위해 '복음사관학교'를 개설했다. 광고도 초청도 안하고, '복음 앞에 목숨 걸고 올 사람 오라'는 마음으로 진행하는 데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온다고 하였다.

"복음 앞에 결론을 내리면, 이제 죽어도 괜찮다는 각오로 살게 됩니다. 눈물겹게 희생을 지불하면서 복음 앞에 서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자기연민같은 헛된 짓은 안합니다. 나에 대해 죽은 자, 이 땅에 최고의 진리,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자유케 했는데 말입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우리의 존재, 우리의 중심을 바꿔놓는 능력이지요.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십자가가 실제가 되는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 앞에 생명으로 부딪힌 사람은 더 이상 영웅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복음과의 새로운 만남, 체험을 한 순회선교단은 선교지에서 선교사 위한 사역은 복음과 기도로 연합하게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과거의 실패를 딛고 실질적인 연합이 일어나게 한다. 복음학교는 선교사들에게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일반인 복음학교, 목회자 복음학교, 선교사 복음학교로 5박 6일 동안 복음 앞에 처절하게 서는 시간을 가지며, 1년에 평균 10차례 정도 진행된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24365' 연합기도이다. 즉 연속 연합 24시간 365일 기도하는데, 시편 2편 7-9절, 이사야 62장 6-7절 통해서 주님 말씀해 주셔서, 매일 하루 한 시간씩, 전 세계 모든 나라를 한 시간씩 기도하는 기도자 헌신을 받아서 기도자들이 시간을 이어간다. 전 세계 모든 나라와 세계 기도 정보를 가지고 연속기도를 한다. 오퍼레이션 기도는 세계 기도 정보 책을 중심으로 매일 한 나라씩 기도하여 24시간 채우고,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 팀들을 세우면서 계속 채워나가는데, 기도 체인을 맺어 365일 전세계를 365일이면 한 번 돌 수 있다. 

2003년 4월 1일 자정부터 120명이 출발하여 만 7년이 흐른 지금, 7차 완주를 했다고 한다. 매일 한 시간씩 열방을 위한 기도 멤버가 9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을 알리기 위해 기도헌신자로 작정하면, 전화 알람을 6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알려주어 정식으로 기도하게 하여 기도가 중요한 사역의 틀이 된다고 하였다. 

오늘도 전 세계를 돌며 십자가 복음을 결혼서약서처럼 사문서가 아닌, 살아 움직이며 강력한 다이나마이트로 작동하여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그의 사역은 도전과 충격, 흥분 그 자체였다.☺ 

 

▲ 지난 9월 호주 컴미션이 개최한 목회와 선교 세미나에 강사로 초청받아 참석하고 수강생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 크리스찬리뷰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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