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안수 어떻게 봐야 하나?
 
크리스찬리뷰
 
여성은 두 번째로 창조되었다 
 
역사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창조되었다는 창세기 2장 내용을 가지고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이런 논리에서 남자가 맨 위에 서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하고,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여자의 머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되어 왔다. 
 
▲ 케빈 자일스 목사     ©크리스찬리뷰
창조순서가 사회적 순서를 결정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정말 이런 논리를 합리화시켜 줄까? 창세기 1장에 보면, 모든 동물들이 창조된 후에 인간이 만들어지면서 남녀모두 같이 만물을 다스리는 위상과 책임을 부여받은 것으로 나온다. 

창세기 2장에서는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고 하면서도, 온 흙(온 창조세계를 의미)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설명한다. 이 말은 두 번째로 창조되었다고 해서 열등이나 종속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2등을 했다고 해서 1등보다 반드시 열등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때가 있다. 

이런 농담도 있지 않나?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신 후, 아담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어 그리고 나온 게 하와다. 

어쨌든 여성종속론의 배경에는 창세기 2장 7절에서 창조된 아담이 여자와 구별되는 남자를 의미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이런 전제로 성경을 보면, 첫번 째 창조기사와 모순이 되게 된다. 첫 번째 창조기사에서는 남녀가 같이 창조된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아담을 여성과는 구분되는 남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문제가 등장한다. 

남성이란 존재가 여성이 없이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여성과 남성은 한 쌍으로 있을 때만이 서로를 남성, 여성으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은가? 

본문자체도 같은 생각이 드러난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혼자 지어진 아담은 불완전하고 불쌍하게 보였다고 나온다. 이 때문에 창조기사는 아담이 자고 일어났을 때 그 옆에 여자가 등장하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이후 유대교나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아담이 양성동체, 다시 말해 남자와 여자가 한 몸에 다 포함되어 있다거나, 원래 성과는 상관없이 창조되었다는 생각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는 하는 것은, 하나님이 여성을 창조한 후에나 아담은 온전한 인간이 되었다면, 이 말은 남녀의 창조순서가 누가 더 우월하다고 말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자와 분리된 남자 혼자서는 하나님이 의도한 인간 함량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1장 11절에서 이점을 제대로 집어내고 있다. 


여자는 아담의 도우미로 창조되었다 

여성종속론을 주장하는 가장 흔한 근거는 하나님이 여성을 남성의 도우미로 창조하셨다는 본문번역에서 나온다(창 2:18). 이 말은 여성이 남성을 도와주는 존재, 조수로 만들었다는 뜻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도우미란 뜻이 종속된 존재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창세기 2장을 통해 주장돼 온 다른 여성종속론 근거들처럼 본문주석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도우미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애재르의 본래 의미가 열쇠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총 19번 등장한다. 15번은 주권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필요를 돕는 행위를 묘사하는데 사용된다(예 - 출 18:4; 신 33: 7,시 27:9, 33:20, 94:17 등등). 세 번은 군사적으로 돕는 장면에 등장한다(사 30:5, 에 12:14,호 3:19). 

이들 용례들만 봐서는 도우미로서의 여자란 부족한 남자를 도와주는 더 우월한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수식하는 네게드란 단어가 이런 해석을 거부한다. 이 단어는 도우미와 도움을 받는 대상의 관계를 정의한다. 이 단어 때문에 도우미는 아담의 동격자, 파트너로 이해된다. 이 단어를 제대로 번역하면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동격인 도우미라고 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은 아담보다 우월한 도우미고, 동물들은 아담보다 열등?도우미고, 여자는 아담과 동등한 도우미가 된다. 


여성은 남성에서부터 나왔다 

여성을 아담의 갈비뼈에서 취했다, 혹은 그의 옆에서 취했다는 성경의 표현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서 취했다란 표현을 종속이나 소속을 의미한다고 전제한다. 여기서도 이 표현의 실제의미를 밝히는 것이 문제해결의 열쇠다. 실제로 본문의 강조점은 아담이 여성을 창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관계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아담을 창조할 때처럼, 여성 역시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창세기 2장 21절에 보면, 아담이 잠자는 동안 하나님이 움직인다.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뭔가를 취해 그에게 필요한 파트너로 여자를 만들었다. 여자를 보자마자 아담은 기뻐서 이렇게 외쳤다.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2:23). 아담은 여성 속에서 자신과 같은 인간을 발견한 것이다. 자신과는 다른 존재지만, 같은 내용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다. 

취했다란 표현이 종속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실도 아니다. 창세기 기자는 그 점을 수긍하지 않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창세기 2장 5절에 보면, 그는 독자들에게 아담이 땅에서 취해진 존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담이 땅에서 취해졌다고 해서, 그가 땅에 종속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도리어 그 반대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이 남성으로부터 취해졌다고 해서 남성에 종속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창세기 기자가 여성을 남자의 옆에서 취했다고 말하는 뉘앙스는, 남녀가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같은 위상, 가치, 가능성을 가진 존재임을 강조하는 쪽에 가깝다. 많은 신학자들이 아담의 옆에서 취했다란 표현을 이런 동등성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1157년 파리 대주교로 임명된 피터 롬바드는 그의 유명한 신학서 설명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와가 아담의 발에서 취해졌다면 종속물이 되어야 옳다. 그리고 아담의 머리에서 취해졌다면 주인이 되어야 옳다. 그러나 옆에서 취해짐으로써 아담의 동료가 되었다. 아담이 23절에서 그의 여성 파트너를 보고 기뻐 뛰는 장면은 창세기 2장의 절정이자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바로 여기서, 그리고 여기에 이르러서나 남자는 진정한 인간이 되고, 여성과 구별되고, 같은 의미에서 여성도 참다운 인간이 되고, 남자와 구별되게 된다. 

인간 창조 기사는 바로 이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욱이 24절에 나오는 내용은 결국 결혼관계는 가장 신비한 방법으로 다른 성이 상호보충하는 결합 관계임을 보여준다. 


여성에게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 

남성이 창조 이전에 우월한 존재였음을 주장하는 근거로 아담이 여성과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장면이 자주 거론된다(창. 2:19-23, 3:20).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대상에 지배하는 권위를 상징하며, 창세기 2-3장에서 이름을 지어주는 존재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 안된다. 

첫째로 창세기 2장과 1장을 조화시켜 해석해야 한다면, 이런 논리는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에서 남자와 여자는 같이 동물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여기에는 여자가 남자에 종속되었다는 뉘앙스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남녀는 같은 위상과 같은 권위를 가진 존재임이 강조된다. 

창세기 2장 7-22절에서도 아담은 여성과 구별되는 남성으로서 등장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아담이 동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는 여성과 구별된 남성만의 특권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게 된다. 

둘째로 이름을 지어준다는 말이 지배하는 권위를 포함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물론 더 높은 권력을 가진 자가 아래 존재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왕과 장군들은 정복된 지역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고 (민 32:41, 42, 여 19:47, 삼하 5:6-9), 부모가 자녀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부모의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도 성경에서 보면 주로 엄마들이 해왔다. 구약에는 총 46회의 이름지어주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이중 28회가 엄마의 의해, 18회만이 아빠에 의해 이름이 지어진다. 그러나 구약에서 이름을 지어주는 행위는 이름을 지어주는 대상에 대해 뭔가를 설명하기 위해 동원된다. 

야곱의 이름의 경우, 태어났을 때 쌍둥이 형의 발목을 잡고 놓지 않았고, 그 후에서 형의 자리를 넘보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창 25:26). 창세기 2장에서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준 장면에는 각 동물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이 장면의 핵심이다. 어떤 동물도 하와 같은 도우미의 자리를 가질 수 없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2:20). 이것이 인간창조기사의 핵심내용이기도 하다. 

아담이 동물의 이름을 지어준 행위와 하와를 보고 탄성하며 이름을 부른 행위를 같은 수준의 행동으로 취급해서는 餞蔥求?2:23). 더욱이 아담이 혼자서 동물의 이름을 붙일 때는, 정해진 방식에 따라 했지만, 여자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아담의 탄성은 자신에게 평등한 파트너로 온 여성을 향해 환영하는 소리였다. 그가 하와를 여자(ishah)라 부른 것은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아니었다. 히브리어 원어는 성적인 특징을 강조하는 말이지 고유명사가 아니다. (계속) 

 

글/케빈 자일스 교회론 조직신학자
번역/김석원 크리스찬리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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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4/09 [11:49]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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