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b)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09/02 [09:39]
주님의 기도의 첫 번째 청원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하는 것, 이 기도가 모든 기도의 으뜸이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주님의 기도가 모든 기도의 모범이고 주님의 기도의 처음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모든 기도의 첫 번째 간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것이다. 그분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가 제일 우선되어야 한다.

자기 이름을 높이는 기도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의 기도는 그렇지가 못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과 거리 어귀에서 손을 들고 기도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기 위해 손을 든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기도했다. 바꾸어 말하면, 바리새인들은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 위해 기도했던 것이다.

신앙은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성숙한 신앙일수록 나는 더욱 낮추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더더욱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신앙의 가장 중요한 의무 가운데 하나가 기도다. 그래서 신앙의 깊이와 넓이는 기도의 깊이와 넓이와 정비례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간구하는 것이 첫 번째 순위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순서를 뒤바꿀 때가 허다하다. 하나님을 위한 간구보다 나를 위해서 내 사업을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먼저 튀어나오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사모하는 마음보다, 내 소유가 많아지고 내 명예가 높아지고 내가 잘 되어서, 내 이름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뿐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목회도, 사역도, 헌신도, 봉사도 모두 마찬가지다. 우리의 사역과 헌신과 봉사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오직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이름은 사라지고 우리의 이름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경우가 공공연하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동방으로 이동하다가 시날 평지에 거류하게 되었다. 그때는 언어도 하나였고 말도 하나였다. 그들은 벽돌과 역청으로 바벨탑을 건설하기로 했는데, 그 이유를 창세기 11:4이 밝혀주고 있다.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으려고 했던 것은 자기들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하늘의 높이만큼, 하나님만큼 자기들의 이름을 높이려고 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도 그들을 흩어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게 하심으로 탑을 세우는 것도 그치게 되었고 인간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높이려는 욕망을 멈추지 않았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도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 외식하는 기도를 했고,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이름을 높이고 자기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며 하나님을 밀어내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4천 년 전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셨지만,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무시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치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도록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뉴스와 신문 보도를 통해 들려오는 교회의 추문과 그리스도인들의 악행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마저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권력의 시녀가 되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 부정 부패를 일삼으며 자기 이름을 내려고 안달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 건물은 높아졌는데 더이상 하나님을 높이지 않는다. 전에는 그토록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였건만, 이제는 세상을 더 찾아다닌다. 하나님의 이름보다 자기 이름을 내기에 더 바쁘다.

이 같은 뉴스가 다른 교회 다른 교인들만의 이야기일까? 과연 우리들은 예외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내 힘과 물질을 더 신봉하며, 하나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것보다 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더 마음 아파하지는 않았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성도로 부르시기 위해 당신의 보좌도 영광도 생명도 포기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과연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일 주일에 고작 한 번 드리는 주일예배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는 않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것보다 무엇이 그리도 소중하고 귀한가? 혹시 우리의 기도도 내 소유가 늘어나고 내 이름이 높아지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빌리는 기도가 된다면 우리도 이 시대의 바리새인일 뿐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하나님에게는 거룩, 공의, 자비, 긍휼, 사랑 등 다양한 성품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성품은 거룩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거룩이란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다. 세상에도 공의가 있고 자비가 있고 긍휼이 있고 사랑이 있다. 그러나 거룩은 없다. 타락한 세상은 결코 스스로 거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유일한 하나님의 성품이 거룩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거룩하시다. 그래서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때도 하나님의 공의나 자비, 혹은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노래했다.

천사들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찬양했던 것은 오직 하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였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이야말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혼탁한 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며, 모든 만물들이 경배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고 있는 만큼 그만한 높이와 깊이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다. 10년 20년을 예배해도 신앙이 성숙하지 못하고, 숱한 세월 동안 기도해도 여전히 똑같은 신앙 수준에 머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알면서도 하나님의 거룩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기도는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시도록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는 충분히 노래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도 충분히 구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이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에만 머물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초월과 신비와 영광과 능력과 하나님의 경이로운 임재를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초월, 신비, 영광, 능력과 같은 더 높은 신앙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할 때에만 가능하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선포되어야 한다.

지금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은 온 세상을 두루 비치고 있다. 높고 푸른 하늘에서도, 검푸른 바다 속에도 드넓은 대지 위에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비치고 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8:1)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우리의 삶을 비추어야 한다. 그래서 기도는 기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우리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했다면,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앙망하고 높일 때, 새 힘을 얻고 독수리가 날개치듯 창공을 향해 비상할 수 있다. 그것은 오직 거룩한 삶으로만 가능하다.〠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blog.daum.net/goodseed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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