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비밀

배용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09/30 [12:04]

4계절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호주에서는 꽃이 피는 때가 봄이고 단풍이 드는 때를 가을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 재미있는 나라다. 그렇게 계절의 구별이 확연하지 않은 곳이다 보니 어떨 때는 그 계절의 변화를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 사람들이 겨울에도 헐렁한 여름옷을 입고 다니며 여름에는 두꺼운 잠바차림으로 나서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나무라고 해야 유럽 사람들이 가져다 심어놓은 몇 종류의 단풍나무를 제외하면 온 도시가 사철 녹색으로 치장되어 있는 셈이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은 강이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며(창 2:10) 휘돌아 흘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곳은 사철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가 풍성히 자라고 있었을 것이고 그 동산의 색은 녹색을 기본으로 하였을 것임이 분명하다.
 
이렇듯 식물은 동물이나 그 외 생물에 비하여 비교적 덜 알려져 있고 관심도 덜 주고 있지만 알고 보면 식물만큼 신비한 생명체도 없을 것이다. 광합성작용이라는 기묘하고도 신비로운 현상을 통해 식물은 발아와 성장 그리고 결실의 전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우습게 볼 생명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뿌리에서 흡수한 물과 잎사귀에 있는 기공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빛을 이용하여 생장에 필요한 포도당과 산소를 만들어 내는 광합성작용은 그 식물이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대화도 못하고 자연에서 아무렇게나 흩어져 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식물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섬세한 감각기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의 농학자 버드(C. Bird)와 톰스킨박사(P. Thomskin)의 연구에 의하면 오랫동안 돌보며 사랑을 준 식물에 과학적인 측정 장치를 부착한 후 그 주인이 멀리 떨어져 있었던 위험한 순간(자동차사고 위험이나 절벽에 섰을 때 등)에는 어김없이 그 식물이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하는 연구는 불가사의한 식물의 예지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나무에 여러 사람이 지나가면서 그 중 한 사람이 그 나뭇가지를 꺾고 지나간 후 다시 그 사람들을 지나가게 하면 가지를 꺾었던 사람이 지나갈 때는 극도의 흥분상태를 보였다고 하는 것은 식물이라고 무심한 생명체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호박에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주면 그 넝쿨이 멀리 달아나지만 감미로운 고전음악을 들려주면 스피커를 감싸는 현상이라든지 약한 바람에는 순응하지만 막대기나 거친 물건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면 성장이 고르지 못하고 거부하는 몸짓을 보이는 것도 외부자극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비밀이 숨겨있는 식물을 너무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 꽃은 열매를 만들기 위해 곤충을 유인하는 매개체로만 간주하며 열매는 그 식물이 번식을 위하여 필요한 영양분을 저장하는 역할로만 보는 것은 인간들의 속단일 뿐이다. 나무나 풀의 꽃이 열매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한다면 그 화려하고 다양한 꽃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번식을 위한 저장창고라고만 여기는 열매라고 한다면 그 감미로운 맛과 아름다운 외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우리는 그 답을 내 놓아야 한다.
 
결국 식물은 그 생존방법이나 외형이 다양하고 독특하지만 동물보다 더욱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큰 식물은 큰 식물대로 작은 식물은 작은 대로 멋지게 자연에서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것 또한 절묘한 하나님의 배려이다.
 
다만 식물을 동물과 한 틀에서 보려고 하는 진화론적 발상이 식물을 인간과 대화도 하지 못하고 자연에서 제 멋대로 살다 스러져 가는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배용찬|멜본한인교회 은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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