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타였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 부드러운 인상에 선한 눈매, 사람을 빨아들이듯이 사근사근한 목소리와 스마트한 코디는 스타의 필요조건이다. 그는 첫인상부터 소위 '오빠부대'가 공항까지 따라나설만한 외모이다. 게다가 교계 스타군단이 모인 고목회(고려대 출신 목회자 모임) 핵심멤버에다, 1년에 1천 700여 명 정도가 새롭게 등록하여 매 주일 2만 명 이상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는 '스타 목사'의 충분조건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스타가 아니었다. 아니 스타가 되기를 철저히 거부하고 살아왔다. '해가 뜨면 지는 게 스타'라는 철리(哲理)를 온몸으로 체득한 듯했다. 이제껏 그는 오직 목도삼매(牧道三昧)-목회를 즐기고, 몰두하고, 도취함-에 빠져, 목양외길을 실천하며 달려온 철저한 목회자였다. 최근 들어서야 그가 섬기는 교회의 규모와 재정 능력 등으로 한국교계가 필요로 하여 그를 끌어내고 있지만, 그가 참여하는 분야를 보면 철저하게 정제되어 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시계보다는 나침반'이라는 원리에 따라 활동반경을 고도로 절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직의 동력화, 목회의 동역화 29년 전인 1980년, 27평 지하실에서 12명이 모여 개척한 영안장로교회가 오늘의 교세로 성장하기까지 소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경험한 그의 지론은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었다. 그는 대개 목회자들이 출석 교인수나 재적수를 말하며 한 명이라도 교인수를 부풀려 말하는 시대에 그런 허례와 허수를 과감히 털어버리고 말한다. "우리 교인 숫자는 3,116명인데 바로 철저히 훈련된 제직의 숫자입니다. 저의 목회 특징이라면 '제직목회'입니다. 그들을 훈련하?사역의 동역자로 삼습니다. 대개 목사들이 번아웃(탈진)되는 경우는 현장에서 죽기 살기로 뛰기 때문입니다. 잘 뛸 때는 다 박수치지만, 조금이라도 허점이 보이면 비난으로 나타납니다. 64개 국을 다녀보니 대부분의 교회가 제직 직분만 임명해 놓고는 일감을 주지 않고, 그들을 그라운드의 '구경하는' 관중석으로 몰아내고 있어요. 이제는 제직들을 관중석에서 내려오게 하여 '뛰는' 선수로 전환하게 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제직들이 관중석에만 앉아있으면 늘 남의 허점만 보고, 말만 많아집니다. 교회는 험담과 비판만 없어도 기본은 하고, 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상황에 대해 무지할 때 터무니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선수가 되면 말이 없어집니다. 일하는 사람 일감이 없으면 말이 많아지는 것도 잊지 말아야합니다." 제직을 구경꾼에서 선수(일꾼)로 '등극'시켜 동력화하며 목회에 동역화한 양 목사의 목사관은 분명했다. 이 선수(제직)들은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 파레토가 말한 '20% 견인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어느 집단이든 창조적 소수 20%가 나머지 구성원 80%를 견인하는 역사적, 사회적 원리를 목회에 접목한 것이다. 그의 말은 "제직이 바로 서야 교회가 바로 선다!" "20%의 제직을 철저히 훈련 시켜서 교회의 체질을 바꾸라. 교회는 그 순간부터 성장과 성숙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었다. "제직들을 일꾼으로 선수로 배치하여 뛰게 하고, 목사는 발로 뛰는 목회에서 묵상과 독서의 목회로 한 발 물러나 좋은 꼴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목사가 사람 만나는 시간보다 하나님 만나는 시간을 많이 하는 것이 장기목회의 비결입니다. 목사는 더 본질적인 기도와 말씀, 독서와 정보수집을 위한 여행 등 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씨름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강의하면 학생들이 계속 바뀌니 같은 것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목회는 교인이 바뀌지 않으니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특히 문화와 새로운 시대조류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변화는 본질을 바꾸지 않으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옷을 입히는 것입니다. 정보화시대에 농경문화 의식으로는 대처할 수 없지 않습니까? 물론 변화를 추구하다 변질되면 안되겠지만 말입니다." 최근 들어 신학자, 역사학자, 과학자, 사회과학자, 경제학자 등 모든 전문분야에서 명성 높은 학자들은 오늘 우리 시대를 '위기의 시대', '혼돈의 시대', '불합리 시대', '분노의 시대', '후기 산업화 시대', '포악의 시대' 등등의 이름과 개념을 갖다 붙이며, 무질서, 불합리적, 분노, 불연속적이며, 분열 등의 언어로 시대를 규정하고 있다. 하나의 이름으로 쾌도난마처럼 명쾌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우리 시대에 그래도 가장 특징적인 언어를 하나 고르라면 '혼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혼란의 시대에 '문화'라는 이름으로 더욱 혼란을 재촉하는 우리 시대에, 교회도 결코 사각지대가 아닌 그 혼란을 평정하며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원리는 '교육과 훈련'임을 양 목사의 목회관에서 읽을 수 있다. 관중에서 선수로 "하나님께서도 결국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에 사람을 교육하고 훈련하고 세우는 것이 가장 큰 사역입니다. 교육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잘 몰라서 못하는 게 많습니다. 교육을 게을리하니 성숙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가르치는 것, 전파하는 것, 치유하는 것 아닙니까? 오순절의 역사를 통과하고 나서도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지 않습니까? 성령충만한 사람들도 가르침을 통해 성숙하고, 질서있게 일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초대교회 성령충만한 성도들도 사도의 가르침을 반드시 배워야 했다면 현대 교회는 말할 것도 없지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해버립니다. 교인들이 자기 맘대로 일을 해요. 자기 주관적으로 봉사를 해버리고는 그것을 옳다고 주장하니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교육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그는 특이한 경험을 덧붙여 교육목회의 필요성을 들려주었다. "한 번은 가정부가 집안의 주택 잔디를 다 뽑아 놓더군요. 쇠꼬챙이로 잔디를 뽑아서 놓았어요. 강원도 산골에서 자랐으니 잔디를 잡초로 본 것입니다. 이처럼 교육을 게을리하면 자기 주관적으로 일을 하니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교육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민교회나 한국교회가 자꾸 성경을 가르치려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자꾸 머리가 커지려고 합니다. 교육만 시키고 삶의 훈련이 되지 않으면 바리새인처럼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훈련은 아는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반복은 결국 습관을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좋은 습관은 인격을 만들고, 인격은 체질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목회자의 목회철학과 비전을 공유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교육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제직들을 철저하게 교육하고 훈련시킨 후에는 과감하게 권한을 위임하며 그들로 하여금 일하게 한 것이 영안교회의 대표적인 성장요인으로 꼽았다. "하나님의 일을 혼자 할 수 없다면 훈련된 제직을 협력자로 삼고 과감히 일감을 맡겨야 합니다. 제직을 세우는 목적이 일하라고 세우지, 구경꾼으로 앉아서 훈수나 두고 간섭하라고 세우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직들은 각 분야에 무한한 자원이 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제직을 임명해 놓고 관중석에서 구경꾼으로 앉혀 놓았기 때문에 교회 안에 말이 많아진 것입니다. 이젠 제직들을 '관중석의 구경꾼'이 아닌 '운동장의 선수'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선수를 훈련시키고 수비, 공격 이런 자리에 배치를 해서 모든 박수와 관심과 상급은 선수가 받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교회는 생명력 있는 변화와 성숙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목사는 선수가 아니라 코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현장, 삶의 현장이라는 이름의 운동장에서 직접 뛰는 선수는 제직들이지요, 목사에게는 선수들의 기량을 연마시키고 컨디션을 점검하는 사명과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이리하여 훈련된 제직은 자연스럽게 소속감,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손님은 편하게 해주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교육과 훈련을 받고 소속감이 생기면 내 교회라는 교회관, 내 목자라는 목사관이 생깁니다. 섬기는 교회를 위한 사명도 생기고, 섬기고 양육하는 목자를 돕기 위해 헌신도 합니다. 교회가 50명만 넘어도 중간 관리자가 있어야 합니다. 목사가 이사하는 곳까지 다 뛰어가다 보니까 목회의 본질이 약해지는 것이지요. 초대교회에서 본질은 말씀과 기도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안되니 교회가 방법론에 매이게 되고, 정작 중요한 설교 준비가 약해지니 식상해지고 맙니다. 훈련받은 평신도를 중간관리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도 담임목사가 하나의 선수가 되어 다 뛰게 되면 성장은 오지 않습니다. 기업도 영세한 업체는 사장이 수금도 하고 주문도 받지 않습니까? 목회자는 철저히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제직목회'(양치기 리더십)는 고려인 집단거류지인 타쉬켄트에서의 경험이 결정적이었다. "타쉬켄트에서 어느 광활한 목장을 방문했는데, 그때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목동 한 사람이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수천 마리의 양을 일사불란하게 관리하는 것이예요. 목동은 훈련된 양 20마리의 목에 방울을 매달아 선두에 세워놓았더군요. 수천 마리의 양은 20마리 양의 인도를 받으며 평화롭게 이동했고, 목동은 휘파람을 불며 그것을 즐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장속도보다 비전공유 양 목사는 교회가 담임목사의 정체성에 맞게 체질화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교회가 방법론에 매여서 세미나나 해서 배워 응용하는 식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을 터치해서 평신도 훈련이지만 제직들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에게 포지션을 적재적소에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부가 결혼해도 처음에는 사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곧 싫증날 수 있습니다. 갈등의 근본적인 이유는 서로의 체질을 공유하지 못해서입니다. 서로 자라온 환경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10년, 15년 지나면 음식도 서로 좋아하게 되고 눈짓만 해도 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체질 변화가 생긴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한 자는 일꾼이 되면 안됩니다. 그 이유는 담임목사와 목회 방향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를 보면 초신자는 세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약하다는 이야기는 훈련되지 않고 교육되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는 또 20%중의 20%인 부교역자, 가장 핵심 장로 권사들을 철저히 훈련하여 목회 철학과 비전을 반드시 공유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부교역자는 가장 가까운, 최고의 교육과 훈련대상입니다. 부교역자가 '담임목사님과 목회철학이 달라서...'하며 엉뚱한 소리하면 안됩니다. 담임목사의 목회철학과 비전,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살아가며 사역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와 목회철학과 비전 공유하고 코드가 맞아야 소리가 안납니다. 그것도 훈련을 통해서 서로의 비전을 공유하고 목회철학과 방향을 이해해야 합니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의 일꾼들도 철저한 소속감으로 뿌리를 내리게 합니다. 소속감은 동일한 비전 안에서 코드를 맞추는 것입니다. 체질이 변화될 때까지 훈련해야 합니다. 이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반드시 교회지도자들은 목회철학을 이해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을 중학생 이상이면 모든 교인이 다 압니다.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방향이 잡히는데, 많은 목회자들이 성장속도만 내려고 합니다. 속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그 방향이 바로 목회철학입니다. 그 교회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비전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훈련되지 않은 제직은 하루아침에 흩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이민교회 같은 데서는.... 성경에도 바울과 바나바처럼 싸워서 헤어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는 제직들이 목사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라야 함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제직의 의미에 대해 성경(갈 1:10)에 나오는 종의 3가지 특징을 들어 '자기 주권이 없는 자', '주인만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자', '주인이 시키는대로만 하는 자'라고 설명했다. 또 제직들이 심방할 때도 목회자의 권위가 제직을 통해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목회자의 비전에 동참한 제직들이 심방을 할 때, 시험 든 자에게 절대 동조하지 말 것과 항상 하나님, 교회, 목사의 입장에 설 것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덧붙여 양 목사는 목회를 즐기라고 했다. 그가 친히 목회를 즐기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취미도 즐거워서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역이 즐거워야 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사역이 사명이 아니라 노동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목회의 권한을 위임하지 않고, 혼자서 다하려고 하면 그렇게 됩니다. 예수님도 다 불러서 임명하셨지 않습니까? 교회는 신령한 매니저먼트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즐겁고 신나는 공동체가 됩니다." 한얼산에서 방황하는 환상을 보고 이쯤해서 우리는 양 목사의 신앙여정을 추적하며 소명과정을 살펴볼 필요를 느낀다. "모태신앙은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가 아닌가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른들 부흥회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뭔지 모르지만 밤새도록 마룻바닥에서 무릎이 까지도록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교회에 분쟁이 생겼다. 목회자가 쫓겨나는 것을 목도한 그에게 신앙생활과 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생겼다. 그런 와중에 그의 모친은 신비한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머니께서 '널 놓고 기도하면 그물이 처져 있고, 고기가 어물어물한데 네가 가운데 서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사람 낚는 어부' 즉 목회소명에 대한 꿈 같았습니다. 제가 경기도 안성에서 자랐는데, 그 시골에서 목사님의 생활이 얼마나 초라했습니까? 그래서 그 말 때문에 목사될까봐 교회를 안갔습니다." 교회를 떠난 그는 신학교 대신에 고려대학으로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술, 담배를 비롯하여 사회생활에 필요한 잡기(雜技)도 적당히 익혀가며 사업체도 꾸렸다. 쭉쭉빵빵 사업체가 잘나가면서 '뜨기' 시작했다. "76년도에 460명 공원을 데리고 사업을 했습니다. 테니스 라켓 가방도 만들고, 실크 브라우스 제품도 생산했는데, 마침 장인어른이 은행장을 하여 그 당시 전국 은행원의 유니폼을 만들어 납품했습니다. 수출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엔 '갈등의 활화산'이 분출하고 있었다. 특히 어렸을 때 들었던 '어머니의 꿈 이야기'는 지워지지 부담이었다. 그래서 감신대학원을 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교회 봉사를 하기도 했다. "장로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목회자의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내면의 갈등이 펄펄 끓어올랐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데, 79년 소위 10․26 사태 때 일본 바이어들이 산더미 같은 물건을 놔두고 떠났습니다." 이 고통은 그에게 하나님의 기회였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이 뜻을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관문이었다.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속삭이듯 들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쓰나미처럼 그의 삶을 뿌리째 흔드시며 '인생재건축'에 들어간 듯했다. "다니엘이 다가오는 말세의 비밀을 깨닫기 위해 금식하는 것(단 10장)을 보고 한얼산에 들어가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16일째 되는 날 하나님이 환상과 비전을 보여주시는 신비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환상 중에 문이 열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 앞에 걸어가는데 놀랍게도 모든 사람의 눈이 이상했습니다. 사람들의 눈마다 검은자위 없이 흰자위만 있는 거예요. 깜짝 놀랐습니다. 남녀 어린아이들이 아주 무질서하게 걸어왔습니다. 눈을 떴으나 검은자위가 없으니 보지 못하는 눈을 가졌으니 앞을 못보고 서로 부딪히며 어지럽게 걷는 거예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 눈을 보라'는 감동이 막 밀려왔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막 부딪히며 갈 길을 못가고 있는 데, '저 눈을 뜨게 해주어야 한다'는 슬픔이 새벽부터 오후 2시까지 밀려왔습니다. 기도하다 의식을 잃을 정도였어요, 한참 그렇게 떼굴떼굴 구르며 기도하고 있는데, 기도원 감독하는 장로가 들여다보고는 '또 하나 맛이 갔군!'하면서 나가더군요." 이리하여 그는 환상 중에 소명을 재발견했다. '신령안 눈'이란 뜻의 영안(靈眼)교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산위에서 감격은 산 아래 지하실 27평에 둥지를 틀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본 그는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다. 앞서 밝힌대로 목사가 현장에서 뛰기보다는 감독과 코치로서 팀워크를 강화하고, 소속감을 강하게 훈련시켜서 이들을 사역자로 봉사자로 현장에서 뛰게 하려는 그의 목회방침은 적중했다. 초신자는 일대일로 찾아가서 훈련했다. 그랬더니 5개월만에 100명을 돌파했다. 3년만에 땅을 사고, 4년만에 교회를 건축했다. 성장속도는 가파르기만 했다. 교회가 적어서 증축하고, 이동하여 건축하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훈련 없는 선수 없다 교회 개척 초기부터 그는 설교에 승부를 걸었다.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기도로 숙성시켰다. 본문이 정해지면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했다. 여러 예화와 삶의 현장에서 낚아올린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매시간 생동감있는 메시지를 길어 올렸다. 양들의 형편을 살펴가며 정성껏 길어올린 말씀은 영양가 높은 영혼의 양식이 되었다. 이런 과정을 수천 번 되풀이 하는 가운데 목자는 양들의 어려움을 알고, 양들은 제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었다. 서로 간에 깊은 신뢰가 쌓여졌다. 지난 29년 목회기간 중에 음성을 높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감히 단언했다. 초창기 그는 계시록 강해 설교 뼈대를 인쇄하여 뿌렸다. "많은 개척교회 목사들이 실수하는 것이 주일낮 설교에 기초신앙이나 초보적인 설교를 합니다. 사실은 어떻습니까? 아주 가까이 사는 사람 아니면 기존 교인들, 그중에서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신자들이 찾아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젖비린내 나는 듯한 설교를 듣고 만족할 수 있을까요? 개척교회에는 초신자가 안옵니다. 초신자는 큰 교회를 갑니다." 그리고 교회 설립 이후 지금까지 균형목회를 지향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했다. 그가 평소 강조하는 균형목회는 4개의 기둥으로 유지된다. 그 기둥의 이름은 '영성-치유-교육-비전목회'이다. 첫째, 영성목회이다. 영성은 하나님과의 교제 회복이다. 이를 위해 본질적인 영성 있는 예배회복에 중점을 둔다. 즉 양 목사는 예배가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하나는 뜨거운 기도목회이다. 항상 '하라'가 아니라 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끊임없이 교회가 영성으로 이어져 가고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둘째, 치유목회이다. 영육간의 치유뿐만 아니라 가정의 치유, 사회적인 치유, 국가적 치유까지를 말한다. 즉 가정을 세우는 일, 교통질서를 지키는 일, 준법정신, 윤리성, 사회봉사, 이런 것들이 전인적인 치유목회이다. 셋째, 교육목회이다. 교육은 기초를 튼튼히 하는 일이다. 평신도 신학원 과정을 통해서 철저히 1년간의 필수 교육과정을 세례교인 이상을 의무교육화 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새가족 정착률은 87%를 기록하고 있다. 넷째, 비전목회이다. '영안교회는 희망입니다'라는 구호처럼, 영안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꿈꾸는 교회,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교회로 인해 꿈꾸게 되는 사역을 그린다. 국내외 선교비전을 진행하는 현재 국내 100곳 해외 100곳을 감당하고 있다. 또한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교회를 지향하면서 아울러 인물을 키우는 교회를 준비하고 있다. 즉 미래지향적 목회이다. 그는 교인들에게 끊임없이 이 네 가지의 균형잡힌 신앙을 강조하고 그것을 삶의 현장에 나타나도록 독려한다. 대형교회가 되고, 한국 교회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지금도 그는 특히 '교육과 훈련'이란 긴장의 끈을 결코 놓지 않는다. 영안교회는 누구든지 처음 교회 오면 5주 동안 철저히 훈련하여 세례를 받게 한다. 새가족부 사역팀이 집이나 직장으로 찾아가 일대일로 교육한다. 신앙의 기초를 완전히 형성하는 시기이다. 그 다음 정착반 10주과정이다. 신앙의 가장 골격이 되는 주제로, 일방적 강의보다는 신자들이 생각하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정리해 준다. 이 10주 세례받은 사람은 물론 심지어 부목사까지도 다 받아야 하는 영안교회 모든 구성원들은 반드시 받아야 하는 의무과정이다. 신앙적으로 확실하게 정립하고, 신앙의 뿌리를 튼튼히 내린다. 그 다음 다시 10주 과정으로 바나바 봉사사역이 있다. 16주 과정의 확신과 성숙의 소그룹반, 그 이후 제자훈련 16주 과정이 있다. 이 과정을 다 마치면 드림 수련회, 헌신의 결단 시간을 1박 2일 동안 갖는다. 그리고 한국 교회 신앙 유적와 순교지, 용인순교자 박물관, 양화진 선교사 묘역 등지를 1박 2일 코스로 순례한다. 손양원 목사의 순교지인 애양원 등 한려수도 일대를 돌며 헌신을 결단하고, 주인으로 사역을 맡긴다. 이렇게 하여 한 사람의 철저하게 훈련된 사역자가 배출되고, 교회의 최강의 체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물샐 틈 없는 교육과 훈련과정을 보면, 불꽃 없는 불이 없고, 훈련 없는 선수가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섬김이 경쟁이 되는 교회 "이런 철저한 훈련과정이 없으면 장로가 자기 위치를 모릅니다. 마치 교회를 대표한다는 인식을 갖습니다. 또 '목사님께 한마디 하라'는 식으로 교인들이 부추깁니다. 대개 교회의 갈등은 이렇게 생깁니다. 이미 이런 일을 문제 이전에 초반에 예방주사를 맞혀 면역을 기르고, 미리 그런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하여 훈련시켜야 합니다. 장로나 제직은 예수의 권위를 위임받은 목회자에게 '협력'해야지 '월권'을 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는 강단권, 인사권, 재정 선결재권 등 교회의 3권을 위탁받은 자(행 20:28)이기에 장로와 제직들은 마음과 기도와 몸으로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당회를 밥 먹으면서 편하게 합니다. 그게 변화된 교회 체질입니다. 우리 교회는 가족적이면서도 무례하지 않고, 뜨거우면서도 광신적이지 않습니다. 자유로우면서 질서가 있고 냉철하면서 은혜가 넘치는 교회입니다. 십자가의 피, 부활의 생명력, 기도와 말씀이 조화된 신앙을 바탕으로 성도들이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합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섬김'과 '봉사'에 앞장서는 교회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어느 장로님은 남모르게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합니다. 또 어떤 장로님은 기쁜 마음으로 담임목사와 교인들의 신발 정리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직분이 높을수록 봉사와 섬김의 강도도 강합니다. 주일이면 장로님들이 교회 입구에 줄지어 서서 교인들을 머리 숙여 맞이합니다.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에서 섬김을 받으려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저는 참 좋은 양들을 만나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양 목사는 교인들이 서로 섬김의 경쟁을 펼치는 교회를 일궈놓았다. 영안교회에서는 가장 크게 섬기는 사람이 가장 높은 자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경쟁력은 100%로 노출된 그의 인격과 영성에서 비롯된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세우는 세대, 사용하는 세대 교회 설립 30주년을 코앞에 둔 영안교회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새로운 예배 장소와 교육관을 구하며 기도하고, 기대하며, 헌신하고 있다. "새롭게 지을 성전은 '우리는 세워주고 다음 세대는 사용하라'는 모토 아래, 예배공간 뿐 아니라 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해 설계부터 특별하게 계획되었습니다. 물론 현재 우리 교회가 건물 전체를 사용하여 4부 예배를 드리고 있음에도 계속되는 부흥으로 성도들이 예배드릴 장소가 없어 인근에 있는 고등학교와 복지관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곳마저도 가득 차 포화상태에 이르러 새 성전을 건축합니다. 새 성전이 비전을 담는 그릇이라면, 그 안을 채울 내용은 본질을 담는 감동의 예배와 뜨거운 복음을 통한 구령의 열정이 첫 번째입니다. 또 새 성전과 교육관의 모든 장소를 개방하여 지역의 문화공간과 주민들의 쉼터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또 최첨단 시설의 예식장을 구비하여 모든 사람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30주년을 향한 행진을 하면서 양 목사는, '과거 15년은(80년~95년) 도약기로서 계속적 성장을 하면서 두 번의 교회성전 건축을 확장하는 시기였고, 현재 15년은(96년~2010년) 견고하게 서가면서 부흥과 성숙을 경험하는 시기이며, 미래 15년은(2010년~2025년) 지역을 뛰어넘어 한국과 세계를 향한 복음 전파를 계획'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비전 2025'라고 부르며 4가지 비전 실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제직 1만 명을 훈련하여 봉사자와 헌신자로 세우는 일 △2천 명의 훈련된 사역자를 세우는 일 △국내 1천 교회 해외 1천 곳을 선교하는 일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교회이다. 이런 비전 선포에 모든 성도들이 함께 공유하며 헌신을 다하고 있다. 이것은 3천 명 이상 훈련된 제직을 통한 결실이어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색깔있는 차세대 리더 영안교회는 통일 한국을 꿈꾸는 교회다. 양 목사는 고려대에서 북한학을 전공한 북한선교 전문가로서 남다른 활동들을 펼치고 있다. 그가 교단의 장벽을 뛰어넘어 '색깔있는 한국 교회 차세대 리더'로서 위치를 확고하게 굳히게 된 것도 대북 지원사역과 이에 대하여 어느 누구보다 풍부한 노하우에서 비롯된다. 특히 사단법인 동북아한민족협의회 대표, 남북함께살기운동본부 이사장을 맡아서 매 년 서너 차례 북한을 방문한다. 북한에 빵공장을 지어주고 의약품을 지원한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다. 그의 대북관은 '햇볕론'에 기인한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강풍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임을 믿는다. 그래서 북한 지원 사역에 앞장서고 있다. "북한은 적대국인 동시에 우리의 민족과 동족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나 이슬람권도 선교를 하며 돕는데, 어떻게 같은 민족인 북한에 대한 선교를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통일 문제는 진보냐 보수냐의 정치적 접근을 지양해야 합니다. 저는 가끔 북한 봉수교회에 가서 설교할 때가 있는데, 오직 '복음'에 대한 것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한 민족, 한 핏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는다고 합니다. 처음 갔을 때만 해도 보위부 직원들이 저를 경계했지만, 한 번 그렇게 설교한 뒤로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그냥 지켜만 봅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정치적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정죄하는 설교를 한다고 해서 그들이 변화되는 것도 아니구요. 봉수교회가 진짜냐 가짜냐 하는 문제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문제입니다. 물론 북한 정권이 정책적으로 세운 교회지만 그 안에서 예배 드리는 사람들은 다 예전에 권사이고 집사이던 사람들입니다. 제가 예전에 '북한의 종교 정책이 북한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적이 있어요. 북한은 처음엔 종교를 말살하려 했지만 70년대 암흑기를 지나, 80년대 회복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해외 원조를 받으려고 부랴부랴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릴 사람이 없으니 예전에 믿던 사람들 중에서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들을 모아다가 앉혀 놓고, 성경도 번역해서 출판했어요. 게다가 92년에는 헌법도 개정해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한 부분도 제외했습니다. 이런 변화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에요. 이제 북한이 조금씩 종교 수용기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들어올 수 없도록 장막을 쳐 놓았지만, 복음은 북한 사회에 스며들듯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영안교회에는 탈북자 출신 목회자가 있는가 하면, 170명의 탈북민들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실제 등록 수는 500명이 되는데 식당 등에 근무하다 보니 주일성수가 여의치 않다고 한다. 성도들은 그들을 가정에 초대해 식사와 사랑을 나눈다. 직장도 알선해주고 밑반찬도 챙겨준다. 사랑의 교제를 통해 그들의 정착을 돕는다. 양 목사는 신자들에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북한을 돕자고 강조한다. 한국 교회가 북한에 대해 한 번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주길 원한다. "통일은 환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내심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매월 1일은 금식기도를 드립니다. 어린이도 예외가 아닙니다. 금식 헌금으로 북한 동포를 돕고, 지역사회를 섬기지요. 전 교인이 365일 릴레이 금식기도를 드리고 있어요. 교회의 힘은 역시 기도에서 나옵니다. 한국 교회가 탈복동포 한 사람씩만 맡으면 충분히 책임질 수 있습니다. 이제 통일시대 준비해야 합니다. 탈북동포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제의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북한과 문화가 다르니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먼저 경혐했으니 이들이 북한을 충분히 품을 수 있습니다. 30만~50만 명만 탈출하면 남북의 경계선이 무너집니다. 지금까지 약 20만 명이 탈출한 것으로 봅니다. 한국에 약 2만 명이 들어왔습니다. 나머지는 태국, 몽골, 중국, 베트남을 통해서 지금도 계속 엄청난 숫자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너무 많으니 발표를 못합니다." 양 목사는 북한 선교에 제일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 아주 열정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마치 올림픽에서 100미터 선수가 영점 몇 초를 줄이기 위해서 4년이라는 시간을 피눈물 나게 준비하듯이 우리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을 누가 제일 열심히 하고 있느냐. 유감스럽게도 통일교입니다. 통일교는 평화자동차를 비롯해서 북한의 여러 영역을 장악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가만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북한이 어느 날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는데 한국 교회는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교회에 신학생이 많이 쏟아져나오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통일한국 시대에 하나님께서 크게 쓰실 역군들입니다. 그들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북한 선교뿐만 아니라 영안교회는 중국선교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으며, 대사회 봉사와 농어촌 목회자를 위한 사역 등 소외층을 위한 사역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양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신망애복지재단이 수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신내노인종합복지관은 서울시에서 가장 최신시설을 갖춘 복지관으로서 월 2천만원과 인력자원을 후원하며 5,200명의 회원 노인들을 섬기고 있으며, 앞으로 노인교회까지도 준비하고 있다. 교회가 운영하는 노인대학에는 1천여 명이 등록돼 있다. 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정기적으로 효도비를 지급한다. 예산의 30%를 지역사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영안교회 지출원칙이다. "교회들이 지역공동체와 함께하지 않으면, 공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5천 200명이 사용하는 복지관을 운영하면서 교회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역민들로부터 '저 교회가 있으므로 우리에게 희망이 되고, 기쁨이 되게하자'는 꿈이 있습니다. 교회 주변에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지원하는 것, 주변 청소를 한 번 해주는 것도 사실 작은 일 같지만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연합활동에서의 리더십 사실 양 목사는 그의 활동과 교회 규모, 그의 역량에 비해 알려진 것이 다른 '스타 목사'들보다 훨씬 덜하다. 빙산의 일각처럼 어떤 직책을 맡았거나 사업을 완수하고 나면,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알려졌을 뿐, '종합적으로' 그의 삶과 사역이 소개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양 목사는 연합사업과 기관에 참여한 경험이 누구보다 풍부하다. 한기총 공동회장을 비롯 서울시 교시협 회장, 서울경찰청 경목회장, 대한성서공회 이사 등 교계 여러 분야에 참여하며 연합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왔다. 아주 최근에는, 2012년 한국 장로교단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장로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 앞장서온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 상임회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하나같이 탁월한 역량과 리더십이 요구되는 직책이다. "할 일은 찾으면 얼마든지 있고, 그 일에는 헌신과 지도력이 요구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양 목사는 한장연 취임 일성이 바로 '장로교단의 연합과 일치'였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하나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형제인 장로교단들이 차이를 넘어 하나 됨으로, 영적인 일치를 넘어 기구적 일치로 나아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08년 제주에서의 4개 장로교단 연합예배, 그리고 지난 7월 장로교 26개 교단들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열렸던 장로교의 날에서 형제됨을 확인하며 함께 나눈 성찬의 기쁨과 감격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사분오열 갈라진 장로교단들의 한 형제가 한자리에 모여 성찬을 나누며 찬송하는 날을 기대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우리에게 하나 되게 명령하신 것을 확인하는 것이며, 우리 또한 하나 되게 하심을 충실히 따라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한국 교계 에큐메니컬 운동가답게 양 목사는 신학도 감신, 총신, 연신 연세대신학대학원을 두루 섭렵하기도 했다. 그는 첫인상부터 '피스메이커'였다. 첫인상은 그의 이력이 분열과 아픔이 있는 곳에 항상 화합과 사랑으로 꿰매며 치유와 회복의 자리에 서있었음을 증언하는 듯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거울삼아서 혼돈과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에 분명한 영안(靈眼)을 밝히는 영안교회와 사명과 그의 사역은 아무리 퍼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같았다. 글ㅣ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선교교회 담임목사 사진ㅣ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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