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2009 젊은 음악인 대상' 수상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원

계속 사랑받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12/02 [16:53]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원(24) 씨가 '2009 ABC Young Performers Awards'(젊은 음악인 대상) 최종 결선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현악기 부문 1위였던 김지원 씨는 지난 10월 22일 호주 아들레이드에서 열린 YPA 대상 최종 결선 무대에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해 피아노와 기타 악기 부문의 우승자를 제치고 최종 우승자가 됐다.

이 날 지원 씨의 두 손에는 1935년부터 75년까지 무려 31년 동안 호주 공영 ABC를 이끌었던 ABC의 아버지 찰스 모제스 경을 상징하는 트로피가 안겨졌고 지원 씨는 우승 소감에서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 호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호주 공영 ABC방송이 개최한 "젊은 음악인상"에서 대상을 차지한 김지원 씨가 우승 트로피를 안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ABC 젊은 음악인 대상

김지원 씨는 2008년에도 이 경연대회에 출전했다. 최종 결선까지 진출했지만 아깝게 대상을 놓쳤고, 와신상담 끝에 올해 다시 도전에 나서 마침내 대상을 차지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아들레이드 페스티벌 시어터에서 열린 올해의 결선은 제임스 쥬드가 지휘한 아들레이드 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가려졌다. 대상을 차지한 김지원 씨는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Op 47번(Sibelius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을 연주했다.

지원 씨가 결선에서 겨룬 상대는, 호주 음악계에서 이미 피아노 신동으로 널리 알려진 소년 피아니스트 보안 루(15)군과 오보에의 데이비드 팹(24).

보안 루 군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이미 시드니 심포니에서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데이비드 팹은 마티누 오보에 협주곡을 각각 연주했다. 이번 대상 수상으로 김지원 씨는 2만 달러의 상금과, 이스라엘 단기 유학 장학금 1만 5천 달러 등의 부상과 더불어 호주내의 주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기회가 제공된다.

실제로 그녀는 지난 11월 8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독주회를 가졌고 ABC-Classic FM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최종 결선 연주 실황이 11월 22일 ABC-TV Sunday Arts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에 방영됐다. 이로써 그녀는 호주 클래식 악계에 한국 음악인의 높은 수준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고 개인적으로는 호주의 '전국구 연주자'로서의 확실한 기반을 다지게 된 것이다.
 
▲ 아들레이드에서 열린 YPA대상 최종 결선 무대에서 연주하는 김지원 씨. ⓒ김지원    

88년 김양희, 96년 수지 박, 2000년 그레이스 김,
2005년 강수연...  그리고 2009년 김지원


호주 공영 ABC와 호주심포니오케스트라 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ABC Symphony Australia Young Performers Awards'는 호주 국내의 젊은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한 최고 권위의 연주 경연대회이다.

1944년 '콘체르토와 보컬 경연대회'로 시작된 'ABC Symphony Australia Young Performers Awards'는 말 그대로 호주 신예 음악가들의 등용문으로 세계적 클라식 음악가들을 다수 탄생시켰다. 아울러 이 대회 우승자들은 명실 공히 호주 클래식 음악계를 이끈 대표주자들로 우뚝 서게 된 것이 전통이 됐을 정도다.

1952년 맥 올딩(피아노), 1962년 차미언 개드(바이올린), 1964년 로저 우드워드(피아노), 1968년 내이선 왜크스(첼로) 등의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이후 1978년 부터는 현악, 성악, 키보드 그리고 기타 악기 등 4개 부문의 최종 결선자를 가려낸 후 최종 우승자를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1981년에는 이안 먼로, 1989년 던칸 기포드 등의 피아니스트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고 1985년에는 다이아나 도허키가 오베로, 그리고 1993년에는 라이 웨이가 첼로로 각 부문의 첫 대상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그 밖에도 플롯의 버논 힐, 소프라노의 글레니즈 포올즈, 오페라(베이스-바리톤)의 닐 위런 스미스, 첼로의 내이선 와크스, 바이올린의 아들레이 앤토니 등 호주 클리식 음악계의 대표 주자들인 이들 모두가 이 대회 수상자 출신이다.

한국계로는 2005년 대회에 출전한 바이올리니스트 강수연 씨. 강 씨는 현재 전액 장학금을 받고 독일에 유학 중이다. 한인동포 최고의 연주자로 자타가 인정해온 수지 박 씨도 지난 1996년 대회 출신이다. 수지 박은 현재 미국의 에로이카 트리오에 합류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밖에도 1988년 피아노 부분의 김양희 씨, 그리고 당시 한인동포사회의 피아노 신동으로 자타가 공인했던 피아니스트 김소영(Grace Kim) 씨도 2000년 대회 출신이다. 소영 씨는 현재 네델란드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 중이다.

매 년 열리는 이 대회는 4단계로 나뉜다. 먼저 피아노 반주를 동반한 두 차례의 리사이틀, 그리고 호주 주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두 차례 협연 등의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 3차례의 연주를 통해 현악과 피아노(키보드) 그리고 기타 부문에 걸쳐 4명의 최종 결선 진출자가 가려지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한 마지막 최종결선에서 우승자가 가려진다.
 
 
▲ 지원 씨(가운데)는 어머니 진성희 씨 와 함께 멜번 유학생활 중 신앙생활을 지도한 지태영 목사를 찾아 대상의 기쁨을 나누었다. ⓒ Christian Review    

어머니 기도 후원 아래 성장

김지원 씨는 취미로 바이올린을 가까이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예원을 거쳐 서울예고 재학 중 멜본으로 유학해 빅토리아 예술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마쳤고 학부과정은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국립음대에서 페이블 베르니코브 교수와 아카디 비노쿠로브 교수로부터 사사했다.

유럽에서의 활동을 거쳐 다시 멜번으로 돌아온 지원 씨는 멜번대학에서 넬리 쉬콜니코바 교수의 지도 하에 최우수 성적으로 석사학위를 마치고 현재 시드니 컨소바토리움에서 앨리스 와튼 교수의 지도 하에 박사학위를 밟고 있다.

대학 시절과 졸업 후 오스트리아, 체코,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 등지에서 다수의 저명한 교향악단과 협연을 통해 세계무대에 얼굴을 내밀고, 호주에서도 멜번 유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바 있는 지원 씨는 이번 대상 수상에 앞서 지난 2005년 제12회 국제 브라암스 경연대회에서 1등을 수상하는 등 이미 다수의 수상 경력을 지니고 있는 나름대로 연주자로서의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 연습을 마친 후 거실 벽에 걸린 자신의 대형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한 지원 씨. ⓒChristian Review    

그렇다면 그런 김지원 씨는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인가.

한 송이 국화를 피우는 데도 소쩍새나 천둥이 그렇게 울어야 한다는데 하물며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를 세우는 데는 어떠했으랴. 우리는 그녀의 가계를 들춰 보자마자 무릎을 탁 칠 것이다. 어쩐지 다르더라니.

그녀는 독실한 크리스찬 가정에서 자란 것이다.
지원 씨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 위해 매일 하나님께 기도하며 4-5시간의 피눈물 나는 연습을 견디며 노력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으로 주저하지 않고 어머니를 꼽는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기도와 격려가 오늘날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의 대열에 설 수 있게 한 가장 큰 힘이었다는 것이다. 어머니 진성희(54) 씨는 밤낮없이 무릎을 꿇고 기도와 찬송으로 사신 분이다. 그 기도 속에 자녀를 위한 기도가 어찌 없었겠는가.
이번 대회가 열린 아들레이드 페스티벌 시어터에서도 어머니 진성희 씨는 연주 내내 가슴을 졸이며 기도를 드렸다. 얼마 후 ABC라디오의 간판 진행자 크리스토퍼 로우런스에 의해 김지원의 이름이 호명되자 어머니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승했다"며 초조한 모습을 털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전성희 씨는 "지원이가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유치원에 다닐 시기에 오로지 바이올린 연습을 위해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면서 지난날들을 회상하며 애써 눈물을 감췄다.

"가만두면 어디 연습을 하나요? 어릴 때부터 싸우면서 연습을 시켰지요. 어느 때는 보니까 손가락이 닳아 피가 나더라고요. 그래도 시간을 일일이 적어 가면서 연습을 시켰어요. 레슨 받으러 갈 때도 꼭 같이 가서 열심히 듣고 써가지고 와서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꼭꼭 했어요. 선생님이 이 음을 부드럽게 하라 어떻게 하라 하면 그대로 했으니까요."

당시 어머니가 얼마나 엄격하셨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하는 지원 씨. 하루라도 레슨을 빼먹는 날에는 불벼락이 떨어졌다. 타고난 재능에 그렇게 철저한 연습이 덧붙여졌으니 그녀는 어딜 가나 '바이올린 하면 김지원'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다시 해외 유학길에 오른다. 모든 것이 어머니의 강권에 따라 움직인 결과였다.

"좋은 선생님을 찾아서 러시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일본, 미국 등 여기저기로 보냈지요. 한 선생님에게 계속 10년을 배우는 것보다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좋은 음악가를 만들려면 이렇게 가족들의 희생이 있어야 될 것 같고요, 이런 것들이 지원이가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된 것 같아요."
 
 
▲ 집에서도 틈틈히 연습에 열중하는 지원 씨.ⓒChristian Review  

음악인으로 북한선교도 하고 싶어

음악을 사랑하는 집안에서 성장해 자연스럽게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하고 꾸준히 실력을 인정받아 온 그녀에게도 진로를 두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유학 시절 외로움과 함께 주변 친구들의 뛰어난 실력에 좌절하며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국에 있다가 유럽으로 처음 갔는데 친구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았어요. 그들과 비교하면서 여기서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너무 내 자신이 초라하게 보였어요. 비엔나에 5년간 있었는데 이 시기가 위기였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비엔나 한인교회가 기숙사에서 10분 거리에 있었어요. 그 날부터 새벽예배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비엔나를 떠날 때까지 한 번도 안 빠지고 새벽예배에 참석했어요. 눈이 쌓이고 영하 15도 날씨인데도 나가 기도하며 성경 통독을 했지요. 방황할 수 있는 시기였는데 하나님은 새벽예배를 통해 나를 훈련 시키셨어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기다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최선을 다하면서 조급해 하지 않는 법도 배웠고요. 하나님께서는 제가 원했던 것들을 바로바로 주시지 않고 기다리면서 깨우치게 하셨어요.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나가면서 어느새 훌쩍 자라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지요."

지원 씨는 연주 이외에도 수영과 바닷가 산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산책하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그리고 가장 존경하는 음악인은 정경화 선생님입니다. 그 분의 연주를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노력과 감흥으로 빚어진 훌륭한 연주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한국은 무조건 완벽한 연주를 추구합니다. 호주는 음악 자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음악가가 많고 경쟁보다는 음악인으로서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는 분위기라서 정말 호주가 좋습니다."

유럽, 미국 등 국제무대에 서고 싶지만 호주를 떠나기 싫다는 김지원 씨는 "시드니는 학교의 지원도 좋고 음악을 즐기기 위한 분위기가 너무 잘 돼 있다"면서 "바람이라면 계속 사랑받는 연주자가 되고 싶고 고아원 후원 음악회 등과 함께 음악인으로 북한선교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시드니한인연합교회 창립 35주년 기념예배에서 연주하는 김지원 씨.ⓒChristian Review    

어느새 진정한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김지원 씨.

자신의 음악적 소신을 밝히는데 있어서도 한층 무르익은 내면의 깊이가 느껴지는 그녀에게서 해를 거듭할수록 그녀만의 향기가 물씬 배어 나오는, 더욱 성숙한 연주를 듣게 되길 기대해 본다.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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