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 and Now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12/23 [11:35]
2014년, 갑오년이다. 출발이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다. 시간은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모두가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내용뿐 아니라 의미도 다르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잘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험상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신앙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래서 ‘모태신앙’에서 ‘못해 신앙’이라는 말이 나왔다.

마태복음 25장은 달란트의 비유와 유사한 누가복음 19장에 므나의 비유가 나온다. 달란트의 비유는 주인이 각 사람의 재능에 따라 다른 달란트를 주지만, 므나의 비유에서는 10명의 종에게 동일하게 한 므나씩을 준다. 시간은 므나와 같다. 하루는 24시간이고 1년은 365일이다.

이 같은 시간을 ‘크로노스’라고 한다. 크로노스는 양적인 시간이고, 객관적인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이고, 주관적인 시간이다.  인생은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에 의하여 평가된다.

신앙생활은 시간의 바통을 쥐고 경주하는 것과 같다.  “경주하는 자는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그리고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보자”(히12:1-2),  빌립보서 3장에는 경주자의 자세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12절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간다'

인간을 ‘Human Being’이라고 한다. 인생은 진행형으로 ‘된 존재가 아닌 되어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인생은 미완성’이란 노래가 있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만 편지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 편지’를 계속해서 아름답고 곱게 써가야 할 것이다.

내 이야기가 아닌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의 이야기기 말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4)라고 하지 않았던가! 
 
13절 ‘뒤에 일을 잊어버리고 앞에 것을 잡으려고'

후회(remorse)와 회개(repentance)는 다르다. 후회는 ‘과거지향적인 단어’이고 회개는 ‘미래지향적인 단어’이다. 미래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다. 최상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이다.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현재가 불만스럽다는 뜻이다. 

호주에서 한국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은 호주 생활이 별 볼일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영원한 오늘에 산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미래는 다가올 오늘이다.  오늘 실패하면 어제도 내일도 실패한 것이고,  오늘 성공하면 과거도 미래도 성공한 것이다.
 
14절 ‘푯대를 향하여 간다’

푯대는 흔들리면 안된다. 밭고랑을 일구는 아들과 아버지가 있었다. 아들은 황소의 흔들리는 뿔을 목표로 삼아 고랑이 갈지자가 되었고, 아버지는 고정된 미루나무를 목표로 삼아 일직선이 되었다. 야망은 흔들리지만 비전은 그렇지 않다.

야망(ambition)은 나에게서 출발하고, 비전(vision)은 하나님에게서 온다. 비전(vision)이 방향(direction)이라면, 열정(passion)은 힘(power)이다. 열정 없는 비전은 구호이고, 비전 없는 열정은 방종이다. 마태복음 5장 5절에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 했다. 온유(meekness)란 ‘비전 있는 열정’을 의미한다.

가자, 오늘을 살자.  내일이면 늦는다. 종말론적 삶이란 무엇인가? 그날의 삶을 오늘에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새털같이 많은 날 중의 또 한 날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영광이 있고,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은혜가 있다. 

신앙이란 ‘There and Then’이 아닌 ‘Here and Now’의 이야기다.〠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 한인사역(Korean Ministry) 및 수용소 담당관(Chaplain, Detention Cen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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