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활화산 ‘마틴 루터’(끝)

원광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12/23 [12:29]
저술활동과 설교
 
1525년 6월, 42세의 루터는 카타리네 폰 보라(Katharine von Bora)를 아내로 맞았다. 그녀 역시 남편처럼 수녀의 종신 서원을 파기한 사람이었다. 그는 카라리네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통해서 여섯 자녀를 낳았고, 이 가운데 다섯을 잘 가르치고 양육하였다. 매 주일 오후에 자녀들과 다른 손님들을 집에 모아 가정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바트부르크 성에서 비텐베르크로 돌아온 루터는 프레데릭 선제후(Frederick the Elector)의 보호와 후원을 받아 1546년 마지막 소천 때까지 계속해서 그곳에서 가르치고 종교개혁을 위하여 저술 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교회를 담임하지 않았으나, 수없이 설교하였다. 마을의 사람들이 그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주일에 두 차례, 주중에 한 차례씩 설교하는 적이 많았다.

어느 전기 작가에 따르면, 그는 1510년부터 1546년까지 약 3,000회의 설교를 했으며, 일 주일에 여러 번 설교한 적이 많고, 하루에 두세 번 설교할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비텐베르크에서 1522년에는 117회, 그 이듬해에는 137회의 설교를 했다.

그에게는 주말에 쉬는 것도, 주중에 하루씩 휴일을 갖는 일도 없었다. 단 한 번도 휴일을 가진 적이 없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설교하고 가르치고 사사로이 연구하고 저술하고 상담하는 일에 완전히 자신을 바쳤던 것이다.

또한 그는 독일어 번역 성경 외에도 평생토록 엄청난 양의 저작을 남겼다. 그는 표준 바이마르 판을 기준으로 권당 750면 가량으로 된 무려 94권의 전집을 남겼다. 존 칼빈의 거의 두 배나 되는 엄청난 양이다. 이러한 왕성한 설교와 저작 활동을 통해서, 종교개혁의 초석을 마련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룬 것이다. 루터는 또한 평생 부지런한 성경 연구를 쉬지 않았다. 1533년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여러 해 동안 나는 일 년에 성경을 두 차례씩 읽어오고 있다. 성경이 크고 울창한 나무요 그 모든 말씀들이 작은 가지들이라면, 나는 그 모든 가지들을 두드려서 거기에 무엇이 있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열심히 알아보았다.

루터에게 있어서 성경 연구는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특히 목회자에게 성경은 그가 열심히 땀 흘려 수고해야 할 포도원과도 같다고 하였다.

또한 난해한 성경 본문에 대해서도 그것을 깨닫기 위해 최선을 다해 씨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학생들에게 난해한 본문이 닥치면 모세가 광야의 반석을 내리쳐서 목마른 백성을 위하여 물이 나오게 한 것을 기억하고 그처럼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성경은 놀라운 샘이다. 퍼내고 마실수록 갈증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다.”

1526년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전도서를 강의했는데, 이 시절 한 친구에게 쓴 편지 중에서 말하기를, “전도자 솔로몬이 나를 매우 힘들게 하고, 마치 자기에 대해 논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처럼 나를 매우 힘들게 하는데, 그는 반드시 내게 굴복할 것이네” 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루터가 오로지 성경 연구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는 시편 119편에서 시편기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기도하고 그것을 묵상하지만 동시에 고난을 당함으로써 그것을 깨닫는다는 점을 주목하였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67절).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71절). 의의 길을 걸으며 고난당하는 것이야말로 성경을 깨닫는 필수적이 열쇠였던 것이다. 루터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신학을 공부하는 법을 여러분이 터득하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도 스스로 이 방법을 실천해오고 있습니다만 신학 공부의 세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이는 시편 119편에서 계속해서 제시되는데, 곧 oratio, meditatio, tentatio (기도, 묵상, 환난)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환난이 초석(礎石)과도 같다고 하였다.
 
시험과 환란의 가치
 
이 법칙은 성경을 알고 깨닫도록 가르침을 줄 뿐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올바르며 얼마나 참되며 얼마나 감미롭고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얼마나 힘이 있으며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를 몸소 경험하게 해 준다. 성경이야말로 최고의 지혜인 것이다.

그는 시험과 환난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직접 입증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면 그 즉시 마귀가 여러분을 괴롭게 하고, 여러분을 진정한 신학자로 만들어 주며, 그의 각종 시험들로 말미암아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사랑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저 자신의 경우를 말하면, 저는 로마 교황주의자들에게 정말 많이 감사해야 합니다.

그들이 마귀의 격한 부추김을 받아 저를 때리고 압박하고 겁을 준 덕분에 제가 그래도 상당히 좋은 신학자로 탈바꿈하게 되었고, 저 혼자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었을 목표에 그 덕분에 도달했으니 말입니다.

또한 신앙적인 독서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유익한 조언을 해 주고 있다.

“수고가 헛되지 않으려면 좋은 저자의 책을 읽고 또 읽어서, 이를테면 그 저자가 자신의 피와 살로 변하게까지 되어야 한다. 굉장히 다양하게 책을 읽는 것은 혼란스럽게 할 뿐이요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독서는 온갖 곳에 다 거하면서도 한 군데 일정하게 거하는 곳이 없는 사람처럼 되게 만든다. 친구들이 많아도 그들 모두와 매일같이 교제를 나누지 않고 선택한 몇 사람과만 교제하는 것처럼, 우리의 공부도 그러해야 한다.”

루터는 1546년 2월 18일 새벽 3시, 63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종교개혁이라는 위대한 사명을 받은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에 의지하여 모든 화를 무릅쓰고 담대히 일어나 거대한 로마교회의 권력을 상대로 복음의 순전한 회복을 외쳤고, 교회의 회복을 위하여 평생을 쉼 없이 수고하였고, 결국 그로 말미암아 그 이후의 유럽의 역사가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된 것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독일어와 라틴어로 “Wir sein pettler, hoc est verum”(우리는 구걸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참말이다)라는 글을 남겼다.

우리 인생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자비와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마지막 임종 때까지 확고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광연|시드니영락교회 EM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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