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마 6:13b)
 
정지홍/크리스찬리뷰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나,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이는가에만 모든 관심을 집중했다. 회당에서 거리 어귀에서 바리새인들이 하는 기도는 자신의 영광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 자신에 몰두하는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는다. 그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뜻과는 전혀 무관한 기도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이방인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기도했다. 의미 없는 기도를 중언부언하며 중얼거릴 뿐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들이 무슨 기도를 하는지도 모를 만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기도를 했다. 그들의 관심은 기도의 내용에 있지 않고 기도의 길이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쓸데없는 말을 반복해서 늘어놓는 이방인들의 기도에는 감동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와 교제하시고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기도의 모범으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주님의 기도’는 무엇보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기도를 벗어난 하나님 중심의 기도다. 
 
하나님의 나라
 
'주님의 기도'의 마지막은 송영으로 그 첫 번째가 "나라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이 “나라”는 당연히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어둠과 악의 세력들이 물러가고 사랑과 정의 그리고 평화와 축복이 가득한 나라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는 눈물도 고통도 가난도 없다. 시기와 질투도 없고 모두가 사랑하며 모두가 참된 평화를 누리는 나라다.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의 나라에서 편안함을 추구하고 인생의 만족을 누린다고 해도 그 편안함과 만족은 영원하지 않다. 누구나 인생의 쓴맛, 인생의 아픔, 인생의 고난을 경험하게 된다. 언제나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치유와 상처, 삶과 죽음이 상존하는 것이 이 세상의 나라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유와 기쁨과 평화와 사랑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무궁한 나라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영원히 통치하시는 나라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145:13)라고 노래한 바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 속에, 영원 속에 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우리에게 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 이미 임했던 그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해서 오고 있다. 아직은 미완성의 나라이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이다.

2천 년 전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은 분명히 다시 오신다. 2천 년 전에는 초라한 마굿간에서 가난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다시 오실 주님은 영광 중에 구름 타고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이다. 그래서 어둠의 권세들, 악의 세력들을 주님 발 앞에 복종시키고, 온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실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통해, “나라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송영의 찬양을 하는 것은, 현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또한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차원이 달라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기껏해야 이 땅의 수준에서 무얼 먹을까 무얼 마실가 무얼 입을까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 하나님의 나라로 차원을 높혀야 한다. 그래서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일에 시기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넉넉하고 여유있게 살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임하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의 고백을 통해 임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통치를 믿음으로 고백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20을 통해 이같이 말씀하셨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두세 사람은 아주 적은 수다. 그러나 그 적은 수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믿음의 고백을 한다면, 그곳에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다. 그곳이 광야이든 산꼭대기이든 도심 한복판이든, 주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그래서 버틀러(Butler)는 찬송가 438장 3절의 가사를 이렇게 썼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렇다. 예수님을 모신 곳이 하늘나라다. 이 가사처럼,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는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권세로 이루어지는 나라다. 그래서 송영의 두 번째 주제는 권세다. “권세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권세는 두나미스,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전능이다. 전능하심이 영원히 하나님께 있다고 찬양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능력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도 불완전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기도도 무의미하게 된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전능성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기도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3을 통해 이렇게 고백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의 기도에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누구나 기적을 꿈꾼다. 내 인생에도 새로운 날이 찾아오고 성령의 새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세를 믿고 기도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라. 그래야 우리의 기도가 의미가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광
 
‘주님의 기도’ 송영의 세 번째 주제는 ‘영광’이다.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받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부름을 입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31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라고 전하고 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바리새인들이 그토록 자기 영광을 구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위대한 작곡가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주회가 열렸다. 그의 걸작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공연되었고 그 공연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중이 몰려들었다.

당시 그는 늙고 병약했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공연장에 입장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공연을 마쳤을 때 관중석에서는 하이든을 향해 우레와 같은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그는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나 떨리는 손을 위로 치켜들고 외쳤다.

“내가 아닙니다. 그 음악은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바로 저기 우리의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이 왔습니다. 그분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모든 가치와 존귀와 찬송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다. 나는 없어지고 하나님만 보이는 것이다. 나는 낮아지고 하나님만 높아지는 것이다. 나는 쇠하고 하나님만 흥하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의 궁극적인 목표점은 하나님의 나라과 권세와 영광이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주님의 기도를 마치며 우리는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음을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blog.daum.net/goodseed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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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2/24 [11:50]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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