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 가슴에 품고 헌신하겠습니다

인터뷰|한인호주원주민선교회(KMIA) 첫 파송선교사 이영식 목사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14/03/24 [10:35]


13년간 섬기던 교회 사임, 3월 28일 파송예배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순종해야 되는데 하며 늘 마음에 부담이 있었어요. 시기를 기다리며 머뭇거렸는데 이제야 결심했을 뿐 특별한 것은 아니에요.”

3월 말로 한민장로교회 담임목사직을 사임하고 선교사로 헌신하는 이영식(55) 목사를 어렵사리 만났다. 대양주예수교장로회 호주노회에서 사임서가 최종 수리된 이 목사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자칫 ‘자기 자랑’이 될 것 같아 인터뷰를 망설여 온 이 목사는 “지난 13년 동안 한민장로교회에서 교우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행복한 목사였다”며 “교단이나 연합회 활동을 통해서도 좋은 선배와 친구, 후배를 만나 교제하게 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감사의 말을 남겼다.

 
▲ 한인호주원주민선교회 제1호 선교사로 원주민 마을로 파송되는 이영식 목사.     ©크리스찬리뷰


한인호주원주민선교회 제1호 파송선교사


이영식 목사를 파송한 단체는 한인호주원주민선교회(KMIA: Korean Mission for Indigenous Australia)다. 한인호주원주민선교회는 원주민선교의 중복투자를 막고 올바르고 합리적인 선교가 이루어지도록 도우며 선교지 개척을 목표로 2011년 12월 설립되었다. 이를 위해 △정기세미나 △선교 인식여행(Mission Awareness Trip) △원주민 종족 입양 △원주민 선교에 관한 정보 공유 등을 주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시드니신학대학교(SCD)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선교 인식여행을 학점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호주 원주민들은 호주의 풍요로운 뒷마당 아웃 백에서, 과거 백인들로부터 온갖 박탈과 강제 퇴거를 당하고, 학대와 학살, 언어와 문화 말살, 종족 유지 방해 등으로 인해 열악한 생활환경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삶을 영유하고 있다. 그들은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없고, 낮은 자존심으로 인해 대인관계를 기피하며, 은거생활을 함으로써 알코올 및 마약 중독과 성적 학대를 받으며 신체적, 물리적 학대로 인해 자살률이 높고 수명도 짧다.

 
▲ 모리(Moree)지역에서 15년째 어린이 사역을 하고 있는 폴(Paul) 선교사 부부는 매주 목요일 70여 명의 어린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KMIA


호주 원주민은 호주 전역에 걸쳐 6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 중 크리스찬이 2% 정도다. 호주교회의 원주민 선교역사는 150년으로 다양한 사역을 펼치고 있지만 역사적인 상황으로 인해 쉽지 않은 상태이다. 이런 이유로 비슷한 문화와 영성을 가진 한국인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주정오 목사(KMIA 이사장)는 “그동안 너무 산발적으로 원주민 선교가 이루어져 선교자원이 낭비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선교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함께 연구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협력하는 사역이 필요하다”며 “개 교회나 개인으로는 이 일을 이루어 낼 수가 없다. 교회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어 주 목사는 “이번에 우리가 이영식 목사를 파송하면서 선교기관과 그를 파송한 교회와 그리고 선교사님 이 셋이 한 번 ‘선교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모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며 “세 주요 주체들이 온전히 유기적으로 잘 협력해서 명실 공히 정말 제대로 된 선교를 이번에 만들어 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역설했다.

 
▲ 노던 테리토리(Borroloola, NT)의 원주민 아이들과 함께 한 이영식 목사.(선교인식여행 중)     ©KMIA


또 주 목사는 “호주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선교회를 구성하고 그 구성한 선교회가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게 된 것은 대박”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이 목사의 사명은 크고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밝혔다.

김종찬 목사(KMIA 이사)는 “호주원주민선교회(AIM)의 역사가 150년이 되는데 회원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보면 원주민선교가 안 된다는 말을 듣는다.”며 “그런데 원주민들을 접촉하면서 느끼는 것은 원주민들이 우리 한인들에게는 기쁨으로 영접을 한다. 호주원주민선교는 우리 한인들에게 맡겨진 사명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목사는 “이영식 목사와 함께 선교현장을 다니다보면 느낄 수 있는데, 이 목사는 원주민 속에 들어가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과 같이 지내려는 모습을 볼 때 영광스러웠다.

원주민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덧붙였다. 또 김 목사는 “우리 한인교회들이 연합해서 원주민선교의 역사를 이뤄갔으면 좋겠다.”며 “이 목사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 Camooweal QLD의 원주민 아이들.     ©KMIA



그동안 한인 호주원주민선교회는 호주 전역의 유명한 원주민 선교사와 전문가들을 초청해 원주민선교 전략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선교 인식여행과 원주민선교 정보안내, 또한 원주민선교 홈페이지도 운영 관리하고 있다.

현재 한인 호주원주민선교회 소속 교회는 10개 교회다.

“호주 원주민을 사랑하라”

하나님의 뜻은 이영식에게 어느 날 갑자기 전해졌다.

“성현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남아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나가셨던 담임목사님이 다시 들어오셨어요. 들어오시는 담임목사님의 발자국 소리가 뚜벅뚜벅 나더니 제가 있는 곳에 와서 멈췄습니다. 저에게 하실 말씀이 있나보다 하고 눈을 떠서 보니까 아무도 없었어요.

내가 잘못 들었나 하고 다시 기도를 하고 있는데 또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렸어요. 그래서 눈을 떠보니까 역시 아무도 없었어요. 세 번째로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는 사무엘 생각이 났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엘리 제사장한테 가지 않았습니까.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 Elliott NT의 원주민 지도자 Robert의 딸과 함께한 이영식 목사. 손에 들고 있는 도끼로 검트리를 파서 그 속에 사는 애벌레를 잡아함께 나누어 먹었다.     © KMIA


그날따라 이상한 기분이었다. 거룩하고 충만한 성령이 느껴졌다.

“하나님이여,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
그때 강력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나님의 개입하심이었다.

“내가 호주 원주민을 사랑한다.”
이영식은 “오! 주여”하며 무릎관절을 꺾었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그때는 제가 호주 원주민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던 때였거든요. 그런데 호주 원주민을 사랑하라는 그 음성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펑펑 울었습니다.”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도 그의 영은 이미 ‘아멘’으로 화답하고 있었다.

“그날 학교에 가지 않고 도서관에 가서 호주 원주민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자료가 별로 없었어요. 우선 호주 국기를 하나 구했어요. 그때는 원주민 국기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서재 한 쪽 벽면에 호주 국기를 걸어놓고 아내와 호주 원주민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 총신대학원을 졸업하고 선교사 훈련을 받으려고 GMS(총회세계선교회)를 찾았는데 나이가 많다고 훈련생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어요. 그때 제 나이 39살이었는데 35세까지가 제한 연령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돌아섰지요.”

 
▲ 한인호주원주민선교회 이사들과 원주민 선교 인식여행 만난 Jerod, Cherie 선교사 부부.     © KMIA


‘그러면 어떻게 사역하라는 것인가’

확실한 말씀이 없었다. 기도하며 기다려보기로 했다. 하루, 이틀, 사흘. 하나님의 응답은 없었다. 무작정 호주행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일단 호주로 가서 원주민들도 만나보고 원주민 선교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루트를 찾아보자. 그래서 아이들 둘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관광비자 3개월로 호주에 왔습니다. 공황으로 환송 나온 동료들은 가서 3개월도 못 버티고 돌아올 것 이라고 면박을 줬죠.”

이영식 목사가 한민장로교회를 개척한 것은 지난 2001년 3월.
“하나님께서 호주에 온지 3개월 만에 교회를 시작하게 하셨어요. 한인교회를 통해 원주민선교를 시작했는데 원주민 선교사 후원 사역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원주민 선교비전을 가지고 계시는 김종찬 목사님을 만나 협력하며 직접 원주민들에게 다가가는 사역이 시작이 된 겁니다. 이후 ‘한인 호주원주민선교회’가 설립되었고, 이에 소속되어 활동을 했습니다.”

 
▲ 이영식 목사와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주정오 목사(오른쪽)와 김종찬 목사(왼쪽)     © 크리스찬리뷰

함께 사는 것이 선교


이 목사는 오래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선교 인식여행에 올랐다. 처음 가는 곳인데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고 푸근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원주민 아이들을 끌어안자 이상한 감동이 가슴 속에서 북받쳐 오르는 것이었다. 오랜 그리움과 기도의 마음일까. 그는 이산가족 만나는 사람처럼 펑펑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여행은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다. 놀랍고 기뻤다. 인식여행에 참가한 목사들의 은혜와 감사기도가 원주민마을에 메아리쳤다. 울컥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고 바로 지금이 나갈 때라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임했다.

“그래 여기야. 내 사역현장이 바로 여기야”
이 목사는 그동안 침묵하신 하나님의 뜻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목회를 하면서 많은 선교사들을 초청하고 돕고, 교회가 선교현장을 이해하도록 선교현장을 다녀온 것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선교단체를 도우면서 쌓은 행정과 운영 경험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그동안 이런 일들로 저를 준비시켜오셨다고 느꼈어요.”

교회가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갈 무렵, 이 목사는 교회에 사임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교우들은 어머니처럼 믿고 따라온 이 목사가 선교지로 떠난다고 하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만류했다.

“한인교회 사역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원주민 사역을 위해서 선교지로 나가야 되는데 라는 부담감이 늘 있었습니다. 이에 사실은 2010년에 결심을 하고 교회에 알렸었는데 교회에서 강력하게 반발을 한 겁니다. 목사님 떠나시면 우리들도 다 떠나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임을 못했어요. 그러면서 교회에서 3개월간 안식휴가를 줘서 2011년 한국을 다녀오게 됐는데 그때 GMS에 가서 3개월 동안 선교사 훈련을 받았어요. 호주에서 사역했던 것을 경력으로 인정받아 특별과정으로 선교사 훈련과정을 마칠 수가 있었죠.

그런 후 호주로 돌아왔는데 그해 원주민선교회가 생겼습니다. 원주민선교회에서 일을 하면서부터 하나님이 더욱 강력한 마음을 주셔서 1월 말에 결심을 하고, 2월 초에 교회에 발표를 하게 된 겁니다. 하나님께서 폭풍을 일으키시듯 그런 쪽으로 상황을 몰고 가시는 거에요. 아,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보내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나를 몰아가시는 구나, 마음속 깊이 느꼈습니다. 마음이 편했어요.”

이 목사는 “교회를 떠나는 서운한 마음도 있고 새로운 사역지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며 “떠난 뒤에도 교인들과 우정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목사가 집중적으로 섬기게 될 지역은 뉴카슬(Newcastle), 포스터(Forster), 타리(Taree), 포트 맥콰리(Port Macqurarie) 그리고 켐시(Kempsey) 등으로 12개 부족 3천여 명의 원주민들이다.

이 목사는 “나중에는 시드니에서 1000km 정도 떨어진 팅가(Tingha)까지 사역의 범위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그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우선이므로 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과 동화되는 작업을 먼저 하겠다”고 밝혔다.

그에게는 ‘맥가이버’라는 별명이 늘 따라다닌다. 목공 일, 전기, 페인트 칠, 청소 등 못하는 것이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우선 들어가서 밥을 해먹이고, 보니까 한국음식을 굉장히 좋아들해요. 집에 있는 의자, 가구 고쳐주고 해서 마음을 얻어야죠. 언어가 문제인데 일단은 그 원주민들이 영어를 쓴다는 게 감사하고요.

부족선교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이제 미전도 종족에 대한 개념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종족들이 도시로 자꾸 나오고 있기 때문에 발가벗고 사는 그런 미전도 종족이라는 개념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도시선교, 도시 속에 들어와 있는 원주민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도 저희로서는 굉장히 큰 숙제인 것 같아요. 그들은 여전히 도시 속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고 소외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고 이런 문제는 앞으로 점점 커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호주원주민 선교도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가까운 지역부터 점점 해나가면 이 지역들이 좋은 거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온전하게 순종하라


이 목사는 “과거 원주민교회를 개척하고 무료급식소, 컴퓨터 교육시설, 직업교육시설과 신학교가 설립되어 운영되다가 불이나 없어져 안타까웠다”며 “앞으로 신학교도 세우고 원주민을 위한 사역자 발굴과 훈련을 계획하는 등 원주민을 돕기 위한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에게 삶의 의욕과 성취감을 가질 수 있도록 일거리를 만들어 주고 건전한 놀이 문화를 제공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청년들과 어린이들에게도 건전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음악, 스포츠. 컴퓨터 교육 등을 통해 미래에 대한 비전을 주는 것도 앞으로의 중요한 사역이 될 것 같습니다.”

힘있게 목회인생의 전반을 설명하고 또한 후반전을 제시하는 이영식 목사의 눈빛은 따뜻하지만 빛이 났다. 이 목사는 “잠언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할지라도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가 여호와시다’라는 말씀이 있다”며 “그래서 선교현장으로 떠나면서 다짐하는 것은 ‘순종해야겠다’는 것이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이끌어 주실 줄 믿는다.”고 말했다.

“기도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강력하게 주신 말씀이 있는데 ‘온전하게 순종하라. 그리하면 너를 통하여 큰 일을 이루리라’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나가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떠납니다.”

‘왜 안정적인 목회지를 떠나려고 하느냐?’란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기자도 그렇게 질문했다.

이 목사의 답은 단순하지만 명쾌했다.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시니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지요.”
고단하고 힘든 삶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하나님 앞에 나를 다시 세우고, 부르심을 이제야 쫓아 갈 수 있다는 기쁨이 더 크다는 그는 “저의 결정에 묵묵히 따라준 아내(전명은. 48)와 아빠가 기도하고 결정한 것이면 무조건 좋다는 딸(지혜. 22), 그리고 멋있다고 지지해준 아들(지헌. 17)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새롭게 뛰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뛰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끄심과 이 목사의 순종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감동이 있고 기대가 되는 것이다.

호주 원주민선교만 생각해 왔다는 이 목사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영적인 파장을 남겨 놓고 아내와 함께 3월 말 선교현장으로 떠난다.〠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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