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ck과 Touch의 차이

묵상이 있는 만남

이규현/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1/04 [12:37]
▲ 이규현 목사     ©크리스찬리뷰
아들의 축구경기에서 인생을 본다. 꽤 묵직하고도 울림이 큰 그림이다. 토요일 아침마다 둘째 아들이 뛰는 축구 경기를 보는 것은 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보다 더 가슴을 졸이게 한다.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가끔씩 경기를 응원하러 가는 날이면 그 날에는 게임에 질 때가 많다. 스트라이커로서 평소에 꽤 잘하는 아이가 아빠가 응원하는 날에는 실수를 잘하는 이유는 아빠에게 멋진 슛을 보여 주려는 욕심에 너무 힘을 주다보니 평소 실력보다 못한 경기로 아빠를 안타깝게 한다.

슛은 kick이 아니라 touch다

하기야 유럽의 강호 프로 축구팀들에 속해 있는 세계적인 스타들이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으며 포진을 하고 있어도 한 게임에 골 한 번 넣지 못하고 끝날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축구 역시 인생의 한 단면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축구란 무조건 열심히 뛴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동네축구의 특징은 열심히 뛰다가 제풀에 자기가 넘어진다. 공이 가는대로 우르르 몰려다니기만 하다가 골을 도로 먹는다.

선진축구의 특징은 공간을 넓게 만든다고 한다. 무조건 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유를 가지고 운동장을 넓게 사용하는 것이다. 체력을 아낄 때는 아끼고 몰아붙일 때는 파죽지세를 펼친다. 정돈되지 않은 힘보다 힘의 완급조절을 할 수 있을 때 볼 찬스를 살릴 수 있게 된다. 슛의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는 바늘 끝같은 집중력이 더 중요하다.

슛에 대한 너무 강한 의욕이 화를 불러들일 때가 많다. 맨 유의 리저브 팀 감독인 올레 군나르 솔샤르는 영국 축구의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박지성 선수에게 이렇게 훈수한다. "슛은 kick이 아니라 touch다" 놀라운 얘기 아닌가?

슛은 내 힘으로 차 넣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순간을 포착하여 발을 갖다 대는 순발력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요행이 아니라 수없는 리듬터치를 통한 감각의 훈련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어디 축구만 그런가? 우리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적인 순간들이 바람처럼 우리의 삶을 살짝 스쳐 지나갈 때 그것을 감지하는 능력, 그 순간을 알아차리고 마음은 비우되 휘몰아 치듯 반응할 줄 아는 사람에게 삶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내가 힘주고 애 쓴다고 되는 것으로 안다면 고생길이 남아있다고 보아야 한다. 과도한 욕망과 자기 열심은 오히려 발과 볼의 엇갈림이 일어나듯 축복된 기회들이 나의 운명을 멀리 벗어나 날아가 버리고 만다.

힘을 주는 것과 힘 빼는 것

슛은 kick이 아니라 touch다. Kick은 힘을 주는 것이고 touch는 힘을 빼는 것이다. 힘을 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힘 빼는 것은 고수들에게만 볼 수 있는 고난도 중에서도 거의 득도의 경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삶의 탈진은 자신의 힘을 의존한 과도하고 헛된 열심에서 대부분 일어난다. 축복된 인생을 산다는 것은 삶을 탈진하게하는 허공치는 kick을 그치고 나를 향해 가슴 뛰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주시는 하나님의 어시스트에 대한 영적 고감도의 반응을 익혀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물을 출렁이며 탄성이 터지게 하는 슛을 날릴 수 있는 순간을 감지할 수 있는 여유란, 인생은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이 밀어 주시는 은혜에 대한 반응, 그것을 아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터득해 가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규현/시드니새순장로교회 담임목사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