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부부, 중미를 가다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1/04 [12:44]
레온(Leon) 선교지에서 만난 사람들

<마나구아에서 제 1신>
 
지구의 어디쯤에 있는지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 중미의 `니카라과'라는 나라에 간다는 것은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조금은 흥분이 되기도 하였다. 나의 머리에는 산디니스타니 콘트라반군이니 하는 단어가 연상되어 정정이 불안한 중미의 작은 나라로만 인식되어 있기에 불안한 마음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 남미를 다녀왔던 경험이 있어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먼 여행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멜본에서 니콰라과까지
 
그래서 거의 2년 만에 다시 행장을 꾸려 멜본 공항을 출발한 때는 첫 더위가 한 차례 지나간 12월 초였다. 미국 서부에서 며칠을 보낸 우리는 다시 짐을 꾸리고 LA를 출발해 Atlanta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면서 늦은 시간에 니카라과의 마나구아 공항에 도착하였다. 몇 시쯤 되었을까, 멜본으로부터는 말할 것?없고 LA와도 3시간을 더하고 다시 한 시간을 빼야 하는 시차계산은 숫자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한반도보다 조금 작은 면적에 인구 6백만의 소국이지만 중미에서는 그래도 가장 큰 국토면적을 가진 나라로 자부하고 있는 나라 니카라과는 국민소득이 1천불에도 미치지 못하는 중미 최빈국 중의 하나이다. 스페인의 식민 지배를 벗어난 남미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대다수가 혼혈인 메스티조로 구성되어 있고 전 인구의 5%인 백인이 전 국부의 85%를 독점하고 있는 전형적인 후진국 형 국가이다.
 
긴 여행에 시달린 탓인지 딸네 집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시내구경은 엄두도 못 내고 며칠간 잠에 빠져 들었다. 겨우 몸을 추슬러 이층 베란다로 나오니 아침 미풍이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계절적으로는 겨울이어서 연중 가장 추운 계절이라고 하나 낮 기온은 아직도 35도를 넘나들고 있는 멜본의 한여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아침저녁은 25도정도의 쾌적한 온도에 50%정도의 습도라고 하니 어디서 본 듯한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아담 부부가 선악과를 따 먹은 후 동산에 숨어 있을 그때의 날은 서늘할 때(창3: 8)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곳의 아침저녁 기온이 그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서 다음날 있을 선교지 여행일정을 확인하였다.
 
 
원주민교회 방문
 
니카라과 한인교회에서 교육목사로 봉사하면서 마나구아에서 차로 두 시간거리의 레온(Leon)시 부근의 시골에 6개 교회를 개척하여 9년째 어린이 사역을 하고 있는 박우석·이현숙 선교사부부를 동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들 부부가 개척해 놓은 원주민 교회 어린이들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면서 크리스마스 선물도 나누어 주는 행사였다. 마침 한국에서 온 예수전도단 선교팀(9명)이 합류하여 일행은 모두 14명이나 되었다.
 
수요일 아침, 우리는 하루에 세 교회를 돌아야 하는 일정을 감안하여 아침 8시에 출발하기로 했으나 미니버스가 펑크 나는 바람에 거의 10시가 다 되어서야 마나구아를 출발했다. 출발이 늦었다는 것은 현지 교회에 모여 있을 어린이와 부모들이 두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박선교사는 매우 불안해했다. 이들은 교회가 있는 곳까지 한 시간 이상이나 말을 타거나 걸어서 오기 때문에 더 미안하다는 것이다.
 
국도를 벗어나 먼지가 풀풀 나는 시골길을 소떼를 헤치며 달려 가까스로 교회에 도착하니 올망졸망한 눈망울을 한 어린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모여 있었다. 교회건물은 시멘트 불록으로 벽을 올리고 양철로 지붕을 한 20평 남짓 되는 아담한 건물이었다. 그런데 건물 전면과 강대상의 십자가 모양이 특이했다.
 
중남미의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하듯이 전반적으로 천주교 교세가 강하여 개신교의 십자가를 달아놓으면 이내 떼 내어 버리기 때문에 입구와 강대상 전면 벽에 붙박이로 십자가를 표시한 것이라고 박 선교사는 설명해 주었다.
 
이현숙 선교사의 능숙한 스페인말로 인도된 예배는 요절외우기, 율동, 예수 전도단이 준비한 성극과 부체춤 그리고 선물 나누어 주기의 순서로 진행된 예배를 마쳤다. 모두 두 시간이 걸린 예배를 마치고 일행은 다음 교회로 이동을 서둘렀다. 이 선교사가 준비한 김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똑같은 순서로 두 번이나 더 반복하여 예배를 드리고 나니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었다. 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은 모두 지쳐있었다.
 
 
말은 중요한 가축
 
그들은 순박했다. 어른이고 아이를 가릴 것이 없이 선교사의 한 동작 한 말씀에 주목하고 있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게 보였으며 예배가 끝날 때까지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가난했다. 어른 하루 노동의 임금이 미화 1-2불이고 그나마 일거리가 없어 마을마다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마을을 떠나 도회지로 가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돼지와 닭, 말과 소와 같은 가축들과 함께 살며 텃밭에서 가꾸는 채소와 작물이 그들의 주식이고 보니 하루하루의 삶이 어려울 텐데 그들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 중 말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축이었다. 모든 교통수단을 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이 넓어 한번 이동하려면 몇 Km는 걸어서 가야하기 때문에 말은 필수적인 교통수단이며 물을 긷는다든지 무거운 짐을 옮길 때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그런데 1960년대 한국의 시골과 같은 이곳의 마을에도 언제부터인가 몇 되지는 않지만 모바일폰을 차고 다니는 청년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19세기 말을 타고 21세기 모바일폰을 차고 있는 모습은 시간과 공간이 묘하게 교차하면서 너무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하다.
 
비록 가난하지만 말씀에 목말라하는 그들이 있기 때문에 이들 선교사 부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고, 누구에게도 자랑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땅 끝을 오늘도 찾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다음세대를 만들어갈 어린 영혼의 구원에 매달리면서.
 
 
글/ 배용찬
멜본한인교회 은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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