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로서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죠

인터뷰/JK 엔터테인먼트 대표 강의봉 집사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1/04 [12:42]

2008년 10월 28일 시드니 엔터테인먼트 센터에서 열린 국민가수 조용필 초청 라이브 콘서트.

▲  공연을 통해 잃어버린 도전 정신과 감동을 되찾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는 JK엔터테인먼트 대표 강의봉 집사. © 크리스찬리뷰


사람들은 놀랐다. 그리고 8천여 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마치 마술에라도 걸린 듯 탄성을 터뜨리며 환호했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었다. 1만 6천 개의 눈동자를 모으고 8천의 가슴을 두드린 무대. 이 공연을 기획 주관한 'JK 엔터테인먼트' 이름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2009년 8월 29일 뉴타운 엔모아 극장에서 펼쳐진 윤도현 밴드 공연 역시 연주자들과 JK 엔터테인먼트 스태프들의 섬세한 무대장치, 특수조명과 음향이 잘 어우러진 완벽한 앙상블로 윤도현의 소리를 더욱 빛냈고 'JK 엔터테인먼트의 신화'를 창조했다. 3천여 관객들의 태도는 진지하다 못해 심각하기까지 했다. 그들에게서 한 없는 위안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엔모아 극장이 이렇게 좁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JK 엔터테인먼트 대표 강의봉(46. 시드니영락교회)집사.
그가 기획한 공연무대에 사람이 몰리고 나름의 문화가 생긴다. 문화계에 일고 있는 이른바 "JK 엔터테인먼트 현상"이다. 이 엄청난 힘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교민들의 문화생활 거의 없어

시드니 스탠모어(Stanmore)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별장처럼 조용했다. 그는 환한 미소를 띤 채 시원스럽게 입을 열었다.

"먼길 오시느라 수고 했습니다."

잘닥만한 키에 긴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렸다. 그러나 그의 예술적 시각과 현실 초월적 안목은 크고 높다.

"글쎄요. 마음이 중요하지요 마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저는 무엇을 하던지 최고를 만들어 내기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이번 공연도 최고의 감동 무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올인 했어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감동 받잖아요. 돈 벌려고 공연하면 안돼요. 사실 조명 같은 것 몇 개 빼도 되거든요.

저희들은 최고의 감동무대가 목표니까 정도를 걷는 거에요. 조용필 공연도 9개월 동안 광고했어요. 올인 한 거지요. 저는 그 한 해를 본 게 아니라 10년을 본 거에요. 지금 보니까 잘한 것 같아요."

강 집사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내와 결혼한 뒤 신앙인이 되어 안팎으로 안정된 것이 가장 큰 힘"이라고 했다.

"공연과 전시회 등을 열면서 발전성을 확인했어요. 교민들이 문화에 대한 목마름이 크구나, 공연을 하면 할수록 공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높아지고 그러다보니까 우리가 더 준비에 신경을 써야 되고요."

▲ 2006년 설립된 JK 엔터테인먼트는 `인체탐험전시회', `조용필 라이브 콘서트', `윤도현 밴드 라이브 콘서트', `코리안 유스 패스티발' 등을 성공적으로 치뤘다.(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JK 엔터테인먼트    


원래 그는 화가이다. 그에게 넌지시 질문을 하나 던져보았다. 그림은 안 그리느냐고. 그는 망설임 없이 "문화예술이라는 것이 큰 화폭이지 않습니까?"라고 실토하며 정돈된 예술론을 쏟아냈다.

"호주에 와서 받은 은혜가 너무 컸어요. 그래서 무언가 남기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면서 보니까 교민들이 주말에는 비디오나 보고 문화생활이 거의 없더라구요. 너무 안타까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을까 하고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종합예술입니다.


물론 그동안 재정 쪽에는 손해를 많이 봤어요. 공연해가지고는 돈 못 벌어요. 그러나 저는 하나도 후회 안 해요. 그것들을 통해서 교민들이 얼마나 기뻐합니까? 눈물도 흘리잖아요.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호주 현지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렸고요. 호주 텔레비전인 채널9, 채널10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이때 우리 JK 엔터테인먼트가 호주 주류사회에 부각되면서 신뢰도 얻었습니다."

말소리가 분명하고 이야기 내용이 명료하다.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유가 있다.
 
"전 세계가 경제적 불황이라는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즈음, 공연을 통해 잃어버린 도전 정신과 감동을 되찾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교민들을 즐겁게 해주고 청소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일이 얼마나 기쁩니까? 물론 예측하지 못한 일도 일어나 괴로움도 당하지만 감동이 있고 스릴도 느끼고 할 때마다 새로운 것도 경험하게 되어 기쁨이 더 큰 것 같고요, 이것이 공연을 하는 매력인 것 같아요."
 
강 집사가 'JK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것은 2006년. 그는 2007년 멜본에서 '인체탐험 전시회'를 시작으로 'World OKTA 2008',  'Korean Youth Festival', '한국 난타공연', '조용필 라이브 콘서트', '윤도현 밴드 라이브 콘서트' 등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JK 엔터테인먼트의 윤여송 이사는 "이제까지 공연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자신감"이었다며 "비록 약간의 재정적인 손실은 입었지만 그 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많은 교민들이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호주 주류사회에 교민문화의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JK의 명성과 더불어 신뢰감을 심어줬고 한국과 한국인의 위상을 호주사회에 과시한 것도 소득이었고요."
 
현재 JK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는 직원은 12명이다.
 
상상력의 극치라고 볼 수 있는 이벤트의 세계, 그 나름대로 독특한 기업 철학이 있을 법하다.
 
"직원 모두 내가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기쁘게 일합니다. 한 가족처럼 말입니다. 팀워크를 중시하며 직원들은 누구나 번거로운 절차 없이 직접 저를 만나 자신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하고요. 점심식사도 대부분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하며 뭐 모든 것이 자유롭습니다."
 
중국 동포 3세, 1990년 호주유학
 
- 한국에 있을 때 이 분야에 관련이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조용필 씨를 만나러 한국에 갔었을 뿐 한국에서 한 달 이상 살아 본 적이 없어요. 전 중국에서 왔습니다."

- 예? 중국에서 왔다고요? 조용필 씨도 만난 적 없고요?
"네"

- 그렇다면 조용필 씨는 어떻게 연결이 됐습니까?
"그게 마음이에요. 마음만 있으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확신했죠. 당시 이곳에는 기획사들이 많았는데 아예 생각을 하지 않는 거에요. 돈도 생각하고 손해도 생각하고요. 전 조용필 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가서 직접 공연장을 찾아갔어요.
 
사실 전 한국이 처음이었거든요. 공연이 끝난 후 조용필 씨를 만났는데 어디에서 왔느냐, 뭐하는 회사냐 물어요. 호주에서 왔다고 하니까 반가워하더라고요. 그 당시 전 청소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청소회사 사업등록증을 가져갔어요. 그 등록증을 보여주며 청소회사입니다 그랬죠. 잠시 시드니 상황을 설명한 후 교민 10만여 명이 살고 있으며 공연장은 만석을 준비하고 있다고 사실대로 말했죠. 그 날 조용필 씨가 제 마음을 본 것 같아요. 그런 후 매니저와 감독을 호주로 보냈어요. 공연장을 둘러보고 계약을 했죠.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아름다운 예술세계 속에 묻혀 지내기 때문일까. 그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표정이 밝고 신선하다.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고집스러움이 보이면서도 너무 맑고 순수해 인간적인 매력을 가득 지니고 있었다.
 
그는 중국동포 3세다. 왜소한 체구로 거친 세파를 헤쳐 나왔다.
 
만주 출생, 16세에 북경으로 유학, 북경미술대 졸업, 화가, 민주화 운동, 북경 천안문 사태로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힘, 강제 추방, 호주로 유학, 청소, 청소회사 사장, JK 엔터테인먼트 사장 등 보통사람들이 겪기 어려운 인생길을 걸어왔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살기 위해 버둥거린 세월' 이었다. 서커스단에서 외줄 타는 소녀처럼 곡예를 하듯이.
 
"원래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유학을 갈려고 했어요. 4년 장학금까지 받아 놨거든요. 그런데 민주화 운동인 천안문 사태로 강제 추방당하게 되었는데 미국 쪽에서는 입국이 거절됐어요. 그곳으로 갔으면 아마 지금까지 미술을 했겠지요. 그 때는 유학이 미국 아니면 호주였거든요. 다행히 호주는 저를 받아줬어요."
 
그가 호주에 도착한 것은 1990년, 파라마타에 둥지를 틀었다.
 
"그 당시 중국은 참 힘들었을 때에요. 유학 간다고 환전하러 은행에 갔더니 미화 40불이 한도에요. 40불로 어떻게 유학을 와요. 암달러상에게 바꿨지요. 물론 호주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고요. 북경에서 비자 받을 때는 호주에 가면 기숙사도 준비되어 있다고 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아파트였고 이불도 없어서 힘들었어요. 영어도 못하고 한국말도 서툴었거든요."
 
그렇지만 끝간 데 없이 펼쳐진 대지는 그에게 무한한 개발에의 가능성을 암시해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화가로서의 배경을 잘 활용하면 이곳에서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집념도 생겼다.
 
그는 헛방귀 나오기도 어려운 살림살이에 청소를 하면서 거친 세상을 몸으로 부딪쳐나갔다.

"영어가 안 되잖아요. 교민 청소업체에 들어갔어요. 하루 3시간 자고 청소를 했습니다."
그러나 생활의 톱니바퀴에 기구한 삶이 마모되어가는 가운데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짬짬이 좋아하는 축구도 하고.

▲ 내가 주인이라는 기쁜 마음으로 일하는 JK 언테테인먼트 직원들은 팀워크를 중시한다. Ⓒ크리스찬리뷰    


95년 결혼 후 신앙인으로 거듭나
 
강 집사에게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축구단 양지 팀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됐어요. 결혼식장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겁니다."
 
그는 첫 눈에 반한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고백했고 그녀 또한 다정한 맑은 눈에서 진실을 느끼고 그를 '귀착지'로 선택했다. 그러나 결혼에 이르기까지는 처가 부모의 조건이 따랐다. 교회 나가지 않으면 딸을 줄 수 없다고. 그는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95년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면서 새로운 희망으로 반전되었고 신앙을 곧추세우는 기회를 만나게 된다.
 
"보니까 장모님도 화가이시고 아내도 화가인 거에요."
 
그래서일까. 이상하리만치 인생을 바라보는 눈도 똑같았다고 말한다.
 
 - 교회에서 영접부장으로 봉사하고 있다면서요?
"네, 한국에서 목사님들, 강사님들 오시면 제가 공항에서부터 모시지요. 그래서인지 은혜를 많이 받고 기도도 제일 많이 받아요. 내년에도 영접부장으로 섬기면 좋겠어요. 아직도 믿음이 적으니까요."
 
JK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는데 그간의 어려움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간의 공연문화는 무료티켓이 많았어요. 표가 안팔리니까 나중에는 표를 다 그냥 나눠주는 거에요. 자리 채우기 위해서요. 가수 비 공연 때만도 그랬잖습니까. 그래서 조용필 공연할 때도 그런 문의가 많이 왔어요. 그렇게 되면 공연을 못해요. 우리는 총영사관에서 전화와도 표를 안줬어요. 팔았죠. 그런 것이 제일 힘들었어요. 그래도 8천 명이 왔는데 성공이었지요. 공연장에 와서 공짜표 얻으려고 기다린 사람들, 공연이 반 정도 지났는데도 끝까지 안줬어요. 그랬더니 욕을 하면서 가더라고요."


윤여송 이사는 "사장님은 공연장 안에 계셔서 모르셨겠지만 100명 정도가 오셔서 반값으로 해달라고 했다"면서 "안됩니다 라는 말을 간신히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실토했다.

"조용필 씨 매니저한테 양해를 구했어요. 표가 안 팔려도 무료는 없습니다. 그래야 다음 공연을 할 수 있습니다. 매니저는 자리가 비어있으니 풀어라 그랬죠."

"우선 아시아에서 가장 으뜸이 되고 싶다"는 큰 포부를 지닌 강의봉 집사.

"대만의 최고 가수 주걸륜 공연 무대를 만든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물론 프로모터는 중국분이셨어요. 그런데 중국 프로모터한테 많은 외압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당연하지요. 한국의 가수 비 공연을 중국사람이 한다 그런셈이 된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중국인 기획사가 없으니까 저희 회사를 믿고 맡긴 겁니다.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나니까 중국인 사회에도 우리 JK 엔터테인먼트의 이름을 알리며 신뢰받는 계기가 되었지요."

 

▲  교회 사역을 돕고 싶다는 강의봉 집사는 "크리스찬 기업으로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누가 안되는 JK엔터테인먼트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 크리스찬리뷰

 

크리스찬 공연과 함께 교회사역 돕고 싶어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공연이 많아질 것 같고요, 끼가 있는 아이돌 같은 가수를 우리가 키워서 한국이나 호주시장에 내보내려고 합니다. 우리 2세들도 많이 커야죠. 아울러 이제는 크리스찬 공연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비크리스찬에게 까지 감동을 줄 수 있는 공연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 사역을 돕고 싶어요. 저희 회사는 각 분야의 전문인들로 구성이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각종 회의실, 강당, 무대 인테리어 및 디자인 그리고 영상, 조명, 음향기기 일체를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점검, 설치해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정보가 없으시니까 외국인들에게 연락을 하셨을 거에요. 다 알아 보신 후에 비교해 보시면 똑같은 제품인데 낮은 가격으로 드린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아프터 서비스도 좋고요. 이것이 크리스찬 기업이 드리는 혜택이잖아요. 크리스찬과 하나님 앞에 크리스찬 기업으로서 누가 안되는 JK엔터테인먼트가 되고 싶습니다."
 
요즘 강의봉 집사는 하루하루의 생활에 만족하고 주님께 감사한다. 아내 김애련 씨, 큰 딸 인영(15), 둘째 딸 효영(11)과 아들 윤태(10)의 사랑이 가득 찬 가정생활도 즐겁고 일터에서의 작업도 무한히 기쁘다. 그렇게도 좋아했던 일을 하며 마음 놓고 예술의 세계를 펼쳐가기 때문이다.
 
이제 시드니생활 20년, 중국어는 기본이고 영어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예의범절에 빈틈이 없으면서 주류 사회에 나섰을 때는 세련된 매너와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서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그는 중국에서 가져온 '미술 붓 한 자루로 출발한 낭만적 초인'이다.☺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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