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누룩과 같으니 (마 13:33)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06/30 [12:18]

예수님은 천국이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밀가루에 적닥량의 물을 넣고 반죽을 한다. 이때 밀가루만 가지고서는 부드럽게 부풀어오르는 빵을 만들 수가 없다. 밀가루에 누룩을 넣어 반죽을 해야 한다. 이때 누룩을 아주 조금만 넣으면 된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반죽이 된 밀가루가 부풀어오른다. 전부 부풀어오른다.
 
천국 백성은 바로 이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과 같다. 밀가루 전부를 변화시키는 것은 밀가루 자체가 아니라 누룩이다. 누룩이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다.

천국 백성이 누룩이다

우리가 천국의 사람이라면 이 누룩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의 누룩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밀가루가 있어도 누룩이 없으면 결코 빵이 될 수 없다. 누룩이 있어야지만 부풀어오르고 또 맛있는 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비유가 의미하는 것은 누룩과 같은 소수의 무리들이 세상을 부풀어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즉 천국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 비록 숫적으로는 적을지 몰라도 그들이 이 어둡고 부패한 세상을 개혁하고 변화시킨다.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이미 천국이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배웠다. 천국은 처음부터 크게 오지 않는다. 가장 작은 겨자씨 한 알로부터 시작된다. 누룩의 비유도 마찬가지다. 천국이 확장되어가는 가는 것는 적은 누룩으로부터다. 적은 누룩을 통해 밀가루 전체가 부풀어 오르듯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 세상 전체가 변화되어 간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겨자씨는 천국 그 자체로서 천국이 자라가는 것이다. 천국이 겨자씨로부터 나무가 될 때까지 자라가는 것이다.
 
반면에 누룩은 천국 백성인 그리스도인이다. 천국을 품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다. 하나님은 천국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이 세상을 천국으로 변화시켜 가신다. 비록 한 명이라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신다.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누룩 한 스푼과 같이 적은 무리일지라도 능히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역사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역사,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놓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그 종교개혁은 누룩과도 같은 한 사람, 미약한 한 사람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고작 열두 명뿐이었다. 하지만 그 열두 명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바꾸어놓은 주님의 교회를 시작하셨다. 온 지중해 세계에 교회를 세우고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로마의 역사를 단숨에 바꾸어놓았던 것도 사도 바울 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그 시대의 누룩이었다.
 
그리스도인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천국으로 변화시키는 누룩이 되어야 한다. 누룩이 되지 못하면 교회도 변하지 않고 세상도 변하지 않는다. 아니, 가정도 변하지 않고 자식도 변할 수가 없다. 내가 누룩이 되지 못하면 내 주변은 그냥 밀가루일 뿐이다. 결코 부풀어 오를 수도 없고 빵도 될 수 없다. 

누룩은 주변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너무 겸손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나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떻게 교회를 변화시키고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어? 내 혼자 힘으로 어림도 없어?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누룩 한 수푼이면 충분하다. 내가 누룩이 되면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 요셉이 팔려간 곳은 보디발의 집이었다. 보디발은 바로왕의 친위대장으로, 왕을 경호하고 정치범들을 잡아들고 사형을 집행하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였다. 그러니 그 보디발의 집에 얼마나 많은 노예가 있었겠는가? 요셉은 그 무수히 많은 노예들 틈에 끼어 있는 이름없는 노예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당시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했다. 주인이 소유하고 있는 소나 말처럼 사고 팔 수 있는 물건에 불과했다. 더우기 요셉은 애굽이 처음이다. 당연히 애굽의 말도 할 줄 모르고 주인이 무슨 명령을 내렸는지 알아듣지 못해서 얼마나 큰 고초를 당했겠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렇게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애굽땅에서 고독하고 외롭고 비천하게 살아가는 노예가 바로 요셉이었다. 
 
상황이 이쯤되면 좌절하고 낙망하고 원망하고 한풀이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요셉은 달랐다. 요셉은 천국을 소유한 누룩이 되어 있었다.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런 요셉을 통해 주인 보디발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다”(창 39:3).
 
보디발은 요셉을 통해 하나님을 보았다.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요셉의 모든 일을 형통케 하시는 것도 보았다.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애굽은 우상과 잡신이 판을 치는 나라다. 보디발도 당연히 우상들을 섬기며 살았을 것이다.
 
보디발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었다. 요셉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수하에 있는 수많은 노예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요셉이 하나님을 보디발에게 보여주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었다.
 
노예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비참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비참한 것이다. 고난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문제다. 고통스러운 것이 저주가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저주다. 요셉은 비록 노예로 살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었다.
 
하나님을 보여준다는 것은 천국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셉은 정말 누룩과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러자 세상이 변했다. 보디발의 집이 변했다. 모든 것이 부풀어올랐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창 39:5). 
 
보디발은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고 오히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그 집에 복을 내리셨다. 그것도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다. 이것이 누룩의 삶의 결과다.
 
보디발의 수많은 노예 중의 한 사람이었던 요셉, 그것도 애굽땅에서는 이방인이었던 요셉, 정말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이었던 요셉이 누룩과 같은 삶을 살자, 그 주변이 변했다. 그 주변이 축복을 받았다. 누룩의 사람은 자기 주변을 천국으로 바꾸어간다. 가정도 교회도 일터도 천국으로 바꾸어간다.
 
누룩의 사람은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천국표가 붙어 있다. 그 사람의 브랜드는 made in heaven이다. 천국다운 말을 하고 천국다운 행동을 한다. 천국의 사람을 대하듯 이웃과 성도들을 대한다. 그래서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천국이 되고, 그 사람이 만나는 사람마다 천국을 경험한다. 그 사람이 바로 누룩과 같은 사람이다.

헌신의 삶이 누룩이다

예수 믿고서도 나만 편하고 나만 성공하고 나만 축복받고 내 자식만 잘되기를 바란다면 결코 누룩이 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교회에 모여 있어도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아니, 그 가정도 변하지 않는다.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는 누룩이 되려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 성품도 생각도 행동도 변해야 한다. 어떻게 변해야 할까?
 
누룩은 밀가루 반죽에 섞이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누룩이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빵이 돋보이게 된다. 누룩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것을 헌신이라고 한다. 누룩이 자기 자신을 밀가루에 헌신했다. 반죽이 부풀어 오르도록 빵이 돋보이도록 자기 자신은 감추며 헌신했다. 그래서 누룩의 삶은 헌신이다. 나를 희생하는 헌신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군림하신 것이 아니라 헌신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며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다. 예수님의 헌신으로 온 세상에 구원이 임했고, 예수님의 헌신으로 천국이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누룩 그 자체이셨다. 
 
하나님의 사람은 천국의 통로다. 하나님의 사람이 누룩으로 살 때 세상이 천국으로 바뀐다. 하나님은 우리가 누룩이 되기를 원하신다. 혼자라고 실망할 필요없다. 나 혼자만 헌신한다고 불평할 필요도 없다. 남 모르게 헌신했다면 그 사람이 누룩이다. 그 헌신된 한 사람, 하나님을 보여주는 그 한 사람이 누룩이다. 그 한 사람으로 주변이 변하고 축복을 받게 된다. 그 한 사람의 누룩이 바로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blog.daum.net/goodseed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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