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 돌아 온 영화감독 이장호 장로

나의 영화엔 신앙고백이 녹아 있습니다

글|송기태, 사진|권순형 | 입력 : 2014/07/28 [11:13]
‘침묵’ 그리고 ‘시선’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던가? 기독교의 역사는 피의 역사이고, 순교의 역사이다. 불신자들은 죽어 있는 성도들을 우러러보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핍박한 것이 교회사의 흐름이다.
▲ 올해 70세인 이장호 감독이 19년간의 공백을 마치고 새로운 영화 <시선>으로 돌아왔다.     © 크리스찬리뷰

불같은 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신앙은 ‘개런티’가 되지 않은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로운 때에 경건하게 예배하고, 뜨겁게 기도하고, 온 맘과 정성 다해 찬양하는 것으로 ‘신앙의 보증수표’를 남발하기엔 이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얼마든지 가식으로, 심지어는 옆에 앉은 사람에게 사기 치기 위해서도 그런 연극쯤은 ‘식은 죽 먹기’로 해내는 것이 현대교회의 풍경화이다.
 
그러나 신앙의 진수는 생명이 경각에 달린 위협과 위험 속에서 우러나게 되어있다. 필자는 신학생 시절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역사소설가인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몇 번이나 읽었다. 보기 드물게 ‘배교자의 심층심리’를 잘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일본 선교사로 떠난 존경하는 신학교 은사의 배교와, 배교 권유, 극한 고문 등으로 갈등하는 두 제자의 갈등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을 보며, 주의 종이 고통당할 때 그분의 ‘침묵’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오래토록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 이장호 감독의 하나님께 바치는 영화 ‘시선’은 지난 4월 언론시사회 이후 뜨거운 화제작으로 부상했다.     © 이장호

‘시선’으로 답변하는 ‘침묵’
 
<별들의 고향>(74), <바람 불어 좋은 날>(80), <낮은 대로 임하소서>(82) 등으로 관객 동원의 마디더스 손으로 유명한 영화감독인 이장호 장로의 19년 만의 연출 복귀작, <시선>은 그 ‘침묵’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과도 같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해외 선교 봉사활동을 떠난 9인의 한국인이 극한의 피랍 상황을 겪게 되며 갈등하는 모습을 통해 종교적 신념에 대해 뜨거운 질문을 던진다. 세속적인 통역 선교사 조요한, 그리고 이스마르를 찾은 8명의 기독교인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이야기다.
 
<시선>은 2007년 아프카니스탄에서 샘물교회 선교봉사단이 탈레반에 의해 납치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앞서 말한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나오는 배교에 대한 신앙인의 갈등을 접목시킨 영화다.
 
통역을 겸한 현지 선교사 조요한(오광록)은 목사와 장로 부부 그리고 네 명의 남녀로 이루어진 선교봉사단의 안내를 맡고 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오지에서 이슬람 반군에 의해 납치되자 죽음의 위협 앞에서 선교단원들의 실상과 신앙은 그 밑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유 장로(박용식)는 함께 동행한 자신의 부인 송 권사(김민경)에게 평생 폭력을 휘두르는 폭군이었음이 밝혀졌다. 송 권사는 선교여행이 끝나는 대로 한국에 돌아가 이혼할 것을 결심한 상태였다. 유부남인 상태에서 다른 선교단원과 외도하며 임신까지 이르게 한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것도 납치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는 현지 선교사 조요한의 과거와 현재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겉으로는 선교사지만 그는 한국에서 온 선교단을 인솔하며 현지식당에서 커미션을 받는 등 적당히 뒷돈을 챙기는데 주저하지 않는 세속적 인물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배교자인 줄로만 알았던 조요한이 이번에는 거꾸로 매달린 채 피를 흘리며 순교하는 반면, 다른 선교단원들을 살리기 위해 구 목사(남동하)가 배교에 이르는 모습에 있다. 이것은 관객이 예기치 못했던 뒤바뀐 역할이었다.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만한 세속적인 선교사는 이슬람 반군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반면에 구 목사는 영화 초기에서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줄 것만 같았지만, 영화는 그 반대로 간다. 조요한의 순교와 구 목사의 배교. 그러나 하나님은 순교의 시간에도 배교의 순간에도 침묵하셨다.
 
▲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장호 감독의 젊은 시절.     © 이장호

혼자 순교하기로 결심하는 일보다 어려운 것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배교하는 일이다. 앞의 조요한의 배교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구 목사의 배교는 철저히 타인(교인)과 하나님의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래서 감독은 이를 ‘거룩한 배교’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서 일본의 그리스도인들은 배교의 표시로 예수님의 형상이 그려진 동판을 발로 밟고 가는 것을 명령받는다. 영화 <시선>에서 이슬람 반군은 한국의 구 목사에게 성경책을 칼로 난도질하면 다른 인질들을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성경책을 찢는 일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애에 빠진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온 편지를 단순히 종이에 쓴 손 글씨로만 여기지 않고 가슴 속에 고이고이 간직하는 모습에서 배신의 행위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은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이 ‘침묵’하셨기 때문에 배교를 한다고 하지만, 배교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침묵’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 가슴 아프게 지켜본 그분의 ‘시선’이 있다.
 
▲ 지난 4월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이장호 감독. 이 감독은 본지 발행인의 초청으로 이달 말 간증집회 인도차 호주를 방문한다.     © 크리스찬리뷰

그분의 ‘시선’을 느끼는 신앙고백
 
신상옥, 유현목, 임권택 감독과 더불어 한국영화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노장 이장호 감독의 고백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겸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장로는 <낮은 데로 임하소서>로 통한다.
 
안요한 목사의 삶을 토대로 쓴 이청준의 장편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시각장애인인 안 목사의 삶을 다루면서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리워져 있었던 장애인과 도시빈민을 향한 사역의 필요성을 보여준 뛰어난 작품이다.
 
이 장로의 신앙생활은 이 시기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열정이 영화로 표현된 것이 아니란 뜻이다.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사회비판적 시각을 바탕에 깔고 있는 가운데 영화를 제작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영화는 원작소설을 영화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해석과 표현에 있어서 감독 자신의 신앙적 언어를 충분히 숙성시켜 스크린에 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선>은 다르다. 숙성된 신앙은 자신의 과거에 대한 반성을 낳았고 하나님 앞에서의 반성은 새로운 창작의 열정으로 승화되었다. <시선>은 그가 <천재선언> 이후 19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작품으로, 명실상부 21세기의 한국 기독교 극영화가 어떤 것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현대 한국기독교인의 현실을 날카롭게 꿰뚫는 통찰력과 교회문화에 대한 이해가 비판적 관점에서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신앙의 훈련을 겪으면서 체득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자신의 고유한 영화 언어로 풀고 있는 것이다.
 
<시선>의 모티프인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 속에서 그는 “어디까지가 사람의 시선이고 어디까지가 하나님의 시선인지 알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순교자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파송되었던 샘물교회 선교단원들의 절박한 마음을 담은 노트도 참고했다고 한다.
 
<시선>이 오래도록 진한 여운이 남고, 관객들의 사랑을 받기 원하는 그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잠깐의 시간 동안 주목받기보다, 긴 시간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길 원한다고 했다.
 
“한꺼번에 왕창 관객을 동원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작은 시작이지만 시간을 오래 끌면서, 좀 더 욕심을 내자면 10년, 20년, 30년 동안 사랑 받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유행하는 오락 영화들은 관객을 많이 몰고는 잊혀지잖아요. 하지만 <시선> 같은 영화는 관심 있는 이들이 보기 시작하면 해마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 이장호 감독은 1974년 28세에 <별들의 고향>으로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사진은 당시 포스터.     © 이장호

다음은 본지와 열린문교회 공동 초청으로 호주 순회 간증집회를 앞둔 그와 이메일로 나눈 일문일답이다.

- 19년 만의 복귀 소감은 어떻습니까?

“제작 완성은 작년 2013년이어서 18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개봉이 금년 2014년 부활주간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영화입니다. 그동안 저의 죄를 오래 참으시고 광야로 내보내시어 하나님의 메시지를 깨닫도록 단련시키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직 하나님 홀로 영광 받으시기 바랍니다.
 
19년 전에 제가 <천재선언>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영화의 첫 장면에 붕괴된 성수대교가 나와요. 강물 속에 박혀 있는 붕괴된 부분을 1년 동안 방치해뒀었거든요. 그 옆 고수부지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분장한 김명곤 씨가 막 이 땅에 내려온 천사 연기를 해줬어요. 빨간 텐트를 쳐놓고 앉아서 고즈넉이 성수대교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개봉을 하는 날이 목요일이었는데 피카디리 극장에서 당시 야당 당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전부 관람하기로 약속을 잡았어요. 그런데 수요일 날 영화 홍보차 방송국에 가는데 라디오에서 갑자기 폭발적인 뉴스가 쏟아지는 거예요. 무슨 일인가 들어보니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영화 개봉 전날 서울이 전부 쑥밭이 됐죠. 당연히 영화보다 더 급박한 문제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잖아요. 그때 참 어이가 없고, 어리둥절하더라고요.
 
이번에도 19년 만에 영화를 만들어서 똑같이 목요일에 개봉을 하려고 하는데, 배급회사들이 서로 경쟁하다가 수요일에 개봉하게 된 거예요. 수요일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 뉴스를 보는데 배가 하나 가라앉더라고요. 처음엔 그저 작은 사건인 줄 알았어요. 근데 나가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엄청 심각한 일인 거예요. 날이 갈수록 더 심각해져 가는데 그때가 고난주간이었거든요. 전 교인이 새벽기도에 나와서 펑펑 울면서 ‘하나님, 기적을 베풀어주셔서 300여 명의 실종자가 생존자가 되어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점점 상황이 어려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아, 하나님이 침묵하시는구나’하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어요.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든 게 <시선>이라는 영화의 제일 마지막에 선교팀 모두 목에 밧줄을 걸고 순교 직전에 있을 때 목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울면서 ‘지금 침묵하십니까?’, ‘침묵이 응답이십니까?’라는 이야기를 해요. ‘이 영화와 19년 전 영화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수수께끼를 주시는구나.’ 세월호와 함께 영화 <시선>도 침몰하는 걸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 기독교 영화를 만들도록 변화시키셨는데 의외의 일들로 수수께끼에 빠졌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 <시선>의 주요 신앙적 내용을 소개해 주시죠.
 
“사람은 보이는 것만 추종하고 보이는 것에만 시선을 고정시키는 존재로서 이것들은 잠깐이면 사라질 것들이고 그렇게 곧 스러질 것들에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사람들은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의 시선과 하나님의 시선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 <시선>은 이슬람 지역에 단기 선교 봉사를 왔던 어느 교회의 선교팀이 우연찮게 이슬람 무장 반군에게 피랍되면서 삶과 죽음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시련과 고난의 이야기입니다.”
 
- 장로님의 어린 시절부터 신앙입문, 영화와 관련한 소소한 에피소드도 들려주십시오.
 
“저는 어릴 적부터 수학을 싫어했습니다. 공부에는 열등생이었죠. 수학에는 숫자를 곧 잊어버려 지금도 ‘성경구절 몇 장 몇 절’하고 성경구절을 찾으려다 보면 숫자를 잊어버려 성경구절을 못 찾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음악은 좋아했습니다. 학교 밴드부에 들었고 성악가인 고모로부터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긍정적이신 분이셨고, 제 곁에는 아버지가 꼭 계셨습니다. ‘너는 커서 큰 예술가가 되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셔서 힘을 얻었습니다. 나중에 아버지께서 저를 ‘장호는 폐품이었는데 아버지인 내가 재활용했다’고 평을 하실 만큼 아버지에 의하여 오늘의 제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1980년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을 개봉하면서 정말 수상한 바람(?)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성령의 바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해 갑자기 주변에서 예수를 믿으라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속으로 ‘웃기는 사람들의 맥 빠진 권유’라고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개봉하는 명보극장의 광고책임자 김정률 씨의 권유가 있어 서비스하는 심정으로 극장 신우회의 성경공부에 응했습니다.
 
그날 고 하용조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갑자기 지갑 속에 있던 부적이 부끄러워져 신우회 사람들에게 고백하고 부적을 꺼내어 불에 태웠습니다. 역시 몰래 극장 스크린 뒤에 붙였던 부적도 그날로 떼어냈습니다. 모두 흥행이 잘되라고 점쟁이가 만들어 주었던 것인데 다 없애버렸지만 흥행이 잘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영화를 본 목사님 한 분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을 만나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허병섭 목사님이란 분인데 앞으로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 달라며 좋은 영화는 자기들 목회자가 하는 일을 한다고 당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말에 감동하여 드디어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을 읽기보다 교회에서 교인들과 교제에 재미를 붙일 뿐 신앙이 성장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내가 크리스찬이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생각지도 않았던 영화 <낮은 데로 임하소서>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청준 씨의 전기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지만 아직 성경말씀과 찬송에는 정말 준비가 안된 초신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마다 찬송가를 주제가처럼 삽입했지만 내 자신 죄에서 벗어나지는 않은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나의 조감독이었던 배창호 감독과 이명세 감독은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습니다. 배창호 감독은 나와 함께 허병섭 목사의 달동네에 있는 지극히 작은 교회를 섬겼습니다만 저는 여전히 신앙인의 삶과 거리가 먼 죄악의 삶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시험에 빠졌고 돈에 집착하여 에로틱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것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 교회를 멀리했고 멀리한 만큼 극도의 타락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자위적 변명은 가소롭게도 정치적으로 가장 안티는 섹스라고 안개막처럼 양심을 가리면서 말입니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흥행실패와 끔찍한 교통사고, 이어지는 철저한 경영실패와 내리막길 그리고 혼란 속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방황, 결국은 다시 교회를 나가게 되었지만 죄는 여전히 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경공부로 들어갔습니다.
 
가책과 함께 회개도 있었지만 이미 너무 많은 죄의 후유증이 씻어지지 않은 그대로였습니다. 그 시절 마지막으로 영화를 만든 것이 삼풍백화점 붕괴와 함께 참패를 겪고 1995년 후로 영화는 나에게서 멀리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인내가 많으신 하나님께선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마지막으로 슬럼프라는 광야 훈련으로 저를 내몰아 광야 교육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게을렀습니다. 오래 걸렸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래도 지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끈기는 저를 드디어 변화시키셨습니다.”
 
- 그럼 영화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까?
 
“저는 영화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대학시절 아버지가 영화를 하라고 권유해서 소위 영화판에 입문했습니다. 신상옥 감독님 밑에서만 8년 연출부 생활을 하고 친구 최인호의 인기소설 <별들의 고향>으로 28살에 쉽게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운이 좋았다고 할까요. 그러나 너무 쉽게 얻은 행운이어서 그 행운 관리를 신중하게 다루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데뷔하자마자 2년 만에 대마초 연예인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한 활동 정지명령을 받아 영화를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4년 만에 다시 활동할 수 있어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을 만들어 재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운보다도 불행이 인생에서 꽤 유익하고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 첫 작품인 <별들의 고향> 성공적인 데뷔 후 감동도 컸을 터인데요.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물거품에 지나지 않은 영광이었지만 한국영화역사 속에서 새로운 세대의 성장과 등장을 알리고 식민지 세대의 문화와 구별되는 해방이후의 민주적 문화를 알리는 신호탄의 역할을 했습니다.”
 
- 이제까지 영화를 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배우들을 꼽는다면요? 또 어떤 면에서 꼽을 수 있습니까?
 
“급한 경제 성장 속에서 사회변화가 극심했던 한국 현대사. 그 가운데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은 그때그때 사는 모습이 몹시도 달랐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은 변화가 없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유행을 타지 않아 공감대가 크고 오래 지나도 괜찮은 클래식으로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류사회의 모습은 유행에 민감하여 금새 시간이 지나면 유치하고 촌스러워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그런 점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소외를 그렸던 영화들이 비교적 안정된 모습이고 그런 영화들 속에서 열연을 했던 연기자들로 박원숙, 김보연, 안성기, 박정자, 이보희, 김명곤 등이 빛이 났던 것 같습니다.”
 
- 여러 해 동안의 침묵 기간에 이룬 일들과 활동도 들려주십시오.
 
“27년간 긴 슬럼프로 내리막길을 지내오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었던 어려움과 고통, 소외감과 수치심은 정말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입니다. 차츰 깨닫게 된 것은 이런 슬럼프가 결과적으로 욕망으로만 치달려온 저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참한 모습으로 내버리지 아니하시고 붙잡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회를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못난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학부모들의 덕으로 월급 받고 사는 생활을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사실 생활은 오히려 영화를 제작할 때보다 안정되고 편안했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탄생시키고 각종 방송에 고정으로 출연하면서 오페라 연출과 신상옥 감독기념사업회 등 여전히 겉보기엔 바쁘고 화사한 길을 분주하게 걷는 것처럼 행세했습니다.”
 
- 영화인생을 살아오면서 신앙과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무조건 순종인데, 그게 힘들어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말은 아주 쉽고 순종하기만 하면 실천도 아주 쉬운데 저에게 어려운 것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는 이 말씀대로만 살면 어렵지 않은데, 저는 말끔하게 모든 것은 낱낱이 아뢰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종이 어려워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 영화인생(감독, 배우 등)을 살고자 하는 후배 신앙인들에게 부탁의 말씀은...?
 
“지금 저는 사명감을 갖고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1945년생 해방둥이로 태어나 한국 현대사의 거친 풍랑 속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변화하는 청소년 시절과 장년의 세월을 언제나 과도기의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왔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과 피난, 서울 탈환 분단, 그리고 419 학생혁명, 516쿠테타, 군사정권의 독재와 광주민주화 운동,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경제 성장, 마침내 IMF 경제 붕괴까지 언제나 태풍과 풍랑 속에서 지내온 세대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야말로 분단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데도 태평세월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이방인처럼 보면서 고령화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의 의미는 무엇일까? 은퇴로 밀려나 있으면서도 아직 해야 할 일이 태산 같은 의무와 사명감 속에서 이대로 대한민국을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과 결연한 의지로 이제나저제나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세월호의 침몰 사건의 비참한 인재가 일어났습니다.
 
알 수 없는 분노와 함께 정말 우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책임감과 양심의 가책으로 눈물을 흘리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말 이제는 기독교인이 이대로 침묵을 지킬 수 없습니다. 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하는 우리 기독인은 이제 정말 이기심에서 환골탈퇴의 의지와 용기와 결단으로 우리 사회의 악을 도려내기 위한 수술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영화를 하나님의 사역으로, 수술 도구로 준비하는 후손들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 이장호 감독은 길카페교회 장로로 시무 중이며, 매주 토요일 청계산 입구에 있는 교회 앞에서 섹소폰을 불며 노방전도를 한다.     © 크리스찬리뷰

독서로 터널을 나오다
 
누구든지 캄캄한 터널 같은 날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상옥 감독님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하는데 정말 막노동하듯 살아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신상옥 감독님이 역사극을 많이 하니까 의상, 소품 등 연출부가 챙겨야 할 일들이 어마어마한 거예요. 옛날에는 소품부가 막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과 함께 노동자 같은 신세에서 참 어려운 시간들을 보냈어요. 마치 나는 폐인인 것처럼 생각되고, 미래도 어둡게만 보였습니다.
 
그때, 영국 문예비평가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라는 책을 읽게 됐어요. 그 책에 모든 인류 문화의 새로운 경지로 돌파하는 힘은 아웃사이더에 의해 이뤄진다고 해요. 아웃사이더들은 인사이더 세계에 적응을 못하고 자기를 폐인이나 낙오된 인간, 미친 사람으로 인류에 공헌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으로 살다가 오히려 그것이 새로운 시대의 돌파가 된다는 걸 보면서 긍정적인 인생관을 갖게 됐어요.
 
제가 좀 질서를 지키고 조직적으로 잘 적응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문제가 있지만 그것이 또 다른 나의 자신감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청년 시절 톨스토이의 작품들이 그의 인생을 살찌우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하였다.
 
끝으로 그는 영화란 한마디로 ‘물과 불’이라고 하면서, 신앙의 신조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음 달, 호주를 방문하는 그의 얼굴을 맞대고 더욱 풍성한 대화가 오가기를 기대한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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