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는 모든 길의 출발입니다

국제전도훈련원장 하도균 교수

글|송기태, 사진|권순형 | 입력 : 2014/07/28 [11:26]
▲ 전인격적으로 전도가 체질화된 지식인, 시간만 나면 어김없이 전도를 떠나는 하도균 교수.     © 크리스찬리뷰

전도가 전부인 전도학 교수

“붕어빵엔 붕어 없고/새우깡엔 새우 없고/빈대떡엔 빈대 없고/개떡엔 개가 없고/곰탕엔 곰이 없고/칼국수엔 칼이 없고/쥐포구이엔 쥐가 없네.”(안도현, ‘없네’ 전문)
 
이 동시를 ‘신학교 풍경’으로 변용시켜 보면 어떨까?  
 
“윤리학 교수에겐 윤리가 없고/선교학 교수에겐 선교가 없고/전도학 교수에겐 전도가 없고 /성경 교수에겐 성경 없고/신학 교수에겐 신학 없네” 정도쯤 되지 않을까? 지와 행, 즉 앎과 삶, 신학과 경건의 이원론을 보여주는 풍자라고 해두자.
 
물론 다 그런 것이 아니다. 이번 달 초대석에 초대된 하도균 박사(서울신학대, 전도학 교수)에게 이 말을 하면 심각한 ‘명예훼손’이 될 터이다. 그만큼 그에겐 처음부터 끝까지 ‘전도’였다.
 
“전도란 한마디로 ‘거지가 다른 거지들에게 빵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는 이론만의 교수가 아니었다. ‘우리 시대의 바울’처럼 전인격적으로 전도가 체질화된 지식인이었다. 시간만 나면 어김없이 전도를 떠나는 그는 10년 후, 20년 후의 꿈도 동일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이지만, 그때에는 사도 바울이나(신약의 최고의 전도자), 사도 요한(예수님의 제자 중 자연사한 유일한 사람으로 초대교회의 기둥)처럼 영적인 아비의 상태에서 성경이 말하는 거장이 되어질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전도는 그에게 결코 놓지 못할 뜨거운 사명이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저는 오늘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복음을 전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실천하며 살렵니다. 전도자에게 종말이란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을 만날 고대하는 날이며 끝이 아니라, 새로운 영원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땅을 살아갈 때 영적인 나그네라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제가 말씀드린 대로 종말을 두려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주님만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생애 최고의 의미와 행복은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기에,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전한 ‘전도자 예수님’의 삶이 가장 선명한 모델이기도 하다. 그에게 복음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기 때문에 생각할수록 뜨거워지는 용광로이기도 하다.
 
▲ 열린문교회에서 개최한 십자가 컨퍼런스에서 말씀을 전하는 하도균 교수.                    © 크리스찬리뷰

태생 목회자

그가 ‘전도인’이 될 숙명(‘예정’이라 해도 좋겠다)은 태중에서부터 이미 배태되었다.
 
“저희 아버지께서 성결교 목사(하영일, 제천동신성결교회)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임신하셨을 때 태아의 위치가 거꾸로 섰기 때문에 낳는다면 산모와 태아, 둘 다 죽을 수 있기에 의사들은 낙태를 유도했다고 해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전치태반’이라는, 태아의 위치가 잘못된 경우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어머니와 저 모두, 아니면 둘 중에 하나는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이때 부모님께서 믿음으로 저를 헌신하면서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주시면 하나님께 헌신하겠습니다.’ 하여 기적적으로 생명을 주셨지요.
 
그래서 저는 저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나님께 헌신되었고, 부모님께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순종하며 받아들였습니다. 그러했던 저였기에 어려서부터 목사가 된다는 꿈을 놓쳐본 적이 없었으나, 장래 희망란에는 ‘목사’(신학자)라고 기입하여 신학자의 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품었던 ‘소중한 꿈’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어차피 신학하고 목사가 되려면 좀 넓게 배워보려는 마음도 일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고등학교까지 진학했다.
 
“그런데 대학 진학 당시 부모님과 갈등을 겪게 되었지요. 저는 목사가 될 것이 분명하기에 넓은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지원하였는데 합격하게 되었지요. 아버지는 그곳이 ‘자유주의 신학의 본산지’라고 생각하셔서 만류하셨지만, 저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자유주의 신학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넓은 곳에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컸었지요.
 
아버지는 주변의 신학대학교 교수님들께 조언을 구하신 뒤, 너무 축하할 일이라는 말씀을 들으시고, 제가 연세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교수님들께서는 넓은 곳에서 공부하고 대학원은 교단으로 와서 공부한다면 문제가 없을뿐더러 더 유익할 수 있다고 하셨지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고, 또 저는 계획했던 대로 연세대학교에서 4년을 폭넓게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학문이 무엇인지 토대를 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학풍의 중요성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던 만큼 자유주의신학자들도 없었습니다. 최고의 실력 있는 교수들의 가르침 밑에서 배울 수 있었지요.”
 
내려놓음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교단 신학교인 서울신학대 신대원에 입학했다. 이미 신학을 공부하고 다시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그에게는 너무도 재미없는 시간이었다. 빨리 유학하여 신학자가 되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던 그는 학점관리를 잘하면서 유학준비에 매진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그에게 인생을 바꿔놓는 전환점이 또 하나의 숙명처럼 다가왔다.
 
“5차 학기에 ‘제자훈련의 이론과 실제’라는 수업을 통하여 저의 스승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 과목을 가르치셨던 학자는 홍성철 교수님이십니다. <주님의 전도계획>의 저서로 유명한 로버트 콜만의 제자로, 한국에 전도학을 소개하신 1세대 전도학자이시며, 세계적으로도 전도학자로 저명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수업을 듣다가 머릿속에 있는 복음의 개념, 머리에 갇혀있던 진리에 대한 내용들이 가슴으로 내려와 깨달아지며 한 학기 내내 울면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사람’만 될 수 있다면 어떠한 것도 헌신할 수 있다고 각오하였지요. 그러한 생각과 결단이 제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제 인생을 변화시킨 전도학을 그 스승 밑에서 공부하고 싶었지요.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독교의 진리에 크게 매료된 것입니다.”
 
‘머릿속에 있는 것과 가슴속에 있는 것이 이렇게 다를까?’를 알게 된 그는 또 하나의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가서 공부하기보다 스승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 이 분이 저명한 학자이니 유학을 접고 이분 밑에 공부하면 어떨까?’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래서 유학을 포기하고 그분 밑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과 같았습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다른 것이지요. 그런데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유학을 포기하고 내려놓으며 미래를 알 수 없는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모험이었고, 또한 헌신이었습니다.
 
그 후 그분 밑에서 10년을 제자훈련을 받으며 공부하고 지내왔습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복음, 십자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신학자의 지망생으로 유학을 포기한 것은 한국의 풍토에서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그의 고백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제 인생의 큰 실패는 경험치 못하였지만,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문의 세계에서는 사람을 평가하고 쳐다볼 때 먼저 그 사람의 학위를 가지고 말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들어가는 부분이 대부분입니다. 그 사람의 실력이 어떠한가보다는 학위를 가지고 먼저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한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제가 내려놓은 부분이기에 이제는 그것까지도 저의 자랑이 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익한 점도 많았다. 미국에서는 학문만 하는데 비해, 그의 스승 홍 교수는 박사과정 지도 때에 개인전도를 강조했고, 필드에서 전도훈련을 했다. 좋은 스승을 만난 그는 아직 신생학문이었던 ‘전도학’의 체계를 세우는데 크게 일조했다.
 
“전도학이라는 학문이 생소하게 생각될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시작되었고, 학문의 자리에 들어선 것이 오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앙인들에게 전도라는 것을 오해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전도는 사람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올바른 정의는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며, 그 영혼을 세워나가 영적 재생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실천신학이 발달하지 않은 유럽 쪽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그 학문이 발전되어 이제는 그 후학들이 자국으로 돌아와 전파하고 있는 형편이며 한국, 캐나다 등지에서도 전도학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 복음의 본질은 십자가를 지라는 것, 나와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하도균 교수.     © 크리스찬리뷰


전도는 본질회복이다

미국발 번영신학의 영향으로 최근 한국교회가 많이 피폐해지고,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그는 아파했다.

“복음의 본질은 십자가를 지라는 것인데, 나와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죽어야 삽니다. 그런데 번영신학이 교묘하게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은데 십자가 지려는 사람은 적어졌습니다. 진리가 무시되니 껍데기만 남고, 형식만 남게 되었지요,”
 
그는 전도가 기독교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살리는 학문이 되기 위해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깊이 알고, 핵심가치를 알리고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반 회사도 누가 소개를 가장 잘합니까? 그 회사의 핵심가치를 모르면 임팩트하게 요약해서 상대의 상황에 맞게 이야기할 수 없지 않습니까? 전도도 마찬가지지요. 그냥 ‘교회 나와 봐, 이번 집회 강사가 좋으니 한번 와봐’하며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만이 전도가 아닙니다. 갓 출생한 영적 어린아이부터 성장하여 복음과 연관되어 구원 양육 훈련되는 일련의 과목들을 가르치는 것이 전도학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것, 그 사람이 영적 재생산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도와주는 것이 전도학이지요.
 
좀더 확장된 전도의 개념으로는 1차적인 전도, 2차적인 전도를 들 수 있지요, 1차적인 전도는 예수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2차적인 전도는 신앙이 성장하려면 또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성결, 성화에 이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했을 때 일어나는 반응은 구원, 성장, 성화 아닙니까?”
 
그는 전도는 기독교의 본질회복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지만, 기독교에서 모든 길은 전도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본질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예수, 십자가 복음이 있어야 하는데, 본질이 사라지면 비본질적인 것만 남습니다. 비본질만 남게 되면 교권, 정치, 재정 등만 남아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잃어갑니다. 그래서 전도학을 통해 십자가 본질을 되찾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변화 바꿀 수 있는 힘은 세상과 다른데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르게 살 수 있는 힘은 기독교의 본질 안에 있습니다. 그것이 외면되거나 지식으로만 이해되고 가슴으로 내려오지 않으면 교회가 세상과 다른 부분이 없습니다. ‘기독교다움’이란 게 없다면 결국 교회가 숫자 놀음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만 많이 모으는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상에 던져줄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 교회 있어야 할 본질 추구, 그 십자가를 전하면서 힘을 잃어가는 교회가 예수 십자가 교회의 본질을 찾아가며 새롭게 갱신하는 게 전도입니다.”
 
전도학 교수로서 그는 어느 시대든지 교회가 본질에서 멀어지면 형식만 남는 힘이 없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진단하며, 지금 한국교회도 그러한 상황이라고 했다.
 
“많은 교회들이 문제에 연루되어 있으며,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본질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가 이것을 증명해 줍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교회는 기독교의 본질 중의 본질인 십자가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위에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힘은 세상과 다른 삶의 모습과 방식에 있습니다. 그 핵심이 십자가 신앙이구요. 그렇기에 이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십자가 복음을 가장 필요로 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십자가 복음은 어느 한 사람에 의하여 외쳐지기보다는 모든 교회와 모든 목회자,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외치고 경험해야합니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 핵심은 전도현장에서나, 집회 때마다 중점적으로 ‘예수, 십자가, 부활’을 증거한다.
 
“복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만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성을 동원하여 복음의 내용을 더 상세히 설명하며 명료화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또한 그것을 삶에 경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전도자

전도는 이론이 아니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끊임없이 현장에서 배우고 익힌다. 학기 중에는 박사과정 7명과 석사과정 15명의 학생들과 함께 교회에서 전도훈련을 한다. 한 교회에서 위탁하면 10주 과정으로 이론과 실제를 체험하게 하는 훈련이다. 그리고 시간만 되면 언제든지 필드로 나가서 전도한다고 했다.
 
“계속해서 전도하지 않으면 영적인 힘을 잃어버립니다. 이론만 남은 전도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교회가 모르는 것, 교회의 아픔을 가장 체감할 수 있는 곳이 전도현장입니다 교계에 어떤 문제가 하나 터지면, 교회에서는 또 일어나나 하고 잘 모르는데, 전도현장에서는 교회가 체감하는 수십 배를 경험합니다. 
 
‘당신들이나 잘 믿어라.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왜 그 사람들이 타락했느냐?’고 따질 땐, 아무리 복음을 논리적으로 전하려 해도 안됩니다. 교회 안에서만 일들이 일어나다 보니, 교회는 결국 필드인 세상을 잘 모릅니다.”
여기서 그의 애절함과 답답함이 묻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전도방법을 물어봅니다. 한국교회가 왜 이리 전도가 안되느냐고들 하지요, 답은 똑같습니다. 교회가 전도 안 되는 이유는 사람을 데리고 오려고만 하니 안됩니다. 위대한 전도의 열매는 초대교회에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는 어떤 전도의 방법이 없었습니다. 예수 믿는 그 자체가 고난인데, 그럼에도 그렇게 뜨거웠던 것은 복음의 핵심에 대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맛보지 못했던 것 전해주는 본질적인 것이 되살아나지 않고,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전도가 안됩니다. 그렇게 전도하다 지친 사람을 다시 일깨워 다시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전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교회 건강과 복음전도는 밀접합니다. 목사님들이 마음이 조급해 사람 끌어모으는데 초점을 두는데, 이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방법이 없어도 전도는 가능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초대교회가 가르치고, 외친 가장 폭발력있는 메시지였습니다. 예수가 내 삶에서 구원해주신 메시아적인 사건들이 경험되었기 때문에 그 복음을 전하니 폭탄이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예수가 내 삶에 개입하여 일어난 사건과는 동떨어진 것, ‘우리 교회 한번 나와보세요’ 하는 전도는 힘이 없어집니다. 복음의 깊이를 측정하고 먼저 자신의 삶에서 누리면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도에 대한 열정으로 체계적인 전도훈련을 위하여 8년 전에 국제전도훈련원을 설립했다.
 
“국제전도훈련원은 주님의 지상명령을 삶의 현장에서 효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2006년에 시작하였습니다. 직접적인 훈련을 목적으로 신자들을 훈련시키는 장소입니다. 가장 큰 목표로는 세계의 성도들을 다시 복음 위에 강건히 세워 놓는 일이며 이를 위하여 매학기 ‘복음훈련학교’ ‘전도훈련학교’를 10주 코스(1주에 3시간 훈련)로 개강하여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캠퍼스에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복음무장사역을 펼쳐나가고 있으며(서울신학대학교에서 ‘기노스코’라는 동아리로 시작), 방학마다 선교지와 디아스포라 한인들을 방문하여 복음에 헌신하는 사역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들을 복음에 재헌신시키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최초로 전도전문잡지 ‘이반젤리즘’을 2006년부터 발행하여 현재까지 발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는 방학마다 ‘십자가컨퍼런스’라는 대형집회를 통하여 초교파적으로 한국의 성도들을 십자가로 무장시키는 사역을 감당하여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 시드니를 방문한 하도균 목사와 채경선 사모 부부.     © 크리스찬리뷰

전도는 삶이다

초보단계 10주 과정에서는 전도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삶에서 복음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것만 하면 전도하게 되더라는 것이 그의 임상경험이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가 본질적인 모습을 핵심가치만 제대로 된다면 전도가 됩니다. 어떤 가게에서 로또 복권 샀다면 그 가게는 저절로 홍보하게 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전도자가 먼저 복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그에 합당한 삶이 따라야 그 능력을 지속적으로 전할 수 있으며, 제가 전한 복음이 가짜라는 인식을 주지 않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복음을 전한 대로 살기 위하여 노력하며 그 결과 ‘예수를 닮아갈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도학은 그 본질을 다시 추구하고, 본질의 회복과 경험을 추구하는 학문이지만 학자들 사이에도 전도학에 대한 이해가 크지 않다고 하였다. 현재 한국에는 미국에서 전도학으로 박사학위하고 귀국한 교수들이 10명이 채 안되고, 학회도 한국실천신학회 전도학 분과로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서울신학대에서 전도자들을 양성해 내는 것이 큰 기쁨이기도 하다. 현재 그의 지도로 전도학 Ph. D. 과정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6명이고, Th. D. 과정을 하는 학생들이 2명, 그리고 Th. M.을 하는 학생들이 15명 정도가 될 정도로 많아졌다고 한다. 이들을 중심으로 그의 ‘브랜드’가 되다시피한 ‘십자가 컨퍼런스’가 준비되고 진행된다고 한다. 신대원 학생들은 ‘기노스코’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복음에 훈련시키는 일도 하고 있다고 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는 말씀을 늘 묵상하며,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의 찬송을 좋아하고, “복음에 빚진 자의 삶을 살자”는 좌우명을 가진 그는 마이클 그린의 <초대교회의 복음전도>를 일독하라고 권했다.
 
이번 시드니 방문하여 십자가 컨퍼런스와 신학교 강의를 한 그에게 시드니에 대한 생각, 시드니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들어보았다.

“시드니는 참 행복해 보이는 도시입니다. 광활한 땅에 그다지 많지 않는 사람들... 이것만으로도 한국의 어느 도시보다 외형적으로는 낫지 않을까요? 그러나 외형이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고 기반이 잘 다져져 있어도 사람들 자신의 내적인 모습의 변화와 갖추어짐 없이는 그리 행복해질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이러한 차원에서 시드니에 살고계신 성도들이 한국의 성도들보다 축복받은 한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익숙하고 친근한 고향을 떠나 낯선 이국의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나그네의 삶’이지요. 성도들이 구원을 받았을 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이 땅을 떠나 본향을 향하는 나그네가 되었다는 점인데,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이 중요한 정체성이 잊혀져갑니다.
 
그러니 성도들 자신들이 이 세상을 떠난 자이지만, 다시 이 세상을 주목하며 나그네임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되어지기도 하지요!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사람들과의 차이가 없어집니다. 교회가 힘을 잃어가는 것이지요. 다시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나그네의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의 목적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되고 그곳에서 기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유일한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영적 순례의 여정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시드니에 살고 계신 성도들은 이미 고향을 떠나신 분들이기에 스스로 나그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한국의 성도들보다도 많습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미래를 향한 한줄기 빛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회복시킬 수만 있다면, 시드니의 한인 교회들을 통하여 조국 한국의 교회들이 영향을 받고 회복의 그날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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