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 총회장 김대현 목사

가짜가 있기 때문에 진짜가 빛납니다

글|송기태, 사진|권순형 | 입력 : 2014/08/25 [11:31]
▲ 평생 목양의 길을 달려온 김대현 목사(대전한돌교회). 그는 지난해 9월 기침 제103차 총회를 이끌어갈 총회장에 선출됐다.     ©크리스찬리뷰

하나님의 보너스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우울하다. 청문회에서 보지도 못하고 돌아선 (장로) 총리와 장관후보들, 병상에 누워 있거나 감옥에 있는 재벌회장들……평생 호가호식하며 만인의 추종을 받으며 잘 살 것 같은 이단의 교주가 ‘구더기 옷’을 입은 채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이런 소식을 대하면서 보면서 문득 ‘잘 산다는 것이 뭘까?’란 의문이 든다.  이곳 이민의 땅에서 주위를 둘러봐도 우울하고 불안한 얼굴들이 많다. 뭔가 새로운 기운이 필요한 시점. 그때, 그를 만났다. 뭔가 소박하고, 이웃집 아저씨같은 부드러운 분위기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얼굴, 김대현 목사(대전 한돌교회 담임)이다. 평생 ‘목양외길’로 달려온 그에게 ‘총회장’이란 직책은 ‘하나님의 보너스’같다는 인상이 든다.
 
“74년도, 신학생 시절 청량침례교회에 총각으로 혼자 가서 6년을 목회했습니다. 그곳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들 셋도 다 낳았죠, 6년 만에 교회 건축하고, 7-80명 모여 안정될 때, 대전으로 새 교회를 개척하러 나왔습니다.”
 
그때가 80년대, 비록 한국 교회 ‘부흥의 시대’로 일컫는 때였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말처럼 쉽게 부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원칙을 지키며, 바른 목회의 길을 걸었다.
 
“아내와 4개월 정도 단 둘이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다른 교회 교인들 안받고, 전도하여 시작했습니다. 참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달려온 34년, 비록 대형교회라고 할 수 없는 400여명 성도 중 85%가 한돌교회에서 처음 예수 믿고 신앙생활 했으며, 직접 그의 손으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교회도 차근차근 성장하기 시작했다.
 
“예배당은 두 번 옮겼습니다. 96년도에 현 건물 준공했습니다. 97년도 그 지긋지긋한 IMF도 잘 헤쳐 나와서 빚도 다 갚았습니다. 그 당시 교회 지으려고 할 때, 빚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빚을 얻으려니 97년에 이자가 30-40/%로 막 뛰었습니다. 건축 예산이 11억 8천인데 성도들이 다 맡아서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심 없는 원칙 목회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교회를 침례교 재단 소속으로 한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던 그 당시 상황에선 큰 결단이었다.
 
“만일 교회가 개인 이름으로 되어 빚을 얻었다면 성도들이 아주 큰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감당하기 힘들지요,‘
 
그렇게 작은 것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원칙을 지켜온 그의 목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한 번 더 옮겨 지금은 대지 500평에 건평 750평으로, 10차선 도로변 높은 데 있다고 하였다.

도전과 변화

신학교 시절부터 ‘홀로서기 목회’가 체질화된 그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며 손으로 풀 베듯 하며 목회 현장을 달렸다.
 
“부목사 해본 적도 없고, 전도사 해본 적도 없고, 개척만 하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하고 실패한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침례교 목사로서 그저 영혼 사랑하고 침례주고 하던 것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아직도 배우고 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며 고군분투하던 그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50대 초반에 찾아왔다.
 
“2000년도에 곡예하듯 부도 위기를 넘기고 힘들게 교회를 완공했습니다. 숨을 돌릴만 한데 부산 침례병원이 위기를 맞았습니다. 부도가 날만큼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막 교회 건축으로 홍역을 치른 저에게 건축위원장직이 맡겨졌습니다. 교회와 병원 두 건물 건축 마치고 나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 당시 엄청난 예산을 세우면서 업자로부터 커피 한 잔도 얻어먹으면 안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런데도 노조에 의해 검찰에 두 번이나 고발당하는 어려움을 겪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완성했습니다. 병원을 준공하고 나니 교단에서 침례병원 이사장을 하라고 했어요.”
 
이때 그는 ‘안식’해야 할 때임을 알았다. 안식년을 얻어서 하와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와이에 도착한 그는 코나에 있는 YM 열방대학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적지 않은 ‘문화충격’을 받았다.
 
“열방대학인 줄 모르고, 그곳에 갔습니다. 마침 후원하던 장로교 선교사가 소개해서 간 곳입니다. 그곳에 대하여 뚜렷한 정보도 없었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입니다. 막상 가보니 선교단체라 ‘목사’라고 안 불러주고, ‘형제’라고 부르더군요. 그곳에 익숙해지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게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은혜를 감사하며, 회개하느라 울고, 나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 때문에 울고 하면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분노가 빠져나가고, 영적인 눈이 떠졌습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훈련을 마치고 귀국하니, 교회에서 소위 ‘난리’가 났다. 기도하니 교인들이 쓰러지고 하니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교인들 역시 문화충격이었다. 안수집사 부인들이 ‘목사님 하와이 가서 이상한 이단 되어 왔다’고 하면서 수군거리기도 했다. 그 역시 고민이 많았고, 심각한 갈등을 했다. 그리고 결단했다.
 
“제 맘에 확신이 있고 좋은데 성도들의 반응이 상반될 땐 정말 힘들지요. 안맞는 성도들이 떠나든지, 제가 안하든지 둘 중에 하나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이후 목회방향을 치유사역으로 정했습니다.
 
이전과는 목회가 너무 다른 방향으로 나갔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삶과 더불어 치유도 일어났습니다. 교회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영적인 체험은 있었으나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논리가 부족하고 궁색해졌습니다. 그래서 스위스로 가서 상담학을 공부했습니다. 거기서 너무 좋은 경험을 했고, 무엇보다 저의 사역에 대해 논리가 세워졌습니다.
 
사실 교회에서 상담하고 나면 얼마 후에 거의 떠납니다. ‘속’을 다 보였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상담하면 자꾸 가르쳤지만, 지금은 공감하고 들어주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합니다. 그랬더니 상담하면 위기의 가정들이 회복되고, 치유 받고, 좋은 일꾼들이 되더군요, 그래서 상담은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안아주는 것인데 무얼 가르치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목양의 현장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행복한 목회’ ‘욕심 없는 목회’가 되었다.
 
“교인들이 갈등하다 떠나면 축복해서 보내줍니다. 다른 교회도 축복해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 총회장 당선증을 받아 든 김대현 목사     © 침례신문

교단의 부름

그렇게 재미있고 행복한 목회를 하던 그에게 뜻있는 동역자들이 교단 총회를 위해 일하도록 채근했다.
 
“그 성화에 못이겨 출마했다가 한 번 떨어졌습니다 이번에도 아내가 엄청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목숨 걸고 아내가 반대하는데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6월 말쯤, 저 나름대로 세 가지 조건을 세웠습니다. ‘총회장이 돼도 예배 한 번 빠지지 말자, 교회 돈 한 푼도 쓰지 말자, 나나 아내를 앞세우지 말자’ 그래도 마음속에 해야겠다는 소명이 있었습니다. 같이 일한 사람들이 등록비 3천만 원을 모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교회에서 2천800만 원을 통장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등록비 내고 당선되었습니다.
 
지난번 떨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으로 시편 27편 5절 말씀(‘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총회장 되고 나서는 로마서 8:37 말씀(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엄청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임원들에게 ‘나보다 당신들이 훨씬 훌륭하니 당신 분야에 책임지고 하시오, 잘못한 것은 내가 책임지고 욕먹겠소’하니 모두가 너무너무 잘 감당해 주십니다. 총회의 여러 현안들이 정말 은혜롭게 하나하나 해결되는 것이 감사합니다.
 
날마다 고백하는 말이 바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는 고백이지요. 날마다 감사 찬양입니다. 총회장이 되니 생각지도 않게 외국을 많이 나갑니다. 국제적인 무대 아닙니까?
 
전임 총회장 시절에 약속했던 것도 찾아서 하나 둘 지켜 나가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선교사들이 세계아시아연맹 총무에게 5천 불 후원하기로 했는데, 총회가 욕먹으면 안되니 5천 불 만들어주는 것 등이지요.”
 
▲ 오세아니아 침례교 지방회가 기침 총회 가입 청원 건과 관련, 총회장과 임원이 호주 현지를 방문,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한인 목회자들과 만났다.     ©크리스찬리뷰

여의도 시대와 오세아니아 시대 개막

그에게 건축하는 일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여의도 미국 남침례선교회 소속 건물을 40억 헌금하고 받아서, 13층 빌딩을 지어 ‘침례교 여의도 시대’를 개막한 것이다.
 
“사실 침례교회는 126년 전에 설립된 미국 남침례교와 같은 교단입니다. 세계적인 교단이지요.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비롯하여, 김장환, 이동원 장경동 목사같은 걸출한 분들도 배출했지요, 그리고 한국 교회 부흥의 주역인 오관석, 김충기 목사들이 침례교 부흥사로서 한국교회를 뒤집어 놓을 정도이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우리 침례교가 정통성과 역사성을 가진 교단인데 쓸데없는 오해를 받고 있어 어려움이 있습니다. 바로 구원파가 ‘침례교’란 이름을 쓰기 때문에 이름이 유사해서 오해받는 소지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침례교희 피해가 너무 컸습니다. 계속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유병언은 침례교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유병언같은 가짜가 있기 때문에 진짜가 빛나는 것이라고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침례교단의 순수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침례교는 참 좋은 교단입니다. NCC 같은데 가입안하고, 변질된 한기총도 탈퇴했습니다. 한기총은 한국의 대표적인 6개 교단, 즉 통합, 합동,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침례교 이런 교단들이 나오니 유명무실한 연합운동, 힘없는 기관이 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단옹호하는 기관으로 변질되고 말았지요,”
 
총회장으로 이번 호주 방문은 오세아니아 지역 한인침례교단은 각별한 의미를 갖기도 한다. 오세아니아 침례교 지방회가 기독교한국침례회 총회 가입 건으로 청원이 들어와 총회장과 임원이 이곳에 와 상황을 보고 결정하기로 현지 방문한 것이라고 하였다.
 
호주 침례교의 원로로서 총회장 김대현 목사의 7년 선배이기도 한 김종규 목사(디와이영성교회)도 오세아니아 침례교단의 새로운 전환점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로서는 큰 격려고 위로입니다. 현직 총회장으로서 친히 임원들과 함께 호주에 오신 것은 큰 기회이자 축복입니다. 이번 방문은 총회 가입되는 완성단계에서 현지 방문을 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의 숙원 사업인 총회가입 문제가 하나님의 때가 되니 자연스럽게 풀리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열매 맺는 것 같아 기쁩니다.
 
한국 총회와 연관 갖고 다가오는 남태평양 시대에 크게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기쁩니다. 이번에 오세아니아 지방회가 가입되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한국의 8-90배 되는 땅이 가입되는 것입니다. 침례교의 도약적인 계기가 되어 거듭 감사합니다.
 
▲ 북한에 7천 만 그루 나무심기운동을 펼치겠다는 김대현 총회장     © 크리스찬리뷰

 
이번 총회 사절단은 시드니뿐만 아닌, 멜본도 방문하여 멜본 휘틀리 신학대 총장과 MOU 맺기도 했다.
 
“그동안 미국 6개 신학교만 인정했는데, 휘틀리도 인정하고, 선교적 사명으로 빅토리아주 주총회와도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총회장으로서 이곳에 사역하는 침례교 목회자들을 만나니 시드니의 청명한 날씨, 맑은 공기처럼 너무 청명하고 맑은 순수한 동역자를 만나 기쁘다고 했다.
 
“한국은 경쟁이 심한데 비해 호주 목사님들은 너무 열심히 사시고, 인심도 후합니다. 오세아니아 지방회에서 열렬히 환영해줘서, 하나님이 받으실 대접 환영을 가로챈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합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여러 교단장들이 모여 북한에 7천만 그루 나무심기 운동을 벌이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오세아니아를 거쳐 통일한국을 바라보며, 북한을 먼저 가꾸려는 그의 마음속은 이미 ‘세계복음화’로 충만하였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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