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성전 마련한 하나로장로교회 박명배 목사

하나님이 하셨습니다…지난 8월 23일 입당예배, 제2의 도약 준비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14/09/29 [14:28]
▲ 하나로장로교회가 벨필드지역에 있는 시드니중앙장로교회당을 매입하여 지난 8월 입당했다.     © 크리스찬리뷰

하나로장로교회(담임목사 박명배. 54)가 벨필드 지역에 있는 시드니중앙장로교회당을 매입하고 지난 8월 23일 입당 감사예배를 드렸다.
 
새로 마련한 교회당은 3,137스퀘어 미터(약 1,000평) 규모로 350여 명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본당을 비롯해 5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명배 목사는 “있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150명밖에 되지 않는 저희들이 돈 모아놓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290만 달러(세금, 부대비용 포함 350만 달러)나 되는 교회당을 매입할 수 있었겠느냐”며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늘 은혜로 채워주시고 인도하셨다”고 고백했다.
 
박 목사는 “우리 교회가 16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다. 교회당 구입을 위해 마음을 합해준 모든 성도들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 하나로장로교회 담임 박명배 목사     © 크리스찬리뷰

시드니중앙장로교회당 매입,
1964년 건축된 현대식 건물


이번에 하나로장로교회가 구입한 교회당 건물은 시드니중앙장로교회가 1988년 앵글리칸교회로부터 구입한 현대식 건물이다. 1964년도에 건축되었으며, 구입 후 주변 주택들을 매입하여 교육관과 사무실 등을 증축하며 교회당 터전을 확장시켰다.
 
본당 전면에는 넓은 공간에 큰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서 마치 공원 안에 들어앉은 기분이며 높은 종각에 달려있는 종은 사무실에서 버튼만 누르면 자동적으로 울리게 되어있다.
 
시드니중앙장로교회가 이 아름다운 건물을 구입하기까지 숨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시드니중앙장로교회는 자체 교회당을 구입하기로 결정하고 전 교인들이 건축헌금을 한 다음 하루에 두 사람씩 기도 당번을 짜서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며 시드니 전 지역을 찾아 나섰다.
 
그러기를 3년, 마침내 벨필드에 위치한 앵글리칸교회 건물을 매각한다는 정보를 알아내고 경매입찰에 신청했다. 많은 경쟁자들이 참여를 했고, 최종적으로 피지인교회와 시드니중앙장로교회가 남게 됐다. 피지인교회는 앵글리칸교단에 속한 교회로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입찰금액도 시드니중앙장로교회보다 많았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가능성이 없었다. 그런데 시드니중앙장로교회에게 낙찰이 된 것이다. 피지인교회는 앵글리칸교단 본부에 정식 항의서를 제출했다. 같은 교단의 교회요 자신들이 더 많은 금액으로 신청했는데 왜 코리안교회에 넘겨주느냐는 것이다.
 
얼마 후 교단본부에서 항의서에 대한 심의를 했고, 결국 시드니중앙장로교회에게 인계하기로 확정판결이 났다. 그 이유는 이렇다. 본래 이 교회당을 건축한 교인들의 뜻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건물을 교회당으로 영구 보존한다는 것이어서 시드니중앙장로교회가 그들의 정신과 목적을 보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신은 예배당 머릿돌에 새겨진 글귀에 담겨있다.
 

‘To the glory of God’
 
“감사하죠. 이번에 이 교회당이 부동산 시장에서 개발업자에게 넘어갈 수도 있는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가, 그것도 한인교회가, 그것도 시드니중앙장로교회와 같은 교단인 저희가 구입했다는 것은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기적입니다. 정말 아슬아슬했어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 9년 전 웨스트미드 지역에 거의 버려진 땅을 구입했는데 60여 만 불에 구입했는데이 땅이 세 배나 올라 성전을 매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하나로교회

사두었던 공터 세 배나 껑충 올라

 
박 목사는 “작년 12월 초 브리즈번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그때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오성광 목사가 구매의사를 타진해 왔으나 그 당시 우리교회가 교회당을 구입할 여력이나 형편이 아니어서 웃고 넘겼었다”며 “그 후 우리교회 집사님들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한번 추진해 봅시다, 부딪쳐 봅시다’ 해서 시작이 됐다”고 구입경위를 설명했다.
 
“물론 시드니중앙장로교회 건물이 부동산시장에 매물로 나온 것은 알고 있었죠. 그런데 그때는 건물가격이 350만 달러로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개인, 교회, 개발업자, 많은 분들이 접근을 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성사되지 못했어요.
 
그렇게 되니까 중앙장로교회가 비상이 걸렸지요. 연말까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나봐요. 결국은 이 문제로 교회가 6개월 동안 시끄러웠어요. 교회로 준다면 가격을 낮춰야 되지 않겠느냐, 사려고하는 교회가 없다면 개발업자들에게라도 넘기자, 이렇게 서로 간의 의견이 분분했었나 봐요. 그런 후 290만 달러로 가격이 조정됐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고 듣자마자 구입의사를 밝히고 추진을 하게 된 거죠.”

 
▲ 9년 전 웨스트미드 지역에 거의 버려진 땅을 구입했는데 60여 만 불에 구입했는데 이 땅이 세 배나 올라 성전을 매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하나로교회

박 목사는 여기에서 같은 교단이라고 특혜 받은 것은 전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여튼 중앙장로교회가 우리에게 시간을 5일을 줬어요. 5일 안에 계약금으로 1백만 달러를 내라. 보통은 계약금으로 5퍼센트 아니면 10퍼센트를 내지 않습니까. 그런데 계약금으로 30퍼센트를 내라는 거예요. 그리고 5일 안에 그 금액을 만들었어요. 중앙장로교회도 놀라고 우리도 놀랐죠.”
 
사실 하나로장로교회가 새 성전 구입을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웨스트미드에 있는 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저희가 웬트워스빌로 교회당을 세 번째 옮기면서 목사사택을 하나 구입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렌트비가 너무 많이 나가니까요. 50만 달러 한도에서 구하자,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마침 웨스트미드 지역에 1에이커가 넘는 공터가 나왔어요. 그 공터에 백여 년 된 오두막집이 하나 있었고요. 땅은 굉장히 넓은데 완전히 버려진 땅이었어요.
 
제가 교인들에게 장래를 보고 이집을 구입하는 게 좋겠다. 내가 이 오두막집에서 살겠다. 그때 생각으로는 나중에 뒷마당에 예배당을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그 땅을 60만 달러 쯤 주고 구입을 했는데 그것이 9년 전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성전을 구입하려고 복덕방에 내놨는데 210만 달러가 된 거예요. 9년 만에 세배나 넘게 받은 거지요. 그것도 일반 투자자한테 판 것이 아니라 정부에 팔았습니다. 정부시설로 팔아 마음도 편하고 값도 일반 사람들보다 더 받고, 하여튼 한 달 만에 모든 것을 아무 문제없이 속전속결로 끝냈어요.
 
그러니까 이쪽 금액하고 저쪽(시드니중앙장로교회) 액수가 거의 맞아 떨어졌어요. 투자적인 안목을 보고 산 건 아니고 그저 땅이 넓으니까 나중에 교회당을 지어보자고 샀던 것인데 9년 만에 기적이 일어난 거죠.”
 
그런데도 이번 교회당 구입에 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항간에선 교인 한 사람의 헌금으로 교회당을 구입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참 소문도 많습니다(웃음). 그런데 그 소문이라는 게 어느 정도는 맞아줘야지 뭐 얘기꺼리가 될 텐데 전혀 엉뚱한 얘기들입니다. 저도 그런 소문을 들었는데 그렇게 말하면 헌금한 다른 분들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어떤 한 사람의 헌금으로 교회당을 샀다? 그건 우리교회를 힘들게 하는 거거든요.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시드니중앙장로교회가 그랜빌로 떠나면서 교인 100여 명이 눌러앉았다는 소문도 있다. 속사정을 들어보자.
 
“어떻게 그런 소문이 났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사실 남아있는 분들은 계세요. 20명 정도인데 모두 70세 이상 되시는 분들입니다. 본인 힘으로 갈 수 없는 분들이고요, 70세 미만되시는 분들은 한 명도 없어요.”
 
하나로장로교회는 현재 장년 150여 명이 출석하고 있다.

 
▲  감격 속에 드려진 시드니하나로장로교회 입당 감사예배 전경     © 크리스찬리뷰

제자훈련사역 힘쓰는 ‘비전 메이커’

 
경북 경주(건천)가 고향인 박 목사는 5남매 중 막내로 일찍부터 목사인 아버지(고 박현찬)밑에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훤칠한 키에 말끔한 인상의 박 목사는 모습과는 달리 어린 시절 가난 속에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나 가난한 교회 목회자였던 아버지는 박 목사에게 돈이 아니라 귀한 신앙유산을 물려줬다.
 
“아버지는 양봉과 염소를 길러 가정살림을 꾸려가셨습니다. 막내인 저는 학교 갔다 오면 책가방 놓기가 무섭게 염소들을 몰고 들로 나가서 풀을 뜯기고 어스름해서 집에 돌아오곤 했죠. 새벽이면 아버지가 짠 염소 젖을 어머니가 중탕으로 소독하여 유리병에 담아놓으면, 온 동네 다니면서 배달을 한 후 학교에 가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가난한 것은 싫었지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존경을 하게 됐고 평생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박 목사는 고등학교 때 참여한 연합수련회(SFC)에서 고 이근삼 박사의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내 것’이라는 열정적인 말씀에 은혜를 받아 신학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심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신학대학 입학원서를 작성해서 보호자 도장을 받으러 아버지께 갔는데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사실은 아버지께서 장자인 큰 형님을 놓고 목사로 서원하시며 대학을 보내면서 특별관리를 하셨어요. 그렇지만 큰 형님은 평신도로 교회를 섬기겠다고 아버지를 설득했고, 결국 아버지는 포기를 하셨습니다. 형님은 현재 국립대학의 교수로, 교회의 장로로, 기독교 대학의 이사로 교회와 사회를 열심히 섬기고 계십니다.”
 
박 목사가 시드니에 온 것은 1993년도,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초청이었다.
 
“중•고등부 담당목사로 섬기면서 SMBC에서 공부를 하게 됐죠. 공부를 마친 후에는 풀타임으로 청년 대학부를 섬기게 됐는데 이후 하나님의 특별하신 간섭으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생각, 계획과는 전혀 다르게 나를 인도하셨어요. 사실 저는 이민교회 개척은 생각지도 않았거든요.”
 
박 목사는 1998년 5월 17일 칼링포드 지역에 여섯 가정으로 하나로장로교회를 개척했다.
 
“호주생활 5년 만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잠시 한국으로 나가 있었어요. 그런데 몇몇 성도들이 시드니에서 모임을 가지며 제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지요. 그분들도 만나보고 또 살림살이가 아직 시드니에 있고 해서 이삿짐 정리도 할 겸 들어오게 된 것이 교회를 시작하게 된 거지요.”
 
박 목사의 목회철학은 한 사람을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목회초기부터 일관되게 제자훈련사역이라는 한 우물을 팠다. 제자훈련화된 교회가 될 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개척초기부터 제자훈련의 시스템을 만들어 10주간의 새가족반, 일대일양육, 전교인 말씀 묵상 등을 강조하며 제자훈련사역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 결과 현재교인의 80% 이상이 하나로교회를 통해 처음으로 신앙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번에 새 성전을 구입하게 된 것도 저희들이 한 일은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 속에서 가르쳐 주신대로 움직인 것뿐입니다. 말씀과 큐티로 이런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에 주목해 주셨으면 합니다.”
 
박 목사는 교사였던 믿음의 동역자 백희양 사모(54)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 1백여 년된 교육관 건물을 안팎으로 수리하여 새롭게 단장했다.    © 크리스찬리뷰

어떤 필요 채워줄까 기도로 준비

 
박 목사는 “예쁜 교회당을 마련하여 모든 교인들이 좋아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제2의 도약을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박 목사는 “더 겸손하게 목회하겠다.”며 “새 장소로 이전과 더불어 교회당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기도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지역주민들과 사이가 안 좋았던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컴플레인도 좀 들어오고요.  그래서 첫 예배드리던 날 우리 중•고등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짝을 이뤄 이 동네를 돌면서 선물을 나눠드렸어요. 그러면서 우리는 새로운 교회다. 이 동네에 유익이 되는 교회가 되겠다고 말씀을 드렸죠.”
 
박 목사는 “우선 유치원을 운영하여 지역의 부족한 부분들을 감당하게 할 계획으로 기도하고 있다”며 “이 터가 이 장소가 아이들한테 어릴 때부터 고향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 1세대들은 한국에 고향이 다 있는데 아이들은 호주에 살면서 고향이 없어요. 우리는 어릴 때 함께 놀던 추억이 있지 않습니까. 이 시설을 잘 활용해서 이런 추억들을 아이들에게 심어주자는 겁니다. 우리의 교회당이 아이들의 고향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한편 하나로장로교회는 매년 1월에 출발하는 캄보디아 미션을 통해 롱코하이스쿨을 일 주일 동안 교사들을 대신해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 주일은 MCU (국립멘차이 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영어수업을 통한 전도에 진력하고 있다. 지난 8년간 같은 지역을 공략함으로 많은 전도의 열매가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는 학사를 운영하여 진학하기 어려운 엘리트 학생들을 돕는 사역도 계획하고 있다.

 
▲   교회 주변에 꽃밭도 일구어 놓았다.    © 크리스찬리뷰
 
박 목사는 균형 잡힌 목회로 건강한 교회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교회가 건강하다는 것은 성도가 건강하다는 것이고 건강해야 일을 잘 할 수가 있다는 지론이다.
 
이 말 끝에 “사명감이 없는 목회는 늘 침체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박 목사에게는 아직도 풋풋한 패기가 넘친다. 〠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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