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영도'와 '관광 맨리'의 만남

맨리 카운슬 진 헤이 시장 (Jean Hay AM, Mayor)

글|김환기, 사진|권순형 | 입력 : 2014/10/27 [11:04]

▲ 맨리시 진 헤이 시장과  영도시 어윤태 구청장이  MOU(양해각서) 체결 후에 서로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 맨리와 영도는 비슷한 것들이 많다. 바다를 끼고 있으며, 맨리에는 스핏 브리지가 있고 영도에는 영도대교가 있다.     © 크리스찬리뷰

호주에는 SCA(Sister Cities Australia Inc)라는 단체가 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호주 국내외 도시 간의 결연을 맺어 주는 단체이다. 이 단체를 통하여 전 세계의 많은 도시들이 결연을 맺고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매년 SCA는 호주 주요 도시를 돌아가면서 컨퍼런스를 열어 도시 간의 만남을 주선해 주고 있다. 2008년에는 고스포드(Gosford)에서 열렸다. 그때 부산 영도구에서 어윤태 구청장 외 3명의 직원이 참석하여 맨리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후 시드니총영사관(전국시도지사협의회)을 통하여 구체적인 사안들이 오가게 되었다. 드디어 2009년 5월 28일 맨리 시장인 Jean Hay 씨 외 7명이 영도구를 방문하여 5월 29일 '우호도시'(Friend Cities) 협정체결을 맺게 되었다.
 
이듬해 2010년 10월에는 '맨리시 재즈페스티벌'에 영도군 우호대표단들이 참석했고, 2011년 영도대교의 축제에 맨리시도 우호대표단을 파송하였다. 뿐만 아니라 2013년에는 맨리시 공무원인 'David Hammerston' 씨가 영도구청에 3개월간 파견 근무를 했고, 2014년에는 영도구도 직원을 시드니로 파견하여 맨리 시청에서 3개월간 근무했다.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란 말이 있다. '상승효과' 혹은 '협력효과'라고 번역을 한다. '1+1' = '2 + α' 의 효과를 낼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을 넘어 '도시와 도시'가 만날 때 시너지 효과는 더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영도대교     © 크리스찬리뷰

행복 영도

영도구(影島區)는 고려시대부터 말의 명산지로 이름이 나 있었다. 영도의 다른 이름은 '절영도'이다. 절영도(節影島)의 절은 끊어지다, 영은 그림자, 도는 섬이다. 말이 너무 빨리 달려 그림자가 따라오지 못하고 끊어진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영도구의 동쪽으로는 부산광역시 남구와 부산항대교가 연결되었으며, 서쪽으로는 부산광역시 서구와 남항대교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남쪽은 태종대가 있다. 맑은 날에는 일본 쓰시마 섬을 바라볼 수 있고, 북쪽으로는 부산광역시 중구로 영도대교와 부산대교가 연결되어 있다.
 
이렇게 영도는 4개의 다리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영도군은 부산에 있지만 세계를 품고 '행복영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영도군은 세계의 5개 도시와 결연을 맺고 활발한 교류와 정보 교환을 통하여 국제화의 시대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도시이다.
 
현재 중국, 일본, 필리핀, 호주, 베트남과 교류하고 있다. 이 중 필리핀의 마리키나 2008년, 호주의 맨리 2009년, 베트남의 밴킷현 2011년에 결연을 맺었다. 모두가 어윤태 구청장 재임기간 중에 이루어 진 것이다.
 
▲ 지난 10월 초 시드니를 방문한 어윤태 영도구청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2013년 영도구청에 교환 근무했던 맨리시 공무원 데이비드 씨 (David Hammerston) 가족과 만나 만찬을 함께 나누었다.     © 크리스찬리뷰

행복 영도의 수장
 
2014년 10월 6일 저녁, 어윤태 영도구 구청장과 일행을 시드니 서큘러키(Circular Quay) 부두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 3일 시드니에 도착하여 시드니에서 바쁜 일정을 보내다 오늘에야 시간을 냈다. 일행은 다음날 아침 한국으로 떠난다. 집안 일가되는 어윤각 목사도 자리를 함께 했다. 우리는 가까운 일식집으로 갔다. 그는 종업원을 불러 유창한 일본말로 음식을 주문했다.
 
어 목사는 조금 놀라면서 언제 일본어를 배웠냐고 물었다. "그냥, 독학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간단하게 대답했다. 사실 내가 놀란 것은 일본어 실력이 아니라 그의 리더십이었다. 처음 만났지만 오랜 친구처럼 대하는 그의 태도와 부하직원들을 배려하며 식사를 주문하는 등 리더가 갖추어야 할 '부드러움과 카리스마'를 동시에 갖춘 사람인 것 같았다.
 
"청장님은 리더로서 자란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너무 직선적인 질문인지 조금은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식당에 오면 부하 직원이 음식을 주문하는데, 청장님께서는 직접 주문해서 그랬습니다."
 
"여기가 일식집이라서 그랬습니다."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여기는 시드니입니다. 일본어를 하지 않더라도 영어로 다 통합니다"
 
모두가 함께 웃었다. 그렇다. 그는 굳이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타고난 리더임이 분명하다. 사실 그는 잘 나가는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구청장이다.
 
▲ 본지 편집고문 어윤각 목사와 집안 일가되는 어윤태 영도 구청장(왼쪽).     © 크리스찬리뷰

삼고초려 (三顧草廬)
 
그는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LG유통, LG레저, LG 스포츠 대표이사를 지내는 등 32년 동안 LG 맨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왔다.
  
"부산 영도에 있는 남고 출신이지요?"
 
국회의원 보좌관이라고 자신을 밝히고 혹시 영도 구청장에 출마할 의사가 없는지를 타진하는 전화였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며칠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조금 언성을 높이며 "내가 관심 없다고 그랬지요. 저를 지목한 것은 좋은데 저 때문에 더 이상 시간 뺏기지 마이소"라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세 번째 전화가 왔다. "사실은 제가 고문님 고등학교 후배입니다. 제가 두 번이나 신분을 안 밝히고 그냥 보좌관이라 하고 건방지게 전화해서 오늘은 선배님 찾아뵙고 후배로서 정중하게 사과드리려고 합니다." 
 
▲ 영도구를 방문한 맨리시 진 헤이 시장(앞줄 오른쪽에서 5번째)을 비롯한 우호대표단이 영도구 직원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 영도구청

그렇다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으나, 기어이 직접 만나서 사과를 해야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약속 장소에 나갔다. 점심을 잘 먹고 헤어지려고 할 때 그는 본심을 들어냈다.
 
"사실 제가 오늘 고문님을 꼭 모시고 오라는 특명을 받고 왔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당신 체면을 생각해서 고민한 것으로 하고 3일 후에 안된다고 전화를 줄테니 가라."
 
그렇게 헤어졌는데 3일이 되기 전에 김 의원이 직접 전화를 했다. 한번 만나자는 것이다. 출마 안 해도 좋으니 그냥 한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나갔지만 정말 1%도 정치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어른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부산 영도구 구청장에 출마하게 되었다.
 
이왕 출마를 결심한 이상, 그는 자신의 성격대로 최선을 다했다. 4년 동안 영도 발전의 초석을 닦겠다고 다짐했다. 놀랍게도 그가 얻은 63%의 득표율은 부산지역 16개 선거구 중에 가장 높았다. 그는 “선거결과에 자만하지 않고 반대 목소리를 들으며 겸허한 자세로 일하겠다。ア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공약을 반드시 잘 마무리해 사람과 돈이 몰려오는 '행복영도'로 가꾸겠다"고 밝혔다. 2006년에 구청장으로 취임하였고, 4년 후 그가 한 약속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표를 통하여 확인받았다. 그는 2010년 7월 1일 제5대 민선구청장으로 재선되었다. 그가 재임한 이후부터 영도는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었다. 영도는 국가발전 전략인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에 부응하여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고 건강한 친환경 도시를 의미하는 '대한민국 LOHAS 도시'로 인증을 받음으로써 영도구의 브랜드 가치를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 시드니 최고의 해변을 자랑하는 맨리 비치 정경.     © 크리스찬리뷰
 
뿐만 아니라 최고의 교육환경을 조성하여 미래 인재가 자라고 유입되는 교육도시로 '한국인간교육연구원'이 주관한 '2009 지방자치단체 교육지원대상' 지자체 부문에서 종합대상을 차지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그는 사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장점을 최대한 살려 '해양중심 행복영도'의 모토로 영도구의 발전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2010년 시무식 때 그는 영도가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오늘 시무식을 계기로 다시 한번 각오와 결의를 다지는 의미로 각자의 신발끈을 단단히 쪼아 매야겠습니다.” “인재가 자라고 머물고 영입되는 곳 그리고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에 미래가 있다"는 신념으로 달려온 지난 구정 성과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금년에도 미래 인재양성의 명품 교육도시 조성에 매진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4년이 흘렀다. 2014년 3선 연임에 성공한 어윤태 영도구청장은 "8년간 추진했던 여러 사업들을 마무리해 영도를 해양관광지로 부흥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 청장은 "영도대교 복원 개통과 부산항 대교 개통으로 영도가 관광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며 "영도에만 있는 역사, 문화자원을 담은 관광자원 100가지를 선정, 새로운 관광모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 맨리항 건너편 빌딩 중간에 맨리 땅을 처음 밟은 백인, 아더 필립 선장의 동상과 함께 빌딩 입구 길가에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 크리스찬리뷰

영도대교(影島大橋)
 
부산에는 국내 첫 연륙교, 동양 첫 도개교인 부산의 명물 '영도대교'가 있다. 영도대교는 1934년에 도개교로 개통을 하였으나, 교통량의 급증으로 인하여 점차 횟수를 줄이다가 드디어 1966년에 9월 1일 도개 기능을 중단하게 된다. 당시 다리가 하늘로 치솟는 신기한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며 점차 부산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부산대교'라 하였으나 다리가 노후됨에 따라 '부산대교'를 새로 설치하면서 '영도대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영도대교는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수탈과 애환 그리고 이산과 실향의 역사가 담겨있는 다리이다.
 
'영도대교'를 부산에서는 '영도다리'라고 부른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면 "다리 밑에서 주어 왔다"고 한 다리가 바로 '영도다리'이다. 실제 6.25 전쟁 때 영도에 많은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이 다리 밑에 버려지는 일이 많아서 그런 말이 생겼다고 한다.
▲ 진 헤이 맨리 시장     © 크리스찬리뷰

6.25 전쟁 당시 피난민의 애환은 가수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대중가요 가사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부산광역시는 지난 2011년 기존 4차로 영도대교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도개 기능을 갖춘 6차로 새 다리를 놓았다. 롯데그룹이 총 사업비 1천 100억 원 전액을 투자했다. 2013년 11월 27일 부산 근대화의 상징이자 6.25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피란민들의 수많은 사연이 담긴 영도대교가 47년 만에 하늘로 힘차게 다리를 들어 올렸다. 한층 더 넓고 튼튼한 다리로 다시 태어난 영도대교는 매일 낮 12시부터 15분간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도개교 모습을 선보인다.
 
▲ 맨리 비치는 천혜의 서핑 장소로서 세계서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 크리스찬리뷰

관광 맨리 (Manly)
 
맨리(Manly)란 이름은 아더 필립 선장(Captain Arthur Phillip)에 의하여 지어졌다. 호주에서는 1월 26일을 ‘Australia Day’로 지킨다. 일반적으로 필립 선장이 11척의 배를 이끌고 호주에 도착한 날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처음 도착한 날은 1788년 1월 18일 보타니 베이(Botany Bay)이다.
 
필립 선장은 도착 후 며칠 동안 정착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1월 21일 그는 맨리에도 갔다. 그곳에서 그는 원주민을 만나게 된다. 필립 선장은 "그들의 자신감 넘침과 남자다운 행동이 그곳을 '맨리 커브'라고 이름 짓게 하였다."(Their Confidence and Manly Behavior made me the name of Manly Cove to this place) 라고 서술했다. 
 
▲ '세계서핑보호구역'(World Surfing Reserve) 푯말     © 크리스찬리뷰

맨리에 가면 선착장 바로 옆에 필립 선장이 “1788년 1월 21일 맨리에 온 최초의 백인。ア이라고 기록된 기념비가 있다. 필립 선장은 여러 곳을 탐사하다, 1월 26일 영국령 식민지로 선포하고 지금의 Rocks 지역에 영국 국기를 게양하였다. 그는 당시 '영국 내무부장관'(British Home Secretary)이었던 '로드 시드니'(Lord Sydney)의 이름을 기념하여 '시드니'(Sydney)로 명명하였다.
 
맨리(Manly)는 시드니의 동북부 해안에 위치해 있다. 맨리 비치는 시드니 시내에서 페리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지만, 번잡한 시드니 도심과 마치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것처럼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다. 시드니 하버 국립공원(Sydney Harbour National Park)의 '노스 헤드(North Head)'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시드니 하버'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다. 오션월드 맨리(Oceanworld Manly)에서 현지 해양 생물도 볼 수 있고, 펭귄 코브(Penguin Cove)에는'리틀 펭귄' 서식지도 있다.
 
▲ 맨리 시의원들이 우호도시인 영도구를 방문했다.(2013 .10)     © 영도구청

관광 맨리의 수장
 
10월 17일(금) 오후 2시 진 헤이 시장을 만나기 위해 맨리 시청으로 갔다. 약속시간이 조금 넘어서 그녀와 만났다. Jean Hay, 그녀는 맨리에서 태어나 맨리에서 자라고 맨리 시의원으로 1987년에 당선이 되어, 1999년부터 지금까지 3선 시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그녀는 1998년 6월에는 지역사회에 공헌한 것이 인정을 받아 '호주 훈장'(AM, Membership of the Order of Australia)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2001년에는 '세기의 메달'(Centenary Medal)을 받았으며, 주정부에서는 20년 이상 지역정부를 위하여 특별한 봉사를 하여 상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녀는 수 없이 많은 상을 받았다.
 
먼저 10월 초에 어윤태 영도구청장 일행이 방문했을 때, 극진한 대접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대신 전했다. 나는 그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Temple Stay’를 한 느낌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다. 
 
▲ 개천절인 지난 10월 3일 맨리 시청을 방문한 어윤태 영도구청장이 태극기 게양식을 마친 후 진 헤이 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함께     © 크리스찬리뷰

“저녁 식사를 하고 먹은 그릇을 깨끗하게 물로 씻어서 마실 때 정말 비위가 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 번 절할 때마다 염주에 구술을 하나씩 끼면서 108번을 절해야 하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일등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식으로 절하지 않았거든요. 일등 했다고 고함을 치는 순간 염주 구슬이 모두 바닥에 떨어져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절은 좋아하지 않지만 영도는 좋습니다. 영도는 맨리와 비슷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다를 끼고 있으며, 아름다운 비치가 있고, 아침에 걸을 수 있는 코스도 비슷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스핏 브리지가 있는데 영도에는 영도대교가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영도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10일간 한국에 머물면서 사흘은 서울에 있었다. 국회에 가서 국회의장과 만나 그에서 자개로 만든 필통을 선물을 받았다며 보여 주는 것이다. 그녀는 판문점에도 갔다. 북한군을 코앞에서 보니 조금은 겁이 났다고 한다. 시장으로서 국회의장을 만난 첫 번째 사람이라며 자랑을 한다. 한국 정치와 호주 정치의 차이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얼굴에 장난기를 띄우며, 제도는 조금 다르지만 정치인이 말 많은 것은 똑 같다고 한다.
 
▲ 맨리시청 청사 에서 열린 한국 근현대 사진전 개막식에서 테이프 커팅하는 인사들(왼쪽부터 기준현 소장, 권순형 본지 발행인, 진 헤이 시장, 어윤태 구청장, 이동옥 한국문화원장     © 크리스찬리뷰

맨리 비치 앞에 서 있는 '세계서핑보호구역'(World Surfing Reserve) 푯말에 대하여 질문했다. “맨리는 호주에서 첫 번째, 세계에서 세 번째로 '서핑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세계 서핑보호 단체'는 미국, 포르투갈에 이어 세 번째로 호주 맨리를 '서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이 단체는 천연서핑지역을 보호하고 해변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서퍼, 과학자 그리고 환경 보호단체가 연합하여 2009년에 창립했다.
 
맨리는 천혜의 서핑 장소이다. 시드니의 비치는 본다이가 대표하는데, 사실 비치 자체는 본다이가 좋을지 모르지만 주변 환경은 맨리가 훨씬 우월하다. 맨리 비치 주변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질서 정연하게 하늘을 향하여 치솟아 있다. 나무들은 1852년부터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맨리의 자매 도시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일본, 미국, 영국, 중국, 한국 등 많은 나라와 결연을 맺었습니다. 특별히 일본의 오다와라(Odawara)시는 학생교환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있는 헌팅톤 비치(City of Huntington Beach)는 서핑(Surfing)하는 곳이라서 서핑으로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바스(Bath) 시는 크리켓 경기로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바스(Bath) 시는 '아더 필립 선장'의 고향입니다."
 
▲ 맨리시청 청사 에서 10월 3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리는 한국 근현대 사진전을 관람하며 어윤태 구청장이 진 헤이 맨리 시장에게 사진 설명을 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올해는 아더 필립 제독이 죽은 지 200 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시드니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가 1814년에 고향인 Bath에서 죽었다. 시드니에서 가지고 간 돌로 기념비를 만들어 2014년 7월 9일 영국 '웨스트민스턴 사원'에 안치하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기념비에는 'NSW 초대 수상 그리고 근대 호주의 창립자' (The First Governor of New South Wales and Founder of Modern Australia)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최근 들어서는 부산 영도구와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우리 직원이 그곳에 가서 3개월간의 연수를 받고, 올해 중순에는 영도군 직원이 이곳에 와서 3개월간 연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내년은 맨리에서 영도로 보낼 차례인데 많은 사람이 지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사람만 보낼 것입니다.” 그녀는 또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 진 헤이 맨리 시장이 출석하는 맨리 세인트 앤드류 장로교회 전경     © 크리스찬리뷰

그녀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래 전부터 맨리는 '시드니로부터 7마일, 걱정으로는 수천 마일'(Seven Miles from Sydney, thousands miles from Care)”이라는 모토가 있습니다. 처음 맨리를 개척할 때는 농장이며, 관광지였습니다. '하버브리지'가 없을 때 '서큘라 키'에서 배로 7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일단 이곳에 도착하면 걱정은 수천 마일로 멀어지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맨리는 인구가 약 4만 명 정도지만, 1 년에 관광객은 8백 만이나 됩니다.
 
멜본을 가 보았습니까? 맨리를 멜본과 같이 문화와 관광이 접목된 쉼이 있는 도시로 만들 예정입니다. 누구나 길을 걸으며 쉴 수 있는 곳, 거리의 상점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쉼터가 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기자는 그녀의 개인적인 비전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맨리에는 불치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을 돌보는  '베어 코티지'(Bear Cottage)라는 호스피스가 있습니다. NSW 주에 유일한 곳으로 '웨스트미드 아동병원'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가족들도 함께 있을 수 있는 시설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하여 힘이 닫는 데까지 도우려고 합니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베어 코티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녀는 '웨스트미드 아동병원의 은인' (Benefactor of the Children’s Hospital Westmead)이라는 칭호도 받았다.
 
"얼마 전 윌리암 왕자도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왕자가 호주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곳에 있는 아이가 방문해 줄 것을 요청하여 이루어 졌습니다."
 
본지 권순형 발행인이 사진을 제공하여 맨리 시청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전에 대해 물었다. 
 
"'한국 근대와 현대' (Korea: Then and Now)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사진전을 통해 오래 전부터 한호 간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1889년에 데이비스 선교사를 필두로 130여 명의 선교사가 파송되었고, 특별히 6.25 전쟁 때 호주군이 미군에 이어서 두 번째로 참전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하여 '호주 전몰용사 묘비'에 헌화를 하고 왔습니다."
 
그녀는 내년에 다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시간이 되면 가평에 가 볼 것을 권유했다. 가평은 6.25 전쟁 당시에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였다. 그곳에서 호주 보병 3대대는 용감하게 싸워 전쟁 후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게 부대 표창을 받았다.
 
맨리에 한국인이 얼마나 사는지...?
 
"정확한 통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곳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국계입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시민권 수여식이 있습니다. 매년 45-50명이 시민권을 받는데, 이번에는 14~15 나라 사람들이 받을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맨리의 종교 현황에 대하여 물었다. 
 
"성공회, 가톨릭, 장로교 등의 다양한 교회가 있습니다." 그녀의 말에 '구세군'도 있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교단이 장로교임을 알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장로교 교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녀는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맨리 세인트 앤드류(St. Andrew)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친절하게 밖에까지 나와서 교회가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 맨리 세인트 앤드류 장로교회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 크리스찬리뷰

호주장로교회 (Presbyterian of Australia)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가 다니는 맨리 세인트 앤드류 장로교회를 방문했다. 때마침 입간판의 설교 제목을 바꾸고 있는 노인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의 안내를 받아 교회 내부까지 구경할 수 있었다. 노인은 아름다운 교회의 내부를 구석구석 다니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교회 뒤 쪽의 아름다운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 3개의 창에 대하여도 설명하여 주었다. 중앙에는 예수 그리스도, 오른 쪽에는 바울 그리고 왼쪽에는 안드레이다. 중앙의 모자이크 유리와 양쪽 모자이크 유리의 투명도가 다르다. 중앙의 것은 밝은 반면에 양쪽 것은 조금 어두웠다. 예수님이니까 좀도 밝게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중앙의 것은 영국에서 가지고 온 것이고 양쪽의 것은 호주에서 만든 것이다. 영국은 일조량이 짧아서 모자이크 유리를 밝게 만들지만 호주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교회 좌편에 위치한 큰 파이프 오르간은 원래 가운데 있었다가 옮긴 것이라고 한다. 정면에는 장로교의 상징인 모세의 불타는 가시덤불 모자이크가 있었다. 교회 내의 장식 하나하나가 130년 된 교회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교인 수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 보았다. 조금 전까지 활기찬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힘을 잃고, "40 - 50 명 정도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하나님이 필요 없나 봅니다"하며 깊은 한숨을 쉰다.
 
요즘 호주교회 내에는 젊은이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유럽 교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유럽 교회는 관광지와 박물관으로 전락하고, 심지어 모스크로 탈바꿈하고 있다.
 
호주연합교회 (The Uniting Church in Australia)
 
호주는 1977년 6월 22일 '장로교, 감리교, 회중교회'가 연합하여 '호주연합교회'(The Uniting Church in Australia)를 세웠다. 대부분의 감리교와 회중교회는 동의했지만 장로교의 521개 교회(36%, 교인 31%)는 가입하지 않고 장로교로 남았다. 이러한 연합 현상은 20세기에 교회 연합과 일치를 강조하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세계 교회사에서는 16세기는 종교 개혁시대로, 17세기는 정통주의와 경건주의 시대로, 18세기는 계몽주의와 복음주의 그리고 부흥운동 시대로 그리고 19세기는 '선교의 세기'라고 불린다.
 
선교에 중점을 두던 각 교단은 선교지에서 교파와 교단 간의 문제가 야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교회의 일치와 연합 운동을 강조하는 '에큐메칼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교회사에서는 '에큐메니칼 시대'라고 부른다.
 
'칼빈과 웨슬레'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호주에는 "연합교회"(The Uniting Church)가 탄생하였다. 신학의 차이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연합한 사람들이 진보적인 사람이라면, 남은 사람들은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그 현상은 한국교회 교단과 교류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호주연합교회는 통합, 기장, 감리교와 교류하고 있으나, 호주 장로교는 합동과 고신 등 보수 교단과 교류하고 있다.
 
▲ 우호 도시 맨리시를 방문한 영도구청 어윤태 구청장을 비롯한 방문단 일행은 태극기 게양식, 사진전 개막식, 화상회의 추진과 학생 교류 를 위한 MOU체결을 맺고 양 도시 간의 협력관계를 확고하게 다졌다.     © 크리스찬리뷰
 
행복 영도와 관광 맨리의 다시 만남
 
대한민국의 하늘이 열린 날, 행복 영도와 관광 맨리가 시드니에서 다시 만났다. 어윤태 구청장을 비롯하여 박용석 평생학습과장, 이용규 해양수산계장, 이해자 국제 교류협회 부회장이 시드니를 방문했다. 향후 양 도시 청소년 대표 그룹 간 정기적인 비디오 화상회의를 추진하고 학교 간 자매결연 체결 등을 통한 학생교류에 서로 힘쓰겠다는 양해각서(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체결하기 위함이다.
 
두 도시는 지난 2009년 우호도시 결연을 체결한 후, 정부 간 교류를 초월하여 다양한 분야로 확대함으로써 상호간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다져왔다.
 
이날 호주와 관련된 '한국 근 현대 사진전 개막식'과 개천절 '태극기 게양식'도 있었다. 전국시도지사협회 호주 사무소 기준현 소장은 사진전이 개최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동옥 시드니 문화원장과 본지권순형 발행인(한국사진작가협회 시드니 지부장)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기준현 소장은 "최근 30여 년에 걸쳐 한ㆍ호 양국은 무역 분야에서도 매우 성공적이고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를 맺어, 오늘날 한국은 호주의 3대 수출국으로 또 4대 무역교역국으로 성장했다.", "한호 교역 관계는 올해 4월 토니 에봇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이 서명한 FTA 협정을 필두로 비준이 마무리되는 내년 초가 되면 더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호주의 주요 전략적 외국어로 선정되어, 한호 관계는 상호보완적 우호동맹 관계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행복 영도와 관광 맨리의 ‘MOU’ 체결을 통하여 두 도시는 신뢰에 기반을 둔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바라기는 두 도시가 좋은 선례를 남겨, 한호 도시 간의 교류가 더욱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인, 호주 구세군 사관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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