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호주 킴벌리 원주민 마을을 가다

선교는 순종이다

글|이영식, 사진|김성주 | 입력 : 2014/12/01 [12:23]
▲ 더비 피플스 교회 앞에서(왼쪽부터 정기옥, 오성광, 서영준, 김성태, 김성주, 이영식, 김종찬)     ©김성주

남한의 76배에 달하는 광활한 대륙 호주, 시드니에서 우리 일행을 태운 비행기는 그 대륙을 가로질러 서부 호주(Western Australia)의 주도인 퍼스(Perth)에 도착할 때까지 5시간을 날았고, 다시 북쪽으로 3시간을 더 날아 브룸(Broome)에 착륙했다. 하지만 그곳이 이번 선교여행의 목적지는 아니었다. 브룸 공항에 우리 일행을 마중 나온 김성태 선교사의 승합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3시간 여를 더 달려 마침내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인 더비(Derby)에 도착했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14시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
 
▲ 더비 피플스 교회의 김성태 고경숙 선교사 부부     © 김성주
 
킴벌리 지역의 원주민들과 김성태 선교사
 
이번 선교여행(2014. 11.3~8)은 한인 호주원주민선교회 KMIA, Korean Mission for Indigenous Australian) 이사들의 선교지 개발 및 확장을 목적으로 일 년에 한 차례씩 행해지는 정기여행이었다. 본 선교회는 지난 2011년 호주 원주민 선교에 뜻을 같이 하는 시드니 거주 한인 목회자들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시드니 한인교회들과 성도들에게 호주 원주민 선교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알리고, 원주민 선교의 중복투자를 막고 올바르고 합리적인 선교가 이루어지도록 돕고 있다.
 
이를 위해 본 선교회에서는 ①정기 세미나(시드니, 멜번, 브리즈번 각 1회/년) ②선교인식여행(Mission Awareness Trip, 10~12회/년), ③원주민 종족 입양, ④웹사이트(www.kmia.net.au)를 통한 호주 원주민 선교에 관한 정보공유 등을 주된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 3박 4일 동안 우리 일행을 태우고 다녔던 승합차     © 김성주


이번 여행에는 본 선교회의 총무인 정기옥 목사(안디옥장로교회), 김성주 목사(새빛장로교회), 오성광 목사(시드니 중앙장로교회), 김종찬 목사(시드니 엘림교회), 서영준 목사(시드니호천장로교회) 그리고 필자인 이영식 선교사(KMIA 파송 호주원주민 선교사) 등 6명의 이사들이 함께 했다.
 
이번 선교 여행지인 킴벌리 지역(Kimberley Region)은 서부 호주의 9개 지역 가운데 하나로, 그 면적은 대한민국(100,210Km2)보다도 4배 이상 넓은 423,500Km2에 달하며, 더비(Derby)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킴벌리에만 약 50여 개의 원주민 마을이 흩어져 있다. 일행은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 가운데 10여 개 이상의 원주민 마을을 방문하는 강행군을 했다.
 
킴벌리 지역의 기온은 열대 몬순 기후로써 1년 총 강우량의 90%가 우기인 12월~4월 사이에 쏟아지며 이때 사이클론과 더불어 홍수가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다. 다행이 우리 일행이 방문 한 때는 우기가 시작되기 전이어서 한 차례 소나기를 제외하고는 맑은 날씨였고 또한 모기와 같은 해충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일 40도를 넘나드는 폭염과 끈적이는 습도가 우리를 힘들게 했다.
 

▲ 남편을 순교자로 먼저 보낸 지니(Jeannie) 할머니(왼쪽)     ©김성주

브룸(Broome)에 내린 일행은 김 선교사의 안내로 시내의 차이나타운과 케이블 비치(Cable beach)를 둘러보았다. 해변에는 관광객을 위해 화려하게 지어진 많은 숙박시설들이 있었지만 5월~7월까지의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기온이 너무 높아 찾아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당일 브룸의 온도계는 4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어린왕자>를 통해 우리에게 바오밥 나무(Baobab Tree)로 잘 알려진 보압 나무(Boab Tree)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이 나무는 킴벌리 지역의 아이콘이라 불릴 만큼 이곳에서는 흔한 나무이다.
 
더비로 향하는 도중 김 선교사는 우리 일행을 한 원주민 마을로 인도했다. 통상 팜(Farm)이라고 불린다는 이 마을의 정식 이름은 판다너스 파크(Pandanus Park)였는데 마을 주민 가운데 많은 이들이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고 또 어떤 이들은 악령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우리 일행은 마을 어귀에 차를 멈추고 이 마을의 주민들을 위해 통성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더비에서 우리는 꽤 많은 교회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오지에 그렇게 여러 개의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 가운데 김 선교사가 사역하는 교회는 더비 피플스 교회(Derby People's Church)였다. 김 선교사의 부인인 고경숙 선교사가 우리 일행을 반가히 맞았다. 그곳에서 김 선교사 부부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 이곳에 와 5년째 자신들의 사역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었다. 김성태 선교사는 평신도 선교사로서 홀스 크릭(Halls Creek WA)에서 신학교 사역을 하고 있던 중, 이곳 더비에서 활동하던 호주인 선교사가 떠나면서 그 후임으로 이곳으로 옮겨와 갖은 어려움을 다 극복하고 현재 더비를 중심으로 반경 약 500Km가 넘는 지역의 원주민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양성하는 등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그날 밤 우리는 김 선교사가 들려주는 생생한 원주민 선교 현장의 이야기에 감동하며 밤늦은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 환청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원주민 여성(Beno)을 위해 일행이 기도하고 있다.     © 김성주
 
순교의 피 흘린 원주민
 
밤은 인간이 쉼을 얻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다. 이 선물을 통해 새 힘을 얻은 우리 일행은 둘째 날의 귀한 여정에 올랐다. 이른 아침 승합차 편으로 일행이 향한 곳은 더비로부터 120km 정도 떨어진 루마 피플스 교회(Looma People's Church)였다. 이 원주민 마을에서 우리는 정말 귀한 분을 만날 수 있었는데, 지니(Jeannie) 할머니는 남편(Martyr blind Lumerick)을 순교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 분이었다.
 
과거에 예수님을 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남편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녀는 휠체어에 앉아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연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원주민 가운데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의 피를 흘린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원주민 선교에 푸른 신호를 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교회에는 사역자가 없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누군가가 순종해 와서 자신들을 영적으로 지도해 주기를 그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어진 시각, 우리 일행이 다시 더비로 돌아왔을 때 더비 교회의 원주민 집사(Neil Buckle)가 환청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원주민 여성(Beno)을 데리고 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김 선교사는 그 여성에게 구원의 진리와 복음의 능력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우리 일행은 주님의 능력을 간구하며 그 여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 모완점 마을 주민들과 함께     © 김성주

복음이 활발하게 전파되는 곳에는 늘 사탄의 역사도 강하다.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신학교마다 신학생들은 넘쳐나는데 그들은 다 어디로 가는지, 과연 이 오지의 영혼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 마음이 복잡했다.
 
다음 날 일행이 향한 곳은 교회 근처의 양로원(Juniper Numbala Nunga)이었다. 16명의 노인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는데 그들 중 11명이 원주민이었다. 어느 양로원을 방문하든 진하게 풍겨오는 냄새 아닌 냄새는 외로움이다. 우리를 맞는 그들의 시선도 그랬다. 잡은 손을 놓을 줄 모르는 그들의 마음이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고 찬양을 하는 내내 한 할머니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이곳에 있는 모든 노인들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분께로 돌아가기 전에, 주님을 발견하게 되기를 우리 일행은 간절히 기도했다.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한 원주민들
 
이날 오후 우리는 더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모완점(Mowanjum)이란 마을을 방문했다. 더위를 피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잠을 자거나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있었고 꼬맹이들은 수돗물을 틀어 놓고 거기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우리가 왔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과 한참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며 복음을 전하고 기도했다.
 
호주 정부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에 호주원주민들을 등장시켜 자신들이 원주민들과 잘 융화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자랑했다. 이때 등장했던 원주민들이 이 마을 사람들이라고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아트센터의 홍보자료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 양로원을 방문하여 일행이 함께 찬양하고 있다.     © 김성주
 
더비 피플스 교회는 상당히 활발하게 움직이는 원주민 교회였다. 수요일 저녁 집회를 위해 중형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교회 마당에 들어섰다. 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찬양을 하며, 어릴 적 서양 선교사들이 동네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그들의 순종과 헌신이 오늘의 복음강국 대한민국이 있게 한 단초가 되었음을 부인하지 못할진대, 미래 그 어느 날엔가는 이들 원주민들도 또 다른 이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며 헌신하는 위대한 날이 올 것이라 두 손 모아 소망해 본다.
 
수요 집회를 마치고 우리는 김 선교사와 원주민 성도들과 함께 암으로 투병 중인 한 할머니(Argi)의 집을 찾아갔다. 77세의 고령(원주민의 평균 수명은 60세 정도)인 이 할머니는 폐암 진단을 받았으나 의사의 치료를 거부하고 있었다. 김 선교사는 우리 일행과 함께 기도하기 전에 할머니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예수님을 믿느냐? 오늘 당장 세상을 떠난다 할지라도 천국에 이르게 될 것을 믿느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구원의 확신이 그 속에 있는지 고백을 듣고 나서 김 선교사는 우리에게 통성으로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 주님께서 뭇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것처럼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김 선교사의 열정적인 사역을 보며 우리는 다시 한번 감동했다.
 
▲ 폐암에 걸린 77세 원주민 할머니를 위해 일행이 기도하고 있다.     © 김성주


어김없이 또 하루가 밝았다. 여행의 넷째 날이었다. 이른 아침 일행은 더비를 떠나 약 900km 떨어진 커너너라(Kununurra)로 향했다. 브룸 공항에서부터 계속 우리 일행을 태우고 다닌 승합차는 연식이 매우 오래 된 차여서 에어컨이 없었다. 창을 열면 헤어드라이어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작은 원주민 마을을 방문하기 위해서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곧 차가 분해될 것 같았으며, 붉은색 흙먼지는 땀과 뒤섞여 온 몸에 눌어붙어 괴로웠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찬양하며 기쁨으로 원주민 마을 방문을 계속했다.
 
원래의 계획은 수요일(11월 5일) 밤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고 목요일 아침 커너너라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더 많은 원주민 마을들을 방문하기 위해 계획을 변경해 승합차로 550km 떨어진 홀스 크릭(Halls Creek)까지 가기로 했다.
 

▲ 킴벌리 지역에서 유명한 번개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 김성주


캥거루와 충돌했던 아찔했던 순간...
 
더비로부터 홀스 크릭까지 가는 도중에 우리 일행은 5~6개의 작은 마을을 방문해 그곳의 주민들과 지도자들을 만나 그들을 위로하고 함께 기도했다. 땅거미가 깔릴 때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엄청난 소나기가 쏟아졌다. 킴벌리 지역에는 연간 5만 번 이상의 번개가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래서 멋진 번개 사진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 사이에서 킴벌리는 유명한 곳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비를 맞으며 이 마을 저 마을을 방문한 우리는 저녁식사도 거른 채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던 중, 목적지인 홀스 크릭을 45km 정도 남겨둔 지점, 밤 10시경에 난데없이 승합차 앞으로 커다란 캥거루 한 마리가 뛰어 들었다. 굉음과 함께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고 3~40미터를 더 진행해 가까스로 멈췄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으나 참 감사하게도 일행은 무사했다.
 

▲ 야간 주행 중 캥거루를 드리 받고 폐차 된 승합차.     © 김성주


하지만 차량은 완전히 못쓰게 되었고(결국은 폐차됨. 여행을 마친 후 이사들이 차량대금을 모금해 송금함), 몸무게가 족히 60kg은 넘음직한 커다란 캥거루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킴벌리 지역에서 일 년 동안 일어나는 교통사고의 57%는 차량 전복사고이며 전체 교통사고의 80%가 야간에 발생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일행은 그 자리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다.
 
한 시간 쯤 지나 홀스 크릭 교회의 지도자인 도널드 콕스(Donald Cox)가 교회 승합차를 몰고와 우리 일행을 태우고 고장 난 차를 끌고 홀스 크릭으로 향했다. 저녁 식사도 거른 터라 일행은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준비해 간 인스턴트 음식으로 허기를 달랬다. 샤워까지 마쳤지만 일행은 잠을 잘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잠시 후 새벽 3시 30분에 커너너라 행 고속버스를 타야했기 때문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그간의 은혜에 감사하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지난 3박 4일 동안 우리 일행을 안내 해 준 김성태 선교사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일행은 그대로 골아 떨어졌다. 새 날이 밝아 해가 둥실 떠오른 아침 8시, 일행을 실은 커다란 그레이하운드는 커너너라(Kununurra)에 일행을 내려놓았다.
 

▲ 커너너라에서 사역하는 김기준, 김수복 선교사 부부(가운데)   ©김성주
 
이곳에서 사역하는 김기준 선교사가 마중을 나왔다. 부인 김수복 선교사가 차려 준 아침을 맛있게 먹고 김 선교사의 사역에 관해 들으며 우리는 또 한 번 감격했다. 그들 역시 이곳에 온지 5년이 조금 넘은 평신도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베델 커뮤니티(Bethel Community)를 운영하며 원주민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알코올과 마약 중독, 가정 폭력으로 더 이상 오갈 곳이 없는 원주민들이 그들의 사역의 대상이었다. 김 선교사 부부는 이곳에 온 후 단 한 번도 휴가를 가져 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힘든 사역을 하고 있었다. 휴가를 가려면 대신 누군가가 그 기간 동안 원주민들을 돌보아 주어야 할 텐데 그럴 사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으로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을 보며 우리의 마음이 숙연해졌다.
 
한나절을 김 선교사와 함께 한 일행은 다시 퍼스(Perth)로 4시간 여를 날아왔다. 퍼스에서 시드니행 비행기를 타려면 약 4시간의 여유가 있었는데 당초 계획은 이 시간에 퍼스에서 원주민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 그들을 위로하며 새로운 화합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일정이 맞지 않아 모두가 함께 모이지는 못했다. 김종일 선교사와 허유신 선교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일행은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퍼스의 야경을 보며 지난 일주일간의 피로를 달랬다.
 
킴벌리 지역에서 만난 원주민들은 다른 지역(NT, QLD, NSW)에서 만났던 원주민들과는 조금 달랐다. 호주의 진정한 아웃백(outback)에 사는 사람들이라 다소 거칠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온순했고 영적이었으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일선 선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시드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번 여행을 되돌아보며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선교적인 열정과 신앙적인 소명도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  바율루 마을에서 만난 원주민 어린이들.    © 김성주


바울 사도가 보았던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던 것처럼 이번 여행에서 우리 일행은 원주민 형제자매들의 간절한 외침을 보았다. 주님의 부르심이 누구에게 임하든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선교의 첫걸음이요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을 안내해 준 현지의 선교사들과, 익숙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동행한 한인 호주원주민선교회(KMIA) 모든 이사 목회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글/이영식|KMIA 파송 호주원주민 선교사
사진/김성주|KMIA 이사, 새빛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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