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고 어학연수단 세 번 인솔한 김현호 교사

창호의 세 번째 다리

글|송기태, 사진|권순형 | 입력 : 2015/01/26 [11:36]
▲  대학 졸업한 85년 이후부터 30여년 동안 창신 외길을 걸어온 김현호 선생.                   © 크리스찬리뷰


그는 창호(창신-호주)의 세 번째 다리(가교역)라고 할 수 있다. 아니 향도(嚮導)란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다. 호주 선교사들이 세운 육영기관인 창신고등학교 학생들의 어학연수를 위해 호주로 세 번이나 다리 역할도 했고, 향도도 했으니 말이다. 그가 바로 창신고등학교(이하 창신) 김현호 교사(영어)이다.
 
그는 대학 졸업한 85년 이후 창신에 교직의 첫발을 뗀 이후 결코 한눈팔지 않고, 30년 넘게 ‘창신 외길’을 걸어온 ‘창신 지킴이’이다. 창신의 짧지 않은 역사에 동참했고, 창신의 영욕을 지켜본 산 증인이기도 하다.
 
한국의 각급 학교는 ‘교실붕괴’란 말이 만연할 정도로 혼란과 무질서가 혼재되어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사육사가 아무리 잘해줘도 비위에 거슬리면 사육사를 물어버리는 맹수 같은 존재라고도 한다.
 
교사가 열 가지 중 하나만 잘못해도 학생들은 물고 늘어지는 맹수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리라.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맡고 있는 고등학교 시절에 그 ‘맹수의 기질’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기 십상이다.
 
이러한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삐걱하면 사고치기 십상인 청소년 수십 명을 향도하여 외국에 나와 그들의 손과 발, 그리고 입이 되어 준다는 것은 말처럼 녹록치 않다. 호주 일정이 거의 마무리 되어 갈 무렵 그와 가진 일문일답이다.
 
- ‘창호의 다리’를 처음부터 개설한 배경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예, 창신 개교 99년을 맞던 때가 바로 한•호선교 110주년이었습니다. 그때 부산•경남 지역 교회와 기관 관계자들이 호주를 방문했습니다. 멜본한인교회에서 110주년 기념식을 가졌지요. 그 당시 아마 <크리스찬리뷰>에서도 취재하셨지요? 그때부터 강병도 총장님이랑 <크리스찬리뷰>의 인연이 끈끈하게 맺어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에서 해외 영어 연수를 계획할 때 이왕이면 우리 학교의 모태이자 경남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준 호주를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사랑에 빚진 나라에서, 그리고 그 후예들에게 그 씨앗의 열매들이 세대를 이어 인연을 맺어 가는데 가교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1999년 12월 말~2000년 1월에 걸쳐 오렌지 킨로스(Kinross Wolaroi School)에 처음 영어연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동석한 본지 권순형 발행인이 부연하여 설명했다.
 
“한•호 선교 110주년 되던 그 당시 이상규 교수께서 우리 잡지에 ‘한•호 선교 역사’ 100회 연재을 앞두고 있을 때입니다. 월간지에 100회 연재란 10년 가까운 작업이라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만큼 그분이 자료 발굴에 심혈을 기울이셨고, 또 우리는 그것을 발표할 마당을 제공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파장은 먼저 한•호 선교의 체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토대를 바탕으로 실증적인 탐사를 기획했습니다.
 
그즈음 멜본에서 열린 110주년 기념대회에 김명동 목사님이랑 취재하러 가서 만난 분이 강병도 총장님입니다. 그분께 우리의 호주 선교사들의 발자취인 부산 경남 일대의 취재기획을 말씀드렸습니다. 혼쾌히 협조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분의 배려(취재 차량 제공, 호텔 등 온갖 편의 제공)로 부산•경남지방 순회 취재를 아주 순조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벌써 15년 전이네요. 그렇게 취재하여 1년 가까이 우리 잡지에 연재했던 것입니다.” 

▲ 블루마운틴 세자매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한 창신고 영어연수단 학생들.     © 크리스찬리뷰


- ‘창호의 다리’를 처음 기공할 때 어땠습니까?
 
 “방금 말씀하신 그런 배경에서 99년 말에 30명을 데리고 처음 호주에 왔습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15년 전 그 당시 고등학교에서는 외국으로 어학연수 보내는 고등학교가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 학교만의 특별한 프로그램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도 좋은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권 발행인을 알게 된 것은 2001년도 두 번째 연수 때입니다. 그때 우리는 오렌지에서 영어연수를 할 때였는데, 그 먼 곳까지 김치 등 먹을 것을 공수해 주신 아름다운 사랑과 추억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여기서도 권 발행인은 그때 그곳을 가다가 블루마운틴 지나서 차가 폐차되는 교통사고 났다고 하면서, 그 와중에도 렌트카를 타고 방문했던 것은 잊지 못한다고 했다).
 
- 그렇게 ‘창호의 다리’를 다녀온 학생들의 소감은 어떻습니까?
 
“당연히 학생들이 호주에 오고 돌아가면 좋은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하지요 스콧트 칼리지, 울릉공대학, UTC, YM 베이스 등 유서 깊은 기독교 기관에서 숙식하면서 불신학생들에게 간접선교 효과도 있습니다. 아무리 기독교 학교라도 최근 ‘차별금지법’ 때문에 공교육기관에서 특정종교를 강요하거나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하면 안됩니다.
 
그래도 기독교 기관에서 하니 그런 곳에 배어있는 영성이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효과는 적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지난 15년 동안 ‘창호의 다리’만 건넌 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한두 번 했습니다.
 
첫날엔 공항에서 숙소로 가니 호주에 온 느낌이 안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체험을 하면 다 좋아합니다. 오전에 한 시간 반씩 두 번,  3시간 수업을 합니다. 원어민 교사 두 분이 재미있게 잘 진행하여 만족도가 높습니다. 오후에 이틀에 한 번꼴로 시드니 각 명소 방문합니다.  호주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며 느끼는 더욱 의미 있는 행사이지요.
 
좀전에 말씀드린 대로 미션스쿨이지만 종교적인 프로그램은 못합니다. 그래서 저녁에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특강을 합니다. 훌륭한 기독 전문인 지성들과 목사님들이 오셔서 학생들에게 꿈을 가지게 해주고, 인생의 큰 디자인을 그릴 수 있는 동기부여의 시간을 갖습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고등학교 시절에 해외에 나와서 보다 넓은 세상을 바라보면서 시야도 넓히고, 사고의 폭도 넓히고 큰 꿈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매일매일 저녁식사 후 그날 수업하고 활동 사항과 소감을 서로 나눕니다. 거의 날마다, 예외 없이 모든 활동들이 기억에 남고, 좋은 경험이었고, 만족하다고 할 정도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의 만족도가 높습니다.
 
YM 베이스는 시드니 외곽 한적한 곳에 있어 교육적으로도 좋은 장소라고 생각됩니다. 시드니예수전도단 하태식 목사님 사모님의 부친께서 아주 오래 전, 제가 부임하기 전 창신학교 교장을 지내신 분이더라구요.
 
세상은 넓고도 좁다고 하지만 아름다운 만남과 인연은 이렇게도 계속됩니다. 창호의 다리 가운데, 창신학교에 평생을 헌신하신 분의 자제분이 또 다시 창신 학생들을 만나서 한 가족처럼 섬겨주시는 것 등은 별처럼 아름다운 드라마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     © 크리스찬리뷰


- 최근 창신학교의 발전은 눈부시지요?
 
“우리 학교가 인문계에서 공고로, 공고에서 다시 인문계로 전환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84년도, 그러니까 제가 부임하기 1년 전에 공고에서 인문계로 전환했습니다. 사실 공고 때는 이미지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인문계 전환 후 경남 지역 연합고사가 실시되어 학생들은 추첨을 통해 학교 배정을 받았는데, 초창기 우리학교 배정되면 집에서 난리가 날 정도였습니다.
 
교육환경도 처음 선교사들이 창신학교를 세웠던 곳이라 역사만큼 시설이 너무 열악했습니다. 특히 주변이 시장통이라 온갖 소음이 다 들렸습니다. 공고 때야 실습위주였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인문계는 얼마나 공부에 집중해야 됩니까?
 
85년도, 인문계로 전환된 그 시점에 지금 학원장인 강병도 박사님(당시 이사장)께서 창신을 인수하셔서 ‘명문학교로 만들어 보자’고 창신 가족들이 똘똘 뭉쳤습니다. 제일 먼저 추진한 것이 학교 이전이었습니다. 92년도에 이전하는 과정에 강 박사님의 ‘살인적인 헌신’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굉장히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지금 학교 자리가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물이 있는 명당이지요, 그 당시는 논밭이고 그린벨트 지역이었습니다. 땅 있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보상 받으려고 공사하는 현장에 와서 드러눕고 하면서 애간장을 녹였습니다. 그렇게 보상을 더 많이 해주면서 학교에서 내려다보면 마산 바다와 시가지 한눈에 보이는 참 좋은 교육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습니다.
 
창신의 모든 가족들이 진짜 열심히 헌신하여 5년 뒤부터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 10년 쯤 뒤에는 명문학교로 탄탄히 굳혔습니다. 한때는 서울대에 32명까지 합격할 정도의 명문학교로 부상했습니다.”
 
▲     © 크리스찬리뷰


- 선생님 개인적인 소감은 어떠신지요?
 
“개인적으로 영어 교사로서 학생들의 영어연수를 위해 인솔하여 3주간 같이 생활하면서 학생들과 더 친밀해지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소위 ‘계급장 떼고’ 만나는 가족과 같은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 청소년 시절의 갈등과 번민을 민낯으로 만나면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됩니다.
 
또 학생들이 좁은 국토에서 많이 모여사는 ‘한국이라는 우물’ 안의 세계를 벗어나 광활한 나라에서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지평을 대하면서 큰 꿈과 비전을 잉태하면서 영어에 대한 동기부여,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자각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인솔자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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