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듯, 홀린듯

묵상이 있는 만남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2/01 [15:25]

바닷가에서 모래 장난에 빠져 있는 아이의 모습은 아름답다. 바지가 내려와 엉덩이가 반쯤 드러난 아이의 얼굴은 진지하기 이를 데 없다. 지금 만들고 있는 모래성은 우주요, 하고 있는 작업은 일생일대 최대의 과업이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고 신나는 일을 만나면 소위 물을 만났다고 말한다. 솟구쳐 오르는 그 무엇이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낄 때 이런 표현을 한다. 바로 이 상태가 몰입이다.

정경화의 바이올린 연주나 강수진의 발레를 볼 때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만의 세계 안으로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지휘를 할 때 음표만 보고 기계적으로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세계 안으로 깊이 들어가 자신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린다고 한다.

모짜르트는 그의 불후의 명작들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미친 듯이 써내려 갔다고 한다. 소위 신들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모두가 몰입의 경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탁월한 연기자들은 자신의 연기에 빠져 들면서 극본의 인물과 자신이 일체가 되어 극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후유증을 겪는다고 한다. 몰입을 했다는 증거다.

몰입은 흐름이다.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강물은 힘이 있다. 자연스럽다. 그것은 부드럽지만 강하다. 흐름에 빠지면 모든 것은 쉬워 진다. 집중력이 더해지면서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능력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흘러야 한다. 글도 짜내면 한 줄 쓰기도 힘겹다. 글은 물이 흐르듯이 써내려 가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고 한다. 잘 쓴 글들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멈출 수 없게 만드는 힘이 들어 있다.

설교 역시 논리의 짜 맞춤이 아니라 묵상이 내면에서 흘러 물이 물을 밀치고 들어 오듯이 파도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파워가 생긴다.

몰입의 상태에서 큰 일이 일어난다. 뉴턴에게 어떻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느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나는 언제나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다”였다. 몰입의 상태에 빠진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그 사람은 영락없이 미친 것처럼 보인다. 몰입의 상태는 한없는 기쁨을 가져온다. 그때 행복의 극치를 맛본다.

삶이 피곤한 이유는 지루하고 식상한 일상들, 나도 나를 설득할 수 없는 것에 지겹도록 목을 매달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신명이 나고 리듬이 살아나는 일, 춤을 추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멜로디가 내안에서 살아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이 떠밀려 무대에 선 3류 광대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 속에서 업적을 이룬 대다수의 사람들은 몰입의 경지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도를 텄다는 말은 몰입의 단계를 지나왔음의 결과다.

몰입에 관한 이론으로 알려진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플로우" 라는 단어를 쓴다. 행위에 깊게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될 때를 일컫는 심리적 상태에 대해서 말한다.

영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신비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영적 세계의 초입에서는 기도나 말씀묵상이 잡다한 상념이나 어지러운 공상들로 뒤섞여 얕은 생각의 파편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좀 더 나아가면 기도와 묵상은 깊은 세계 안에서 하나님과 합일되는 영적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잡다한 욕심과 염려들, 출처를 알 수 없는 상념들을 지워버리고 내면에 깊은 영의 물결이 요동을 칠 때 마음은 기이한 희열에 맛보게 되는 것이다.

신자가 영적 세계에 대한 몰입에서 실패하면 부정적인 몰입에 손 댈 가능성이 높다. 삶을 망치게 하는 나쁜 중독들은 주변에 널려있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오가는 가운데 내적 버팀목이 약하면 손쉽게 몰입에 빠지게 해주는 것들에 유혹을 받게 된다. 그때 위험한 외도가 시작된다.

어디엔가 미쳐야한다. 물이 흐르듯이 내 삶을 빠져들게 하는 것을 만나야 한다. 바울은 그것을 만났다. 미친듯, 홀린듯, 예수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넣었다. 그는 행복자였다.

 

이규현
시드니새순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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