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가득한 일상

강승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5/26 [12:10]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누구나 한 번쯤 설레임을 경험하게 된다. 가슴 벅찬 구원의 감격 때문에 가슴이 설레이고, 세상이 새로워 보인다. 대부분 내가 처한 환경과 상관없이 주님을 위해 뭔가 일하고 싶은 뜨거운 열정이 생긴다. 신앙생활을 잘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커피 한 잔 하다가 잠시 예수님만 생각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설레임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구원의 감격으로 인하여 감사로 시작된 자발적인 섬김은 어느새 사라지고 부담이 가득한 삶으로 변질된다. 그저 의무감으로 어쩔 수 없이 봉사하며 섬기는 평범하고 아쉬운 하루를 살면서 미래가 보이지 않은 두려운 하루가 반복될 뿐이다.
 
꾸준히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아직은 초신자이거나 신앙경력이 짧아서 믿음이 연약하니까, 그저 열심히 기도하고, 큐티하고, 매주마다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일 예배시간에 눈물 뿌려 기도하고, 찬양할 때 주님을 향해 두 손 높이 들고, 은혜로운 설교말씀을 통해 결심을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변화없는 매일의 삶은 시간이 흐를수록 아쉬움만 남긴 채 감동 없는 매너리즘을 만든다.
 
믿음의 공동체와 관계가 단절된 가나안(?) 교인의 삶은 그저 자기가 섬기고 싶은 하나님을 만들고,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 교회를 비난하며 종교행위를 반복하는 이기적인 신앙일 뿐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다. 젊은 시절을 회상해 보라. 사귀는 사람을 대할 때 가슴이 설렌다. 만날수록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지고 기대감도 많아진다.
 
하나님과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사랑의 관계이다. 꿀처럼 달콤하고 실크처럼 부드러운 사랑의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공상과 상상에 머무는 사랑이 아니라 모자람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는 믿음이요, 원동력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일상이 설렌다. 새벽마다 설레임 가득한 아침을 맞이한다. 큐티 본문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깨닫게 된다. 오늘 주님께서 나를 통해 하기 원하시는 일에 열정이 생기게 된다. 그 열정은 지워지지 않는 욕구로 발전된다. 그 욕구는 비전이 되어 삶을 개혁하게 된다. 자신의 꿈을 접고 하나님의 소원을 품게 된다.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는 설레임으로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감으로 하루를 살게 된다.
 
예수님의 사역도 설레임의 연속이었다. 그 설레임의 현장은 잔치였다. 예수님의 사역을 정리해 보면 잔치로 시작해서 잔치로 끝난다. 공생애의 첫 기적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었고, 예수님의 재림은 공중혼인잔치로 우리를 초대한다.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가슴은 설렌다. 어떤 음식이 나올까, 어떤 이벤트가 있을까 기대하게 된다. 이런 설레임이 여행을 앞둔 아이들처럼 들뜨게 만든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설레임이 존재하게 된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죄인들과 교제하는 것에 대해 불평했던 바리새인들에게 3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다. 처음  두개의 비유인 잃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드라크마의 비유는 잃어버린 사람이 그것을 되찾은 후에 크게 기뻐하는 잔치 분위기로 끝난다. 그러나 세 번째 비유인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는 그 누구도 잃어버린 아들을 찾으러 나서지 않는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누가 나서서 이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겠는가?” 하고 질문을 던지신 것이다. 첫째 아들로 비유된 바리새인들에게는 설레임이 없었다. 그저 율법을 지키는 의무를 통해 얻게 될 유익에만 집중했다. 바리새인들은 방탕한 동생이 귀가함으로 인해 자기가 받을 재산이 줄어들 것에 대해 불평하는 첫째 아들이었다. 불평하는 첫째아들에게는 설레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품꾼이 되기로 작정하고 돌아온 죄인의 상징인 둘째 아들의 모습에서는 설레임이 생긴다.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용서와 환대를 받으며 품꾼에서 아들의 위치를 다시 얻게 되는 잔치의 기쁨을 경험하게 된다. 
 
아직 나에게 설레임이 없는가? 집을 청소하고 손님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해 보라. 당신의 마음에 예수님을 초대하고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라.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설레임으로 가득한 일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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