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후반전

백대석, 유제실 선교사 부부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5/26 [12:12]
▲ 백대석, 유제실 선교사 파송예배에서 합심 및 안수기도하고 있다.     © 열린문교회

선교의 전후방이 사라졌다. 땅 끝이 시드니로 오고, 시드니가 땅 끝으로 가고 있다. 시드니에는 오래 전부터 땅 끝을 품고 기도하는 교회가 있었다.  시드니 북부에 위치한 '열린문교회'이다.
 
지난 4월 26일 열린문 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예배가 있었다. 파송받아 가는 곳이 사회주의 체제의 불교국가이기에 선교사의 안전을 위하여 나라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파송되는 두 분은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호주에서 'KTF 기술자문위원'으로 있을 때,  '열린문교회'에 출석했던 ‘백대석, 유제실’ 부부이다.
 
그는 어릴 때 선교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선교사로 헌신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입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미국 목사님을 초청하여 부흥회를 하였는데 마지막 날 목사님께서는 선교사로 헌신할 사람은 손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선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좋은 일이다 생각하여 엉겁결에 손을 들고 서원 기도와 안수를 받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놀라시며 ‘서원은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시며 좀 더 큰 다음에 부모를 통해서가 아닌 본인이 하나님을 직접으로 만난 후에 결정하라 하셨습니다. 저 또한 시간이 지나 성장하면서 학교와 사회생활에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잊혀 갔습니다." 
 
4대째 신앙의 뿌리
 
그는 고향이 원산인 할머니의 믿음으로 친가와 외가 모두 4대째 예수를 믿는 집안이 되었다. 대학을 마치고 직장 따라 서울로 가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면서 영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신앙인으로 직장생활을 모범적으로 하다 보니 인정을 받게 되어 1999년 호주에서 KTF와 삼성과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기술자문위원으로 발탁이 되어 호주에 오게 되었다.
 
호주에서 머물렀던 캐피탈 호텔의 사장인 열린문교회장로의 인도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부부는 열린문 교회에서 '새신자 교육', '전도폭발 훈련' 등의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하나님은 열린문교회를 통하여 그가 잊고 살았던 어릴 때 서원을 생각나게 했다.
 
"열린문교회에서 선교사들을 아주 쉽게 자주 만날 수 있었고 그 분들의 말씀과 이야기 속에 우러나오는 진지함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러한 호기심은 관심이 되어 2000년 열린문교회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선교비전트립'에 동참하였고 한국에 와서도 매년 휴가철에는 단기선교로 선교지에 나가 선교사들을 위로하고 돕는 일을 하면서 어느덧 내게 있어서 해외 복음은 소망과 함께 비전이 되었습니다."
 
2002년 부부는 해외선교에 대한 사명을 품고 귀국하였다. 언제 어떻게 하나님께서 '해외 선교사'로 부를지 몰라 하루하루 직장생활을 선교사같이 하였다.
 
 "저는 '직장은 직장인들의 선교 사역지다' 라는 생각으로,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믿는 사람과 믿을 만한 사람들을 모아 말씀묵상을 함께 하면서 초기 낙심도 경험하고 얼마 후에는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는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
 
그는 어느 날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을 때 말씀이 떠올라 빌립보서를 보게 되었다. 그에게 다가온 말씀은 빌립보서 1장 4절부터 6절이었다. 
 
특별히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6)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일을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일을 이루시는 이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어지는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읽으면서, 선교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릴 때 헌신케 하신 이도 하나님이고, 이제 선교사로 보내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며, 일을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넘쳤다.
 
"제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위해 한다고 하였지만, 그 일들이 아주 엉터리들이었고 선교도 무엇인지 모르고 손을 들어 서원하고 때로는 그 일이 너의 목표가 되어 무엇인가 해내려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그 일을 시작하게 하고 그 마음에 소원을 두게 하신 나 하나님은 너로 말미암아 참 기쁘다. “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영원히 그리스도의 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말씀은 너무나 벅찬 기쁨이었고 두려움과 떨림이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내가 선교를 하고자 해서 생겼던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고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돕는 손길과 인도하심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선교사 파송장을 수여하고 주정오 목사가 백대석 선교사를 포옹하고 있다.     © 열린문교회

선교사 부인은 없다
 
선교지에서는 선교사 부인은 없다. 그의 가장 큰 힘이 되는 동역자는 부인이다. 그녀도 함께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녀는 남편의 부족한 점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결혼한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당시의 연애편지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섬세하다. 더구나 선교지에 필요한  '유아교육'을 전공하기도 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크리스찬으로서 당연한 것이니, 뭐 선교한다는 것에 특별하게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선교란 한국에서 살던 크리스천의 삶을 L국에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무 부담 갖지 않고 L국으로 떠나려 합니다."
 
그녀는 3년간의 호주에서의 삶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선교사로 사용하기 위하여 훈련시킨 기간이라고 고백하였다.  
 
"지난 온 세월을 보니 하나님께서 미리 뜻이 있어서 3년간 호주로 보내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호주에 안 왔다면 선교를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13년이 지난 지금, 열린문교회를 통하여 파송받게 되니 이 어찌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두 사람은 '전문인 선교사'로 L국의 ‘국제학교 교사 비자’를 받고 5월 19일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2월에 있을 어머니의 팔순 잔치도 5월 5일로 당겨 감사예배를 드렸다. 
 
백대식, 유제실 선교사는 인생 제 2막의 첫 장을 L국에서 열게 되었다.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기에, 미지의 땅을 향하여 떠나는 두 사람의 각오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였다.
 
"이제 모든 사람의 소명인 복음에 있어서 저희들은 해외로 나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인생의 후반부를 던지기로 하고자 합니다. 사역지는 기도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L국으로 정하였으며, 예수님께서 아흔아홉 마리보다 한 마리 어린 양을 찾아가는 마음을 본받아 복음이 미치지 않은 소수 미전도 종족을 위하여 섬기겠습니다.
 
그곳에 가서 내가 무엇을 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선교하시는 역사 현장의 증인으로서 또 그곳에서 착한 행실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겸손함으로 살아가겠습니다." 〠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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