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사람들

실버부부, 중미를 가다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2/01 [15:49]
<마나구아에서 제 2신>

“요 14: 6교회” 작은 천사들

점심 때가 다 되어서 박 선교사 부부가 집으로 찾아왔다. 언제든 편한 시간에 동행을 부탁했는데 이렇게 집에까지 찾아와 가자고 하니 서둘러 그의 차에 올랐다. 마나구아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반 거리에 있는 현지인교회들이 그전부터 자기네 교회를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가 마침 예수전도단 청년들도 있고 해서 위로 차 그들과 함께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 마나구아 최고 이발사(?) 배용찬 장로가 가위를 잡았다.ⓒ배용찬    


북미에서부터 뻗어 내려온 판 아메리칸 하이웨이가 이곳 마나구아에 이르면서 제법 잘 닦여진 2차선의 간선도로로 건설되어 있었고 우리는 두 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그 길을 달렸다. 두 시간을 달리니 세바꼬(Sebaco)라는 작은 시골마을이 나타났다. 농산물의 집산지답게 각종 야채며 과일 가게들이 길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들판에는 커피를 말리느라고 널어놓은 무더기들이 줄지어 있어 작은 시골 마을같지 않게 활기가 차있어 보였다.

세바꼬마을을 조금 지나자마자 오르막 도로 옆에 차가 멈추었다. 그 길옆에는 십여 명의 아이들이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아이들이 앞장서고 우리는 좁은 언덕길을 따라 몇 채의 움막이 있는 작은 마을로 안내되었다.

 “요 14: 6교회”(Juan 14: 6)의 나이든 목회자(이곳에서는 페스똘이라고 부름)가 우리를 맞았다. 교회라고 하는 건물은 벽돌로 벽을 올려서인지 그 마을에서는 제법 멋진 건물이라고 하지만 건물모양만 갖추었을 뿐 지붕도 없고 출瀆??달지 않은 말 그대로 공사 중인(?) 가건물이었다. 그 지붕은 언제 씌워질지 아직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열 평 남짓한 흙바닥에 쪼그리고 앉은 아이들 앞에 이현숙 선교사가 섰다. 함께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예배는 시작되었고 말씀을 전한 후 기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천사들의 기도모습이 이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들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아이들의 얼굴에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순수함이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만을 찾아다니는 이들 선교사 부부의 사역은 까만 눈을 가지고 있는 어린 심령들에게 맞추어 지고 있었다. 술과 마약 그리고 성적인 문란으로 황폐해 가는 이 나라의 미래는 오직 순수한 심령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에 달려 있음을 알기 때문에 선교사부부는 니카라과 어디에든지 가장 가난한 동네를 찾고 있으며 그 동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시골교회를 다녀온 며칠 후, 또 다른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전구 선교사가 아침 일찍 찾아왔다. 오리엔탈 마켓 부근에서 부랑자와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몇 년째 급식사역을 하고 있는 그는 차로 마켓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먼저 우리에게 그의 사역현장을 보여주었다. 딸네는 중미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이라고 하는 이곳은 폭력과 마약 등 범죄가 난무하는 우범지역이라 시계나 지갑 등 귀중품은 가져가지 말고 옷도 허름하게 입고 가라는 등 미리 겁을 주는 바람에 시장 어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그곳 사람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부랑자와 노숙자 사역  

그런데 우리 차가 지나가자 길가 이곳저곳에 서성거리고 있던 사람들이 “뻬스똘 마테”(전선교사의 스페인식 이름)를 연호하면서 차 쪽으로 몰려왔다. 어떤 사람은 마약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면서도 그를 알아보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어떤 여자는 때에 절은 얼굴로 그의 얼굴에 뽀뽀를 하려고 달려들고 있었다.

 
▲ 흙바닥에서 기도하고 있는 어린이들ⓒ배용찬  


전 선교사는 이들에게 일일이 반가운 웃음으로 인사를 하면서 스스럼없이 대하는 모습이 그들은 전 선교사를 오랜 친구나 맏형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작은 병원이 있던 자리를 뒤쪽으로 확장해서 사용하고 있는 급식센터에는 10시가 채 안 되었는데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몸에 문신을 어지럽게 한 사람, 마약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 휠체어를 타고 졸고 있는 노인 그리고 땟국이 흐르는 옷을 입고 있는 젊은 여자 등 이들은 세상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버려진 사람들이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이들은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다면서 손을 내미는 바람에 우리 부부도 그들과 일일이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되었는지 식사시간 전에 한 켠의 공터에서 현지인 목사의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가르쳐야 한다는 전 선교사의 생각에 지역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번갈아 가면서 설교를 하고 있다고 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다섯 평 정도의 주방에서 여자 둘이서 밥을 퍼 담고 있었고 우리 부부도 손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열심히 밥퍼사역(?)을 하고 있는데 전 선교사가 “장로님, 이발할 줄 아세요?” 라고 물었다.

▲ 급식소 앞. 아침 10시부터 줄서기가 시작된다.ⓒ배용찬  

“잘은 못하지만...”

엉거주춤하는 사이 그는 앞치마를 내 어깨에 걸쳐 주면서 이발 기구를 가지고 마당으로 나갔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잠시 배워두었던 이발기술을 그가 어떻게 알았을까 하고 의아해 하고 있는데 의자 하나를 놓자 이내 사람들이 한 줄로 죽 늘어섰다. 내 실력으로 이 많은 사람을 다 깎으려면 하루 종일 깎아도 안 될 것이라며 속으로 잔뜩 겁을 먹었지만 내 손에 쥐어진 빗과 가위가 이미 작업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목욕을 하지 않아 온 몸에서 악취가 풍기고 머리가 떡이 된 청년을 겨우 모양만 내고 나니 옆에 서 있던 할아버지가 냉큼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서너 명을 깎고 나니 밥 배식이 시작되었는지 모두들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바람에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 옆에 있던 두 명이 자기 머리는 어떻게 되느냐고 항의를 해 왔다.

 “아스따 마냐나”(내일 봅시다)라고 하는 나의 유일한 스페인말로 얼버무리면서 겨우 그 자리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오늘 밥을 먹은 사람은 남자가 135명 여자 32명 그리고 어린이 22명으로 도합 189명이나 되었다.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에는 일 주일 중 하루만 급식을 했으나 먹여야 할 사람이 매일 늘다 보니 이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 주일에 5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선교후원이 있어야 할 것 같아 물었더니 자신이 목회하던 미국(워싱턴)의 몇몇 교회로부터 오고 있다고 하면서 행여 후원이 끊어져 이 사역을 못할까 하고 매달 걱정을 하지만 매달 감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인도에서 빈민사역을 했던 테레사 수녀가 길거리의 노숙자, 병든자를 데려다 먹여주고 치료해 주는 사역으로 예수의 모습을 재현했다면서 자신 역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이들, 버려진 영혼들이 최소한의 인간 모습을 하고 살다가 하늘나라에 가기를 원해 이일을 시작했다고 하는 전 선교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눈에 자신의 눈을 맞추며 살아가는 이 땅의 작은 성자임이 분명하다.


배용찬/멜본한인교회 은퇴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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