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되어 버린 ‘한글 배움터’

입양아가 아닌 한국인이라 불러 주세요

글|김석원, 사진|권순형 | 입력 : 2015/06/29 [10:56]
▲ 한국 입양아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뉴카슬 한글 배움터 가족 캠프가 지난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완겟트 롯지(Wangat Lodge)에서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캠프는 2001년부터 시작하여 금년에 15회를 맞았으며,    이휘진 총영사 부부와 강수환 시드니한국교육원장이 함께 참여하여 가족들을 격려했다.     © 크리스찬리뷰

인터뷰 뉴카슬 한글 배움터 오세옥 교장 

오세옥 교장(48)은 ‘돌봄’이 업인 사람이다. 뉴카슬시 중심부에 위치한 NSW 중부보건본부 간호사 관리부에서 일하는 오 교장은 외국에서 들어온 수천 명의 간호사들을 돌본다. 그러나 그녀의 돌봄이 필요한 곳은 직장만이 아니다. 따로 한인복지단체가 없는 뉴카슬시 현실에서, 한국말을 하는 누군가가 도움을 구하면 가장 먼저 연결되는 사람도 오 교장이다.
 
물론 요즘은 도울 사람이 혼자 밖에 없던 전에 같지는 않다. 직장 때문이라도 손이 닿지 않으면 한인교회 교역자들에게 연결시켜서 해결하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 교장의 돌봄이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은 따로 있다. 이 지역에 사는 40여 가정의 입양아 가족들에게 오 교장은 단순한 도우미가 아니다. 오 교장이 이들을 대하는 마음도 특별하다. 15년이나 걸려 만들어진 가족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양양 출신인 오 교장은 아버지를 여의고 대학을 갈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어려워졌다. 장학금도 받고 바로 직업 전선에 나갈 수 있어서 시작했다는 간호보조사. 그러나 학벌과 인맥이 경력과 실력을 초라하게 만드는 한국의료계 현실은 정의롭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당시 동료들처럼 꾸준히 늘어나는 월급과 인기있는 며느릿감이라는 위안으로 자족하는 것이 최선인지 고민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동기 중에는 호주정부의 부서책임자인 자기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간호사도 있다고 말하면서도, 오 교장은 한국을 떠난 결정에 후회하는 기색이 없다.
▲ 뉴카슬 한글 배움터를 이끌고 있는 오세옥 교장     © 크리스찬리뷰
 
이참에 마음으로만 그리던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용기를 냈지만, 오 교장의 마음 속에서는 더 큰 꿈과 도전에 대한 갈증이 더 컸던 모양이다. 오 교장은 자신을 자유인이라고 자부한다.
 
1990년 1월 호주에 도착한 오 교장은 직접 생활비를 벌고, 어려운 영어와 씨름하며 간호 공부를 마쳤다. 한국에서는 흔한 의료기계조차 다뤄본 적이 없는 외국계 간호사들이 영어로 공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대받을 때, 한국에서 오랜 임상 경험이 무시당하는 현실은 오 교장에서 또 다른 숙제를 안겼다.
 
요즘 박사과정을 준비하는 오 교장은, 한국 의료계의 현실을 제대로 알려서 한국 간호사들이 제대로 경력 인정을 받을 기회를 찾게 하는 연구를 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거친 고생을 후배들은 조금이라도 덜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그러나 오 교장의 도전은 공부에서 멈추지 않았다. 오후 5시면 모든 것이 멈추어 버리는 적막한 뉴카슬. 이질적인 호주사회와의 갈등보다는 자신과의 싸움이 더 큰 시험거리였다. 아마 그때 생긴 빈자리가 없었으면 지금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을까?

▲ 뉴카슬 한글 배움터는 지난 2006년부터 매 3년마다 입양아 가족들이 한국 방문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은 이런 기회를 통해 한국의 발전상을 체험하고 한국 문화와 생활을 경험한다. 금년 9월에는 백두산과 독도를 방문할 계획을 추진 중에 있으며, 40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 오세옥
 
남편은 일을 마치고 운동으로 외로움을 달래던 오 교장의 수영 교사였다. 남편을 소개해 준 사람은 오 교장의 운동친구이자 지금은 시아버지로, 일당백으로 살아가는 오 교장의 분주한 생활에 없어서는 안된 도우미기도 하다. 간호사일이다 한글학교다 해서 한참 바쁘게 돌아다닐 때도, 아이들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었던 까닭이다.
 
- 한국인들이 많지 않은 뉴카슬에서 한글 학교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1996년 공부를 마치고 잠시 귀국했다가 호주로 돌아와 시드니 노스 쇼어 병원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나 서핑을 좋아하던 남편은 생활비가 많이 드는 시드니를 떠나 집도 사고 자기가 좋아하는 서핑도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해서 뉴카슬로 이사했지요. 와서 보니, 한국인은 없었지만 한국계 입양아 가족들은 많았습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플레이그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때 시드니에 계셨던 어떤 회계사 한 분이 챨스 타운에서 입양아를 위한 한글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원래 제가 국문학을 좋아했던 배경도 있고, 당시 제 뱃 속의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까 싶어 같이 나섰지요. 제1대 교장은 김호성 교수(뉴카슬대학 기계공학과)가 맡았는데, 처음부터 학부모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한동안 플레이그룹과 한글학교가 동시에 존재하다가 결국 한글학교 쪽으로 통합됐습니다.”

▲ 뉴카슬 한글 배움터 가족 캠프에서 탁구를 즐기는 학생들     © 크리스찬리뷰
 
- 학교는 2000년 10월 12일에 정식으로 개교했으니 벌써 15년이나 됐네요. 좋은 때만 있지 않았겠지요?
 
“실제로 많은 고비가 있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한인교회와 함께 하지 않으면 한인 관련 활동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목사님들은 항상 도와주시려고 애도 쓰셨고, 행사마다 빠지지 않은 초대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뭔가를 주도적으로 해야 할 때는 저희 혼자 힘만으로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임신 중에는 너무 힘들어 놓고 싶었는데, 제가 포기하면 한글학교 문을 닫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계속해야 했습니다.”
 
- 학교 운영을 혼자서 하긴 힘들었을텐데 그래도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습니까?
 
“실제로 시드니에서 오시는 분들의 도움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시드니중앙라이온스클럽에서는 8여 년 동안 계속해서 도와주셨습니다. 한글 학교 운영은 저희의 자원봉사가 전제되긴 했지만, 호주정부에 등록된 정식 주말학교로서 시설사용 등에 지원을 받아냈고, 한국 재외동포재단 역시 지원을 해 주었지요. 한국 방문 때마다 아시아나항공이나, 제 고향 친구들, 권순형 발행인 소개로 만난 진흥문화(카렌다)도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이들을 통해 받은 가장 큰 위로는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와 준다’는 점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이제는 저희가 도움을 주는 쪽이 되었습니다. 이번 캠프에는 시드니쪽 사람(입양가족)들을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 이휘진 총영사가 캠프에 참석해 한국의 역사와 K-POP 등에 대해 특강을 실시했다.     © 크리스찬리뷰
 
- 2세들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한국문화교육이 중요하다고 다들 말하지만, 입양아들은 호주인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될 부분이 더 많지 않나요? 이들에게 왜 한국문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면, 2006년에 첫 번째로 한국 방문했을 때, 여정 중에 만난 한국아이들이 입양아들에게 ‘너는 한국어를 왜 못해, 왜 호주 부모야?’라고 묻는 바람에 아이들이 당황하며 운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따로 불러 ‘네가 선택을 해라. 너는 한국인도 될 수 있고, 호주인도 될 수 있지만 한국인과 호주인이 동시에 될 수 있다. 너는 두 개 같이 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입장에 있다’라고 도전했지요.
 
그 아이는 십대 동안에는 한글학교를 오지 않았지만 모든 활동에 항상 초대를 하면서 한글 교육의 끈을 이어갔습니다. 이제는 한국을 더 배우고 싶어 합니다. 12학년으로 자신의 밴드까지 있는 친구인데 한국을 더 배우고 싶다며 한글학교 내 사물놀이팀 주장으로 나섰습니다.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 구체적으로 아이들은 한국의 어떤 면을 자랑스러워하나요?
 
“아이들이라 당연히 한국의 전자기술, KPop 등을 먼저 꼽지요. 저희는 단순한 한글교육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활동도 하고 한국역사도 많이 가르치기 때문에, 한국의 오랜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강합니다. 한국 정신문화, 특히 어른 존중의 태도를 많이 강조합니다. 그래서 어른이 서 있으면 양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요. 물론 너무 늦게 한국 문화를 접한 친구들은 공감하기가 좀 힘든 것 같습니다.”

▲ 이휘진 총영사의 특강을 경청하는 학생들과 부모들     © 크리스찬리뷰
 
취재 중에 소개받은 두 입양아 가족들도 뉴카슬 한글학교에 만족해했다. 아이 다섯 중에 세 명이 한국계 입양아인 제임스와 조 올리버 부부는 11년간 학교와 함께 했다. 올리버 부부는 입양 자녀들은 ‘신자로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대로’ 키우고 싶다고 소개했다. 한글학교의 유익한 점에 대해서 묻자 제임스는 단순한 언어 습득이 아니라 ‘문화’를 배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사물놀이 반도 그렇지만, 다양한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저희 가족이 마음으로 품고 있는 대상이자,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이 좋습니다.
 
한인교회에도 8년째 출석하면서, 주중에는 만날 수 없는 한국인들과 교제를 갖습니다. 그동안 다섯 번이나 한국을 다녀왔구요. 한글 교육은 이러한 활동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도구입니다.”(제임스)
 
제임스, 베버리 랭포드 부부 역시 뉴카슬 한글학교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들 로완은 한국에 대한 자부심 이상으로, 이제는 ‘빅뱅’에 열광하며 아이돌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베버리는 “로완이 가족 전체에 큰 기쁨이었고 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며 “호주의 모든 가족들이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문화는) 실제로 호주가 처한 현실이기도 하니까, 살아있는 다문화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 즐거운 점심시간     © 크리스찬리뷰
 
- 한국인들이 찾아오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입양 가족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한국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고, 한국인 가족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한국인을 만나려면 한인교회라도 가면 되지만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럴 입장은 아닙니다. 저희는 지금도 누가 초대하거나 한국 관련 페스티발을 하면 무조건 갑니다. 같이 어울리는 것을 통해 가장 큰 도움이 되니까요.
 
좋은 예가 옹기김치 최진우 사장님입니다. 행사 때 마다 김치와 한국 음식 등으로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지난번 숙명여대 자원봉사팀이 왔을 때 직원들을 데리고 같이 놀아주셔서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한국 갈 때 항상 들리는 양양의 강현중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모교라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동창들까지 와서 우리 학생들과 하루 종일 놀아줍니다. 축구, 노래자랑, 장기자랑, 게임 안하는 것이 없고, 한국, 호주팀으로 나누면 서로 상대팀에 들어가 뛰고, 티셔츠도 바꾸어 입고, 밤까지 씨름도 합니다.
 
메밀국수도 직접 해먹고 같이 온 호주인 부모들은 한국식 술 먹는 법도 배웁니다. 한국인들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나누면 가장 큰 감동을 받습니다. 아는 방송국 피디를 통해 춘천에 있는 102보충대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오 교장의 마당발 인맥 덕분에 실제로 뉴카슬 팀은 MBC 메이퀸이란 TV프로그램에도 출현하기도 하고, 춘천 방문이 보도되는 영광을 누렸다. 올해 9월 중순에 계획된 여행에서도 뭔가 일을 터뜨릴 분위기다. 이번에는 백두산도 가고 울릉도도 간다는데, 누군가 카메라를 들고 쫓아가면 ‘인간 극장’ 한편이 나올 것 같다.

▲ 사물놀이 연습을 마친 후 교사•학부모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 크리스찬리뷰
 
- 한글학교 운영이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던 이유는...?
 
“개교부터 15년간 학교에 왔던 호영이란 학생이 있습니다. 3살 때부터 봤으니까 자라는 과정을 다 본 셈이지요. 지난 1월 호영이는 교육원장의 추천과 학교 장학금으로 공주대 한글교육 프로그램에 갈 수 있었습니다.
 
호영이가 한국에 가서 보낸 페이스북 메시지 중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자기는 “그동안 억지로 다녔는데 여기에 와 보니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자기만큼 한국에 대해 잘 아는 교포들이 별로 없는 것을 보고 교사들께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뿌듯한 마음도 함께 말입니다.”
 
인터뷰에는 오 교장 외에도 세 명의 교사가 같이 했다. 4년차 유학생 배성훈 선생(뉴카슬대 간호학과), 7년차 교민 김명희 선생, 1.5세로 모교로 돌아온 김은정 선생(뉴카슬대 아동교육과). 교사들은 매주 한 번 모이는 주말학교로서의 한계 때문에 아이들이 배운 것을 잘 까먹어 어색하면서도, 유투뷰 등으로 한국 드라마 등을 보고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최근 중단된 한국인 입양, 지역으로 유입되는 한인수의 제약으로 인해 같이 자라온 학생들이 이제 청소년이 되어 재학생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교사들은 단순한 한글 교사의 벽을 넘어 친구로 멘토로 상담자로 같이 하고 있었다. 십대를 다루는 부담이 없느냐는 질문에 교사들은 주변에 한국인이 거의 없다보니 따로 한국인이라고 ‘소외’받을 일도 별로 없어서 아이들은 밝은 편이고, 특히 부모들이 너무 열정적으로 돕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다고 했다.
 
- 한인사회와 크리스찬리뷰 독자들에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입양아’란 말을 안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어디를 가도 입양아 그룹이 아니라 ‘한글학교’ 이름으로 움직는데 자꾸만 우리에게 ‘입양아 그룹’이란 딱지를 붙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부모에게는 그냥 자식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입양아 가족이란 말 속에는 뭔가 우리와 다른 사람이란 뉘앙스가 있어 불편합니다.
 
이들도 한글학교 학생이고, 부모의 사랑하는 자식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한국 사람들의 흔한 선입견과는 달리 입양 부모들도 자식에 대한 집착도 강하고 뭐든지 열심히 도우려고 합니다. 덕분에 아이뿐 아니라 부모까지도 한국인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가족들 모두를 그냥 한국인으로 봐 주세요.

▲  짐 핀들레이 뉴카슬 한글 배움터 교감을 추모하며 부인과 아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기념 식수를 했다.                   © 크리스찬리뷰 
 
뉴카슬 한글 배움터가 단순한 학교 이상의 가족임을 보여주는 사건은 올해도 있었다. 짐 핀들레이(Jim Findley)는 입양아 자녀를 가지고 있지 않은 호주인으로 교감을 맡고 있었는데 그는 태권도를 통해 한국을 접했고, 1972년 뮌헨 올림픽 호주 수영 국가 대표를 역임하는 등 지난 15년간 한결같이 한글 배움터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캠프를 앞둔 5월 19일 그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며칠 전까지 그와 캠프를 함께 준비하던 학생과 교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4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충격은 더 컸다.
 
학생과 교사 모두가 장례식에 참석하고, 어렵게나마 예정된 캠프를 치루면서 편지를 쓰고, ‘짐’을 기념하는 나무를 심으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때 느꼈던 상실감만큼 이들은 서로에게 그만큼 의지하고 있었고, ‘뉴카슬 한글 배움터’가 서로를 살피며 의지하는 공동체임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었다.
 
한류 덕분인지 교포 자녀를 위한 한글교육은 더 쉬워졌다. 한글과 한국문화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좀 더 자연스러운 까닭이다. 그러나 막상 한글 교육에 대한 간절함이나 한국 문화를 통해 만들어진 공동체 의식은 도리어 더 희박해져 간다. 프로그램이 지속되면서 초창기 시도되었던 역동적인 문화교육의 시도도 시들해진 분위기다.
 
그러나 오세옥 교장과 뉴카슬 한글학교를 보며, 우리 안에서 회복해야 할 한글학교의 모델을 발견한다. 한글 사용이란 기능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서로가 돌보는 공동체를 만들고 한국인만의 한국문화가 아닌, 호주에 한국문화를 정착시키는 학교, 여기서 입양의 상처를 가능성과 자긍으로 바꾸는 참 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
 
외롭고 조용히 시작된 뉴카슬 한글 배움터, 이제 더 큰 규모의 한글 학교들도 부러워 할 만한 성숙한 모습으로 훌쩍 커버린 모습이다.〠 

글/김석원ㅣ크리스찬리뷰 편집부장
사진/권순형ㅣ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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