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힘에 이끌려온 헌신된 선교사들
가장 큰 축복이죠, 현지인 의료진들 “꿈을 갖게 됐다”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배 안에서 자라고 있던 종양 제거 수술 받은 환자를 돌보고 있는 김재선 선교사(가운데)와 강재명 선교사(오른쪽). 왼쪽은 캄보디아 의사들     © 크리스찬리뷰

아침나절인데도 햇살은 따가웠다. 하지만 캄보디아 전역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환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료 순서를 기다렸다.

  “눈이 아파서 왔습니다.”
  “배가 아파서 왔습니다.”
  “보세요, 걷지를 잘 못합니다.”
 
헤브론병원의 좋은 소문을 듣고 2-3일씩이나 걸려 찾아온 걸음들도 있었다.

  “이 병원에서 치료받고 나은 친구가 알려줬습니다.”
  “이웃동네 할머니가 이야기해줘서 왔습니다.”
  “한국선교사님이 데리고 왔습니다.”
 
환자들은 간단한 상처에도 그대로 방치되고 제때에 치료를 하지 않아 상처가 크게 곪은 사람들도 많았다. 눈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서 혹은 선천적인 감염 때문에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고혈압과 당뇨병, 기생충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빈곤한 삶 속에서 건강을 챙기며 살아간다는 것이 호사였다.

▲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친 환자가 다리에 골수염까지 와서 절단 위기에 있었지만 장기치료로 건강을 되찾아 걸어서 퇴원했다, 김재선 선교사가 퇴원에 앞서 치료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김재선(외과전문의) 선교사는 “이곳 의료 현실들, 시스템이나 장비, 인적자원들이 없다보니까 손을 쓸 수 없는 환자들이 너무 많다”며 “그런 환자들을 그냥 돌려보낼 때는 많이 의기소침이 되고 내내 마음이 무겁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렇지만 보람도 많다.
 
“한 달 전에 오토바이 사고가 난 환자인데 다리가 골수염까지 와서 잘라야 될 환자였어요. 장기치료를 하게 됐는데 걸어 나갔어요. 기적입니다.
 
또 다른 환자는 이곳에 있는 선교사님들과 협력을 해서 배 안에서 자라고 있는 종양을 제거한 환자인데 정말 남산만큼 큰 종양을 가진 젊은 여자였어요. 여기 헤브론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나가면 집에 가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쉽지 않은 수술이었지만 ‘우리 3명의 전문의가 시도해보자’하고 수술을 해서 그 종양을 떼어냈어요.
 
그런데 그 환자가 배 안에도 암이 퍼졌기 때문에 10-20년 살 사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다시 재발 될 때까지는 그래도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퇴원을 했습니다.”
 
김 선교사는 그때 그녀를 껴안아주며 느꼈던 따스한 체온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외과의 김재선 선교사. 그는 시드니다음교회와 시드니갈보리교회 파송 선교사이기도 하다.     © 크리스찬리뷰
 
내려놓음, 새 사역지가 나타나다

김재선 선교사가 아내 김리라 선교사와 함께 의찬(16), 의준(12)을 데리고 캄보디아에 온 것은 2012년 2월이다. 김리라 선교사는 현재 파트타임으로 선교사 자녀학교와 왕립간호대학에서 한국어 강의를 하고 있다.
 
“영어도 배워야 되고 타문화생활도 경험하기 위해 호주에서 3년간 살았어요. 그리고 호주에서 머무는 동안 3개월간 네팔과 캄보디아 등지를 다니며 선교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캄보디아로 부르심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김우정 선교사님은 3년 전 호주에서 오세아니아 의료선교대회가 열렸을 때 명함을 받았고요, 그래서 선교여행을 나올 때 이곳을 찾아와 한 달간 머물렀었습니다.”
 
김 선교사는 “하나님이 이곳에 와서 내가 해야 될 일들을 하나하나 보여주시는 것 같다”며 “하나님이 바라고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됐다. 그 일들을 계속 해나가길 원한다.”고 말했다.
 
“사실 제가 외과의사지만 혈관의사입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는 혈관조형수술이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그런 기계자체를 구하기가 어려워요. 비싸기도 하고요. 이 기계를 사용하는 병원이 별로 없을 거에요. 의과대학이면 몰라도요. 그것을 볼 때 하나님이 저를 이곳으로 부르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현지인 외과 의사들을 잘 세워나가는 일입니다. 캄보디아 젊은 의사들에게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심장수술 받을 어린이 집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는 대양주의료선교회 단기선교팀.     © 크리스찬리뷰
 
김 선교사의 앞길은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그가 한국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안정된 직업과 단란한 가정, 부모, 형제와 아내, 자식과 어울려 평안하게 살아갈 생활이 보장되었을 것이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향땅을 떠났다. 보장된 미래를 단칼에 끊어버리고 그리스도께서 가리키는 곳을 향해 떠나왔다. 그 용기,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당연히 한국에서 외과의사로서 교회리더로 병원에서도 실력 있는 의사로 살아가는 게 더 좋은 거죠.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디 한 군데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자리에 서서 열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여기에 왔습니다.”
 
김 선교사는 “초등학교 때 교회를 다녔지만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것은 고난가운데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교만한 아이였다”고 실토했다.
 
“고등학교시절 1등을 할 만큼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의과대학을 4수를 해서 들어갔습니다. 3년째 의과대학에 떨어지고 나서 펑펑 울었죠. 그 가운데 청년부 수련회를 통해서 내가 얼마나 죄 많은 사람인지,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게 해주셨어요. 거기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지요.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저에게 ‘네가 사람을 돕는 달란트가 있으니까 연약하고 힘든 사람들을 도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후 의과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시절 IVF(한국기독학생회)활동을 하면서 92‘선교한국에 참석했는데 그때 선교에 부르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 미국에서 건너와 심장수술에 참여한 최기주 간호사     © 크리스찬리뷰
 
어려움이 없느냐고 물었다.
 
“저희들에게는 아마도 아이들 문제인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 시험을 준비해야하는데 선생님들이 자주 바뀌고 진학지도를 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부족하기 때문인데요. 아이들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인 만큼 부모로서 바르게 가이드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주님이 길을 보여주시도록 중보기도 부탁드립니다.”
 
병원 로비로 들어서자, 그곳에도 환자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그때 한 어린 소년이 권순형 발행인을 보고 활짝 웃으며 아는 체를 했다. 탑인(7)이었다. 지난 2월 권 발행인이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심장수술을 받게 될 그를 위해 사전조사차 김우정 원장 일행과 그의 집으로 심방을 간적이 있었다.
 
탑인은 지난 3월 말 심장수술을 받고 잃어버릴 뻔 했던 새 생명을 되찾았다. 이제는 숨을 헐떡거리지 않아도 되었고, 마음 놓고 친구들과 뛰어 놀 수도 있게 되었다. 심장수술 분야 세계적인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최정연 박사 등 한국에서 온 심장전문 의료진 덕분이다. 오늘은 수술 후 정기검진의 날, 함께 심장수술을 받은 8명이 모두 나왔다.
 
탑인은 프놈펜에서 북쪽으로 2시간여 이상 떨어진 깜뽕 츠낭에 살고 있다. 탑인의 아버지는 어부로 가족 모두가 이슬람교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브론병원은 시사점이 많다. 의료 기술을 가진 한국 의료진이 크리스찬이었더라는 사실은 현지 무슬림에겐 ‘충격’일 수밖에 없고, 현지 크리스찬들에겐 ‘자랑’과 ‘위로’가 된다. 그렇지만 이슬람교인들도 기도를 권하면 순순히 응한다.

▲ 지난 3월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수술 받고 정기검진차 병원을 찾은 탑인 군과 엄마가 본지 4월호에 보도된 자신들의 기사와 사진을 김명동 편집인으로부터 전해 듣고 환하게 웃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지난 3월 미국으로부터 건너와 8명의 심장수술에 참여한 최기주(46 간호사) 선교사는 어떤 일도 척척 해낼 것 같은 복스러운 인상이었다. 올해로 4번째 심장수술에 참여하게 된 그녀는 “매번 힘들었지만 환자들이 나아지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기에 지나온 세월들은 축복이었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매년 두 차례씩이나 자비로 수술봉사에 참여하는 그녀에게 대뜸 물었다.
 
- 이렇게 자주 자리를 비우면 병원에서는 뭐라고 안 그럽니까? 그것도 한 번 이곳에 오면 한 달간씩이나 머무신다면서요.

“하나님의 일은 계산하면 안돼요.”
 
최 선교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사실은 휴가를 모아놓았다가 오는 거니까 괜찮아요. 그런데 선교지에 올 때마다 하나님이 왜 나보고 오라고 그러셨는지 깨닫게 돼요. 그래서 내 마음에 기쁨이 있더라고요.”
 
최 선교사는 대학졸업 후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중환자실에서 일했다. 2001년 박사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클리블랜드 클리닉 심장내과에서 근무를 시작한 그녀는 “캄보디아 헤브론병원에서 봉사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단기의료선교를 다녀오는 등 선교훈련을 받으며 목사님으로부터 캄보디아 헤브론병원에 대해 듣게 된 이후 헤브론병원에 대한 부담을 계속 느끼게 됐다. 원래 그의 계획은 그저 남들처럼 열심히 일하고 돈 벌고 때때로 단기선교에도 참여해 봉사활동도 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지만, 헤브론병원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 결국 하나님은 그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 밝은 표정으로 검사받는 탑인 군.     © 크리스찬리뷰
 
‘왜 하필 캄보디아일까?’ ‘영적으로 어렵다는 곳인데 내가 갈 수 있을까?’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는 어떤 기이한 힘에 이끌려 헤브론병원 봉사를 결정하게 됐다.
 
“어느 날 목사님이 김우정 선교사님을 소개하시면서 한 번 만나보라, 앞으로 헤브론병원에 간호대학도 세워지니까 이제는 교육쪽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떠하겠느냐는 거에요. 그러시면서 쭉 헤브론병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데 감동이 안 오니까 결정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도 한번은 다녀오자는 마음으로 새벽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거에요. ‘김 원장을 만나라’ 그런데 나도 모르게 ‘예,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거에요. 그런 후 김 원장님을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눈물이 났어요. 원장님은 여기에 목숨을 거신 것 같았어요. 얼마나 하나님이 헤브론병원을 원하셨으면 부족한 나까지 부르셨을까, 그냥 창피한 줄도 모르고 펑펑 울었어요.”
 
최 선교사는 비록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 믿고 순종하기로 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니 일할 수 있는 힘도 생겼다. 최 선교사는 “주변사람으로부터 쉽게 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매년 헤브론병원을 찾는 이유는, 결국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휘어잡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수술 받은 어린이들이 정기 검진차 병원을 방문, 김우정 원장과 자리를 함께 했다.     © 크리스찬리뷰
 
최 선교사는 말을 하면서 구슬같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 이번 8월에 심장수술이 있다는데 또 오실 겁니까?
 
“그럼요. 또 와야죠. 하나님이 부르시니까 어떡합니까. 순종해야죠.”
 
 최 선교사는 금세 까르르 웃었다. 그녀는 오늘 밤 미국으로 떠난다.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
 
헤브론병원은 분당서울대병원의 인공심폐기, 심혈관조형장비 등 최첨단 시설을 지원받아 2014년 8월 심장센터를 열었다. 캄보디아 최초의 소아심장센터이기도하다. 지금까지 총 35명의 심장병 환자들이 이곳에서 수술을 받아 새 생명을 얻었다.
 
이전에 캄보디아에서 심장 수술이 가능한 곳은 프놈펜 칼메트병원이 유일했다. 이곳에서는 한 해 100명 가량이 수술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 성인이다. 소아심장병의 경우 간단한 치료만 할 뿐 수술은 엄두도 못 낸다.
 
그동안 대부분의 캄보디아 심장병 환자들은 여러 후원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후원단체 측에서 수백여 명에 이르는 환자들을 모두 한국에 보낼 수는 없었다. 재정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수술과 별개로 보이지 않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이 뒤따랐다.
 
우선, 한국에 가기 위해서는 여권발급, 진료기록 서류 등 각종 행정서류를 준비하는데, 현지 관공서의 업무처리가 더뎌 아까운 시간이 허비된다.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하는 급한 환자와 그 가족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문제는 그 뿐 아니다. 나이 어린 환자의 경우 부모 등 보호자도 함께 가야 하기에, 보호자의 언어 소통 문제를 비롯해 다른 문화 환경에 따른 스트레스 등 후원을 자청한 한국의 대형병원들도 이러한 문제 때문에 상당한 고민을 해왔다.
 
심장센터 개설에 제일 앞장 선 곳은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이다. 특히, 심장 분야 최고 권위자인 최정연 의대교수의 노력과 공도 컸다. 최 교수는 2009년부터 헤브론병원에서 단기 의료봉사활동을 해왔다.

▲ 본지는 독자들의 성금으로 구입한 약품과 기증 받은 약품을 지난 4월 헤브론병원에 전달했다.     © 크리스찬리뷰
 
한참 이야기의 꽃이 피는데 어느 할아버지가 아들의 팔에 의지하여 느릿느릿 병원 로비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여러 번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간신히 버텨 살아남은 노인이었다. 너무 말라서 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팔과 다리는 기능이 떨어져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들은 의료진이 다가오자 한줄기 희망을 보았는지 엷은 미소로 의료진을 주시했다.
 
그러고 보니 부모를 모시고 오는 자녀들이 많았다. 김우정 원장은 “캄보디아는 가족이 전부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는 우선권은 윗사람부터 하는 경로사상이 있는 나라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처음에 김 원장은 개인 클리닉을 하며 환자를 돌보았다. 그런데 그는 소아과의사였지만 주로 성인과 노인들을 진료했다. 이유를 알고 보니 캄보디아는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사상이 있는 나라였다.
 
선교병원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 김 원장에게 이러한 현지의 상황은 연합사역을 시도하게 됐다. 무료로 운영되는 선교병원이어서 장기적으로 유지되려면 전문화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를 위하여 기도했다.
 
캄보디아는 복음 전도가 열려있는 나라여서 선교사들도 많이 들어올 수 있음을 떠올린 김 원장은 선교기지가 되는 병원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를 가지게 됐다. 그의 꿈은 이루어졌다.
 
의약품 후원 절실
 
이날 본지 권순형 발행인은 성금으로 구입한 의약품(400만원 상당)과 신풍제약에서 기증받은 의약품을 헤브론병원에 전달했다. 이번에 전달된 의약품은 고혈압(암로발탄, 아모디탄, 오메르텍), 고지혈증(콜로스타), 항응고제(와르파린 나트륨), 갑상선(메티마졸, 알탁톤) 등 치료제이다.
 
권 발행인은 “앞으로도 헤브론병원 의약품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예정”이며 “사랑과 정성이 캄보디아 빈민들에게 생존을 위한 희망의 빛줄기를 비추는 따뜻한 손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수일(73. 약국장) 선교사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외부에서 후원을 받아쓰고 있는 약들이 대부분인데 많은 것은 많고 없는 것은 없어서 늘 어려운 처지에 있다”며 “이번에 호주에서 보내준 약품은 꼭 필요한 약품들이다. 호주 교민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에서 보내주는 약품들은 좋은 뜻으로 보내주셨지만 거의 사용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들이에요.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골라서 받는 게 아니잖아요. 주시는 대로 다 받다보니까 여기에 오면 사용기간이 지나가버려요. 물론 기간이 지나간 것들 중에서 완전 포장된 것들은 쓸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렇지만 캄보디아 정부가 생각보다 예민해서 조심하고 있어요. 사용기간이 지난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있지요. 그런데 폐기처분하는 것도 꽤 어려운 작업이더라고요. 약품들이라 함부로 버릴 순 없잖아요.”
 
최 선교사는 선비의 나라 한국의 자손답게 차분한 인상이었다.
 
- 여기가 좋으세요?
  “좋지요. 날씨도 따뜻하고요.”
 
- 아니, 30-40도의 날씨인데 따뜻하다고요?”

▲ 유효기간이 지난 약품들을 폐기하는 헤브론병원 선교사들.     © 크리스찬리뷰
 
최 선교사는 입을 조그만 벌리고 웃었다. 이어 진지한 표정에다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어갔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의 성격상 환자들 하고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건 많지 않아요.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그분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누구나 다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약을 조제하고 투약을 하면서 ‘늘 원하옵기는 약을 투약 받는 환자들이 잘 치료가 돼서 그분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면서 투약하고 있지요.”
 
최 선교사는 ROTC 3기로 군을 제대했다. 그런 후 누구나 알만한 제약회사인 베링거 인겔하임을 거쳐 로슈에서 정년퇴직했다. 아내 장순복(70. 간호사) 선교사는 오랫동안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며 대학교수로 정년퇴직했다.
 
“1980년부터 남서울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약사로서 의료선교부에 소속되어 의료봉사를 다녔어요. 그런 후 은퇴하고 나서,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어느 선교사님한테 선교지에서 한국어 교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어 교수법을 공부하면서 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선교사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선교사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훈련받았어요.
 
그런 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몽골, 중동의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탐방을 갔었지요. 그런데 마음이 내키지가 않더라고요.”
 
그 무렵, 최 선교사는 남서울교회에서 협력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호프스쿨’ 소식을 접했다. 한국에서 몸 편히 살 수 있던 그가 아내 장순복 선교사와 함께 남서울교회 파송선교사로 이곳에 건너온 것은 2008년 12월이다.
 
“선교사님은 빈민촌에서 무료로 학교사역을 하고 계셨는데 그동안 저희는 매년 단기의료봉사팀으로 봉사해왔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았어요. 그때 선교사님이 헤브론병원에서 약사가 필요하다. 한글을 가르치는 것보다 약사가 더 급하다고 소개를 했어요. 그래서 2008년 12월에 이곳으로 오게 됐는데 그땐 병원이 준비가 제대로 안된 상태였지요.”
 
호프스쿨에서 한국어 교사를 작정했던 그가 헤브론병원 약사로 진로를 바꾸기까지의 간증은 신기한 것이었다. 최 선교사의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뜻일 수가 없었다.

▲ 헤브론병원 약국장 최수일 장로     © 크리스찬리뷰
 
장순복 선교사는 현재 헤브론병원 간호대학 교수로 봉사하고 있다.
 
- 토요일 아침에 보니까 병원 안과 밖을 돌아다니시면서 청소를 하시던데요?”
 
“아니, 청소가 아니에요. 그건 주님하고 마음속으로 약속한 게 있기 때문에 하고 있는 거죠.”
 
- 선교사님이 쓰레기를 주우시는 걸 보고 한 캄보디아 사람이 따라 줍던데요? 캄보디아 사람들은 원래 그런 모습을 보고도 본척만척 한다던데요.
 
“그것은 아무래도 사람이니까 그런 마음이 들겠지요. 어쨌든 선한 영향력을 줄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쁘네요. 이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고 자기 건강에도 좋고 일거양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최 선교사는 “적당한 시기에 후임자에게 넘겨줘야 되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곳에서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선교사는 지난 2013년 3월 사랑하는 장녀 최영민 자매를 먼저 하늘나라에 보냈다.
 
기자는 최 선교사를 바라보았다. 아기자기할 것도 없어 보이는 70대의 노인, 그에게서 이렇게 깊고 그윽한 정과 사랑이 많이 쏟아져 나오다니, 그것은 감사와 겸손과 꿈이 담겨진 깊은 사랑이었다.
 
이곳 선교사들은 현대라는 탁류를 거슬러 하늘나라의 목욕물로 목욕재계한 분들이랄까. 미국에서, 캐나다에서, 호주에서, 한국에서 안정된 터전을 뿌리치고 이곳을 찾아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에는 정말 믿어지지 않을 만큼 속기(俗氣)가 묻어 있지 않았다. 그저 잠시 만날 사람들이 아니었다. 두고두고 만나도 한결같았다.
 
현지인 의료진 또한, 믿음의 토양 속에서 뿌리가 제대로 내리고 있었다. 이들은 민족과 나라를 포용할 깊이와 넓이로 크고 있었다. 이웃을 향한 사랑도 이들의 생명 속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빈민촌을 찾아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의료봉사활동을 하면서 공동체의 뜻을 익히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다.〠 <계속>

글/김명동ㅣ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ㅣ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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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6/29 [11:12]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