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병

김종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7/27 [16:21]
의대생 병을 마치 정가의 대통령 병이나 대학가의 총장 병처럼 의대생이 되려는 지나친 집착을 풍자하는 말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의대생 병과 유사한 상담대학원생 병이란 말도 있다.
 
한 학생이 “교수님, 오늘 공부한 우울증 증세와 저의 증세가 꼭 같은데요.”라고 호소하면서 손가락으로 열거한다. 우울증을 공부하는 주간에는 흔히 있는 일이다. “그건 우울증이 아니고 정상적인 우울이다. 우울 효용에 속한다.”고 말해주어도 한사코 자기는 우울증이라고 우긴다. 우울, 불안, 강박, 해리, 성격, 수면 장애 등을 연구하는 ‘이상(異常)심리학’ 학기 내내 이런 학생들이 적지 않다. 이런 현상을 ‘상담대학원생병’이라 부른다.
 
의대생 병이란 말은 이미 1908년에 정신과 의사 조지 월튼의 책에 나오고 있다..
 
“의과대학 교수는 배우고 있는 질병에 대한 걱정으로 찾아온 의과대학생들에게 항상 시달리고 있다. 폐렴에 대한 지식은 흉곽의 사소한 자극을 심각한 증상으로, 충수돌기의 위치에 대한 해부학 지식은 무해한 자극도 심각한 병의 전조증상으로 바꾸어놓는 듯하다.”
 
1966년 정신과 의사 죠셉 내텔손의 연구에 의하면, 의대생의 79%가 ‘의대생 병’을 호소했다. 피곤해서 눈썹이 실룩이면 루게릭 병은 아닌지, 입이 마르면 당뇨병은 아닌지, 손가락이 뻑뻑하면 류마티스는 아닌지 하는 건강염려증이 의대생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셈이다.
 
최근 7천 명이 넘는 회원을 지닌 전국 의대생 카페에 이런 글과 댓글들이 있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수업시간에 하는 증세마다 다 나에게 해당이 되는 듯하다. 얼마 전에는 갑상선이 커졌다고 난리쳤었다. 남들한테 얘기도 못하고 혼자서 어찌나 고민했는지... 오늘 기어이 교수님께 보여주고 나서야 안심했다. '멀쩡하네. 그거  기관지야.' (무안함....) 병원을 나오면서 한 생각은 종합검진이나 받아볼까. 도대체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한심하다.”
 
“전 파상풍 걱정하면서 일 주일 동안 혼자 엄청 우울해 했었는데...”
 
“모르는게 약이군요.. 푸훗.. 다들 넘 귀여워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3만 명 정도의 중국계 미국인들과 무작위로 선정한 40만 명 정도의 백인들의 죽음을 비교 연구하여 1996년에 발표한 일이 있다. 중국인들은 오랜 역사 동안 점성술이 말하는 액년이 있었는데, 바로 이 액년에 태어난 사람들은 평균 수명보다 무려 5년이나 일찍 사망했다.
 
그러나 그해에 태어난 백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연구팀은 수명 단축이 유전적 요인, 환자의 생활 방식이나 행동, 의술 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요인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즉, 중국인들의 믿음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액년에 태어난 중국인들은 별들의 저주로 자신이 일찍 죽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처럼 병에 관심을 집중하면 피해망상으로 실제로 몸과 마음에 병이 생긴다는 것이 과학적인 연구결과이다. 바로 노세보 효과(Nocebo effect)를 말한다. 플라세보 효과가 긍정적인 믿음, 기대감, 희망, 따뜻한 보살핌의 힘을 보여준다면, 노세보 효과는 부정적인 믿음의 마력을 증명한다.
 
버니 시겔의 책 '사랑+의술=기적'에는 새로운 항암제라고 속여 소금물을 투여했더니 환자의 30%가 머리카락이 빠졌다. 피에르 키셀의 연구에서는 입원 환자들에게 정제된 설탕을 주고 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더니 환자의 80%가 토했다. 이런 노세보 효과에 관한 연구 보고들은 수도 없이 많다.
 
다중인격 장애 환자에 대한 놀라운 보고도 있다. 이 환자는 하나의 인격에서는 당뇨병이 없고 혈당 수치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다른 인격으로 변하는 순간 당뇨병이 있다고 믿었고 말 그대로 당뇨가 생겼다. 의학적 관점에서 확실히 그녀는 당뇨병 환자였다. 하지만 인격이 또 변하는 순간 혈당은 다시 정상이 되었다.〠

김종환|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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