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은행의 최고 구좌는 선교이다

한•호 선교 126주년 기념 교환 방문… 멜본-부산 3개 노회 자매결연

권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9/30 [09:43]
▲   10월호 표지   © 크리스찬리뷰

만일 선교가 없었다면

“나는 이제 죽어 가지만, 지금까지 전 세계를 위하는 일 외의 다른 일에는 내 삶을 허비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오직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으며 또 내가 어떤 고생을 겪었는가 하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이 글은 21세에 개종하고, 24세에 헌신하여, 인디언 선교를 하다 학생시절부터 그를 괴롭혀온 결핵으로 29세에 생애를 마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남긴 말의 한토막이다.  어찌 보면 그는 선교 역사상 ‘대단한, 엄청난, 위대한’ 일을 한 선교사가 아니다. 불과 3년 여의 선교사로 헌신한 연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이나 마찬가지였다. 
 
▲ 한호 선교 126주년을 맞아 부산 3개 노회 임원 들이 호주를 방문, 호주 선교사와 후손들을 초청하여 오찬 모임을 갖고 그들의 헌신에 감사했다.     © 크리스찬리뷰
 
그러나 그의 생애는 후세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과 생애를 흔들어 놓았다. 그가 1747년 10월, 사랑하는 친구 조나단 에드워즈의 자택에서 숨을 거둔 것은 1740년대 미국을 휩쓴 대각성운동의 주도자 조나단 에드워즈의 심장에 불을 붙였다. 이후 존 웨슬리의 마음에 큰 전환점을 마련해주었고, 윌리엄 케리, 헨리 마틴, 짐 엘리오트 선교사들이 헌신하는 자극제가 되었다.
 
그야말로 작은 불씨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어 산을 태우듯 작은 불씨와 같았던 그의 선교 생애는 지구촌을 불태우는 큰 화약고에 못지않았다.    
 
우리는 호주 선교사에 빚진 민족이다. 특히 부산•경남 지역에 “만일 이들의 선교가 없었더라면 지금 이 지역의 동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가정법의 질문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이곳 호주에서 건너간 선교사들은 하나같이 “나는 이제 하나님을 위해서 나 자신을 불태워 버리겠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 불타 없어지게 하소서”라고 한 헨리 마틴의 고백을 가슴에 품고 갔으리라.  한국을 땅 끝으로 알고 호주에서 건너간 126명의 선교사가 있었기에, 한국 복음화의 지형은 크게 달라졌음을 부인할 수 없다. 
 
▲     © 크리스찬리뷰
 
그들이 한 알의 밀알처럼 한국 땅에 썩어졌기에 숱한 교회와 신학교, 성도들이 열매로 맺어져 또 다른 씨앗이 되고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것이다.   
 
선교사란 ‘하나님의 시간대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장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면, 분명 그때 그곳, 우리의 조국으로 온갖 도전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그분의 일을 한 그들은 그분의 동역자였다.
 
“그리스도 한 분만이 세상을 구원하실 수 있으나, 그렇다고 그리스도 혼자서 세상을 건지시진 않는다”는 선교의 경구를 떠올린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     © 크리스찬리뷰
 
뿌리와 과실의 만남
 
그때 그곳, 질식할 듯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선교사들이 뜻과 마음과 몸을 바쳐 일한 지역, 부산에 그들이 뿌리고 간 씨앗의 열매를 수확하고 돌보는 부산지역 3개 노회 최전선의 일꾼들과 그 선교사들을 처음으로 보낸 멜본지역 3개 노회와의 만남은 ‘뿌리와 과실’의 만남 같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부산지역 3개 노회 임원(이하 방문단)들이 한•호 선교 126주년을 맞아 지난 9월 1일부터 8일까지 호주를 방문한 것이다.
 
시드니를 경유하여 콴타스 항공편으로 멜본에 도착한 방문단은 로버트 렌톤 목사(포트 필립 서부노회 목사), 양성대 목사(딥딘교회)의 공항 영접을 받으며 빅토리아-타스마니아 주총회 사무실을 방문,  주총회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 리셉션을 가졌다.

▲ 방문단은 나라나 원주민 문화센터를 방문하여 부메랑 사용법을 배우고 직접 던져보기도 했다.     © 크리스찬리뷰
 
포트 필립스 동노회장 폴 찰슨 목사(Rev Paul Chalson)의 사회(통역 김은덕 목사)로 진행된 환영식에서 찰슨 노회장은 멜본의 3개 노회 임원들을 소개하고 “지난해 부산지역을 방문한 이후 멜본에서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다”라며 “멜본과 부산이 긴밀한 유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선교의 역사를 다시 확인하고 전통을 이어갈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서로 배우고 교제하며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빅토리아-타스마니아 주총회장 단 우튼(Dan Wootton) 씨는 자신의 숙부 리처드 우튼 목사가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일한 것을 상기했다. 이런 관계 속에서 만남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자신은 평신도 주총회장으로서 목사는 아니지만 임기가 3년인데 이제 임기가 거의 다되어 간다고 밝혔다.
 
찰슨 노회장은 호주연합교회는 다문화교회라고 말하고 사역자 소개했다. 노회장은 “서로의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교회 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데 있다”라고 했다.
 
곧 이어 방문단은 멜본중앙교회(담임목사 엄정길)로 자리를 옮겨 환영만찬 행사를 가진 후 첫날 일정을 마쳤다.
▲ 호주 원주민 문화에 대한 소개를 받고 있는 방문단.     ©크리스찬리뷰
 
신학교, 웨슬리 미션, 원주민 센터

둘째 날은 호주연합교회 신학대학(Centre for Theology & Ministry)을 방문하여 학교 현황과 신학교육 과정, 교수진, 학교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수 위더스 목사(Rev. Sue Withers, CTM, Field Education Co-ordinator, former moderator of Vic Tas Synod)가 안내(통역 유훈 목사)를 맡았다. 위더스 목사는 8년 전 주총회장을 역임했으며, 북한을 다녀온 경험도 있다. 
 
위더스 목사는 어린이 및 가족을 위한 사역, 안수 사역, 평신도 사역, 생활 리더십, 청년 사역, 순례자 신학대학 사역 등 대학 과정과 교수들을 소개하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셔서 우리가 하나됨으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서로 협력하여 동역해 나가자”고 기도했다. 
 
▲ 멜본 시내에 위치한 스카츠교회 종탑     © 크리스찬리뷰
 
방문단 소개 후 강의실, 체육관, 식당 등을 비롯한 단일 신학교 도서관으로서는 남반부에서 제일 크다고 자랑하는 도서관 등의 학교 시설들을 둘러보았다. 1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멜본대학의 교단별 기숙사 시설도 방문했다. 1977년 3개 교단(감리교회, 장로교회, 회중교회)이 연합하여 하나의 교단을 이룬 호주연합교회의 통합합의서(Basic Union)를 중심으로 설립 배경과 다문화교회를 추구하는 호주연합교회 현재의 이민자 상황 등에 대해 설명을 듣는 시간도 가졌다. 
 
CTM방문에 이어 멜본 시내에 있는 웨슬리교회를 방문했다. 알리스터 맥크레이 목사의 영접을 받은 후, 교회 앞마당에 세워져있는 웨슬리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 교회는 1858년에 세워진 빅토리아 주 웨슬리 운동의 중심교회이기도 하다. 웨슬리미션의 사역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웨슬리는 주택 문제와 노숙자 지원 서비스, 노인 간호 서비스, 장애인 서비스, 어린이와 청소년 및 가족 서비스 등을 개발하여 소외 계층 및 취약 계층을 돕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한국에 최초로 파송되었던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호주연합교회 전국 총회장을 지낸 맥클레이 목사는 자신의 숙부였던 프레드 맥크레이 목사(Rev. Fred Macrae, 한국명 맹호은)가 창신학교 등 주로 마산에서 30년 이상 사역했다고 소개하자 방문단은 박수로 화답했다. 맥클레이 목사 자신도 두 번에 걸쳐 창신학교를 방문했으며, 일신병원을 세운 헬렌 맥켄지를 비롯한 맥켄지 가문의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내왔다고 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방문단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간다고도 했다.
 
웨슬리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로서 웨슬리미션을 1893년에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2001년까지는 한 기관이었으나, 2001년 이후로는 교회와 미션이 분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동교회는 10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노후한 건물을 헐고 새로운 35층 빌딩을 건축하여 호주연합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 빅토리아주장로교회 총회(현 스카츠교회)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데이비스 선교사 추모 명판.     © 크리스찬리뷰
 
오후에는 멜본 시내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질롱(Geelong) 지역에 있는 나라나 원주민 문화센타(Narana Aboriginal Cultural Centre)를 방문했다. 원주민 사역자인 미켈라와 메켈라 씨로부터 원주민 문화를 소개받았다. 호주 원주민들의 언어는 700가지 이상 있으며, 각 부족들마다 다른 언어를 시용하고 있는데, 원주민들이 다른 부족들의 마을로 들어갈 때는 불을 피워 알리고 그들이 어떻게 허락하는가를 시범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백인들이 이곳에 와서 땅을 점령하고 무기로 사람(원주민)을 죽였기 때문에 자기들이 살던 땅을 떠나게 되었고 선교사들이 세운 선교센터에서 원주민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백인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언어도 가르치고 기술도 가르쳤다”며 원주민들이 백인들로부터 받았던 부당한 대우들에 대한 여러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원주민들이 죽었고, 호주 전체 인구의 3% 정도가 남아 있다. 호주 동부지역에 원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들의 문화를 잊어버리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원주민의 문화를 지키고 보존하고 원주민 문화를 배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문화체험하는 것을 제공한다고 했다. 
 
이날 방문단은 야외로 나가 부메랑을 던지는 방법을 배우고 실제로 부메랑을 던져 보는 실습을 하기도 했다. 한편, 디쥬리두 연주 방법, 각종 원주민 생활용품 체험, 원주민 아트  등 원주민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과 함께 원주민들이 자연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이를 통해 방문단은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라나 원주민 문화센터의 문화 프로그램은 호주 원주민 문화의 경이로움, 땅, 영성, 법률, 문화, 꿈 이야기 등에 대해 원주민 전문 직원들에 의해 교육이 제공되고 있다.

▲ 맥켄지 선교사의 묘지에서 기도하는 방문단. 아래는 맥켄지 선교사 부부, 차녀 케서린, 장녀 헬렌의 묘비이다.     © 크리스찬리뷰
 
처음 교회, 파송 교회
 
셋째 날은 멜본 시내에 있는 스카츠교회(Scots’ Church)를 방문했다. 이 교회는 데이비스가 목사 안수를 받고 한국 선교사 파송식을 가졌던, 1888년에 세워진 빅토리아주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며 장로교회의 모교회이다.
 
이날 방문단은 데이비스 순직 후 빅토리아주 장로교회 청년연합회가 그를 기리며 설치한 빅토리아 장로교 총회 건물(현 스카츠교회 교육관) 벽면에 부착되어 있는 데이비스 선교사 추모 명판 앞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조셉 헨리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es, 1856. 8.22 ~1890. 4.5) 선교사는 호주인 처음으로 한국 땅에 밟은 학식있고 열정적인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는 1889년 10월 2일 한국땅(부산)을 디딘지 6개월 동안 언어를 배우고 선교사역을 하다가 병을 얻어 순직, 부산에 묻혔는데 그때 나이 33살이었다.
 
데이비스 선교사 순직 이후, 1892년 9월 맥케이 목사와 3명의 여자 선교사가 2차로 파송되는 등 잇따라 한국 땅에 호주 선교사 126명이 복음을 들고 들어가 교회를 개척하고 학교와 병원과 유치원을 세웠다. 그리고 나환자와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기도 했다. 어떤 선교사는 한국 땅에서 죽었고, 감옥과 갇히거나 추방당하기도 했다.
 
▲     ©크리스찬리뷰

그 다음 도착한 투락교회는 데이비스 목사가 장로교 목사로서 한국으로 향하게 된 배경을 갖고 있는 교회이다.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투락장로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존 어윙 목사(Rev. John F. Ewing)는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선교의 비전을 심어 주었다. 특히 어윙 목사는 데이비스를 장로교회로 인도하고 그를 한국 선교사로 갈 수 있도록 인준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이 청원에 대해 멜본 남노회는  데이비스가 에딘버러에서 6개월간 신학교육을 마치고 시험에 합격하면 목사 안수하기로 결정했다. 그 후 데이비스는 1889년 8월 5일 스카츠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8월 16일 금요일 저녁 멜본 시내 YMCA홀에서 거행된 환송회를 끝으로 멜본에서의 모든 공식일정을 마쳤다. 드디어 8월 21일 멜본을 떠나 한국으로 향했다.
 
이날 오후 방문단은 맥켄지 선교사 가족들이 잠들고 있는 포크너 공원묘지(Fawkner Memorial Park)를 찾았다.
 
한국 초기 선교사로서 매견시로 불린 제임스 노블 맥켄지 선교사(Right Rev. James N. Mackenzie)는 1910년부터 1938년까지 부산에서 상애원을 설립하고, 28년 동안 주로 한센환자들을 돌보았다. 부산 일신기독병원은 그의 두 딸인 헬렌(한국명 매혜란)과 케서린(한국명 매혜영)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곳에는 매견시 목사 부부와 4명의 딸과 두 명의 사위 등 8명의 묘가 장미나무 아래 한뼘 정도의 소박한 평면 묘비와 함께 안장되어 있다. 매견시 목사 묘비에는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Friend of Korean Leapers), 장녀 매혜란 선교사 묘비에는 ‘경외하는 의사요 교육자요 그리고 여성 건강의 대모를 기리며’라고 새겨있다. 둘째 딸 케서린의 비문에는 ‘한국의 간호사, 조산사의 개척자요 교육자를 기리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방문단은 매견시 목사와 가족들의 묘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둘러서서 두 손을 서로 잡고 이종윤 목사가 기도를 드렸다.
 
이어 딥딘교회로 이동하여 양성대 목사로부터 100주년을 맞이한 딥딘교회 교회 역사와 현재 현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으며, 동교회 한­•호 양국 교인들이 정성껏 준비한 100주년 기념만찬회에 참석하여 기쁨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이날 이 자리에는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허준 선교사(Mr. Bill Ford, 1964-1969, 부산)가 방문단의 따뜻한 환영 속에 환담을 나누며 북한 여행에 대한 새로운 경험담을 털어놓아 관심을 끌었다.
 
주일에 함께 드린 예배

 
넷째 날 3개 노회 방문단은 멜본 동노회(투락교회), 서노회(멜본서부교회), 야라노회(웨슬리교회, 블랙번 노스교회) 등 3개 지역 교회로 흩어져 주일 오전 예배에 참석했다. 저녁에는 멜본한인교회에서 멜본 3개 노회 임원진과 만찬을 나눈 후 기념품을 교환하고 멜본에서의 공식 일정을 마쳤다.  
 
마지막 날은 멜본 3개 노회가 계획한 관광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방문단은 이를 취소하고 은퇴한 호주 선교사와 가족(후손)들과의 만남을 갖기로 했으며, 그동안 수고하고 헌신한 멜본 3개 노회 임원들도 초청하여 함께 오찬 모임을 갖고 시드니를 거쳐 다음날 한국으로 귀국했다.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독생자를 선교사로 만드셨다”는 말처럼, 교회는 ‘선교함으로써’ 비로소 교회다워진다. 병든 교회를 위한 최선의 치료법은 선교를 위한 식이요법을 시키는 것이다. 멜본 일대에서 일어난 선교의 열풍이 한국의 동남부 지역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하늘나라 은행의 최고 구좌는 선교의 구좌임은 교회사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불의 존재가치가 태우는데 있듯이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선교에 있다. 선교가 없는 곳에는 교회가 없고 교회도 없고 선교도 없는 곳에는 신앙도 없다.” - 에밀 브루너
초청받은 부산 3개 노회 임원

•이종윤 목사 (부산진교회, 부산노회장)
•민영란 목사 (금곡성문교회, 부산남노회장)
•김기동 목사 (연산로교회, 부산동노회장)
•강상국 목사 (광복교회, 부산노회 서기)
•황형찬 목사 (남산중앙교회, 부산남노회 서기)
•이충길 장로 (초읍교회, 부산동노회 회계)
•조길태 장로 (동신교회, 부산노회 회계)
▲ 부산지역 3개 지역 노회장과 가진 멜본 좌담회     © 크리스찬리뷰

▒좌담회/부산 3개 노회장 - 호주 일정을 마치고 

말로만 듣던 역사성을 확인했습니다

- 호주를 방문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이종윤: 작년(2014년)에 한•호 선교 125주년을 맞아 부산진교회에서 기념예배를 드린 후, 이분들과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다음에 저희를 초대하겠다고 해서 이번에 초청을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총회에서 연락이 와서 125주년 예배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호주에서 오신 분들은 서울부터 부산까지 호주선교부가 일했던 사역지들을 탐방하고 내려왔습니다. 부산에서 사흘 동안 지내면서 호주 선교부가 섬겼던 부산진교회를 비롯한 교회들과 일신기독병원, 창신학교 등 여러 기관들을 돌아보았습니다.
▲ 한호 선교 125주년 기념예배가 지난해 11월 부산진교회당에서 한호 교계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부산진교회
 
- 방문의 성과라면?
 
민영란: 방문의 성과라면 말로만 듣던 호주교회를 와서 보고 듣고 호주교회를 막연하게 한국을 선교했던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와서 족적을 더듬어보고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서 멜본 중심의 빅토리아 장로교회가 그 당시에 한국 선교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부산 전역에 널리 알려지고 홍보가 되어 호주 선교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부산, 경남권에 있는 많은 교회들은 이런 것조차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역사성을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돌아가서 이런 것들을 잘 알려서 역사성을 다시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봅니다.  
 
김기동: 현재 호주교회 교인들이 과거에 자기들의 선조 신앙인들이 한국 선교를 했던 것에 대해 잘 모르고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호주교회에 가서 “당신들의 선조들이 미지의 땅 조선에 와서 복음도 심고 근대화를 이루는 교육도 하고 의료 활동도 하고 우리나라의 기틀을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6.25전쟁 때 호주가 군대를 보내서 자유를 지켜주었고, 폐허 속의 대한민국을 재건하는데 당신들의 부모 세대가 크게 기여했다. 그것을 한국교회와 한국인들이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후세들이 한국과의 관계를 정립하는데 좋은 도움이 된 것 같았습니다.
 
또 한국 선교하면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 등 미국장로교회가 한국 선교한 것만 알고 있습니다. 호주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는 부산 사람들이나 조금 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멜본한인교회에 가서 설교할 때 호주교회가 데이비스 선교사부터 시작하여, 126명의 선교사가 한국에서 펼쳤던 선교의 족적들에 대해 중요한 선교사들의 사역을 소개하며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를 마친 후 많은 성도들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감사해 하는 것을 보고 교민들에게 역사를 심어준 계기가 된 것에 대해 이번 방문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 김기동 목사 (부산동노회장)     © 크리스찬리뷰

이종윤: 호주선교라 하면 역사가 지금은 희미해졌잖아요. 초기 역사, 중기 역사, 최근 역사 등 크게 3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총회(예장 통합)와 호주연합교회 총회와 자매결연을 맺었지만, 실질적으로 호주 선교부는 부산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멜본의 노회들입니다. 결국은 멜본의 노회들과 부산의 노회들과의 관계를 긴밀히 맺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 번 재확인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계시지만 사실 서두화 목사님(Rev. Alan Stusrt)이 부산에 많은 영향력을 끼친 분입니다. 이번에 와서 호주교회를 별로 방문하지 못하고 대부분 기관들만 방문했습니다. 실질적 호주교회는 딥딘교회와 주일에 방문했던 블랙번교회를 가보았습니다. 호주교회가 생각보다 훨씬 더 침체되어 있고 한인교회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호주교회 관계자 분들도 끝까지 많은 수고를 하셨지만, 한인 목회자들이 많은 수고를 해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전면에서는 멜본 3개 노회 관계자들이고, 실제로 섬기고 헌신하신 분들은 한인 목사들이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섬겨 주셨습니다. 앞으로 이 교류(모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양쪽에서 누군가가 나서서 목적도 분명해야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서로를 알기 위한 답방 형식이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또 한 가지는 호주선교부의 한국(부산) 선교에 대한 사항이 초기부터 현재까지 전반적인 선교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맥켄지 선교사의 한센인 선교와 일신기독병원을 세운 매혜란, 매혜영  자매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이분들이 대단히 훌륭하지요, 그런데 초기 선교사들이 부산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고 선교 역사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전혀 몰라요. 모든 선교사들이 관문인 부산을 거쳐서 흩어졌습니다.    
 
경남역사연구위원회에서 조사해 보니 언더우드나 아펜젤러를 비롯한 외국 선교사들이 모두 부산항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부산에 첫 발을 디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선교 역사에 대해서 한국교계나 부산교계, 서울 총회가 선교 역사에 대해서 사실 잘 몰라요. 몇몇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다보니까 결국은 그들 중심의 사고에 나오는 일들이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지요.     

▲ 이종윤 목사 (부산노회장)     © 크리스찬리뷰
 
- 앞으로 멜본 3개 노회와 어떤 관계가 지속되기를 기대합니까? 
 
민영란: 노회장이 바뀐다해도 역사성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포인트가 될만한 연도에, 예를 들면 130주년, 140주년 이런 때에 계속적으로 이런 일들이 활성화되고, 인적 교류가 더 활발해 지는 것이 서로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앞으로 130주년 때에는 보다 더 좋은 내용을 갖고 만나고 주고 받고 하는 그런 관계가 형성되어 역사성은 계속 이어졌으면 합니다. 사람은 왔다 가지만 역사성을 잊으면 안되지요,
 
이종윤: 호주 선교의 연속성을 위해서라도 결국은 멜본과 부산입니다. 그 다음에 마산, 진주, 창원 등 경남 지역과의 연결을 멜본 노회들과 직접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선교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이 복음을 전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없는 우리 남한 교회가 고민하고 있는 개인 구원이 아닌 소위 땅의 회복 차원에서 본다면 결국은 통일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하기에 너무 힘이 들지요. 이번에 호주에 와서 놀란 것은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같이 협력하는 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옛 우리 땅에 복음을 전해 준 사람들의 정신을 이어받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년이 저희 부산진교회 설립 125주년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몇몇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3개 노회장이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어도 협력을 구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최대한 지원하겠습니다.
 
재정 문제도 돌아가서 의논하겠지만 이번에 와서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내년부터는 정확하게 호주교회로부터 세워진 교회들을 불러서 우리 노회 지원을 받아 그 중심을 세워 이쪽과 저쪽을 연결해서 제대로 된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돌아갑니다.

▲ 민영란 목사 (부산남노회장)     © 크리스찬리뷰
 
- 앞으로 어떤 기대감을 갖고 있는지요?  
 
김기동: 노회 간에 서로 교류하는 것은 10년 단위로 한 번씩 의미 있는 해에 하는 것이고 해마다 왕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 목사님 말씀하신 것처럼 북한 선교를 우리가 직접 못하니까 호주교회와 연결하여 돕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앞장은 호주교회가 서고 우리가 돕는 것으로 하되 우리가 교류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2세대들, 즉 다음 세대가 호주에 가서 호주교회와 함께 역사성을 심어주고 배울 것을 배우는 그런 교류는 정례화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이번에 호주교회 목사님들에게 지금 한국교회가 제일 심각한 문제가 다음 세대들이다. 초•중•고등부가 없는 교회가 우리 교단에 50% 이상이다. 이대로 가면 20년 후에는 교회 문 닫는다, 호주교회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자기들도 별 대안은 없다고 해요, 그렇지만, 고정관념을 깨어 아이들에게 맞는 방법으로 주일 예배시간을 금요일이나 토요일로 변경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해요. 아무튼 젊은 세대들이 교류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종윤: 부산에 있는 교회들이 스스로 개척한 교회들도 많지만 뿌리는 호주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지요. 때문에 우리뿐 아니라 우리 후손들도 언제나 부산에 있는 교회는 호주교회에 빚이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빚은 절대 잊을 수 없지요. 그 빚을 어떻게 갚는 것인가가 문제인데,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고 다시 기억하는 것도 필요하기도 합니다. 지금 호주교회는 거의 쇠퇴해 갑니다. 호주에 있는 한인교회를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복음을 역수출해야 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부산에 있는 교회들이 호주에 있는 한인교회들과 관계를 맺고 지원하여 호주교회를 어떻게 살려 줄 것인가? 이것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 중에 하나가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통일의 문제이고 내부적으로 이 영혼들을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으로.... 호주 사람들은 선조들이 한국 선교했다는 것을 잘 모르거든요.
 
제가 주일에 갔던 호주교회도 거의가 70대 이상이에요.  젊은이들이 없어요. 어떻게 하면 호주의 한인들로 하여금 호주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 들일 수 있을 것인가를 지원하고 도와주는 것을 이런 관계를 통해서 우리 3개 노회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이번에 호주교회의 겉모습만 보고 가지 않습니까? 최초의 호주장로교회인 스카츠교회도 프로그램에 안들어 있었어요. 그곳에서 한국에 첫번 째로 갔던 데이비스 선교사의 목사 안수식과 파송예배를 드렸고 그후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그곳에서 파송예배를 드렸거든요.
 
호주연합교회 노회 관계자들에게 물었더니 별로 역사의식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1977년 호주연합교회가 설립되면서 호주장로교회의 한국 선교가 호주연합교회로 이관되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사실은 호주연합교회 이전에 호주장로교회가 한국 선교를 했는데, 현재는 고신 교단과 자매 관계를 맺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뿌리는 우리와 관계없이 분리된 셈입니다. 그것을 물으니 호주 분들이 난색을 표하더라구요. 우리는 한국 선교를 했던 호주장로교회의 뿌리를 찾고 그들과의 교류를 하고 싶습니다.
▲ 노회 총무 로버트 랜튼 목사     © 크리스찬리뷰
 
- 끝으로 더 하실 말씀은...? 
 
김기동:  우리의 2세들은 영어에 대해 매력도 있으니까 호주에 와서 역사도 보고 문화도 체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민영란: 우리를 위해 수고해 준 멜본에 있는 여러 한인 목사님들이 호주 교회의 역사성을 인식시켜주어야 할 소중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단지 자기의 목회에 관계된 일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사람들은 호주 선교에 대해서 잘 몰라요. 이분들은 호주와 한국 양쪽에서 다 피부로 직접 느끼고 있는 분들이니까 이분들이 앞으로 더  호주교회와의 어떤 연결 관계,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해주어야할 책임이 더 막중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이분들이 없으면 우리들이 와도  연결고리가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 와서 느낀 것도 굉장히 고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고 앞으로 이분들이 호주교회를 계속 일깨우는 역할을 해주어야 이 일이 계속 발전되어 나갈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김기동: 한 한인 목사님이 ‘호주 교회와의 지속적인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느냐?’고 묻기에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보다 교회도 먼저 앞섰고 열심이 떨어져 있지만 저희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 호주와 우리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저력이 있다. 호주교회가 열심히 모이지 않지만 기독교 뿌리가 국민의 70%라고 하니 무엇을 한국교회가 호주교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겠느냐?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교회가 기여할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 분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해요.
 
“호주 교회가 풍요함 속에 영적 빈곤이 너무 많이 있으니.. 한국은 아직 영성이 살아있으므로 살아 있는 영성을 풍요 속에 빈곤이 있는 호주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심어 주는 역할로 한국교회가 호주교회에 빚을 갚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것은 우리 한국교회가 할 수 있다. 아직 한국교회는 영성이 살아있으니 호주교회에 접목을 시켜서 호주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종윤: 앞서 말씀하셨지만 첫 번째로 호주 한인교회 목사님들을 호주연합교회 관계자들과 함께 조만간 한국에 초청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한국교회가 우리 한인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후원하는구나 관심을 기울이는구나 이들의 위상을 좀 더 높여줄 필요가 있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호주연합교회 관계자들을 보니까 한 곳에 정착해서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늘 이벤트를 따라 이 교회 저 교회를 옮겨 다니고 있더라구요. 그러니 ‘그 목사님들 속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성이 거의 고갈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거의 일을 처리하는 직업의식으로 일하고 있지 정말 목회에 대한 양떼들에 대한 관심은 정말 약하구나, 이분들도 함께 그런 프로그램 속에 우리 한국교회에서 영성을 위한 교육을 한국교회가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세계적인 유명 인사를 초청하여 해주면 엄청난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새로운 바람이 부는 곳이 있어 교회가 성장하고 있는 곳이 있지 않을까?’하는 소망으로 우리가 가교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처음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답답한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호주 관계자들이나 특히 한인 목사님들의 헌신적인 섬김에 대해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아서 미안할 정도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정말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습니다. 모든 면에 감사드립니다.
▲ 운전을 담당했던 로랜드 제일렌 씨     © 크리스찬리뷰

▒인터뷰/멜본 노회 임원

로버트 랜튼/멜본 포트 필립 서부노회  총무
로랜드 제일렌/차량 섬김이

“한국교회 목사님은 굉장히 영적이고 파워풀합니다”
 
- 이번에 부산 노회 관계자들의 호주 방문을 통해 느끼신 소감은?
 
로버트 랜튼: 한국과 선교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두 나라의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일을 진행하는 방식의 차이점들을 서로 상호 이해를 통해 앞으로 선교 관계를 확립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선교 프로그램이 아주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한두 가지 서로 이해가 부족하여 일부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대화를 통해 잘 해결된 다음부터는 내가 느끼기엔 부산에서 오신 분들이 아주 즐겁고 기쁘게 잘 지냈다고 생각합니다.
 
-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느낀 점은?
 
로버트 랜튼: 한국은 처음 갔는데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도시 생활은 멜본이나 서울이나 부산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가 크게 감명받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회들입니다. 많은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활발하고 영적으로 활기찬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교회에 가서 느낀 차이점 중에 또 하나는 성도들이 목사님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목사님을 높이 존경하고 영적으로 아주 파워플한 인상을 느꼈습니다.
 
호주에서는 경우가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전통적으로 성직자에 대해서 약간의 반감을 갖는 풍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아주 존경하며 존중한다기 보다는 친구로서 대하는 면이 더 많습니다.
 
한국에서 느낀 또 다른 점은 가난하고 사회 변두리에서 사는 분들입니다. 제가 보긴엔 호주에서처럼 사회복지 혜택을 잘 받지 못한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그것을 영등포산업선교회에 가서 볼 수 있었습니다.
 
- 멜본 시내에서 많은 노숙자들을 볼 수 있는데... ?
 
로버트 랜튼: 물론 노숙자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 로랜드 씨는 이번에 한국에서 오신 방문객들의 교통편을 위해 자신의 사업도 안하고 버스 운전을 하며 안내하는 헌신적인 모습에 모두들 감사했다. 로랜드 씨도 작년에 한국에 다녀왔고, 가족들을 데리고 재차 방문하며 한국어를 배우는 등 한국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들었는데 한국 방문했던 느낌과 이번에 봉사했던 보람은 무엇인가?
 
로랜드 제일렌: 저는 이 일이 아주 귀하고 보람된 사역이었다고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고 헌신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기회를 통해 한•호 양국 노회 간에 선교협력하는 것이 호주와 한국교회에 유익한 일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 일에 보람을 갖고 했습니다.
 
부산에서 오신 노회원들이 전에 다녀가신 분들도 계셨지만, 제가 바라기는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서 듣고 보고 경험했던 것을 본국에 돌아가서 성도들과 함께 나눠주면 좋겠습니다. 한•호 양쪽 교회가 서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의 교환 방문도 이루어지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이 연세 높은 어른들을 존경하는 것을 미풍양속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그런 점이 약한 것 같은데 사회에서도 그런 점이 아주 부족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호주의 젊은이들이 한국의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공경하고 존경하는 그 마음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 한호 양국 젊은이들의 교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학생들이 가정집에 민박하면서 지내면 경비도 줄고 양국의 풍습과 문화를 체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가능하겠는가?
 
로버트 랜튼: 민박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젊은 부부들은 어린 자녀들이 있지만 방이 부족하고, 노인들은 방은 있지만 젊은이들이 노인들과 지내기에는 불편한 점이 있을 겁니다. 
 
로랜드 제일렌: 물론 언어의 장벽도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제 사촌동생이 일본에서 온 학생을 잠시 데리고 있었지요. 우리 사촌은 전혀 일본어를 모르고 일본에서 온 학생은 영어를 모르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젊은 사람이니까 서로 사인 랭기지를 통해서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이런 만남이 한호 양국에 서로 이해하며 더욱 돈독해지는 기회가 되고, 세대를 이어 아름다운 교제로 이어 가기를 기대합니다. 〠

취재•사진 | 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정리 | 송기태 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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