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할배들의 손주 사랑

김종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9/30 [10:36]
추석날 할배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손주들을 만나는 일이다. 요즈음 친구들을 만나 손주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손주 자랑은 3만 원! 오늘 점심 사라.”고 한다. 그래도 손주 이야기를 하게 된다. 손주들을 보면 ‘생명의 신비’가 넘친다. 노년기에야 아이들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닌 빛나는 보물이라는 깨달음을 하게 된다. 이것을 노년기의 성장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사람이 마음으로 성장하고, 누구에겐가 필요한 존재가 되는 한 살 가치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손주들이 할배들에게 살 가치를 주는 셈이다.
 
할배의 눈으로 보니 자녀양육의 핵심이 더 잘 보인다.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사랑이 두 가지라는 점이다. 하나는 ‘무조건적 사랑=모성애’이고 또 하나는 ‘조건적 사랑=부성애’이다.
 
무조건적인 모성애는 어머니의 본능적인 사랑이며, 여자를 양육자로 변화시키는 에너지이다. 발달심리학자 E. 에릭슨은 “엄마로부터 모성애를 충분히 받은 아이는 자라면서 세상으로부터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기본 신뢰감(basic trust)'이 형성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생길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세상 한복판으로 나아간다. 운동장에서 즐겁게 뛰놀던 아이는 어느새 치열한 경쟁 터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아버지의 조건적인 사랑이 필수적이다. 무조건적인 모성애는 아이가 세상에 편안함으로 나가기 위해 필요조건이지만, 세상의 가혹한 도전을 극복하는데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아버지의 사랑, 즉 조건적인 부성애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아버지도 있고 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엄마도 있지만, 사랑에 조건을 붙이는 역할은 아버지가 맡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이는 사랑을 받기 위해 엄마를 필요로 하고, 인정을 받기 위해 아버지를 필요로 한다. 인정을 받으려면 아버지가 제시하는 조건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상은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높은 수준의 어려운 조건들을 제시할 것이다. 무엇인가 얻으려면 경쟁해야 한다. 생각보다 치열한 경쟁이 인생길이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그리고 따뜻한 모성애 속에서는 일어날 수 없던 일들을 당하는 것이 인생길이다.
 
조건적인 사랑, 부성애는 아이로 하여금 이런 경쟁에 적응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부모는 가정의 규칙을 정하고 통제한다. 하지만 그 규칙에 관한 벌과 훈계는 주로 아버지의 몫이다.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조건적 관심은 부정적인 조건적 관심보다 더 낫고, 부정적인 조건적 관심은 조건적 관심이 전혀 없는 것보다 더 낫다. 
 
최근 이스라엘 심리학자들이 강조하는 역경지수(AQ)가 우리 아이들에게도 절실한 것이다. 새로운 학술용어 역경지수에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유대인들의 저력이 놀랍기 때문이다.  
 
이혼율 악화로 홀부모 가정의 부성부재 문제를 우려하지만, 통계를 보면 그렇지가 않다. 문제아의 발생은 오히려 부모가정이 더 많다. 홀부모라도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균형을 이루는 자녀양육이 가능한 것이다.
 
할배들은 모여서 손주들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온실 속의 화초처럼 너무 과잉보호 한다.”는 걱정을 한다. 과잉보호는 애정결핍과 같은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넘어진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도록 지켜보고 칭찬을 해야 하는데, 부모가 즉시 일으켜주니 칭찬 받을 기회를 박탈당하는 셈이다.
 
할배들은 역경지수와 회복탄력성이 약한 아이로 자라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할배들의 강한 역경지수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는데, 우리 손주들도 역경지수가 강하여, 세계의 주역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

김종환|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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