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평화의 동산 조성 책임자 장경순 목사

영원에 이르는 문지방의 안내자

글|송기태, 사진|권순형 | 입력 : 2015/09/30 [10:37]
▲ 카슬브룩 추모 공원에 진행 중인 한인 평화의 동산 조성팀. 왼쪽부터 장경순 목사, 기독교 담당 박엔젤라 씨, 불교 담당 한상아 씨.     ©크리스찬리뷰

삶과 죽음, 종이 한 장 차이

“나는 하나의 종착점을 알고 있다. 그것은 무덤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며 길잡이가 필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곳까지 가는 길에 있다. 물론 길은 한 가닥이 아니다.” -노신의 묘비 글에서
 
삶과 죽음, 순간과 영원, 세상과 천국의 경계선은 ‘무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기에 쇼울리는 “무덤은 영원에 이르는 문지방”이라고까지 했다. 무덤이 있는 곳마다, 무덤 앞에 놓인 묘비마다 우리의 영혼에 간결하고 명료한 설교를 들려준다. 말없는 무덤은 그 어떤 설교보다 강력하고, 장엄한 설교를 해주는 현장이다. 무덤은 한 사람의 생애가 총 요약된 엑기스요,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무덤’ ‘죽음’ 등의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그 길을. 이 단어들이 함축한 숱한 의미에 무서움과 무시가 교차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이 ‘금기어’를 과감히 깨뜨리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보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것도 목회자에 의해, 목회적인 관점에서. 여기서 우리는 이 일을 추진하는 장경순 목사(작은자교회 담임목사)를 만나 그 알파와 오메가를 들어보았다.          

 
▲ 윈저 로드 상에 있는 카슬브룩 추모공원 정문.     © 크리스찬리뷰
 
- 이 사역을 하게 된 동기와 의미를 들려주십시오. 목회자로서 이 일을 시작하면서 목회적 돌봄과 나눔, 그리고 영생에 대한 ‘준비사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시간은 흘러간다 아무도 영원히 살 수는 없다’(Time is fleeting nobody lives forever)는 라는 말이 생각이 나는군요. 제 나이가 삶과 죽음을 통달할 만큼의 나이는 아닙니다만, 일 주일에 두세 번씩 카슬브룩 공원묘지 사무실에 출근을 하다 보니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의 앞면과 뒷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앞면이라면, 죽음은 그 뒷면으로 바뀐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온 앞면의 삶이 마지막으로 투영되는 모습을 이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제 사무실 옆에 있는 채플에 가득한 조문객들이 함께 돌아가신 분의 살아온 삶을 그리워하며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돌아가신 분이 살아계실 때 좋아했던 보라색 옷을 조문객들이 다 입고 와서는 마지막 발인 예식을 하면서 웃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모습을 목격하지요.
 
어떤 분은 평생 트럭 운전을 하다 돌아가신 분인지, 마지막 운구차도 큰 컨테이너 트럭 뒷자리에 싣고 오기도 합니다. 또 바이크 족들과 함께 한 영향력 있는 분이었는지 수백 대의 오토바이 행렬을 받으며 공원묘지에 들어오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총 요약해서 단 한편의 짧은 동영상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 가는 길에 어느 누구의 도움도, 슬퍼함도 없이, 운구차에도 실려오지 못하고 검정 밴에 실려서 조용히 화장터로 들어가는 분도 봤습니다. 그럴 때 목사로서 드는 생각은 ‘저 분은 삶을 어떻게 사셨기에 아무도 슬퍼해 주는 분도, 따라오는 분도 없이 저렇게 죽음을 맞이했을까?’하는 생각이 들곤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살았을 때의 삶이 어떠했든, 때로는 한 줌의 재로 조그마한 박스에 담겨있는 한 인간의 모습으로, 또는 이미 호흡을 다한 육체의 모습 그대로 안장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종말을 늘 견지하며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 미팅 중인 한인 평화의 동산 조성팀.     ©크리스찬리뷰
 
종말신학의 현장, 준비가 필요하다
 
- 이곳에서 고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지상 마지막 예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시겠습니다.
 
“예, 이곳은 신학적으로는 민족마다 신앙과 신학적인 차이를 볼 수 있는 ‘종말신학의 현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태리 사람들이나, 그리스 사람들은 육체부활까지 믿는 신학적 배경을 가진 탓인지 전신 방부처리를 해서 캐비닛 식으로 되어있는 아파트 묘지에 안장합니다.
 
그런가 하면 인도사람들은 100% 화장을 하는 장례예식을 치러요. 중국 사람들이나, 베트남 사람들은 죽음과 삶을 ‘복’이라는 개념으로 연결을 지어 고인의 묘지 터에 따라 살아있는 가족들의 복된 삶이 달라진다고 믿고 있는 것 갖습니다. 그래서인지 따라온 종교 지도자나 풍수 마스터가 명당이라고 정해준 자리에 고인을 안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묘 자리 가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풍수 마스터가 정해준 자리를 결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한국 분들은 믿음을 가진 분이듯 안 믿는 분이든 상관없이 풍광이 막히지 않는 자리와 높은 자리를 선호합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묘 자리에 절대로 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 성경에도 잔치집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전 7:2)고 할 만큼 모든 사람의 종말을 이야기하며 그 지혜를 배우도록 권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목회자로서 보는 성서적 돌봄의 입장을 말씀 드리자면 죽음의 자리는 영면하신 분을 위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가족들을 위한 자리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 한 사람을 먼저 보내야 하는 슬픔은 말할 수 없지요. 그런가 하면, 유한한 인간의 시간 앞에서 하나님 앞으로 그 영혼을 보내 드린다는 믿음과 육신을 안장해놓은 그 자리는 그분의 삶을 기리며 찾아올 때마다 평안한 마음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안장해 드리는 것 또한 치유와 안정감을 갖게 하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사역을 감당한지 5년째 되는데, 그동안 한인들의 장례 준비를 볼 때 아쉬움이 참 많았습니다. 이렇게 말씀 드려보죠. 한 생명이 태어난다고 할 때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합니까? 엄마의 태중에서부터 태아교육을 하기도 하고, 작은 배냇저고리를 미리 준비도 하지 않습니까? 장난감이며 침대도 준비하구요.
  
한 생명의 아기를 맞이하기까지 오랜 시간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결혼할 때도 역시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합니까? 새 옷, 새 집, 새 이부자리, 새로운 가정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열망을 다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생을 살아온 한 사람의 삶이 이 세상을 마치고 이제 영원한 세계로 입성하게 되는 죽음은 너무도 준비 없이, 미흡하게, 급작스럽게 맞이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닌 것 아닌데’ 하는 아쉬움이 참 많았습니다.
 
3일 또는 5일 만에 마지막 가시는 분의 삶의 품위는 온데 간데 없이, 좀 죄송한 표현입니다만 마치 ‘폐품처리’하듯 보내드리는 모습을 볼 때 목사로서 참 마음이 아픈 적이 많았습니다.
 
좀 더 정중하게 준비된 장례일정으로 육신의 삶을 마치고, 마지막 가는 길의 품위와 정중함이 묻어나는 예식으로 해드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합니다.”
 
▲ 카슬브룩 추모공원은 대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현대시설의 다양한 디자인으로 편안함과 품격을 더해 주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또 다른 민족의 응집력
 
-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그리고 평화의 동산 크리스찬 한인 전용 추모공원에 대하여도 이야기 해주십시오.
 
“제가 한인 공원묘지 조성하는 일을 하게 된 동기는 5년 전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 가정의 장례 일정을 도와 드리다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부족한 제가 시교협 총무 일을 맡고 있었는데, 특별히 많은 분들이 그 목사님의 가정에 대한 마음의 온도감이 따뜻했지요, 경황이 없는 가운데 공원묘지 안장을 위해서 자리를 찾던 중 막상 ‘보내실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던 관계로 유족들이 원하는 묘 자리를 찾기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이 분은 한인 교계에 아주 중요한 분으로서 좋은 자리에 잘 모시도록 도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협조 요청을 했더니, 의외로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아주 좋은 자리에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장례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조금 시간이 지났을 무렵, 담당자로부터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저에게 함께 일해 주기를 바란다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목회와 신학교 강의로 분주했던 저로서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지요, 그래서 몇몇 원로 목사님들께 의논을 드렸더니, ‘장 목사가 이 일을 통해 한인 크리스찬 공원묘지를 조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40여 년이 넘은 한인 공동체였지만, 변변한 공원묘지 하나 조성해 놓지 못함으로 인해 1세대 부모님들을 이곳저곳으로 존재감 없이 모시게 되었던 것이 현실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던 차에 회사 측으로부터 제안을 받게 되었고, 한인 크리스찬 공원묘지를 조성해 달라는 여러 차례 제안 끝에 우리 한국인 문화에 꼭 맞는 자리를 받아내게 되었습니다.”
 
-‘한인 크리스찬 공원묘지’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정확한 이름은 ‘한인 평화의 동산’(Korean Graden of peace)입니다. 이 자리는 지난해(2014년) 5월부터 받아냈습니다. 시가로  900만 불 정도 되는 631좌석의 묘지(부부 합장으로 볼 때 1,600좌석)입니다. 한인들만 이렇게 한 자리에 모실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이 시작은 2차, 3차 한인동산도 가능하게 되었다고도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호주 다문화 사회의 입장으로 볼 때 중국 민족이나, 필리핀, 베트남, 그리스 등 다른 민족들은 전용공원묘지를 다 조성해 놓았는데, 유독 우리 한인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제껏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제가 이 일을 하면서 보니, 이것 역시 다문화 사회에서 또 다른 ‘민족의 응집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잘 조성된 한인 공원묘지는 훌륭하게 믿음생활하시다가 영면하신 믿음의 선배들의 자리를 찾을 때마다 ‘성지’와도 같은 신앙의 유적지가 될 수도 있고, 또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신앙을 기리며 힐링센터의 역할도 할 수 있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마지막 영면의 자리에도 한 자리에 함께 계실 때를 한 번 그려보세요, 어버이날을 비롯해 뜻 깊은 날에 직장이나 여러 이유로 뿔뿔이 흩어져 있던 성도들의 후손들도 오랜만에 다시 만나 교제하는 현장이 되지 않겠습니까?
 
선조들의 신앙의 삶을 기억하고 꽃 한 송이라도 꽂아 드리면서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사실은 우리 한인 커뮤니티에 또 하나의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최근에는 존경하던 선배 목사님의 장례 일정을 도와드리면서, 또 사랑했던 동료 목사님의 장례를 도와드리면서 한인 크리스찬 공원묘지 조성 사업을 참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 카슬브룩 추모모공원은 드넓은 자연환경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 크리스찬리뷰
 
세월이 마른 흔적

 
- 그동안 사역 기간 중에 있었던 안타까웠던 일이나 의미 깊은 일로 꼽을 수 있는 것도 소개해 주십시오.
 
“저희 한인 컨설턴트 사무실에 있으면, 제가 목사이기에 가끔씩 장례예식 부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장례예식을 도와 드립니다. 이것은 목사이기에 드는 생각입니다만, 살아가면서 신앙을 갖지 않고 영면을 맞이한 분들을 대하면 마지막 장례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도와 드리게 됩니다. 목사로서, 신앙인으로서 ‘신앙이 없으면 마지막 가는 길도 어렵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서 부탁드린다면 신앙생활 잘 하시길 바랍니다.
 
살았을 때의 모든 삶은 마지막 죽음의 자리에서 다 투영됩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는 한 순간일 뿐’(The passing years are but fleeting moment)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세월은 어떠한 것도 그냥 남겨두지 않고, 추억이라는 흔적을 만들어 버립니다.
 
어떤 묘지를 보면, 그 묘지에 누군가 남기고 간 흔적이 눈물처럼 말라있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긴 한숨에 살았을 우리의 인생이 그저 그 한숨 같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똑딱 똑딱, 째깍째깍 흘러가는 소리만큼 말라가는 시간에 우리가 남길 것은 과연 무엇일까?’하는 생각이지요. 죽음은 없어진 것이 아니고, 단지 말라버린 내 삶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묘지에 말라버린 꽃잎을 보면서 자주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 사역을 감당하면서 참 마음을 많이 비우게 되고, 마음이 가난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그밖에 하시고 싶은 말씀, 부탁의 말씀이라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한마디로 ‘미리 준비해 놓으세요’라는 이 한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호주의 장례 일정을 보면 3가지가 충족 되어야 모든 일정이 마무리됩니다. 장의, 장지, 비석이지요.
 
첫째로, 장의는 장례예식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문화에 맞는 서비스로 도와드릴 수 있는 모든 것 또한 준비했습니다.
 
두 번째로, 장지입니다. 장의사는 장례 일정 동안 빈소를 마련해 드리고, 운구를 냉동에 모셔서 세척해 드립니다. 화장(분장)해 드리고, 고인이 제일 편하게 입으셨던 깨끗한 옷을 입혀드립니다. 사망 확인서와 관, 화환, 리무진 등 모든 서비스를 해드려서 장지에 모시는 것까지가 이 두 번째 역할입니다.
 
장지를 마련하는 것은 공원묘지 측과 협의를 하셔야 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저희 한인 컨설턴트들이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비석입니다. 영면하신 분을 잘 모셔놓은 후에, 마지막으로 명패를 만들어 드리는 작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인생은 어쩌면 “짧은 한 줄의 글귀를 남기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비석에 새기는 비문을 가족이 정해야 하고, 돌아가신 분의 뜻과 삶이 담겨 있는 간결한 한 줄의 글을 남기는 작업은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가 준비되어야 장례의 모든 일정은 마치게 되는 것입니다. 갑작스레 큰일을 당하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몰라서 얼마나 당황하게 됩니까? 이럴 때는 믿을만한 전문인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누수가 없게 됩니다.
 
저희 컨설턴트들은 크리스찬 마인드로 최대한 성도들의 편에서 편의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사무실 앞에서 한인 평화의 동산 조성팀.     ©크리스찬리뷰
 
가장 확실한 한 가지
 
그렇다. 사람에게 가장 확실한 것인 동시에 가장 불확실한 것이 죽음이다. 다른 것은 인간 과학이 모두 예방할 수 있다 하더라도 죽음만은 예방할 수 없다. 다른 것은 시대와 문화와 함께 변화를 받는데 죽음의 본질만은 절대로 변색되지 않고 있다. 옛 사람들에게도 죽음은 죽음이고, 현대인에게도 죽음은 죽음이다. 백인도 죽음을 슬퍼하고 흑인도 죽음을 슬퍼한다. 유식한 사람도 무식한 사람도 죽음은 무섭다.
 
시간이나 장소나 상황에 따라서 절대로 변색하지 않는 것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의 공포이고 죽음의 슬픔이다. 묘지의 모양이나 장송곡의 곡조는 달라진다 해도 죽음은 이 땅에서 최후의 예식이며, 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학적으로 죽음은 절망이고, 최후의 공포라는 사실과 그것이 허무이고 슬픔이라는 창백한 색깔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다. 철학으로도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오직 주님의 구속의 복음으로만 풀 수 있는 것이 죽음이다. 영생으로 향하는 이 죽음을 두려움 없이, 후손들에게 부담주지 않고 가장 아름답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은 크리스찬의 본질적인 삶과 관련 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 일을 위하여 장 목사는 한인 커뮤니티와 교회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여주고 있다. 카슬브룩 추모공원을 찾았을 때, 이곳저곳에 가지런히 정리된 무덤과 무덤을 대하면서 불현 듯 조셉 에디슨의 다음 말이 떠올랐다. 
 
“위대한 사람들의 무덤을 바라볼 때, 내 마음속에 있는 시기심과 같은 모든 감정은 사라져버린다. 미인들의 묘비명을 읽을 때 무절제한 욕망은 사라져 버린다. 또 서로 경쟁하고 다투었던 사람들이 나란히 묻혀있는 것을 볼 때,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놀라게 했던 성인들의 무덤을 볼 때, 나는 인간들의 하잘것없는 경쟁, 불화, 논쟁에 대해서 슬픔과 놀라움에 젖는다.” -조셉 에디슨 〠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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