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길목에 선 풍차

새터민 출신 1호 목사, 새터교회 담임 강철호 목사

글|송기태, 사진|윤기룡 | 입력 : 2015/09/30 [10:53]
▲ 강철호 목사는 새터민(탈북자) 출신 1호 목사로서 새터민 선교에 앞장서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장례식에서 배우다

담임목사의 처조카 사위가 되고나자 이전과 전혀 다르게 그는 더 강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신학도가 되기 위한 훈련이었다.
“조카사위 되고 나서는 작은 것도 강하게 하셨습니다. 조카사위를 키우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무엇보다 목사님께서 반공교육, 안보강연을 못나가게 하셨습니다. 그런 곳에 가면 100만 원씩 받을 때인데 못가게 하셨습니다. 가정도 있는 저에게 적지 않은 상처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런데 자꾸 다니다보면 교만해진다. 목사가 되고 나면 그렇게 설 때가 있다. 지금부터 그러면 안된다’고 하시며 강하게 막으셨습니다. 다 하나님이 그때 준비시켜 주신 것입니다.”
 
은파교회는 그 당시 6천 명되는 교회였다. 장례가 많았다. 담임목사는 장례식 때 꼭 그를 불렀다. ‘장례식에서의 교훈’을 배우게 하려는 배려였다.
 
“사실 장례식장에 가보면 그 사람의 삶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과천에 잘 사는 사람, 고관대작,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친했던 어떤 집사님의 장례 때였습니다. 교회는 사모님에게 끌려오다시피한 집사님입니다. 고급승용차를 타고 와서 제일 뒤에서 예배드리고 쏙 가던 분입니다. 사모님의 신앙과는 정반대였는데,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장례식 때 가보니 사모님이 고백하셨습니다. 건축헌금 내려는데 엄청 구박하셨다고 합니다. 큰 금고 속에 현금이 쌓여있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렇게 헌금하자고 할 때, 안하고 가지고 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사모님이 ‘그게 뭐라고, 그게 뭐라고 죽으면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는데’하고 울부짖는 것을 보는 그 자체가 엄청난 교육이고 충격이었습니다,
 
또 한 장로님은 경찰청 고위직에서 은퇴하신 건축위원장을 하신 김흥식 장로님입니다. 대통령이란 대통령 상은 다 받은 분입니다. 아웅산 테러 사건 때 살아나신 분입니다. 세상적으로 화려하게 살만한 분인데도 그렇게 잘 살지 못하셨습니다. 평소에 좋은 차 좋은 집이 아닌 구형 자동차 타면 매번 말없이 봉사하신 분이셨습니다. 북한에서 온 저는 ‘왜 저렇게 대단한 분이 저렇게 사는가?’하는 의아심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참 화려한 죽음이었습니다. 장례식 때 경찰차가 호위를 하고 말입니다. 살아있을 때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신앙의 근본이 새롭게 다져지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담임목사 추천으로 36세 때 감리교신학대학에 입학했다. 32세 때 한국 땅을 밟은지 만 4년 만이다. 이미 중국과 한국교회에서 신앙의 기초를 쌓았지만 정규신학교 1학년부터 다시 시작했다.
 
신학교 때 구약학을 가르치던 왕대인 교수는 각별하게 그를 아껴주었다.
 
“그분의 부모님들이 북한에서 오신 분입니다. 항상 희망적인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통일은 된다. 통일 되면 너희같은 사람이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 통일의 풍력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풍차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차이는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한번은 신학교 친구들과 고향이 함흥이니 함흥냉면 집엘 갔습니다. 냉면집 사장님이 환영하며 안내를 했습니다. 함께 간 여학생이 ‘사장님이 배우 장동건 같습니다’하는 거예요. 그 당시 배우 장동건은 여성들에게 우상이었지요. 제가 보니 그 사장님이 아주 못생긴 사람인데 장동건처럼 잘생겼다고 칭찬하는 거예요. ‘저렇게 못생긴 사람을 잘생겼다고? 거짓말하는 사람이 신학생인가? 저 사람이 전도사야?’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북한은 거짓말 안하고 직설적으로 하거던요, 그 뒤로는 그 여학생이 바로 안보였습니다. 그때는 이해 못했지만 나중에 선의의 칭찬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것을 통해 배웠습니다. 사소하지만 이런 저런 차이로 무척 힘들었습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 안하고 교묘히 다른 이야기 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 시드니평화통일 구국 기도대회에서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해서 사람들의 분단을 먼저 해결하고 북한 주민과 소통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한 강철호 목사     © 크리스찬리뷰
 
새터민 교회 개척
 
그렇게 울고 웃으며 감신대 언덕을 오르내렸다. 나름대로 공부한다고 했는데, 신학을 공부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하나님을, 신앙이기 때문에 공부를 통해 보충해 나갔다. 신학생들이 토론시간에 신학적인 근거들, 도발적인 질문을 여과 없이 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보통 믿음이 아니면 안되겠구나’하는 생각을 다져나갔다.
 
신대원을 졸업하자 새터민을 위한 교회를 개척했다. 한국 1호 새터민을 위한 교회였다.
 
“함께 기도하던 새터민 몇 분이 십시일반으로 내고, 교단에서 개척자금 지원하여 신월동에서 조그마하게 개척했습니다. 정에 굶주리고 외로웠던 새터민들이 많이 왔습니다. 24평에서 좁아서 좀 더 좋은 자리, 우리 새터민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가려니 1억 2천만 원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 돈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성도들이 목사님들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부추겼습니다.
 
고모부 목사님께 옛날에 도움 받았고, 또 교회 건축 하면서 많은 빚이 있는 데 차마 못갔습니다. 기도하는 다른 목사님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하니 그분이 의외로 야단을 치셨습니다. ‘어디서 그런 못된 것을 배웠느냐?’고 야단치시는 겁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심어야 그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질 수 있다. 성도 그분들이 심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겁니다.
 
너무 큰 실망과 상처가 되었습니다. 한없이 울고, 다음날 교회에서 철야예배 때, 30여 명의 성도들이 은혜가 많을 때, ‘제가 이런 야단을 맞았습니다. 이제 당신들이 심지 않으면 저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 절망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났다. 그 다음날 세 사람이 찾아왔다. 평양예술단장 출신 김형남 씨가 3천만 원을 가지고 오는 것을 필두로, 4가정이 한국에서 받은 정착금을 그대로 교회개척의 종자돈으로 기꺼이 바쳤다.
 
그렇게 6천만 원이 만들어졌다. 그들이 알토란같은 종자돈을 바치니 그런 가정이 잘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끊임없이 그 가정들이 잘되기를 기도했다. 때를 맞춰 높은뜻숭의교회 북한 사역부 맡고 있는 부장님 권사가 찾아왔다.
 
새터민교회 세워진다니 40여 명의 사역부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같이 모여 기도하면 안되겠느냐?’고 타진해 왔다.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던 추운 시절에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교회 이전을 위해 기도한다니 그분들 중에 한 권사님이 5천만 원 헌금해 주셔서, 전세자금 1억 2천에 지금의 교회로 이전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교회에만 올인하니 가정경제가 말이 아니었다. 교인들도, 주변에서도 교회 사정은 살펴보면서 담임목사 가정에 대해선 별로 신경을 안쓰는 듯했다. 그렇다고 내놓고 말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든 시절에 목동지구촌교회 조봉희 목사(<벤처목회> 저자)가 어느 날 사역자 몇을 데리고 교회를 방문했다. 그의 첫마디가 감동 그 자체였고 눈물나게 했다.
 
“우리 동네에 새터민 교회라니 어떤 교회인가 해서 지켜보니 너무 아름답습니다, ‘우리 교회랑 자매결연을 맺읍시다’ 그래요. 그리고 그 목사님이 처음으로 ‘담임목사님 어떻게 사십니까?’하시며 사례비 등을 물어보셨습니다. ‘저도 이런 시절 겪어 봤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 사례비 책임지겠습니다’고 하시는데 얼마나 큰 감동이었는지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분들을 보내 주셔서 너무 감사드렸습니다. 6년 전에 관계를 맺었는데 지금까지 사례비를 보내 주십니다. 끊을 만한데도 말입니다. 선교보고서 작성해가면 오히려 야단치세요.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분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성실히 하려고 합니다. 성도들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보고 있더군요.
 
이렇게 장로교회에서 도와주니 우리 감리교단에서도 ‘북한회복감리교회연합’이 정동제일교회 중심으로 2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 연합회에서 건물 매입을 제안하여, 반을 준비하고, 반을 그쪽에서 부담하여 1억 5천 보증금과 함께 전체 건물을 매입하진 못했지만 일부를 매입하여 월세도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세월을 돌아보면 그때그때마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럴수록 새터교회를 드러내려고 하지않고, 하나님의 사람의 성실함으로 나아갈 것을 작정한다고 했다.
 
현재 새터교회는 50~60명 모이고 있으며, 90%가 새터민이라고 했다.
 
“새터민이 많아지면 기성 성도들이 부담되어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목회합니다. 새터민 가족과 함께하면서 어린이집, 어린이학교, 녹색가게, 열린가족상담센터도 운영하면서 새터민들을 통일의 일꾼으로 키우는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에 두고 온 가족 때문에 아파하는 그분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잘 이겨내고 한국생활 잘하도록 열린 가족상담센터를 운영합니다. 새터민을 품을 수 있는 교회로, 꾸준히 성실하게 지역을 봉사하면서 북한을 가슴에 품고 통일을 준비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데, 이제 통일되면 제 1호 교회를 세우며,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는 교회가 되자는 비전을 주니 성도들이 좋아합니다.”
 
남한에는 새터교회 말고도 열방샘교회와 창조교회, 새평양순복음교회 등 새터민을 섬기는 교회가 여러 개 있고, 신학을 공부하는 탈북자도 70여 명에 이른다고 했다.


▲ 분단 70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진정한 북한 동포들을 위해 일해 주기를 소망한다는 강철호 목사.     © 크리스찬리뷰

북한의 지하교회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그 땅의 지하교회는 어떤가? 그곳에서 실제 생활해온 그의 육성을 들어보자.
 
“지하교회는 두 그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의미의 지하교회 성도는 6.25 이전부터 신앙생활한 1세대들인데, 지금은 거의 돌아가셨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의 지하교회 교인들은 탈북했다가 전도받았던 사람들이 원치 않게 체포돼 북송되어 이루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탈북하여 중국에서 신앙 갖고,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한국으로 오지 않고 북한으로 가서 아주 비밀스럽게 모이며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조오련과 봉수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동독의 니꼴라이 교회와 봉수교회를 비교하면 안됩니다. 봉수교회는 당국의 핍박을 전혀 받지 않는 가짜교회입니다.”
 
분단 70년, 어떤 이는 ‘평화’의 정의를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정권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북한을 비판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원하기에 앞서, 그 체제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가를 모른 채 말하는 평화는 허구라고 했다.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평화를 위해 서울에서 북한 인권에 대해 엄청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북한 인권은 정치하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지 목사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의 신학을 의심하고 싶습니다. 예수님도 얼마나 인권 소중히 여기셨습니까? 북한에서 인권탄압 당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예수 믿는 성도들입니다.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분들 대부분이 예수 믿고, 성경책 소지, 중국에서 목사님 만났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디아스포라 교회가 그 분들의 인권을 말하지 않고 평화를 말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북한 사람의 인권을 위해서 나서야 할 때입니다. 많은 북한 선교 세미나 기도회 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합니다. 그 성경 말씀을 강도만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강도는 누구입니까? 강도로 확연히 드러난 김정은 일당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살려야 할 사람들이 북한 동포들입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 통일운동 한다면서 평양 당국자를 만납니다. 평화를 논한다고 비행기 타고 가는 분들, 정말 탈북동포들 발을 씻어주었으면 합니다.
 
이름있는 사람들이 비행기 타고 평양가지 말고, 정치하는 사람들 흉내 내지 말기를 바랍니다. 정치는 그렇게 해야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그대로 하면 안됩니다.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데 말입니다. 교회가 어떻게 김정은을 지원해줄 수 있느냐고 합니다. 돈 싸들고 평양 인신매매 당하는 북한 여성들의 발을 씻어준 분들 지금 그 많은 지도자들 중에는 없습니다. 분단 70년 진정한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 지난 4월 유엔 인권회의에 참석하여 북한의 인권실상을 폭로한 강철호 목사는 북한에서 살해하겠다는 위협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 크리스찬리뷰
 
통일은 요원한가?
 
새터민 출신으로 그는 통일에 대한 열망은 대단했지만 냉정하게 지켜보아야 한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통일세미나들이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독일 통일의 모델이라고 하는데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독일은 체제분단은 되었지만 사람 분단은 되지 않았습니다. 동서독 사람들은 서로 만났고, 출판물을 수시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서독 정권이 동독 정권에 돈 주고 정치범들을 서독으로 데리고 가는데 동독이 협조했습니다. 통일 위해 서독 사람이 동독 사람들 돈을 주고 키웠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은 정치적인 분단과 함께 사람분단도 철저히 되었습니다.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통일 주시기 위해 소통을 위해 새터민을 보내주셨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한류문화가 들어갑니다. 북한 사람에게 핸드폰, 서신을 몰래 몰래 전해줍니다. 북한 핸드폰을 통해 북한으로 핸드폰하며 수시로 통화합니다. 여기서 소식을 접하면서 북한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납니다.
 
우리가 김정은의 감정을 자극을 하지 말고 한국 새터민들이 북한의 영향을 미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올바른 지도자들이 세워지고 나서 통일이 될 것입니다. 3부자 정권으로는 통일이 안됩니다. 저 북한 동포들 깨우는 일이 시급합니다. 북한의 잘못된 사회를 보고, 바깥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도 몰려오는 엄청난 새터민들은 통해 북한 사람들을 변화시키라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통일 자원들입니다.”
 
현재 탈북 새터민은 2만 8천여 명으로 30% -40%를 크리스찬으로 보면 된다고 한다. 한국교회가 새터민 선교 많이 하는데 참 힘들다고도 한다. 특히 “김정은 집단을 도우려 하지 말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 도와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거침없이 북한에 대하여 말하는 그도 신변의 위협 받은 적은 있었다고 한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유엔 인권회의 참석하여 증언하면서 직접 살해 위협을 받았다.
 
“북한 대표단이 제가 증언하는 북한 인권의 실상을 거짓말이라고 소리쳐요. 양심을 가지라고 해요. 그래서 국제마당에서 북한 인권을 옹호하느냐고 하니 이걸 빌미로 북한에서 살해하겠다고 위협이 들어왔습니다.
 
고국 통일을 위해 죽으면 순국이지요. 평화통일 위해 희생하고, 희생의 대가 속에서 순국한다면 영광이지요. 위험하지만 무섭다고 통일 에너지를 만드는 풍차돌기를 그만 두면 안되겠지요.”
 
양쪽 체제를 경험한 그는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제일 먼저 알아야 될 것은 ‘공산주의의 기독교 핍박은 공산주의자인 자기들이 신이 되기 위한 아주 절묘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사진/윤기룡|크리스찬리뷰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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