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으로 흐르는 사랑

강승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10/26 [11:11]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데 가슴으로 깨닫기가 쉽지 않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약 30센티미터 거리인데 어떤 사람에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동하기까지 수년이 걸리고, 어떤 사람은 평생 깨닫지도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의 속성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사랑이다. 낮은 곳 즉, 약한 사람, 가진 것 없는 사람, 고통받는 사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넘친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라는 표현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한다. 사랑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를 미워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죄인인 인간이 이웃을 사랑하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오히려 화내고 미워하는 것을 하나님은 노력하셔야 한다.

예수님 탄생 700년 전쯤에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은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셨다. 그 이유는 고아와 과부를 약탈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관심은 왕궁같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아와 과부들과 같은 낮은 곳에 있었다. 낮은 곳에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가 머물렀고 넘치는 사랑이 흘렀던 것이다.

하나님은 “듣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해서는 안된다. 눈이 먼 사람 앞에 걸려 넘어질 것을 놓아서는 안된다…”(레19:14)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은 “그 거룩한 곳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들의 아버지시며 과부들을 돕는 재판관이시다” (시68:5)라고 고백했다.

왜 하나님은 신체장애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

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재판관이라고 말씀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신체장애아들과 고아와 과부들이 불쌍하니까 돕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하나님의 본성이기에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에 기도가 편해진다. 기도는 우리 자격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는 예수님의 섬김과 희생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꼭 들어주셔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반응하시는 이유는 예수님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빽을 의지해서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고통받는 것을 참지 못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는 하나님께 흥정을 잘해서 아들을 낳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간절한 기도였다. 무지한 여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신 것이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은 간절함을 무시하지 못한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불평하기보다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 고난의 낮은 자리에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 넘치기 때문이다. 마음이 높고 교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고일 수가 없고,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고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감사할 수 있다. 재난이 닥칠 때 욥은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고 찬양하였다. 어떻게 자식을 잃고 재물을 다 잃었는데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을까? 욥은 고난의 자리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이다.〠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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