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 기독교 선교회 설립자 피터 워커 목사

포스트모더니즘과 동성결혼 (Postmodernism and Same Sex Marriage)

글|김환기, 사진|권순형 | 입력 : 2015/11/24 [10:39]
▲   12월호 표지  ©크리스찬리뷰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살고 있다. 모더니즘 시대의 '절대가치'는 해체되고, '상대가치'의 시대가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란 절대로 없다'는 명제 하에 모든 것을 상대화시켰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어떤 것에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그것을 객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본래 건축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능 중심의 모더니즘 건축양식과는 다르게, 본래의 목적이나 기능과 상관없이 새로운 모양과 형태로 건축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프랑스와 리요트르'가 문화에 접목하면서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리요타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대담론들'(Metanarratives)에 대한 불신'이라고 정의했다. '거대담론'이란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권위, 사상, 이념 혹은 진리 등을 말한다.
 
이 시대는 '거대담론'이 해체되고, '주관적, 상대적, 다원적, 복합적' 등의 단어로 대체되었다. 이제 '성과 속', '선과 악', 심지어 '남과 여'의 구분도 불분명해졌다.
▲ 매년 3월 첫째 토요일 시드니 시티 일원에서 펼쳐지는 마디그라 행사에 참가한 동성애자들이 세인트 메리 성당 앞에서 춤 연습을 하며 사랑(?)을 나누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LGBT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시대의 물결을 타고 20세기 후반부터 LGBT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자신들을 '성소수자'(sexual minority), 속어로 퀴어(queer)라고 한다.
 
본래 queer는 '이상한, 기묘한'이라는 뜻으로 동성애자를 멸시할 때 쓰는 단어였으나,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성수소자들이 당당하게 '퀴어'라는 뜻을 사용하였다. 비슷한 용어인 '커밍아웃'(coming out)도 '벽장 속에서 나와'(coming out of the closet) 뜻으로 자신이 누구임을 당당하게 알리라는 말이다.
  
'스티브 잡스' 뒤를 이은 애플의 새 CEO '팀 쿡'(Tim Cook)은 게이(gay)다. 자신은 적극적인 활동가는 아니지만, 다른 성소수자의 희생에 많은 덕을 본 사람이라고 했다. 2014년 10월 29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게이인 것이 자랑스러우며, 이는 신이 내게 준 최대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I’m proud to be gay, and I consider being gay among the greatest gifts God has given me.)라며 '커밍아웃'을 선언했다.
 
물론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2015년 11월 5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출마한 김보미 씨도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선언하고 '커밍아웃' 했다.
 
발표문을 통해 “얼마 전 커밍아웃한 애플의 CEO 팀 쿡의 말처럼, 성적 지향을 사적 영역의 문제로 두기를 포기함으로써 우리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저는 포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이어 그녀는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모두의 삶이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인정되는 사회.’이것이 제가 바라는 이 학교의 모습이자 방향성이며, 오늘 출마와 함께 여러분께 커밍아웃을 하는 이유입니다."라고 밝혔다.
▲ 시드니 시티에서 열린 마디 그라 행진에 참가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 크리스찬리뷰
 
동성애는 선택인가 유전인가?
 
위키 백과사전은 동성결혼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동성결혼은 생물학적, 사회적으로 동일한 성별을 가진 두 사람 사이에 법률상, 사회상으로 이루어지는 결혼을 말한다.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평등결혼(marriage equality 또는 equal marriage)이라고도 불린다.
 
20세기 후반부터 LGBT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면서 2001년 네덜란드를 필두로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등 인권과 시민권에 기초하여 동성결혼을 전면적으로 혼인의 형태로 포섭하고 이를 법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현재 동성의 동반자 관계를 혼인관계와 유사하게 법적으로 보호하는 시민 결합(civil union)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을 포함하면 현재 전 세계 35개 국가가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
 
동성결혼을 찬성하는 측은 동성결혼은 개인의 '권리이자 인권'이라는 입장이며 동시에 '선택’이 아니라 ‘유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반대하는 측은 동성결혼은 '창조의 질서를 거스르는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개인의 권리나 인권'이 '공동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이란 미명 하에 개인의 권리를 '인정해야 하느냐'이다.
 
세속화의 물결은 어느새 쓰나미가 되어 기독인의 믿음 전체를 흔들고 있다. '상대진리'의 사회에서 '절대진리'를 주장하는 크리스천들은 '배타주의자'로 지탄을 받고 있다.  이런 시대가 올 것을 예측한 성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9) 그러므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라고 말씀하고 있다.
▲ 성소수자들의 상징인 무지개 깃발을 앞세우고 마디그라 행진에 참가한 녹색 당원들.     © 크리스찬리뷰

성소수자(LGBT)의 상징인 무지개!
 
성소수자의 상징은 무지개(rainbow) 깃발이다. 그 유래에 대해 '위키백과사전'은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무지개의 다양한 색깔은 LGBT(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성전환자)로 불리는 성소수자들의 다양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무지개를 사용한 깃발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78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게이 퍼레이드로 알려져 있다. 예술가 길버트 베이커가 주디 갈란드의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 퍼레이드 때에는 길버트 베이커(Gilbert Baker)가 만든 8색 깃발로 처음 등장했다. 나중에 분홍색(hot pink)이 상업적으로 생산이 되지 않아 7색으로 만들었다가, 퍼레이드 때 길 양쪽 편으로 세 가지 색으로 나누어 달기 위해 비슷한 톤이 중복되는 남색을 뺀 6가지 색 깃발이 탄생하게 되었다. 처음은 깃발로 시작했지만, 현재 6색 레인보우는 동성애자의 자긍심을 드러내는 상징색으로 모든 곳에 응용되고 있다.
 
레인보우 스티커를 차에 부착하거나 레인보우가 디자인된 배지, 티셔츠, 양초, 컵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당당한 동성애자로서의 자긍심을 표현하고 있다.
 
무지개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무지개는 '물+지게'로 구성된 말이다. '물'은 '물 수(水)'의 '물'이고 '지게'는 '문'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지금의 문은 직사각형으로 되어 있지만 옛날의 '지게'는 그 윗부분이 무지개의 윗부분처럼 곡선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물'로 된 '문'이라는 뜻으로 '무지개'가 되었다.
 
무지개 색은 경계가 분명치 않아서 문화권마다 색의 숫자가 다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무지개를 5색으로 표현해서 '오색 무지개'라고 불렀다. 당시 색의 기본이었던    '흑백청홍황'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처음으로 무지개 색을 7가지로 정한 사람은 뉴턴이다. 그는 빛의 성질을 연구하던 중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서 빛이 여러 가지 색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뉴턴이 7가지 색깔로 구분한 이유는 당시의 기독교 문화 때문이라고 전해온다. 성경에는 7은 완전수이며 성스러운 숫자이다.
▲ 호주 원주민 지도자 피터 워커 목사가 기독민주당 당원들과 함께 마디그라 행진 출발 지점에서 마디그라를 반대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2001년 4월 1일 - 세계 최초 동성결혼 승인
 
만우절에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때 독실한 개신교 국가였던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이 실행되었다. 2000년 12월 19일 상원의원에서 동성결혼 법이 통과되고, 2001년 4월 1일 4쌍의 동성 커플이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동성결혼을 허락하는 나라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벨기에, 2009년에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2010년에는 포르투갈과 아이슬란드, 2012년에는 덴마크, 2013년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잉글랜드 및 웨일스, 2014년에는 룩셈부르크와 영국의 스코틀랜드가 동성결혼 제도를 입법해 시행하고 있다.
 
개신교뿐 아니라 가톨릭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가톨릭의 영향력이 큰 스페인은 2005년도에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였고, 아일랜드도 아직 국회통과 절차가 남아 있지만 국민투표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최초의 나라가 되었다.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의 국민 투표 결과, 62.1%가 동성결혼 찬성표를 던졌다. 공식적으로 로마 가톨릭은 동성 결혼 등 행위에 대한 것은 모두 부정하지만, 다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어떤 부당한 차별이나 박해 또한 부인하고 있다. 미국 통계를 보면 동성애자를 포용해야 한다고 답한 가톨릭 신자는 2007년 58%에서 2014년 70%로, 개신교 복음주의자도 같은 기간 26%에서 36%로 올라갔다.
▲ 마디그라에 참가한 동성애자들이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쟁반에 담은 것과 같이 마디그라를 반대하는 프레드 나일 목사의 목을 벤 모형 인형을 쟁반에 담아 행진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2015년 6월 26일 - 미국 동성결혼 승인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날이다.  2004년 5월 '매사추세츠 주'가 처음으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후 36개 동성결혼을 인정하다가,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세계에서 21번째 동성결혼을 인정한 국가가 되었다. 이날 전 세계 페이스 북은 무지개 색깔로 도배되었다. 
 
잠재적 지지자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여 공개적으로 동성결혼을 지지했다. 판결문 중 "결혼이란, 두 사람이 예전보다 더 커다란 무엇이 되는 것이다."(In forming a marital union, two people become something greater than once they were)라고 했다.
 
전통적인 결혼(traditional marriage)에서는 두 사람은 반드시 남과 여야 하지만, 판결문에서는 성의 구분 없이 두 사람을 뜻하고 있다.
 
이어서 "그들의 결혼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 이러한 남자와 여자들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It would misunderstand these men and women to say they disrespect the idea of marriage.)라고 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성소수자 보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친 것이 대법원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평소 'LGBT' 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없는 정책을 역설해 왔으며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올해 초 국정연설에서 LGBT에 대한 보호를 강조했다. 지난 2월에는 국무부 차원에서 성소수자(LGBT) 특사를 임명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현직 대통령으로 동성애자 잡지의 표지모델이 되었다. 성적소수자(LGBT) 매거진 아웃(www.out.com)은 오바마 대통령을 '협력자, 영웅, 우상’이라는 제목과 함께 표지 모델로 실었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차별이 아닌 평등'에 대하여 강조를 했다. "어느 누구든 성의 문제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차기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도 기존 입장을 바꾸어 동성결혼을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의 여론은 최근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1996년 갤럽조사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지지여론은 27%에 불과했지만, 2015년 5월 조사에서는 60%가 찬성했다. 미국의 세계적 위상을 고려하면 동성결혼 문제는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 호주 원주민들이 호주 연방정부에 제출한 울룰루 바크 청원서.     
 
2015년 8월 13일 - 울룰루 바크 청원서
 
호주 원주민들이 '울룰루 바크 청원서'(The Uluru Bark Petition)를 제출한 날이다. 1963년 8월, 원주민들이 제출한 '여칼라 바크 청원서'(Yirrkala Bark Petition) 이후 국회에서 받아들인 두 번째 청원서이다.
 
당시 여칼라 원주민들이 청원을 하게 된 이유는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서 광산업을 할 수 있도록 호주 정부가 동의 없이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 청원은 처음으로 호주 연방정부 의회가 인정한 것이며, 이를 계기로 원주민의 권리와 땅의 소유권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울룰루 바크 청원서'는 6 가지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1항부터 5항까지 호주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유구한 전통과 역사 그리고 아름다운 문화를 소유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이러한 근거로 마지막 '6항을 청원한다'고 했다.
 
제6항 : '애버리지니는 수상과 국회가 통치 기구임을 인정하기에, 국회가 결혼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에 강력하게 반대하며, 그리하여 '전통적 결혼'(Tradition of Marriage)과 '거룩한 일치'(Sacred Union)'의 신성한 영적 의미를 존중하기 촉구한다.'
  
청원서는 7월 1일 노동당 대표가 국회에 '동성 결혼법'을 국회에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를 반대하는 분다랑 족의 원로인 피터 워커(Peter Walker) 목사가 제안하여, 원주민 리더들과 함께 청원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만약 동성결혼이 합법화된다면 기존의 애버리지니 사회 질서와 가치가 붕괴될 것을 우려하여, 동성결혼법을 반대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게 된 것이다.
 
청원서는 공식적으로 울룰루(Uluru)에 살고 있는 Pitjantjatjara 부족의 언어로 썼고, 영어와 다른 원주민들의 언어로 번역했다. 공식어를 울룰루의 Pitjantjatjara 로 사용하였기에 청원서의 이름도 '울룰루 바크 청원서'라고 했다.
▲ 호주 원주민 지도자 피터 워커 목사의 제안으로 원주민 리더들이 동성결혼법을 반대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캔버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울룰루 바크 청원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2015년 9월 20일 - 동성결혼 반대 집회
 
호주 전역에서 동성결혼 반대 시위가 있던 날이다. NSW주 상원의원이며 기독민주당 총재인 '프레드 나일'(Fred Nile) 목사는 동성결혼 법은 원천봉쇄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호주에서 열리는 매년 세계 최대의 동성애자들의 축제인 '마디그라' 퍼레이드에 피켓을 들고 나가 반대 시위를 하기도 한다.
  
나일 목사는 '국회는 나의 목회지'라고 천명하고 국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국정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이다. 윌버포스는 존 뉴턴의 영향을 받아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되었다.
 
18세기 후반 영국은 세계 최고의 노예 매매국가였다. 인간이 인간을 매매한다는 잘못된 일임을 깨닫고, 20년간 윌버포스의 피나는 노력으로 1807년 노예제도 폐지 법안이 영국 하원에서 283대 16으로 통과되어 노예거래가 금지되었다. 나일 목사는 국회에서 '악법을 폐지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동성결혼 법은 '창조의 질서'에 어긋나기에 목숨을 걸고 반대하고 있다.
 
9월 20일 나일 목사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지지자들을 결집하여, 각주 수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동성결혼 반대 집회를 열었다. 시드니에서는 오후 3시에 시티의 '벨모아 팍'에서 모여 '마틴 플레이스'까지 행진하고 그곳에서 반대 집회를 가졌다. 하지만 갑자기 이루어진 집회라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것인가' 예측할 수가 없었다.
▲ 동성결혼 지지자들의 시위 현장     © 크리스찬리뷰
 
당일   '동성결혼을 지지'(Pro Marriage Equality)하는 소수의 그룹들도 같은 곳에 모였지만, 다행히 두 그룹 사이에는 충돌이 없었다.
 
1천여 명의 '동성결혼 반대'(Anti Marriage Equality)를 하는 그룹은 '마틴 플레이스'까지 평화롭게 행진했다. 이날의 주제는 '전통적인 결혼을 지키고', '전통 결혼과 가족을 축하하자' 였다. '마틴 플레이스'에서 열린 집회에서 '프레드 나일'(Fred Nile)을 비롯한 많은 연사가 '왜 동성결혼의 잘못 되었는가?'에 대하여 피력했다. 이날 애버리지니 대표로 피터 워커 목사도 참석하여 소리를 높였다.
▲ 기독민주당 총재 프레드 나일 총재는 당원들과 함께 지난 9월 20일 시드니 시내에서 동성결혼 반대 행진과 집회를 개최했다.     © 크리스찬리뷰

2015년 10월 30일 - 피터 워커 목사
 
피터 워커 목사와 오후 2시, 그의 집에 만났다. 초인종을 누르니 부인이 나왔다. 그녀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조금 있으니  피터 목사가 나왔다. 그는 특별히 맡은 교회는 없지만 호주 전역을 다니며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내년이면 고희가 된다.
▲ 존 하워드 총리를 만난 피터 워 목사   © 크리스찬리뷰
 
- 지난 9월 20일 동성결혼 반대 집회에서 연설한 주요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그날 거룩한 결혼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야 아이를 생산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창조의 질서입니다. 바로 그 질서를 지키며 살아야 인류가 살아남는 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제가 속한 애버리지니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전한 결혼 생활이 건전한 사회를 만들고, 건전한 사회가 건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아니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질서입니다. 창조의 질서가 깨지면 인간 사회질서가 파괴됩니다." 간단하지만 분명하게 당일 했던 내용을 요약해 주었다.
 
- 언제부터 나일 목사와 같이 일하게 되었습니까?
 
"오래 전부터 기독민주당의 총재인 프레드 나일 목사와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는 개인의 유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기독민주당의 당원이 되어 그를 돕고 있습니다.
 
게이 레즈비언의 축제인 마디그라 때도 함께 피켓을 들고 시위하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잘못된 것을 보고 침묵만 할 수 없었습니다."
▲ 마틴 플레이스 광장으로 들어서는 행진 대열.     © 크리스찬리뷰
 
- 국회에 제출하였던 '울룰루 바트 청원서'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제가 제안을 했고 애버리지니 대표들이 함께 모여 작성했습니다. 청원서는 '마그나 카르타'와 같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원주민들은 동성결혼을 반대한다는 내용입니다. 만약 이법이 통과되면 목사가 동성애자의 결혼식을 거부하면 불법이 됩니다.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는 레드펀에서 10년 동안 개교회에서 목회하다가 '호주 원주민 기독교 선교'(Australian Indigenous Christian Ministries Ltd)를 설립하여 원주민 목사 안수도 하고, 리더십 세미나도 열고, 상담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총리와 국회를 위하여 기도 단체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모여 기도회를 갖고 있다. 인터뷰 중 그는 말을 끝낼 때마다 습관처럼 'Praise Lord'라고 했다.
▲ 원주민 지도자 피터 워커 목사(Pastor Peter Walker)     © Ramon Williams
 
- 언제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했습니까?
 
"모태 신앙은 아니지만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교회를 다녔습니다. 청년이 되어 잠시 교회를 떠났다가 1978년 다시 교회로 돌아 왔습니다. 1979년에 주께 헌신하고, 1985년부터 호주연합교회에서 교도소 채플린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호주연합교회를 떠나 1996년 ‘사도교회’(Apostolic Church)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 호주연합교회를 떠난 이유가 있나요?
 
"네, 당시에 호주연합교회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받아온 교육과 신앙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호주연합교회를 떠나서 '사도교회'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원론적으로 둘 다 의(righteousness)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프레드 나일 목사를 지지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로마서 13장은 아마 그것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 피터 워커 목사 부부     © 크리스찬리뷰
 
현재 무슬림들은 종교와 정치가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교일치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기독교가 정치에 뒷짐을 지고 있다면 호주는 언젠간 무슬림화 되지 않겠습니까?"
 
- 한국교회가 원주민 선교를 하는데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
 
"원주민 선교는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병행하지 않는 선교는 실패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원주민 사회에서는 외부에서 잘 알지 못하는 내부의 네트워크(network)가 있습니다. 그러니 선교를 하려면 먼저 그 부족의 리더들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 본지와 단독 인터뷰중인 피터 워커 목사     © 크리스찬리뷰
 
- 1998년 'National Sorry Day' 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National Sorry Day'는 호주 원주민을 대상으로 저질렀던 인종차별에 대하여 유감을 표하며 '케빈 러드'(Kevin Rudd) 총리에 의하여 제정되었습니다. 당시 케빈 러드 총리는 과거의 잘못에 대해 연방 정부를 대신하여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하지만 말로만 사과가 아닌 구체적인 행동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세리장 삭게오를 아시죠?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소유를 절반을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주겠다고 했고, 만약 자신이 토색한 일이 있으면 4배가 갚겠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회개와 사과는 입술에 있지 않고 행동에 있는 것입니다."
▲ 마디그라 반대 시위를 주도한 기독민주당 총재 프레드 나일 (왼쪽)와 원주민 지도자 피터 워커 목사(오른쪽)           © 크리스찬리뷰
 
그는 슬하에 네 딸과 아들 하나 그리고 일곱 손자와 손녀를 두고 있다. 모두가 크리스찬이며 흩어져 살고 있다. 그는 선교를 떠나지 않으면 집 가까운 교회에 참석하여 도와 주고 있다.
▲ 피터 워커 목사.     © 크리스찬리뷰
 
피터 워커 목사는 내일 또 먼 길을 떠난다. 이번에는 선교가 아닌, 어제 소천한 동생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집을 나오며 동생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자, 그는 'Praise Lord'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습관처럼 거듭하는 '주를 찬양하라'는 말은 아마 그의 '삶의 고백이 아닌가'라고 생각해 본다.〠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 구세군 한인사역(Korean Ministry) 및 수용소 담당관(Chaplian, Detention Centre)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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