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복음주의

고준학/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12/28 [11:59]
Mark A. Noll 교수의 저서 ‘The Rise of Evangelicalism’에서 설명하는 복음주의를 간략하게 요약하면서  칼럼을 연재하려 한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가 1740년 미국에서 집회를 시작했을때 때때로 하루에 두세 차례나 설교를 하기도 했다. 청중은 언제나 수천 명에 이르렀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이 인물은 아직 스물다섯 살도 안 된 잉글랜드 국교회 목사였다.
 
청년은 4년 넘게 영국에서 수많은 청중에게 설교를 해 왔는데 1739년 초 이래, 그는 야외 설교라는 급진적 발걸음을 내딛었다. 결과는 환상적이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탄생이라는 감동적 메시지를 듣고자 수천 명의 군중이 운집했다.
 
휫필드는 가장 중요한 진술을 하게 된다.
 
“회심과 경건의 능력에 대해 설교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형식을 고집하지 맙시다. 사람들이 형식 때문에 한 마음으로 모이지는 않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형식만 바라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회심과 적극적인 경건의 삶이 필요하다는 확고한 신념이 토대가 되었고 그에게 복음은 보다 큰 유연성을 지닌 것이었다.
 
복음(주의)적(evangelical) 이라는 단어는 역사를 통해 다양한 의미를 전달해 왔다. 어원적 의미의 대부분은 복음(good news)과 관련이 있다. 영어 단어 ‘evangelical’은 그리스어 명사 ‘유앙겔리온’(euangelion) 에서 음을 따라 빌려온 단어이다.
 
신약 저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소식을 표현하고자 정기적으로 사용한 말이다. 즉 도움이 절실한 인류에게 구원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이다. 신약 번역 자들은 흔히 유앙겔리온을 ‘복음’이라는 단어로 사용한다.
 
16세기에 단어 ‘복음적’은  구체적으로 개신교 종교개혁과 결부된 의미를 지니기 시작했다. 최초의 위대한 개신교 지도자인 마틴 루터는 부패한 로마 가톨리교회의 교리에 대항하는 그리스도 안의 구원 이야기를 ‘복음적’인 것으로  천명했다.
 
18세기 중반 이후, 잉글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및 영국의 북미 식민지에서 상호 연관된 갱신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련의 부흥은 복음주의 역사에 독특한 서막을 장식했고 영국의 맹렬한 사건이 ‘복음주의 부흥’ (Evangelical Revival) 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아메리카 식민지에는 ‘대각성’(Great Awakening)으로 불린다.
 
복음주의는 언제나 확신을 통해 이루어졌고 부흥 속에서 확신이 솟아나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지지자들을 몰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주의는 1730년 이래 수 세기를 넘어 유지되고 있는 지속적인 확신과 태도를 가리킨다.
 
이러한 확신과 태도를 요약해 보려는 수많은 노력이 있었는데 데이비드 베빙턴 교수의 노력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는 복음주의의 핵심 요소를 네 가지로 구분했다.
 
 •확신,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념’
 •성경, ‘모든 영적 진리가 그 안에서 발견된다는 믿음’
 •행동주의, 평신도를 포함하는 모든 신자가 특히 복음 전도와 선교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삶으로의 헌신
 •십자가 중심주의, 즉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를 대속하는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라는 확신이다.〠

고준학|시드니유니온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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