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찬양하는 사람’과 ‘입으로 찬양하는 사람’의 만남

듣는 음악과 보는 음악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12/28 [12:23]
▲ NSW토지부에서 3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청각장애인 박영주 씨는 지난해 수어합창단 오디션에 합격하여 오페라 하우스에서 헨델의 메시아 공연을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장애인(people with disability)은 누구인가?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거나 정신적 결함이 있어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이다.
 
장애인의 반대말은 '정상인'인가? 장애가 없다는 면에서는 '정상인'이 맞다. 하지만 '정상인'을 '장애인'의 반대개념으로 쓰면 틀린다. 왜냐하면 '정상'의 반대는 '비정상'이기 때문에 그렇다. 만약 '정상인'을 '장애인'의 반대말로 쓰면 '장애인'은 '비정상인'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인'과 대비된 용어를 사용할 때는 '정상인'보다는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써야 할 것이다.

국제장애인의 날(International Day of People with Disability)
 
유엔은 '1981년을 '국제 장애인의 해'로 선언하고 세계 각국에 기념사업을 추진하도록 권장하였다. '국제 장애인의 날'은 유엔이 정치•사회•경제 등 모든 면에서 장애인들의 사회통합의 당위성을 알리기 위해 1992년에 지정했다.
 
1992년 12월 3일은 국제장애인의 날(International Day of People with Disability)이다. 국제 장애인의 재활과 복지의 상태를 점검하고 장애인 문제에 대한 이해의 촉진 및 장애인이 보다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와 보조 수단의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기념일이다.
  
이와는 별도로 대한민국은 1991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였다. 장애인의 날은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법정 기념일로 정한 날이다.
 
정부는 2013년 10월 31일 '장애인 복지법'을 시행하였다. 제1조는 '목적'에 대하여 언급했고, 제2조는 '장애인의 정의'에 대하여 기술했다. '장애인'이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제3조는 '기본이념'을 제시했다. '장애인 복지의 기본이념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을 통하여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에 있다.'
  
시드니에 '호주밀알'(MILAL) 장애인 선교단체가 있다. 1979년 시각장애인 이재서 박사가 한국 밀알선교단을 설립했다. 그리고 1995년 '세계밀알연합회'를 만들고 세계선교를 향한 문을 열었다.
 
현재 30개 이상의 나라에서 장애인을 통한 세계선교를 위한 조직으로 성장했으며, 호주 밀알은 2007년 현재 단장인 정영화 목사의 파송으로 시작되었다. 밀알은 토요학교, 주일학교, 주간학교 운영을 통한 호주 한인사회 장애인 사역과 다민족 장애인 사역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 말 호주 밀알은 북한 농아 축구팀을 초청하여 호주 농아 축구팀과 친선 축구 경기를 개최하기도 했다.
 
밀알에서 발간하는 2014-2015의 연말 결산보고서 커버페이지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장애인과 함께 땅 끝까지 복음 전하며, 장애인과 함께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하는 밀알" 밀알(MILAL)은 '장애인과 함께' 하나의 썩은 밀알이 되어, 이 땅에 '예수의 밀밭'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 홀에서 헨델의 메시아 공연이 수어합창단과 함께 연주되었다.     © 박영주
 

헨델의 메시아(Messiah)  
 
‘국제 장애인의 날’에 즈음하여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세계 최초로 '수어합창단'과 '시드니 필하모니아 합창단'의 합동공연이 열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듣는 음악'과 '보는 음악'의 만남이다.
 
청각장애인이란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선택한 작품은 '헨델의 메시아'이다. 메시아는 음악 장르상 '오라토리오'이다. '오라토리오'(oratorio)는 성악의 일종으로 줄거리가 있는 곡의 모임이지만 배우의 연기는 없다. 종교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오페라에 비하여 작품 스케일이 크지 않고, 독창보다는 합창이 중시된다.
 
헨델의 대표적 작품인 메시야는 전체 53곡으로, 3부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제1부는 1곡-21곡 '예언과 탄생'으로 오실 그리스도의 예언과 탄생, 제2부는 22곡-44곡 '수난과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인간의 죄를 대속한 십자가의 죽음, 제3부는 45곡 - 53곡 ‘부활과 영생’은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 특별히 2부의 마지막 곡인 '할렐루야'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곡이다.
 
'할렐루야'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1743년 3월 런던에서 이 오라토리오가 공연되었을 때, 배석했던 영국의 왕 조지 2세가 '할렐루야'를 듣고 그 곡의 웅대함에 감격하여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자, 관객들도 모두 함께 일어났다고 한다. 이것이 관례가 되어 지금도 '할렐루야' 합창이 울려 퍼지면 관객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다.
 
보통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사람을 그 분야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유명해서, 누가 아버지 인 줄 모를 때도 있다. 철학의 어버지는 '소크라테스'가 아닌 '탈레스'이다. 심리학의 아버지는 '프로이트'가 아니라    '빌렐름 분트'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역사의 아버지는 '토인비'가 아니라 '헤로도토스'이다. 그렇다면 음악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이다.
 
바흐는 17,18세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독일의 작곡가이다. 이상하게 음악에는 다른 분야에 없는 '어머니'가 있다. 그렇다면 '음악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족보를 따지면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이니, 바흐 부인이 '음악의 어머니'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헨델(Georg Friedrich Handel)이다. 음악사에서 바흐와 헨델은 늘 라이벌과 같은 존재였다.
 
바로크 시대를 이끈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으면서도 반면 대조적이다. 이런 대조성 때문에 두 사람을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로 대비시킨 것이다.

 
▲ 수어합창단에서 알토 파트를 맡은 박영주 씨.     © 박영주
 

수어합창단의 박영주
 
지난해 12월 3일, 5일, 6일 '메시아'의 막이 올랐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근무하는 아들에게 표를 부탁했다. 3일과 5일 표는 구할 수 없고, 주일인 6일 표는 가능하다고 한다. 6일은 주일이라서 갈 수 없어 5일자 표를 인터넷으로 구입하였다. 딸이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학교에서 메시아를 공연한 적이 있어, 딸을 앞세우고 오페라 하우스로 향하였다.
 
오늘 공연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박영주 씨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청각장애인이다. 생후 5개월 때 열병을 앓고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부모님을 따라 일찍이 호주로 이민 왔다. 그녀는 18세의 어린 나이에 공무원이 되었고, 현재 호주남동부 뉴사우스웨일즈주(NSW) 토지부 공무원으로 30년 넘게 근무해 오고 있다.
 
박영주 씨는 현재 시드니 시의회 장애자문위원, 시드니농아예술운영위원회, 2007년과 2013년 시드니 주 정부 '국제장애인의 날' 홍보대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5년 그녀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던졌다. ‘메시야’ 공연을 위한 수어합창단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별다른 생각 없이 지원했다. 그녀에게 합창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미개척 영역이었다. 그녀는 6월 25일 오디션을 보았다. 스크린에 나오는 4줄 노래가사를 읽고 테스트하는 '수어 창작노래' 오디션이었다.
 
드디어 그녀는 최종 13명의 단원 중 한 사람으로 선발되었다. 그 후 매주 3시간씩 3개월간 연습을 했다. 단원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로 자기 일을 마치고 밤에 함께 모여 연습을 했다. 수어로 찬양하는 것도 놀라운데, 이들은 4부로 나누어서 연습을 했다.
 
박영주 씨는 알토를 맡았다. "수어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저는 어릴 때 구화를 배웠고, 나중에 수어를 배웠습니다. 만약 제가 수어를 배우지 못했다면 이 자리에 설 수가 없었겠지요."

 
▲ 수어 지휘자 알렉스 씨(가운데)가 합창단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앞줄 오른쪽 3번째가 박영주 씨.     © 박영주
 

우리나라에서는 'Sign Language'를 전통적으로 '수화'라고 하였으나, 최근 들어 'Sign Language'도 언어이니 ‘수어’(手語)라고 써야 한다고 했다. 나라마다 문자가 다르기 때문에 수어도 다르다. ‘한국수어’(Korean Sign Language, KSL)와 ‘호주수어’(Australia Sign Language, Auslan)의 차이는 한국어과 영어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박영주씨는 '한국구화학교'에서 ‘구화’(Lip Reading)를 배웠다. 구화(口話)란 청각장애자의 의사소통 방법 중 하나로 상대의 말을 그 입술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을 보고 이해하며, 청각통로를 통하여 습득한 음성언어로 발어하는 방법이다.
 
구화는 배우는데 거의 5년이 걸리며 그것도 잔존청력이 없는 경우에는 힘들다. 그녀는 지금 4개 국어를 한다. '한국말과 한국수어', '영어와 영어수어'. 그녀와 이야기할 때 전혀 불편한 점이 없었다. 오히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해야 하니 더 집중이 되었다.
 
"수어합창단원과 함께 하는 창의적인 음악회는 세계 최초가 되며 이런 자리에 한국청각장애인으로서 함께 한다는 사실이 더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무대 앞좌석에 앉은 13명의 '수어합창단원' 중 그녀만이 유일한 아시안이었다.
 
"그동안 솔로로 수어찬양은 많이 했었지만 대단위 합창단원들과 함께하는 수어합창은 처음입니다. 참 많이 떨렸습니다. 2천500명이 넘는 관객 앞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하지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불가능 하다고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내 손과 몸과 맘을 통해 주님을 향해 높이 찬양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적이고 이것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증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같은 무대에 두 사람의 지휘자가 동시에 지휘하는 ‘오라토리오’를 상상해 보았는가? 그랬다. 이번 2015년 12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린 '메시아' 공연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한 지휘자(Brett Weymark)는 '입으로 찬양'하는 단원을 위해서, 다른 지휘자(Alex Jones)는 '손으로 찬양'하는 단원을 위해서! ‘수어합창단’의 지휘를 맡은‘알렉스’도 청각장애인이다.

 
▲ 연주회 전 필자 김환기 사관     ©김환기
 
 
역시, '메시아'의 하이라이트는 44번 '할렐루야'가 연주될 때였다. 곡이 연주되자 관객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작품의 주인공인 '메시아'와 작곡가인 '헨델' 그리고 영혼으로 찬양한 '합창단원'들을 향한,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였다.〠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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