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

김훈/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12/28 [15:25]
Q: 아들이 당장에 눈 앞에 보이는 쾌락적 요소만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 우려가 됩니다.  미래를 위한 장기적 투자를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는데 말예요.

A: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음으로 느끼는 달콤함,  성관계를 통한 희열감, 스릴을 경험하며 느끼는 짜릿함,  좋은 옷을 입으며 느끼는 시각적 즐거움 ,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보면서 느끼는 정신적 만족 ….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쾌락적 요소입니다. 
 
사실 쾌락은 인간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너무 억압하거나 무시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먹어야 하고 사랑해야 하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가져야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예를 들면, 외국에 살면서 한국 음식을 못 먹다 한 번씩 먹으면 입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따듯해 집니다. 한 번씩 교외에 나가서 대 자연을 바라보면 마음이 행복해 집니다. 시각적인 만족감과 좋은 공기가 쾌적함을 느끼게 합니다. 십대 아이들은 육체적 성장이 오면서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하고 누군가 사랑하고 싶어합니다. 이렇듯 쾌락을 추구하는 마음은 누구나에게나 있는데 그것은 쾌락이 주는 즐거움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쾌락만을 늘 추구하면서 살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즐겁게 하기도 하지만 파괴시키기 때문입니다. ‘쾌락의 늪’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쾌락은 늪과 같아서 가까이 하면 빠져들어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육체적인 쾌락은 너무나 강렬하고 본능적이어서 끊임없이 그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양상시킵니다. 카사노바와 같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이 너무 커 성적인 즐거움을 늘 추구하고 그것을  빼앗으면 그들은 불행해 합니다.
 
그러한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받을 수 없는 것이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육체적인 쾌락이 주는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 더 강렬한 자극을 찾아 다니곤 합니다.

그런데 정신적 쾌락이든 육체적 쾌락이든 쾌락이 주는 즐거움은 잠깐입니다. 그래서  쾌락을 늘 즐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쾌락을  끊임없이 좇아가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커피를 한 잔 마셔서 그 향과 맛에 감각기관은 쾌락을 느끼고 정신 상태가 각성되나 그것에 중독이 되면 여러 잔을 마셔도 그 효과를 느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똑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커피를 마셔야 하는 결과가 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쾌락을 즐기나 쾌락의 늪에는 빠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의 비법은 어디에 있을까요?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 심리학’ 책에서는 쾌락을 통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쾌락과 쾌락 사이의 간격을 넓히는 것에  비결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주 쾌락을 즐기면 중독이 될 수 있기에  가끔씩  쾌락을 즐김으로  쾌락을 통한 행복감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사실, 쾌락은 추구하면 할수록 진정한 만족이나 깊은 행복감을 느끼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 이유는 쾌락은 미래가 없는 현재에만 초점이 맞추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만족은 현재에도 적당한  즐거움을 주면서 미래를 향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에서 옵니다. 그것 중에 하나가  ‘베푸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를 즐겁게 할 뿐 아니라 타인도 즐겁게 하고  미래에 좋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시드니대학의 코칭학과 교수인 앤소니 그랜트는 일 주일에 두 시간 정도의 봉사가 사람의 행복도를 증진시키는데 크게 기여한다고 합니다.
 
행복 과학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말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좋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내면에서 느끼는 만족감에서 오는데 그것은 쾌락이 아니라  용기, 지혜, 사랑, 영성과 같은 것을 자신의 강점으로 삼고 삶에 적용하며 살아갈 때 가능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쾌락만을 좇지 말고 오늘 친절을 베풀고 사랑을 나누며 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훈|호주기독교대학 학장, 기독교상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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