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기적의 현장 ‘캄보디아 헤브론병원’을 가다 (마지막 회)

보이지 않아도 가야할 길 (하)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16/01/25 [14:46]
현지 의료진이 스스로 서는 그날까지

기적의 현장 ‘캄보디아 헤브론병원을 가다’ 마지막 회를 쓰고 있을 때 헤브론병원 김우정(63. 원장) 선교사가 ‘캄보디아 선교 후원음악회’에 특별 초대되어 시드니에 왔다. 반가웠다.
 
김 선교사가 시드니 방문 중 여러 교회에서 행한 설교와 간증집회의 주제는 ‘협력’과 ‘연합’이었다. 김 선교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혼자 하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일을 사람을 통해서 하기를 원하시고 사람의 손을 통해서 일을 이루어 가실 때 참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았다”며 “특별히 말씀에 있는 것처럼 사람의 손과 손을 연결해서 우리가 참으로 힘들고 어렵지만 협력하고 연합해서 주님이 시키신 일들을 해나갈 때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간증했다.
 
“에베소서 2장 22절 말씀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실은 그게 어렵잖아요.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서로 모르는 여러 명의 선교사들을 연결시키셔서 헤브론병원을 세우셨고, 또 여러 교회들과 후원자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셔서 헤브론병원 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 ‘헤브론병원 24시 사진전’ 후원을 위한 음악회에 출연한 김우정 선교사(왼쪽)가 사진작가 김인화 씨와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8/1/2016)     © 크리스찬리뷰
 
진정한 용기
 
김우정 선교사는 결코 선교사가 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딱히 마음에 새길 만큼 선교사를 꿈꿔보지도 않았다. 선교사라는 이름은 그에게 오랫동안 낯설고 아득했다.
 
그럼에도 그는 캄보디아 헤브론병원 안에 거처를 정하고 있다.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며 시골마을을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살피고 어루만지며 그들과 하나가 된다. 세상 사람들은 가벼이 말한다. 삶은 곧잘 예기치 못했던 곳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는 예기치 못했던 헤브론병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예비해 두신 사역의 현장이라고.
 
김우정 선교사는 서울에서 20여 년간 소아과 병원을 운영한 중견 의사였다. 서울 회현동 충무교회 장로이기도 한 그는 카톨릭의대를 졸업하고 평생 아이들과 함께 해온 인생이었다.
 
그러나 2004년 우연한 기회로 다녀오게 된 캄보디아 의료선교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곳에서 짧게 의료봉사를 하던 중 접한 캄보디아인들의 상황은 참담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이 보장된 한국에서의 편안한 생활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그는 한시가 급했다. 그렇지만 결심을 했다 하여 간단하게 떠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김 선교사는 아내에게 갈등의 끝을 이야기했다. 아내 박정희 선교사(64)의 심경은 어땠을까.
 
“처음에는 동의를 못했죠. 좋은 직업을 주셨으니까 시간이 나는대로  어려운 곳에 가서 봉사하는 일을 하자는 이야기는 수없이 했어요. 그것이 막연히 한국인 줄만 알았죠. 그런데 캄보디아 단기 의료선교를 하고 돌아왔을 때 당장 캄보디아를 가야 되겠다는 거예요. 양육할 아이들도 있는데요. 가더라도 아이들이 대학교를 마친 뒤에 가자고 했어요. 둘째가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을 하게 됐거든요.

▲ 헤브론병원의 의료선교사들이 오전 진료를 마친 후 숙소 동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왼쪽부터 강재명, 김우정, 김재선, 정금모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또 지금 운영 중인 병원 문을 갑자기 닫고 급하게 떠나야한다는 것은 동의할 수가 없죠. 그때 이런 얘기를 해요. 우리나라 선교사님들의 퍼센트를 보면 일반 선교사들은 많은데 의료 선교사가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선교사들에 비하면 너무 적다는 거예요. 왜 그렇겠느냐. 나 같은 열정을 하나님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주셨을 거다. 그런데 그때 순종을 하지 못하면 그 열정은 식고 만다. 당신이 나를 말리면 나 역시 또 한 사람의 그런 사람이 될 건데 그러면 되겠느냐, 이 말이 가슴을 두드렸어요.”
 
그때부터 기도로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병원이며 집 정리였다고 한다.
 
“여름이 막 지났을 때인데 이 사람은 12월 안에 가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10월이 됐는데도 집이 매매도 없고 전세도 안 되고, 우리 아이는 학교 다니고 있고 그래서 아이가 학교를 마친 후에 가는 게 좋겠다고 다시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지금부터 가야할 길은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은 다 포기하고 손해를 보면서 가야하는 길이다. 이것이 선교사로서의 가는 길이라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회개를 했어요. 나는 지금껏 그런 인생을 살았구나, 하나님을 따르는 것에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갈 수가 있어야 되는데. 12월에 병원 문을 닫았어요. 정말 모든 게 갑자기 이루어졌어요.”

▲ 원장님 감사합니다.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수술 받은 어린이가 부모와 함께 김우정 선교사를 찾아와 작은 꽃 한송이를 전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김우정 선교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에게 이것은 꼭 해야 된다고 막 졸랐던 일은 사실은 별로 없었다”며 “그런데 캄보디아를 처음 갔다 온 이후로 6개월 동안은 캄보디아 이야기만 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청진기도 없는 시골병원이 허다했어요. 아이들이 아프면 그냥 운명에 맡기더군요. 그런데 이상하게 캄보디아 의료선교만 다녀오면 아이들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었어요. 생각하고 뭐하고 하면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아 ‘일단 가자’였어요. 빨리 가야 되겠다는 생각만 있어서 아내한테 강하게 얘기를 했던 거고요.”
 
그랬다. 김 선교사는 신학 이론에 묶여있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무나 못하는 결정을 한 것은, 그의 의지도 작용했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김 선교사는 “대한민국이 그냥 이뤄진 게 아니고 130년 전 조선 땅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의 피와 땀이 쏟아진 곳이란 걸 되새기게 됐다”며 “조선에 온 선교사들 중 1/4이 의료선교사였다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랐으며 그들이 한국 아이들을 건강하게 길러줬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우리가 할 일은 그분들이 하는 일을 따르는 것”이라며 “사랑의 빚을 졌으니 살만할 때 ‘그 빚을 갚으면서 살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연하게 일어났다. 부모와 친척을 등지고 인생의 소욕과 그 설계를 신앙 속에 묻은 뒤, 성령께 이끌려 이들 부부는 가벼운 행색으로 캄보디아 여행길에 나섰다. 2006년 1월이었다. 그 첫 걸음은 얼마나 비장한 발길이었을까.
 
“그냥 빨리 가야되겠다는 생각만 있었어요. 가면 뭐가 좋을지는 모르지만 좋을 것 같았어요. 의미 있고 보람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 부모와 친척을 등지고 인생의 소욕과 그 설계를 신앙 속에 묻은 뒤 성령께 이끌려 2006년 1월 부인과 함께 캄보디아에 정착, 의료 선교사들과 연합하여 헤브론병원을 세운 김우정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헤브론병원은 하나님의 작품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 자리를 잡은 부부는 개인 클리닉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것으로 그들의 섬김을 시작했다.
 
“병원은 많았지만 가난한 사람이 갈 수 있는 병원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뼈가 부러졌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고 고통을 참으며 그냥 낫기를 기다리더군요.”
 
박 선교사가 한마디 보탰다.
 
“얼마나 모기가 많은지요. 선풍기를 켜놓으면 그래도 견디는데 하루에 3시간 정전이 되거든요. 그래서 전기가 끊어지면 모기의 공격을 받으면서 진료하는데 너무나 힘든 거예요. 점심도 사람들이 많아서 집으로 돌아와 밥을 해서 먹는 상황 이다보니 3시쯤에 점심을 먹었고요.
 
그리고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안으로 들어가려다 보면 현관문에도 모기가 새카맣게 붙어있어요. 얼른 뛰어 들어가고 나올 때도 빨리 뛰어나와야 했죠. 문을 열면 모기가 뒤따라 들어오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하나님이 얼마나 행복감을 주시는지요. 정말 기뻤어요.”
 
오전에는 진료, 오후에는 언어공부를 할 계획이었지만, 몰려드는 환자들로 계속 진료만 해야 했다. 그런데 환자들 대부분이 성인, 노인들이었다. 경로사상이 강한 나라여서 가족이 전부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는 우선권은 연장자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선교병원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 김 선교사에게 이러한 현지의 상황은 연합사역을 시도하게 했다.
 
또한 무료로 운영되는 선교병원이어도 장기적으로 유지되려면 전문화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음전도가 열려있는 나라여서 선교사들도 많이 들어오고 있던 터라 김 선교사는 선교기지가 되는 병원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가졌다. 비전은 커졌고 그는 현지 의료선교의 틀을 짰다.
 
2007년 캄보디아 선교사회 등의 도움으로 초교파연합 의료선교에 나섰다. 프놈펜공항서 1km 떨어진 공장지대에 습지 땅을 메운 작은 병원이었다. 당시 병원 규모는 전체면적이 200스퀘어미터(60여 평)를 넘지 못할 정도의 작은 방갈로 형태였다.

▲ 수술받으러 한국으로 떠나는 현지인과 상담하는 김우정 원장(가운데)     © 크리스찬리뷰
 
“의료선교사들이 연합해서 NGO 병원을 설립하는 자체가 간단하지 않았어요. 행정작업이 지금도 쉽지는 않지만요. 누구를 만나서 뭘 어떻게 해야 진행이 되는지 저희가 사실 모르잖아요. 그래서 일일이 다 물어가면서 해야 되는데 일이 진행이 안 되는 거예요.
 
캄보디아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그런 나라라고 한참 이야기들을 많이 할 때입니다. 일단 저희들이 병원을 시작했어요. 환자들이 몰려오니까요. 그런데 한 달 쯤 됐는데 어느 날 갑자기 프놈펜시 보건국 직원이라며 5명이 온 거예요. 왜 허가도 안 받고 진료를 시작하느냐, 그때 이미 서류는 다 접수가 되어있었는데 승인은 못 받은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승인이 언제 나올지 알 수도 없고 승인을 누가 하는지도 잘 모르고 승인을 어디까지 받아야 하는지도 우리가 모를 때거든요.
 
차일피일 자꾸 미룰 수는 없으니까 그냥 시작한 건데 그들이 와서 벌금을 발부했어요. 아주 험악한 인상을 쓰면서요. 마음이 좀 그러더라고요. 그땐 이런 시설이 아니었거든요. 거의 난민수용소 수준에서 얼마나 땀을 흘려가면서 그렇게 해보자고 열심을 냈는데 단속을 당하니까 제가 화가 나가지고 그럼 우리 중단하겠다, 책임은 너희들이 져라, 그때 환자가 막 늘어서 100명-150명으로 늘어났을 때거든요. 그랬더니 슬쩍 빼더라고요. 결국은 해결을 보았지만 관공서하고 여러 번 그런 비슷한 일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관행이나 절차 같은 것을 많이 알게 돼서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다 할 수가 있는데 처음에는 그런 것들이 어려웠어요.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누구한테 도움을 청할 데도 없었고요.”
 
‘한국인이 운영하는 무료병원’ 입소문은 금방 퍼졌다. 전국에서 모인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햇빛 피할 곳도 없는 습지에 사람들은 반나절 동안이나 쪼그려 앉아 마냥 순서를 기다렸다. 진료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 점심 식사를 함께 나누는 헤브론병원 선교사들.     © 크리스찬리뷰
 
“환자들이 몰려드는데 그곳에는 화장실이 없었어요. 그러니 여기저기가 화장실이었죠. 그러다가 우기 철이 되어 비가 오기만 하면 온갖 것들이 다 떠다니잖아요. 그런 가운데서 진료를 했어요.”
 
지칠 줄 모르는 김 선교사는 그들을 위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병원 증축을 위해 발로 뛰었다.
 
“며칠 입원치료를 하던지 또는 작은 수술이라도 할 수 있으면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텐데 생각하며 작은 수술실 짓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30평 정도되는 수술실을 만들었으면 하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손들을 통해 일하셨고, 많은 교회와 후원자들을 동원하여 연결시키셔서 천 평이나 넘는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물론 건축공사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이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공사를 하다가 책임자가 공사대금을 가지고 행방불명된 겁니다. 건축책임자가 행방불명됐으니 건축이 중단되고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7년 12월 기공예배를 드렸는데 2008년 한국에 금융위기가 왔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질 없이 공사가 진행되어 2010년 9월 준공감사예배를 드렸어요. 기적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일하시는구나. 헤브론병원은 하나님의 작품이구나. 모두들 기적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김 선교사는 “하나님은 많은 교회와 후원자들을 동원하시고 사람들의 작은 손을 통하여 일하셨고 연결시키셨으며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하셨다.”며 “헤브론병원은 여러 교회와 후원자들의 사랑과 기도와 물질로 지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 헤브론병원 식당의 주방 책임을 맡고 있는 김우정 선교사의 부인 박정희 선교사(왼쪽)와 주방팀.     © 크리스찬리뷰
 
“그 중에는 캄보디아 할머니의 작은 연보도 있고, 거래가 재 성사되기 전에 계약금만 받은 상태에서 약정한 금액을 송금해 주신 분도 있고, 부모님을 기념하며 드린 후원금, 캄보디아 환자들이 매일 조금씩 상자에 넣은 돈을 모은 것도 있습니다. 십일조 헌금으로 후원해 주신 현지의 선교사들도 계시고 추수감사 주일헌금 전액을 보내주신 교회도 있고, 경제위기로 모두가 어려운 때 빠듯한 교회재정에서 큰 금액을 보내주신 미국과 한국의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교사들 중 이 정도 크기의 병원을 운영해 봤거나, 건축해 본 경험을 가진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김 선교사는 “단지 의사 여럿이 모이면 효율적으로 진료할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며 “18억 원의 건축비용을 한국교회와 미국 및 캐나다 한인교회들로부터 모금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결국 조금도 빚을 지지 않고 완공했다”고 설명했다.
 
“고민은 있었죠. 왜 우리가 이렇게 큰 병원을 지어야 하나에 대해서요. 작으면 짓기도 운영하기도 쉽잖아요. 그렇지만 기도하다 보니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었어요. 바로 인재를 양성하라는 것이죠.”

▲ 헤브론병원(오른쪽)과 선교사 숙소.     © 크리스찬리뷰
 
헤브론병원의 큰 두 기둥 ‘학교와 병원’
 
김 선교사는 “헤브론병원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병원이고 또 하나는 학교인데 결국 목표는 학교나 병원 동일하게 사람을 길러 세우는 것, 크리스찬 리더들을 말씀 안에서 세워 그들에게 이양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교병원으로 시작했고 그래서 가능하면 치료도 하지만 복음도 함께 전하는 역할을 하자, 같이 일하는 캄보디아인들이 많아졌는데 그 안에서 좋은 크리스찬이 생겨 날 수 있도록 길러 세우자는 거지요. 그리고 병원이 외형적으로 커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력있는 병원으로, 헤브론병원에 가면 괜찮은 의료진들이 좋은 진료를 하고 좋은 수술을 받을 수 있다며 맘 놓고 갈 수 있는 병원입니다.”
 
김 선교사는 “헤브론병원은 선교지에 있는 작은 병원으로 모든 분야에 의료를 감당할 수 있는 병원은 아니다”며 “그래서 두세 가지 잘할 수 있는 병원으로 전문화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 하나가 심장센터입니다. 캄보디아는 특별히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많고 그 아이들이 거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수술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으로 보내서 수술을 받도록 도와주었죠. 한국에서 비용을 대주어서 가능한 일이었죠. 그러다가 2014년 7월 심장센터의 문을 열어 이곳에서 수술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 심장수술에 앞서 마취를 하며 수술준비가 한창인 헤브론병원 심장센터 전경.     © 크리스찬리뷰
 
또 한 가지는 암센터입니다. 암 환자도 그렇게 많습니다. 갑상선암, 위암, 유방암, 대장암, 그런 암 환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도하는 것뿐이었죠.
 
정말 너무나 안타까워 눈물로 매일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생판 모르는 내과 외과의사 세 분을 연결시켜 주셔서 동역을 하게 되었고 시설도 미비하고 여건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수술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캄보디아에서 암 수술을 잘하고 있는 병원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수술밖에 모르지만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도 하는 암센터의 꿈을 가지고 있죠.”
 
김 선교사는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을 얻는 것은 선교사역의 자랑이요 열매라고 생각을 한다”면서 “사람을 길러 세우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는 마음을 주셔서 그 첫 단계로 간호대학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대학은 후에 의과대학을 세우는 전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년제 과정인데 학생들이 늘어날 것에 대비하여 기숙사 건물을 건축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학생들을 기숙사에 모두 수용을 해서 기독교 인성교육을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 헤브론병원에서 심장 수술 중인 세계소아심장네트워크 팀.     © 크리스찬리뷰
 
간호학은 지금 캄보디아인 중에서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분이 없어요. 그래서 교수 요원을 길러내면 10년 후 15년 후면 자기네 사람들이 자기네 사람들을 교육하고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학교는 아직 초기니까 몇 년 더 지나야 자리가 잡힐 것 같고요.
 
또 3년 과정의 캄보디아 의사 레지던트수련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신앙 안에 잘 훈련된 능력있는 의료인들이 배출이 되고 그들 중에 일부는 다른 나라에도 진출하여 캄보디아에 유익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꿈을 꾸어 봅니다. 우리의 경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이 일에 꼭 필요한 분들을 준비해 주셔서 그분들의 수고와 헌신으로 작업이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김 선교사는 “130년 전 의료선교사들로부터 복음과 생명을 얻은 우리다. 돌려줘야 한다”며 “15년 20년 안에 모든 것을 현지인에게 맡기고 가방 하나 들고 훌훌 떠날 것”이라고 밝혔다.
 
“캄보디아는 지금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앞으로 20년 후에는 지금 선교사들은 모두 손 털고 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크리스찬 의사, 간호사들을 키워간다면 이들이 사회의 주축이 될 뿐더러 크리스찬 리더로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겠지요. 내과와 외과 파트를 책임지고 진료하고 교육할 수 있는 한국의사들이 오도록 이를 위해서 기도 부탁드립니다.”
 
김 선교사는 “캄보디아를 넘어 인접국인 라오스와 미얀마 등에로도 섬김의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3월 8일 준공을 앞둔 간호대학 기숙사 신축 공사 현장.     © 크리스찬리뷰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
 
보이지 않아도 가야할 길 내 주님 가신 길/ 아무리 멀어도 가야할 길 내 주님 가신 길/ 약속을 믿으며 가야 할 길 내 주님 가신 길/ 부르심 따라서 가야할 길 내 주님 가신 길/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
 
“미국에서 단기 의료팀이 왔을 때 함께 오셨던 음악목사님이 헤브론병원을 위해 지어준 노래의 가사입니다. 헤브론병원이 시작될 때에도 그리고 병원 새 건물이 건축을 시작 할 때에도 사실은 아무 능력도 없이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왕이 능력도 없고 어찌할 줄도 모른다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에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일을 이루는 것을 보기만 하라’고 응답하셨던 역사가 헤브론병원에도 있을 줄 믿고 지나온 날들이었습니다.”
 
김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도하게 하시는지 모른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일하신다”며 “현지에 있다 보면 130년 전 한국에 들어온 외국 선교사들이 한 사람을 살리려고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을지 짐작이 간다”고 말했다.
 
“단기의료선교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이 있고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단기의료선교에 대해 부정적이었어요. 잠깐 봐주고 가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장점들이 있어요. 이렇게 와서 현장을 보지 않으면 우리를 누가 돕겠느냐, 저는 그렇게 많이 얘기를 합니다. 현장을 봐야 현장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장기로 와있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나도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그런 점에서 굉장히 긍정적이거든요.
 
저희 병원도 인력이나 필요한 약품이나 재정후원이나 의료장비 등등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단기 팀으로부터 넘어온 거거든요. 약품도 남으면 다 주고가고요. 단기 팀이 와서 약품 주고 가는 것만 해도 적은 양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됐어요.

▲ 헤브론병원의 선교사들은 매일 아침 QT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 크리스찬리뷰
 
그런데 현재 저희 병원의 입장에서는 단기 팀들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수술 팀, 아니면 전문적인 내시경 팀, 아니면 심장혈관조형장치, 그 비싼 장비가 들어와 가동하고 있거든요. 그런 걸 할 수 있는 분들이 오면 훨씬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헤브론병원에서는 의사들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간호사, 병원행정, 홈페이지 관리자, 후원자 관리자 등 다양한 분들이 필요합니다. 저희 병원과 사역을 위해 관심을 갖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정희 선교사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꺼냈다.
 
“이 분이 첫해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선교보고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농부가 밭에 있는 보화를 보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샀다는, 그 농부 이야기를 하는데 아, 그런 심정이었겠다, 정말 보화를 발견한 심정이었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박정희 선교사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총회 증경 총회장이자 충무교회 원로목사인 고 박종렬 목사의 장녀다. 고 박종렬 목사는 예장통합 제69회 총회장, 기독공보 이사장, 합동신학대학원과 장신대 신학대학원 강사 등을 역임했다.
 
헤브론병원 정문 앞은 새벽 2시부터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갓난아이를 안고 온 어린 엄마부터 주름에 삶의 고단함이 짙게 밴 노인까지 마당에 늘어선 줄이 끝이 없다. 대문이 열리면 와- 함성소리에 기숙사 동에서 잠자던 처음 온 사람들은 난리가 났나보다고 놀란단다.
 
“잠깐 계시던 목사님이 있었는데요, 치안이 불안하고 그러더니 난리가 났구나, 어디로 도망가야 되지 않느냐며 기숙사에서 뛰쳐나오시더라고요.

▲ 오전 진료를 마친 후 병원 로비에서 찬양과 감사 기도를 드리는 헤브론병원 의료진들.     © 크리스찬리뷰
 
사실 이곳에 오는 환자들은 프놈펜을 중심으로 100여km 떨어진 시골에서 올라오는 환자들도 많아요. 그런데 노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 오기까지는 불편함이 많습니다. 시골사람들은 자기네 집에서 시장이 있는 큰길까지 나와야 돼요. 보통 10km 20km 떨어져 있거든요.
 
시장에 가면 봉고차들이 꽤 많이 있어요. 그걸 타고 프놈펜으로 와서 오토바이나 툭툭이로 갈아타고 오던지, 아니면 환자들이 많으면 환자들을 싣고 직접 병원까지도 옵니다. 그리고 진료가 끝나면 태워다 줘요. 그런 봉고차가 있으면 편하게 오는 거죠. 한 30명 정도 타고 오거든요. 그런데 프놈펜 시내에는 교통순경이 많아요. 사거리도 많고요. 그리고 사거리를 지날 때마다 한국 돈으로 500원씩, 캄보디아 돈으로 2000리알씩 순경들한테 계속 상납을 하면서 와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사거리 열 군데 거쳐 와야 된다면 꽤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순경들이 근무하지 않는 새벽에 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시골에서는 잠도 안자고 오는 거죠. 물론 미리 와서 프놈펜에서 자는 환자분들도 있어요.”
 
후회는 없느냐고, 대놓고 물었다. 한마디로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후회는 안 해봤어요.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감사하고요. 아니면 제가 한국에서 계속 있었으면 어떡하면 더 맛있는 걸 먹을까, 좀 더 멋있는데 구경 갈까, 그러고 그냥 살았을 텐데 하여튼 편하게 살지는 말아야죠. 아내와 둘이 앉아서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그런 이야기를 가끔 나눠요. 선교사가 되려고 그렇게 애쓴 사람들도 아니고 선교사 꿈을 꾸고 키우고 훈련한 사람들도 아니고 먹는 것 좋아하고 노는 것 좋아하고 똑같이 그렇게 살던 사람들인데요.”
 
이런 선교사도 있다. 그 평안이 내심 탐이 난다. 오히려 세상에 찌든 기자의 모습이 들킬까봐 조마조마했다.

▲ 심장 수술 받은 어린이들을 진찰하고 있는 김우정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위드 헤브론
 
사단법인 위드 헤브론(회장 김해수 목사)은 헤브론병원의 사업예산을 돕고 후원자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2013년 12월에 설립되었다. 위드 헤브론 김기영(73) 사무국장은 “법인으로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며 “회원은 410명(단체 60개, 개인 350여 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원래 시작은 서울 충무교회를 중심으로 을지로교회가 연합해서 조직한 헤브론 캄보디아 의료선교회가 주관을 했어요. 그러다가 법인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거죠. 법적인 승인이 없으면 우리가 해외에 송금을 한다든지 또 후원자 관리중의 하나인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한다든지 이런 부분을 직접 할 수가 없잖아요.”
 
김기영 사무국장은 “캄보디아에 단기선교를 여러 번 다녀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캄보디아 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서 “직장생활을 해외에서 근무하다보니까 시무장로로서의 일을 제대로 감당을 못한 부담감으로 회사를 정년퇴직하면서 자진해서 섬기게 됐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죠. 다만 모금활동이 활발하게 되어야지만 병원이 목표한대로 계획대로 맞춰나갈 수 있는데 현재는 후원자가 몇 명이고 연락처 정도만 정리된 상태입니다.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데도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인적자원의 부족이죠. 많은 관리비용이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을 영입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김 사무국장은 “위드 헤브론은 모든 재정이 투명해야 된다는 생각이며 운영비는 전체 후원금의 15% 미만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소아과 전문의인 김우정 선교사가 심장 수술 받은 어린이들을 진찰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후원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제대로 전달을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감사한 것은 일을 하면서 후원자들의 사연을 들을 때마다 큰 은혜를 받아요.
 
어느 한 분이 김우정 선교사님이 CBS 방송에 출연했는데 그 방송을 듣고 캄보디아 병원으로 전화를 하셨어요. 연락처가 서울에 있는 걸 모르고요. 그분께 제가 전화를 드렸는데 목소리가 연로하시더라고요. 자기가 85세시래요. 그러면서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내가 일정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겠다고 그래요. 알고 보니까 우리말고도 다른 기관에 후원하시는 분이셨어요.
 
전화 통화는 여러 번 했지만 아직 뵙지는 못했는데 선한 모습이 보여요. 금년에는 제가 찾아뵈려고 하는데 ‘남은 생애 의미 있게 살아야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에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 분당 서울대병원 의사 여러분께 고마워요. 심장센터 오픈하는데 그분들이 모금한 금액이 4억 원입니다. 전체 교수분들이  준비하셨대요. 심장병에 들어가는 기자재들을 구입했는데 기적 같은 일이죠. 수술 받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그 마을에 교회가 시작되고 변화가 일어나요. 얼마나 감사해요.”
 
김 사무국장은 “헤브론병원이 앞으로 할 일들이 많은데 그 일들을 잘할 수 있도록 든든한 기초를 만드는 일이 내가 할 일”이며 “그런 후 빨리 젊고 유능한 후임자에게 이일을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후원문의 070-8258-3396)

▲ 오후 5시. 하루 일과를 마친 헤브론병원 선교사와 직원들이 병원 뒷마당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감사기도를 드리고 하루를 마감한다.     © 크리스찬리뷰
 
에필로그
 
헤브론병원 선교여행은, 크리스찬리뷰가 창간 25주년을 기념하여 계획된 일이었다. 취재 중 쓴 일기와 찍은 사진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내게 왜 그렇게 많은 은혜와 감동을 주셨는가 생각해봤다. 다른 사람과 그 은혜와 감동을 나누라는 뜻인 것 같다. 나눔으로써 진리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은혜를 대하는 가장 이기적인 태도가 ‘나만 누리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한계도 여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크리스찬은 자기가 받은 은혜를 누군가와 나눠야한다. 그것이 크리스찬의 의무다. 한국교회에는 큰 은혜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은혜를 교회 안에 가두기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다.
 
내 개인적인 처지에서 캄보디아를 다녀온 후 몇 가지 변화가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참고 견디는 인내력이 그전에 비해서 많이 늘어 난 점, 그리고 고정관념의 늪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섬으로써 새로운 삶을 이룰 수 있고,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양식과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차리게 되었다.

▲ 헤브론병원 후원의 밤 행사에서 후원자들을 영접하는 사무국장 김기영 장로(왼쪽).     © 크리스찬리뷰
 
종래 관념적으로 막연히 이해하고 있었던 기독교의 본질이 연합과 협력에 있음을, 일상적인 사랑의 실천에 있음을 헤브론병원과 오지마을을 돌아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여행은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계기이고, 자기 탐구의 길이라는 사실도 이번 여행에서 얻은 교훈이다.
 
선교여행을 통해 익숙한 자리를 벗어나길 권하고 싶다. 헤브론병원을 방문하여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는 에베소서 5장 10절 말씀을 시험해볼 수 있다. 그곳에서 믿음, 소망, 사랑을 재료로 성경의 말씀을 실험해볼 수 있다.

▲ 헤브론병원은 매일 200-300명의 환자가 새벽 2시부터 몰려와 북새통을 이룬다. 병원 정문은 새벽 4시 30분경에 문을 연다.     © 크리스찬리뷰
 
내가 경험한 교훈이다.
 
헤브론병원을 다녀와서 꿈을 가져본다. 복음으로 변화될 이 땅에 사랑의 예수님이 함께하기를. 그리고 은혜로 또 만날 수 있기를.〠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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