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학고레’의 하나님

강승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2/29 [10:55]
하나님은 우리가 사역을 잘 감당하지 못할 때에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 사사시대의 나실인이요, 용사였던 삼손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실인이었던 삼손에게 육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는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삼손이 하루는 동포의 손에 포로가 되어 블레셋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나귀 턱뼈 하나로 1천 명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 삼손은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천 명을 죽였도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승리했지만, 삼손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지 않는다. 그리고 삼손은 새 나귀의 턱뼈를 던져버린 후 자신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그곳을 ‘라맛 레히’(턱뼈의 산)이라고 이름짓는다. 결국 삼손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사였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철저히 자신의 능력과 힘을 자랑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인생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면서 살지만, 성공의 자리에 설 때에는 내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이뤄졌음을 고백하며 성취감을 표현한다. 이것이 라맛 레히의 인생이다. 삼손이 자신의 근육과 용기와 힘을 자랑하듯이 우리도 세상의 출세와 명예와 물질을 추구하고 성취할 때 내가 이루었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삼손은 나귀 턱뼈 하나로 1천 명을 죽인 용사였지만, 싸움이 끝난 후 지치고 큰 갈증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삼손이 지금 죽어버리면 그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삼손은 죽음의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하나님은 삼손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절구 형태로 된 구멍, 즉 나귀 턱뼈 모양같은 우묵한 곳에서 물이 나오게 하신다. 

하나님은 삼손에게 물 한 모금이나 생수 한 병을 주시고 겨우 목마름을 해갈하도록 한 것이 아니라 솟아나는 샘물을 주신다. 그래서 그 샘의 이름을 ‘엔학고레’, 즉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고 부른다. 삼손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의 힘으로 구원하셨다고 고백한다. 이때부터 삼손은 이스라엘의 사사로 20년을 지내게 되는데 이스라엘의 영적 리더인 사사로 인정받게 된다.

‘라맛 레히’의 삼손이 21세기 선데이 크리스챤의 모습이라면, ‘엔학고레’의 은혜를 고백하는 삼손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자의 모습이다. 신앙생활의 위기는 항상 ‘내가 할 수 있다!’는 자기 중심주의에서 시작되지만 신앙생활의 축복은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신다!’는 은혜 입은 종의 자세에서 출발한다.

라맛 레히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 부르짖어 엔학고레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소원에 마음을 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이름을 떨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삼손과 같은 죽음의 위기로 내몰고 다시 하나님을 찾게 하신다.

당신에게 어떤 죽음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가? 의학이나 과학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우리의 창조주요 구원자 되시는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엔학고레의 하나님을 만날 기회이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목마름을 가슴에 품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보혈을 흘려 주셨다. 이제 우리는 그 보혈을 통해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받게 되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라고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우리 인생의 목마름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해갈된다. 예수님만이 구원을 주시는 생명수가 되시기 때문이다.〠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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